소설리스트

축따-65화 (65/208)

65화. 5분으로 바꾸죠

“다녀오겠습니다, 감독님.”

“건! 많은 발전을 하고 오길 바란다. 항상 우리가 너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것을 명심해. …템포적인 부분 등 내가 말했던 부분에서 매 경기 너의 열정을 쏟아붓는 것을 보고 싶다.”

어느덧 아스날에서 예정되어 있던 훈련기간이 모두 지났다.

그 말은 바로 세계적인 리그의 겨울 이적 시장이 열렸다는 말이었기도 하고, 임대를 떠나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말.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아르테타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유건이었다.

감독으로서 아르테타가 요구하는 것은 훈련과정에서 보였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한 보완이었다.

“찾지 않아도, 자연스레 제 소식이 감독님의 귀에 들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런 요청에 유건은 자신감을 내비쳐본다.

스스로도 당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임대를 가는 프리메라리가도 세계적으로 한 손에 꼽히는 리그였으니, 거기서 엄청난 활약까진 아니더라도 발전을 하고 싶었다.

자신을 믿고 진심으로 영입하기 위해 다가왔던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럼, 반년 뒤에 뵙겠습니다.”

그게 아르테타의 사무실을 나서는 유건의 마지막 말이었다.

최소 반년이었다.

당장 이번 시즌 임대 기간이었고, 혹시나 활약하지 못한다면 워크 퍼밋 발급은 아마 거절될 것이다.

그렇게 임대만 떠돌다가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선수들도 많았다.

지금 당장은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만약 유건이 이곳으로 복귀를 원한다면 아주 많이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주전을 유지해서 비자 발급에 점수로 포함되는 경기 출전 비율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를 믿는 수밖에.’

사실 아르테타도 유건의 에이전트인 최창훈과 얘기를 나누면서 스페인 2부리그 혹은 분데스리가 2부리그를 생각했었다.

갑자기 높아지는 리그 수준에 적응에 애를 먹을까 봐 차근차근 스텝업 시키려고 했던 것.

하지만, 직접 연락을 받았었다.

자신이 인정하는 축구천재 중 한 명인 스페인과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정말 대단했지, 그 친구.’

선수 시절 축구 실력이라면 아르테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었다.

게다가 와인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나서야 늦게나마 시작한 감독 커리어였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지난 시즌 중도 부임한 이후 팀을 강등권에서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으니까.

물론, 이번 시즌에는 “역시 초짜 감독”이라고 불리며 리그 테이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가 자신에게 요청했던 것이다.

이번에 영입한 보석 같은 선수를 보내주면, 자신이 그 보석을 세공시켜서 다시 보내주겠다고.

자신의 팀으로 임대해달라고 말이다.

프리메라리가의 헤타페 CF로.

***

[아스날 FC 유건, 헤타페 CF로 반시즌 임대!]

[워크 퍼밋 발급 거절로 인해 임대를 가게 되는 유건의 미래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팀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 외국인 쿼터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적하자마자 임대를 가게 되어버린 유건의 상황.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고, 기자들로서도 다룰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일반적으로 이적 오피셜 이후로는 좋은 활약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 아, 이게 이제 생각났네. FM 해봤으면 알지만 K리그 출신이 워크 퍼밋 받기 진짜 힘듦

└ 영입한 선수 비자 못 받아서 임대 뺑뺑이 돌리던 기억 떠오르네!

└ 그래도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헤타페로 결정된 거면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함

- 형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축따형을 믿어보자! 이 상황을 이미 알고도 이적했다는 건 자신 있다는 거 아닐까?

- 언어 문제가 당장은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스날로 돌아오기 전에 영어 빨리 익히고 비자 발급받자!

축따튜브에서도 걱정이 없을 리가 없었지만, 뉴스 기사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조건들을 고려해서 댓글을 달아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저 믿으려고 했다.

일 년 만에 유건이 만들어낸 일들은 소설로 써도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로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기회야, 그리고 생각보다 팀이 약하지 않아.’

객관적으로 지금 상황을 바라본다면 21살의 나이에 세계적인 리그, 그것도 1부에서 주전으로 뛰려고 임대를 온 것이다.

팬심을 빼놓고 보더라도 확실히 대단한 일.

더불어 유건이 생각하기에 다행인 점은 팬들이나 다른 대중들의 걱정만큼 상황이 그리 최악인 것만은 아니었다.

단 3일이었지만, 도착해서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 헤타페 CF는 유건이 보기에 충분히 강등권을 벗어날 수 있는 팀이었다.

“오랜만이다, 빡빡이.”

오늘 새롭게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클라우디오 마르티노.

유건이 뛸 포지션에 있었던 헤타페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게 되면서, 마르티노를 원했던 이니에스타가 계약조건에 포함시켰다.

어떻게 보면 기존 소속팀에서 버려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오히려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을 원하는 감독이 불러들였으니까 말이다.

“온다는 소식은 들었어, 앞으로 잘해보자고!”

그리고 그와는 인연이 이미 있었던 유건이었다.

바로 올림픽 8강전에서 붙었던 멕시코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 마르티노였었으니까.

당시 유니폼 교환은 자신이 더 챙겨보았던 프리미어리그의 수아레즈와 하긴 했지만,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폭발적인 주력과 정확한 러닝 크로스가 장기인 그는 위협적으로 느껴졌었기에.

“우리 이겼으면 금메달 땄어야지! 동메달이 뭐냐?”

“…크흠, 누군 안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냐?”

그에게는 사실 언짢을 수도 있는 기억이었기에 섣불리 먼저 장난을 걸지 못했던 유건이었는데, 오히려 마르티노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딸 거면 금메달을 따지 왜 동메달을 땄냐고 말하면서.

어떻게 보면 둘은 힘을 합치고 서로를 도와서라도 주전을 차지해야 하는 동일한 입장이었다.

유건의 포지션에서는 핵심 선수가 떠났다 할지라도 후보 선수가 경쟁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마르티노는 전반기에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가 경쟁자였기에 조금 더 안 좋은 상황에 있었지만 말이다.

“자자, 모두 주목! 우선 건이나 마르티노나 다들 언어적인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다!”

“둘을 맞이하는 신고식은 다음 경기까지만 끝내고 하도록 하자고.”

새롭게 들어온 마르티노를 환영하는 시간은 잠깐이었다.

이미 다음 경기인 레알 베티스전을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 이니에스타의 지도 아래 진행 중이었으니까.

신입을 환영하는 신고식이 중요한 일임은 틀림없었지만, 그보다 중요했다.

강등권을 탈출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

‘…그저 똑같은 축구 경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상 그 이상이야.’

아직 팀원들과의 호흡이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은 아니었기에, 유건은 당연히 벤치에서 시작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수준 높은 리그의 풍경.

상상보다 더 대단했고, 생각보다 더 치열했다.

상위권과 하위권이라는 순위표에서의 차이점 말고는 동일했다.

뛰고 있는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가고 싶다는 두 팀의 열망은 말이다.

“ 좀 더 빠르게 달라고!”

“마무리해야 역습 안 당한다고!”

하지만, 순위표와 상관없는 이변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5위에 위치한 레알 베티스는 3-5-2 포지션을 통한 중앙 지역의 수적 우위를 통해서 점유율 위주의 축구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 상황에서 수비에 치중하면서 기회를 노리는 헤타페의 역습 전술은 먹혀들지 않았다.

‘지지 마라, 다들.’

같이 팀에 소속되어 생활한 지는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팀원들이 분투를 하는데도 따라주지 않는 경기 결과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순간 벤치에 앉아 그저 응원만 하는 자신의 모습도 마음에 안 들었다.

구단에서 생활한 기간에 관계 없이 프로선수로서 소속팀의 승리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건, 마르티노! 워밍업 하라는 감독님의 지시다.”

“…알겠습니다!”

마침 그때 들려오는 코치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대답하는 유건.

전반전에 빠르게 실점한 한 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헤타페 CF.

10분째 지속되는 반코트 경기의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한 이니에스타 감독의 선택은 영입생들이었다.

오늘따라 턴오버를 남발하는 유건의 포지션 경쟁자, 빌드업 과정에서 기본적인 실수를 반복했던 오른쪽 사이드백.

그들을 대체하기 위해서 내린 교체였다.

우우우우-!

하지만, 유건이 워밍업을 시작하자 야유를 시작하는 홈구장 콜리세움의 팬들이었다.

그들이 야유를 하는 이유.

아스날의 팬들이 우려하는 것과 똑같았다.

- 올림픽 기간 동안 잠깐 잘한 거잖아!

- 외국인 쿼터를 저 어린 친구한테 쓰는 게 말이나 되냐고!

- 마르티노같이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를 사 와야지, 미친 감독의 도박 수에 너무 많은 게 걸려있는 상황이라구

- 작년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이니에스타한테 우리는 모두 속았어

반면에 마르티노는 리그에서 검증된 자원이었기에, 팬들로서는 당연히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젊고, 빠르고, 크로스 능력마저 갖춘 유망주가 들어온 상황이었으니까.

그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유건은 심지어 25명의 선수단 중 단 3명만 포함시킬 수 있는 외국인 쿼터를 소비하기까지 했다.

어찌 보면 팬들이 이니에스타와 유건을 욕하는 게 정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해가 안 가지는 않지만 어린 선수한테 이런 야유라니, 쯧.”

“감독님, 팬들의 반응이 보이십니까? 건은 아직….”

이니에스타도 팬들의 야유를 듣고 있었다.

선수 시절에 이어 감독 생활을 포함하면 이십 년 이상을 축구계에서 살아왔기에 익숙했지만, 이번에 영입한 어린 친구는 아닐 가능성이 컸다.

자신의 선택을 항상 신뢰해주는 코치조차 교체되는 백넘버를 심판에게 전달하기까지 망설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건, 잠깐!”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유건을 불러세우는 감독 이니에스타.

그것을 보며 자신의 의견을 들어준 그를 감동스럽게 쳐다보는 코치였지만, 이내 그 표정은 뒤바뀌게 되었다.

“10분, 10분 안에 이 야유를 환호로 바꿔놓고 와라.”

감독으로서 유건이란 선수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

자신이 경외심을 표했었던 선수, 지단의 향기가 느껴지는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였으니까 말이다.

그에게는 적응하는 시간이 문제였지 실력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단 며칠 동안의 훈련에서도 유건의 번뜩이는 움직임들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바로 투입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던 이니에스타였다.

“…5분으로 바꾸시죠.”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63.33%]

[오늘 경기에서 팬들의 야유를 환호로 바꿔놓으세요 (0/1)]

이니에스타의 요청에 한술 더 뜨는 것은 바로 유건.

공을 잡아놓는 순간,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메세지는 자신감을 키워준다.

어느덧 63%를 넘어선 동기화율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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