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63화 (63/208)

63화. 확고히 해야겠지

와아아아-!

“와아아, 오빠 여기 진짜 장난 아니다!”

용인 FC에서의 고별식, 이후 광란의 술 파티와 서울 유나이티드 문제를 처리하고 나서는 여름과 브이로그 촬영 겸 데이트를 위해 출국했던 유건.

당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은, 이적 시장이 열리는 날 입단을 하게 될 아스날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VIP석을 내준 구단 덕분에 편하게 볼 수 있었고 응원의 열기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솔직하게 언어를 알아듣기 쉬운 K리그의 응원이 더 마음에 들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관중들의 숫자에서 오는 함성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이 아쉬워하는 탄식의 소리, 골이 터질 때마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외치는 함성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으니까.

- 미쳤네, K리그랑 진짜 관중 숫자가 다르구나

- 손지민이나 박준철 경기에서나 보던걸 별튜브로 보고 있는 거 실화냐

- 축따형 고맙다! 이런 현장감은 진짜 쉽게 못 느끼는데!

더불어 축따튜브의 팬들과도 소통을 하고 있었다.

중계권에 대한 권한은 없는 유건이었기에, 화면은 자신을 비춘 채로 홈구장에 찾아온 팬들의 함성 소리 위주로 촬영했다.

프리미어리그의 현장감을 조금이라도 전달하고 싶었기에.

채팅창의 분위기도 좋았다.

전통적으로 아스날을 만날 때마다 경기력이 좋아지는 크리스탈 팰리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점수를 리드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살리바!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확실히 이 선수 응원가가 젤 따라부르기 쉬운 것 같아!”

그리고, 오늘 가장 많이 불리는 응원가는 살리바를 위한 노래였다.

장기간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복귀하자마자 다시 예전처럼 안정적인 수비 라인을 구축해주었으니까.

어렵지 않은 살리바의 응원가였기에 VIP석에서 여름과 따라부르며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던 건 이제 비밀이 아니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긴 했지만 그들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응원하는 장면은 한국의 중계채널에 잡혔기 때문에.

- 와, 축따형 여자친구분 진짜 너무 이쁘실 것 같은데!

- 그냥 아우라가 좀 느껴지는데! 연예인급일 듯

- 우리 축따형 연애도 하고 다 컸다, 다 컸어!

유건과의 소통을 위해서 대부분의 팬들이 아스날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기에 거의 모두가 그 장면을 보았다.

나여름이 예쁘다고 추측하는 팬들.

연예인이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팬들.

처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유건의 연애를 보며 믿지 못하는 팬들.

반응은 그렇게 여러 가지로 나뉘었지만 모두 마음은 똑같았다.

‘…축따형 성공도 하고, 연애도 하고 개부럽네.’

‘축따오빠랑 사귀면 어떨까?’

성별을 가리지 않고 화면에 잡힌 그들 둘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말이다.

선글라스로 가리더라도 선남선녀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외모였으니까.

***

[크리스탈 팰리스를 2:0으로 제압한 아스날, 리그 10위 안착]

[리그 중위권으로 재도약한 아스날, 아르테타의 복귀 효과가 벌써 드러나나?]

[아르테타, “살리바의 복귀는 새로운 영입과도 같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쏟아져나오는 기사의 숫자도 차원이 달랐다.

아르테타가 약 1분간 인터뷰한 내용만으로 수십 개의 기사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승리했으니까 이렇게 편하게 볼 수 있는 거지.’

다음날, 여름보다 먼저 일어나서 확인하는 구단의 기사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유건이었다.

어제 승리했기에 망정이라고.

만약 홈구장에서 패배했다면 지금 이 수많은 좋은 얘기들이, 비난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상상해보면 너무 끔찍했다.

수없이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는 세계적인 팀에서 경쟁하는 프로선수기에 당연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소중한 팬들에게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는 경우에 적절한 대처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나저나 4-3-3이라….’

성공적인 리빌딩을 통해 아스날의 역사를 써 내려갔던 아르테타 감독의 현재 전술은 4-3-3.

아직은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익숙하고, 올해 그 포지션에서만 뛰어봤던 유건은 걱정이 앞섰다.

중앙 지역을 커버하는 찰리 파티노,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를 책임지는 마틴 외데고르.

그들과 같은 라인에서 왼쪽 하프 스페이스를 맡는 메짤라 포지션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임대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활약하고 돌아와서 주전 자리에 대한 확보부터 해야겠지만.

“…오빠, 언제 일어났어?”

유건이 콜니 트레이닝 센터와 가까운 곳에 거주할 집은 작은 크기지만 2층 높이의 단독주택.

사실 K리그에서 받았던 연봉으로는 구매하기는 쉽지 않고 장기간 비워둬야 할 집이었지만, 구단에서 계약을 기념하여 완전히 집을 살 때까지는 무료로 임대를 해준다는데 받지 않으면 손해였다.

그리고 2층의 안방 테라스에서 기사를 보며 상념에 빠져있던 유건을 현실 세계로 불러온 것은, 런던 시간으로 10시 정도가 되어서 일어난 여름이었다.

뒤에서 양팔로 목을 감아오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돌아본다.

“조금 전에, 이제 준비할까? 오늘 세븐 시스터즈 가기로 했으니까!”

오늘의 브이로그 일정은 꽤 멀리 나갈 필요가 있었기에 아침부터 준비하고 있는 유건과 여름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여름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점점 다가온다는 말이기도 했다.

세븐 시스터즈는 귀국 전날 방문하기로 계획한 장소이니까.

“천천히 준비해서 가자. 어떻게 하다 보니 창훈이형이랑 너랑 서로 바톤 터치하게 되었네.”

“언니가 결정을 내려서 다행이네. 그나저나 오빠도 나 가면 임대갈 준비 바로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내일 나여름이 귀국하는 날이기도 했고, 최창훈과 그의 부인이 런던으로 이사를 오는 날이기도 했다.

에이전트와 선수가 바로 옆에 사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유건과 최창훈은 각자에게 서로가 처음이었기에 조금 특별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한 형수와 떨어져서 런던을 오가는 것보다는, 이번 기회에 아예 함께 넘어가는 게 낫지 않겠어?”라고 말했던 유건의 제안이 있었다.

물론 그런 말을 꺼낸 장본인은 스페인으로 곧 임대를 떠나야 할 신세이긴 했지만 말이다.

“일주일간 구단에서 팀원들과 인사도 하고 친해질 겸 같이 훈련하고,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면 임대구단으로 이동하기로 얘기되었어.”

이유는 워크 퍼밋 발급.

한국말로는 취업 비자였는데, 영국 규정에 의하면 K리그는 비자 발급을 위한 점수 산정기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다른 항목들에서도 발급을 위한 조건을 채울 수가 없었던 유건은 프리미어리그 출전을 위한 아스날 로스터에 등록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에이전트의 중요성이지!’

이미 그런 상황을 예견하고 준비해준 최창훈과 아르테타가 아니었으면 놓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계약조건을 협상하기 이전에 비유럽 선수 쿼터가 비어있는 프리메라리가 1부 팀으로의 임대부터 확정시켰던 둘이었다.

동일 포지션의 선수가 저조한 성적을 버티지 못하고 이적이 결정되었기에, 강등을 피하기 위해서 아스날 이적이 확실시되었던 유건을 임대해가기 위해 미리 접촉해온 팀이 있었으니까.

물론, 여기서 최창훈이 1부보다는 주전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있는 2부리그의 팀을 물색했던 것은 비밀이었다.

“일단 그건 잊고, 얼른 나가자 여름아!”

그런 생각도 잠시 다시 내일부터 떨어져 있을 여름에게 집중하는 유건이었다.

가면 시즌이 끝나기까지의 반년 동안은 영상통화로밖에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번 여행처럼 촬영의 휴식기가 주어지거나, 연속극이 막을 내리지 않는 이상 말이다.

“빨리 내려오라니까, 나 이미 신발까지 다 신었다구!”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둘은 잠깐 동안의 이별을 버티기 위해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꽤 운전을 해서 도착한, 절경으로 꼽히는 세븐시스터즈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 말이다.

***

“건아, 마음이 불편하다. 어쩐지 내가 떠민 느낌인데….”

“여보는 건이 옆에 붙어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나 신경 쓰지 말구….”

유건이 여름을 공항에 내려다 주고 최창훈 가족을 픽업해온 지도 3일이 흘렀다.

스페인으로 임대를 가기 전에 아스날에서 훈련을 시작하기로 한 것은 바로 내일부터였고, 오늘은 한국식으로 준비한 저녁을 먹고 있는 셋.

그중에서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유건과 앞으로 1주 뒤부터는 한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할 수 없는 상태인 최창훈이 있었다.

괜히 자신이 워크 퍼밋도 당장 나오기 힘든 영국 리그를 추천한 건 아닐까도 생각하면서.

그의 귀로 유건을 따라가라는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취업 비자를 따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잖아! 게다가 익숙한 곳에서 축구 하면서 영어도 배울 시간이 생긴 거고.”

“그리고, 형수 잘 챙겨드려. 원하는 거 있으시면 한 시간, 두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서 사 오고 그러란 말이야.”

그렇게 자신의 앞에서 찡그린 표정으로 걱정하고 있는 최창훈과 그의 부인 박하린의 말에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영어를 익힐 시간이 생기는 것 이외에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은 임대였다.

- 그가 좋은 선수라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미래를 위한 준비보다는 현재 활약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해

└ 친구, 아르테타에게 의심 가지지 말라고! 그가 다시 우리를 챔피언스리그로 데리고 가줄 거야.

- 올림픽에서 보여준 모습을 리그에서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어. 메달 결정전만 보더라도 피지컬적인 부분이 약해 보였어.

└ 어차피 워크 퍼밋 발급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고 들었어. 임대 보내면서 차차 발전시키지 않을까?

- 다들 어린 선수한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그의 몸값으로 다른 선수를 어차피 살 수도 없어!

- 당장 몇 달 전에 보여준 세계적인 유망주가 우리 팀을 선택했어. 이건 걱정할 게 아니라 충분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야, 친구들!

우선적으로는 구단의 팬들 사이에서도 유건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기 때문이다.

피지컬적으로 가장 치열하다고 알려진 프리미어리그에서 적응하기란 세계적인 선수들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국제대회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며 이적을 확정 지었지만, 아직 구단 팬들에게는 데뷔 경기도 치르지 않은 유망주였다.

심지어 어떻게 보면 그들이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일 정도.

‘…언어, 지단과의 동기화율, 세계적인 리그의 분위기.’

유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금 당장 아스날 주전으로 뛰기에는 경쟁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주전으로 뛸 수 있는 1부리그의 팀을 찾았다는 것은 말이다.

수준 높은 경기에서 빠르게 올라가는 데이터 동기화율에 그런 치열한 매치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일석이조였다.

더군다나 영어를 연습할 시간이 최소 반년은 생긴 것이다.

임대갈 팀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는 한국어만큼이나 잘하는 상황이라 따로 적응이 필요 없었으니까.

‘우선 확고히 해야겠지.’

유건을 원하는 그 팀은 바로 주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임대를 요청했다.

강등권을 계속해서 탈출하지 못하는 팀을 떠나버린 한 선수가 유건과 비슷한 스타일이었으니까.

베테랑이었던 선수를 젊은 선수가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방심은커녕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유건이었다.

주전이란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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