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그렇지 이거라고
“신입, 나이스 패스!”
“좋은 탈압박이었다, 건!”
여름의 귀국을 배웅해준 뒤 정식으로 임대 전, 아스날 훈련에 참가하기 시작한 유건은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게 반짝하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듯 말이다.
더군다나 팀의 레전드이자 주장인 마틴 외데고르와 찰리 파티노의 도움으로 아스날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등의 노력을 해주었으니까.
“건! 그렇게 공을 줘버리면 우리 팀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거지?”
“방금 상황에서는 파티노한테 사람이 안 붙어있었으니 거기로 줬어야지!”
“여기로 줘도 돼, 신입!”
하지만 물론, 빠르게 적응한다는 말이 훈련장을 지배할 정도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매년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유행을 시켰다는 얘기가 나오는 4-3-3 시스템.
겨울 이적 시장 전 부임한 아르테타가 꾸려가고 있는 아스날의 전술도 그 포지션이었다.
기존에 투 볼란치의 지원을 받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위치에서 약간 내려온 메짤라로의 변경.
그 변화는 한순간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기에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유건으로서도 많은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확실히 체력이.’
첫 번째로 보완해야 할 부분은 체력.
이전보다 훨씬 더 수비적인 위치까지 내려가고 하프 스페이스(중앙 지역과 사이드 지역의 사이 공간) 깊은 공간까지 침투하기 위한 활동량의 증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생각과 실전은 차이점이 있었다.
한 타임의 훈련을 뛰고 오면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하고 그저 잔디에 누워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였다.
‘이 정도로 손쓰는 건 심판이 봐주나 보네!’
두 번째는 몸싸움.
올림픽을 준비하며 겪었던 피지컬적으로 완성된 알렉스 둠바, 스티븐 라이스와의 몸싸움.
그게 일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계 화면으로 보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프리미어리그의 거친 몸싸움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스날 선수들은 훈련 상황에서도 실제 경기처럼 볼을 커팅하고 소유하기 위해 손으로 유니폼을 잡고 늘어지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아르테타 감독이 실전과 같은 집중과 열정을 훈련에서도 요구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다리를 넣어서 뺏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으로는 수비적인 위치선정과 압박 능력.
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맡았던 용인 FC와 올림픽에서 경기를 뛸 때와는 다르게, 수비적인 역할의 비중이 훨씬 올라갔다.
왼쪽 혹은 오른쪽 하프스페이스를 담당하는 메짤라 포지션은 보통의 전술에서 수비형 미드필더가 위치하는 지역까지 내려올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그런 부분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던 유건은 더 신경 써서 압박을 가하고 위치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리그에서 먼저 진출해서 뛰고 있었던 선수들이 조금만 서투른 자신의 수비 움직임을 파악해서 순식간에 제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크으,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니었나?’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언어.
맨온, 패스 등의 간단한 용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문장이 조금만 길어지면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유건을 위해 스페인어를 아는 팀원들은 가끔 그걸로 소통해주긴 했지만, 훈련에서 배정된 팀 전체가 경기 중에 얘기할 때는 대부분 영어였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여 구단에서 배정해준 영어 선생님과 보충 수업을 할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
후욱-! 후욱-!
“이봐, 거너! 파티노 집에서 파티하는 거 알지?”
오늘의 훈련 일정이 모두 종료되고 정리를 하기 전에 그라운드에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던 유건에게 말을 거는 살리바.
미리 예정되었던 파티였고, 유건이 도착한 이후로 10일 동안 3경기를 치러야 했던 일정 덕분에 아직 신고식을 못 했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 목적 자체는 유건의 환영회 겸 신고식이었다.
그리고 일정상으로도 괜찮았던 게 이틀 전의 경기가 끝나고, 내일모레부터 2주 동안 진행되는 국가대표 A매치 친선전을 위해 대부분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영국을 떠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유건이 헤타페로 떠나야 되기도 했고.
‘김진용 감독님이….’
하지만 이번에 유건을 비롯한 해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은 대표팀에 승선하지 않았다.
이유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감독 변경이 있었는데, 첫 평가전은 국내 선수들을 평가하겠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진용 감독.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동메달이라는 성적을 낸 그가 2년 뒤에 열리는 월드컵을 위한 감독으로 낙점되었다.
좋은 공격진으로 열 경기 넘도록 무득점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보여준 이전 감독이 경질되었기에.
“오늘만 벌써 그 말 다섯 번째야, 살리바! 아주 잘 알고 있다니까.”
대표팀에 관한 생각은 잠시였고, 눈앞에 있는 동료의 질문에 답변하는 유건.
말 그대로 트레이닝 센터에 모습을 보이자마자 달려와서 장난치며 말했던 살리바였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새로운 영입생의 장기자랑을 빨리 보고 싶었던 게 이유였다.
적응하는 데 가장 도움을 준 선수라면 빼놓을 수 없는 팀원이라 고마웠지만, 계속 어떤 노래를 부를 거냐는 질문은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진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아니, 그나저나 마틴 말대로라면 저놈 예전에는 조용했다며!’
머릿속에서는 신고식을 위해 어떤 노래를 부를 거냐가 첫 번째.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기로 가득 찬 살리바의 과거를 언급해주었던 주장 마틴 외데고르의 말이 두 번째였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살리바만 봤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으니까.
***
워어어어-! 두두두두-!
“보여달라고, 거너!”
“건! 건! 건!”
“신나는 거 해줘라, 신입!”
파티노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가 무르익어가는 시각, 유일하게 유건을 거너라고 호칭하는 살리바의 주도로 하나둘씩 식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괴성을 지르면서 말이다.
이미 다들 그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너도나도 바로 동참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별튜버다, 이놈들아!’
자신의 신고식을 보기 위해 분위기를 올리고 있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이미 준비는 되어있었다.
구단에 영향을 주는 정보 같은 걸 퍼트리지 않는다면 별튜브를 하는 것은 허락받았기에 팬들과 소통하면서 노래까지 정해놓았다.
오! 오! 오!
“오빤 코리안 스타일!”
팬들에게 비웃음까지 당하면서 연습했던 코리안 스타일.
오래전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빌보드의 문을 최초로 두드렸던 노래.
와하하하-!
“으하하, 춤 잘 추는데!”
“커피, 가보자고! 이 노래 네가 연습하던 거잖아!”
최근 리버풀의 인기스타이자 대한민국의 슈퍼스타 박준철이 세레머니와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역주행 중이었기에, 아스날 선수들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장난기가 살리바와 함께 가장 많은 편에 속하는 오른쪽 사이드백을 맡고 있는 브룩 노턴 커피.
그가 이 팀의 춤꾼이라고 이미 들었던 유건은 일어나서 중앙으로 나오는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주변 팀원들의 박수에 자랑스럽게 나와서 몸을 흔드는 그의 몸짓은 매우 우스꽝스러웠다.
마치 용인 FC의 이상찬 감독이 박자를 무시하고 리듬을 타던 것처럼, 그저 마음만 춤꾼이었던 건 아쉬운 사실이었다.
“다음은, 다들 일어나라고!”
왁자지껄해진 신고식 분위기에 덩달아 흥분한 유건은 휴대폰을 들고 다음 곡을 선곡한다.
아직 발음이 어색한 영어였지만, 알아듣기 쉬운 단어였기에 팀원들은 다들 몸을 일으킨다.
계속해서 하기 싫어 빼던 외데고르까지 일어나고 나서야 노래를 재생하는 유건이었다.
둥둥-! 둠칫-!
크게 울리는 베이스 소리를 기반으로 시작되는 음악.
용인 FC의 라커룸을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바로 그 노래.
그게 울려 퍼지는 순간, 유건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미친 듯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춤은 이렇게 추는 거다, 이것들아!”
한국말로 흥분한 채 소리치면서.
***
“그렇지! 좋은 선택이었어!”
“아니, 아냐! 반대편 공간이 비어있었잖아.”
“팀원이 실수했으면, 타박하기 전에 경기가 진행 중이니 일단 공을 쫓는 거다!”
“너희들의 열정을 보여라! 훈련은 사소한 게 아니라 실전이니까!”
대부분의 팀원들이 A매치를 위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콜니 트레이닝 센터에서 진행되는 훈련은 활발했다.
유건과 아스날 내부에서 1군으로 발굴해보기 위한 U-23에서 콜업시킨 유망주들 위주로 말이다.
사실 아르테타로서는 휴가를 다녀와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들을 판단하기 위해서 직접 훈련을 이끌고 있었다.
열 명이 넘어가는 선수들에게 돌아가면서 개인적인 조언까지 섞으면서.
“좋은 호흡이었다! 나이스 원투였어.”
유건으로서는 이번에 콜업된 유망주 중에서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올림픽에서 경기를 뛰며 경쟁했고,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동네 축구를 함께한 쿠아바.
U-23 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그는 다음 시즌 팬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스날의 간판 스트라이커 에디 은케티아가 이미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인터뷰했기 때문에.
‘…이자식! 나랑 호흡이 진짜 괜찮은데?’
“쿠아바! 내주고 돌아서 뛰어!”
같은 팀으로 배정되어 있는 둘은 훈련을 하면서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각이 없는 등진 상황에 있는 자신이 딱 뒤로 리턴 패스를 내주고 위치를 옮기고 싶어 하는 것을 유건이 먼저 알아채는 것을 보고 생각하는 쿠아바.
그와 자신의 호흡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플레이하며 느꼈던 것보다 훨씬 좋다고 느꼈다.
스윽-!
‘역시 그때 느낌이 틀리지 않았어. 확실히 내 의도를 알고 있어, 이놈!’
“건! 흘…, 그렇지 이거라고!”
그리고, 유건도 동일한 감정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꼬마 아이들을 상대로 호흡을 맞췄던 그 당시에도 느꼈었지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압박을 피하기 위해 키핑하는 척 다리 사이로 공을 흘려보냈던 유건.
쿠아바는 말을 하다가 멈춘 것처럼, 이미 그 공을 바라고 있었다.
투욱-!
바로 슈팅을 위해 빈 공간으로 움직임을 가져가는 유건에게 다시 패스를 내주기 위해서.
멋들어진 원투패스는 그물까지 흔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루이스랑 볼 차는 느낌이네.’
유건은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유스 시절 자신과 팀을 이뤘고, 눈에 들어오는 빈 공간에 항상 먼저 가 있던 후안 루이스에게서.
유명했던 대한민국의 광고.
망고를 좋아했던 구아바와 이름이 비슷한 쿠아바.
그는, 한국팬들에게서 초코파이가 아닌 망고 공세를 받는 최초의 축구선수가 될 남자였다.
유건과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으로 세계를 뒤흔들 남자였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