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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따-62화 (62/208)

62화.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건아, 한 번만 선처해준다면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테니 합의 좀 해주면 안 될까?”

“제발! 정말 미안하다. 한번만….”

용인 FC 고별회를 하기 전, 유건이 폭행당한 부위에 대한 의사 소견서 및 진단서까지 제출했다.

덕분에 벌금형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죄에서 양두광, 박창수, 정상백은 단체폭행으로 특수 상해죄로 넘어가게 되면서 징역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선수들에게 내릴 협회의 징계는 무엇이 있겠는가.

최소한 몇 년 자격정지에서 최대는 영구 제명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징역살이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유건과의 합의가 유일했다.

모든 증거를 보여주었던 기자회견 이후로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는 그들이었지만, 선처에 대한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네, 안 됩니다. 벌 받으셔야죠?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현재도 녹음은 진행 중이고 추가로 제출하겠습니다.”

단순한 폭행죄도 아니라 단체 폭행으로 인한 특수 폭행죄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해죄가 성립하게 되면서 그들의 선수 생명이 끝날 예정이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

하지만, 유건은 단호했다.

오히려 담당해주는 검사의 조언대로 전화가 걸려 올 때마다 자연스레 녹음을 추가로 진행했을 뿐이다.

‘장익현이나 다른 놈들은 협박죄만 성립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예정된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서울 유나이티드의 처벌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유건이었다.

그가 녹취록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당하고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며 그들과 조우한 이후.

그래서 확실하게 폭행의 증거를 제출할 수 있는 것은 양두광을 포함한 3명의 선수가 다였다.

서울 유나이티드의 감독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죄를 성립시키지 못해 징역까지는 보내기가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소를 했고, 합의 없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말씀드렸던 대로 올림픽 대표팀에 함께 있었던 3명의 선수는 특별상해죄로 처리될 예정이라 괜찮지만, 다른 선수들이나 장익현 감독을 비롯한 직원들 징계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예정되어 있던 약속의 장소는 바로 한국축구협회였다.

피의자 조사 이후 형사재판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었지만, 검사의 조언 덕분에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고소인이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되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이제 원고가 될 검사에게 재판 관련 부분은 믿고 일임했다.

하지만 곧 영국으로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가기 전에 확실하게 모든 것을 처리하고 가고 싶었던 유건이었다.

그래서일까 눈앞에 보이는 축구계 선배들과 협회 사람들을 상대로 강하게 의견을 표현한다.

“…정녕, 그 방법밖에는 없겠습니까?”

“네, 유일합니다.”

K리그 1에 소속된 인기 팀 중 하나에 대한 문제였기에, 선처를 바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유건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만들어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힘든 상황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꿈꾸며 자라오는 후배들에게, 그런 지옥 같은 생활을 겪는 경험을 하지 않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마음.

그런 일이 제발 앞으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었기에.

“…아무래도 논의된 안건 중에서는 3안으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유건이 떠난 회의실은 꽤 오랜 침묵이 감돌았고, 이윽고 마이크를 잡고 말을 이어 나가는 사람은 바로 협회 대표.

생각했던 경우의 수 중, 최악의 선택지를 고르게 될 것 같다고 말하면서.

유건의 선택에 따라 고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마지막 세 번째 방향.

만약 1안과 2안의 계획대로 발표한다면, 형사재판까지 진행되는 이번 사건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서울 유나이티드에는 미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협회의 입장에서도 이제 통보해야만 했다.

시즌이 진행 중인 상황도 아니었기에, 국내 축구팬들의 이목은 서울 유나이티드에 대한 자신들의 결정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다음 시즌, 리그 진행 계획에 대해서도 차후 다시 한번 얘기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3안으로 징계가 확정된다면, 필요로 하는 부분이 또 있었다.

일단은 서울 유나이티드 사건에 대한 처리가 우선이긴 했지만.

***

“가고 싶은 장소 다 골라놓기만 해. 오빠가 데려다준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던 유건은, 더 이상 서울 유나이티드 관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미래에 집중했다.

당장 나여름과 런던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남자친구의 당연한 마음이었기에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런던을 구경시켜준다며 허세를 부려본다.

“…우선 아스날 경기는 보구, 세븐 시스터즈도 가고 싶어! 런던 아이랑 타워브릿지에서 사진 찍어야지! 오빠는 다 가봤어?”

“그..그럼!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하나도 안 가봤다.

심지어 아직 아스날 경기도 구장에서 직접 본 적은 없었으니, 나여름이 가고 싶다고 말하는 다른 명소들을 가봤겠는가.

그저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자신감을 보여줄 뿐.

“구단에서 임대해 준다고? 그러면 나야 좋고 편하지.”

“어차피 잠깐 떠나있어야 되니까, 아 참 근데 형이랑 형수님이 살 집은 가격이 괜찮아?”

여름과 여행 겸 브이로그 계획을 짠지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쉬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최창훈에게 바로 전화를 거는 유건이었다.

그는 먼저 런던으로 도착해 계약 관련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워크 퍼밋이 안 나오는 유건에게 임대를 제시한 팀이 있었기에.

아스날에서 찾아준 거주지의 후보들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었던 최창훈이었고 얼추 확정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건이야 아스날에서 스스로 적절한 집을 구매할 수 있을 때까지 무료로 임차를 위한 비용을 지원받았지만, 최창훈은 그게 아니라 걱정스럽게 던져봤던 질문.

“걱정 마, 월세로 살다가 니가 앞으로 줄 돈으로 이사 갈 거니까!”

“내가 월세는 내줄 테니까 걱정 마. 나 때문에 같이 온 건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크흠, 나 거부 같은 거 잘 모른다. 고맙게 받으마!”

자신을 믿고 옆에서 일을 바로바로 처리하기 위해 런던으로 따라와 주었던 그를 위해 제시한 의견.

원래 거주지를 정하면서 나갈 돈이었고, 주급에 비하면 큰돈은 아니기에 임대료는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직 자신의 집을 살 돈도 모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이사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가려고 귀국이 예정되어 있는 최창훈이었기에, 만나는 날은 아마 여름과의 여행이 끝나고 난 이후가 될 예정.

그때의 만남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는 유건이었다.

‘…정말 끝이네, 이제.’

한국으로 복귀해서 지냈던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그 시간의 끝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

[한국축구협회 공정위원회 결과]

서울 유나이티드, 자격정지 3년.

장익현 감독, 지도자 자격 박탈 및 영구 제명.

양두광 선수, 영구 제명.

박창수 선수, 영구 제명.

정상백 선수, 영구 제명.

그 외 다른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 자격정지 1년.

지난 시즌 K리그 2 강등팀 중 한 팀 추가 승격.

런던으로 떠나기 전날, 한국축구협회에서 서울 유나이티드에 대한 징계를 발표했다.

유건이 바라던 수위보다 더 강하게.

[감독과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 전체적으로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서울 유나이티드의 미래는?]

[서울 유나이티드 서포터즈 회장, “끝까지 믿었었기에 배신감이 크다. 새로운 지역 연고 팀을 응원할 예정”]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기사들.

이제 서울 유나이티드를 좋게 말해주는 기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여론의 방향은 모두 정해져 있었다.

유건이 제시한 증거들을 하나도 반박하지 못한 그들이었기에 예견되어있던 상황.

- 아쉽네, 전 인원 다 선수 생활 영구 제명 당했어야 되는데!

- 축따형 솔직히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3년 안 버렸으면 지금 유럽 어느 팀에서 에이스하고 있을 듯

- 그래도 이번엔 전체적으로 솜방망이 처벌 안 하고, 강하게 징계 내렸네

- 일단 서울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축구계에서 완전 찬밥일 것 같다

축따튜브에서는 그 뉴스들에 대해서, 하나둘씩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완벽한 증거]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유건의 기자회견 영상의 댓글창에 말이다.

예전처럼 일부 승점 감점, 벌금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처벌다운 처벌을 받게 된 서울 유나이티드였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모든 팬들이 돌아서게 되면서 아예 신뢰를 잃었다는 것.

수뇌부부터 말단 직원까지 전체 물갈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다시 기존의 인기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제일 바라던 것도 이루어졌네.’

팬들이 응원하는 팀을 버리는 것.

유건이 가장 바라던 처벌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의 존재가 없는 프로 구단의 선수라는 건, 동기부여의 요소 중 가장 큰 게 사라지는 것이다.

팬들이야말로 프로선수가 팀의 승리를 누구보다 바라는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

[박범호 : 고생했다, 막내야! 아스날 가서 잘해라!]

[강바람 : 형이나 잘하라고, 지금 주전 위태해 보여]

[이상찬 : 건아, 한국 돌아올 때마다 인사 오는 거 잊지 말고! 가서 다치지 말고 감독이었던 내가 안 부끄럽게 알아서 활약하자?]

축구협회에서 공개적으로 공정위원회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에, 서울 유나이티드와의 관계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고 있었다.

사정을 토로하고 조언을 받았던 용인 FC의 사람들.

진지한 이 상황에서도 단체 채팅방의 웃음을 위해 장난을 빼놓지 않는 그들이었던 건 비밀이었다.

모든 팀원들과 감독, 친하게 지냈던 직원들의 연락을 읽으며 다시 한번 고별회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는 유건이었다.

[나여름 : 오빠, 고생했어! 오늘 집 빨리 들어갈 것 같으니까 파티하자!]

마지막으로 연락이 오는 것은 나여름.

그녀가 엄청난 위로를 해주거나, 특별한 것으로 기분을 풀어준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편안했다.

떨어져 있다가 집에서 만나는 즉시 편해지는 마음을 보면 참으로 스스로가 신기한 유건이었다.

어쩌면, 정말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운명의 상대는 정해져 있다는 말이.

그리고 유건이 한국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있을 그 시각, 아스날의 감독 미켈 아르테타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팀에 유건을 임대하고 싶은 누군가와.

“포지션 경쟁자도 없다니까? 그 친구 실력이라면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그건 알지. 다만 2부 쪽으로 보내려 했는데, 갑자기 1부라니 당황스러워서 그렇지.”

상대가 감독을 맡고 있는 팀에서 유건의 포지션 경쟁자가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적이 예정되어 있기에, 경쟁자가 없었다.

그리고 아르테타도 유건의 실력은 이미 1부리그에서도 통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 튕겨본다.

조금 더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언급할 때까지.

“…반시즌 임대를 해주면, 선수가 복귀하는 편에 워크 퍼밋 추천서를 함께 넣어서 보낼게.”

“콜!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그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바로 그 조건이 나왔다.

당장 1~2년 안에 유건이 워크 퍼밋을 발급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은, 확정되지 않은 사항.

아르테타로서는 그 기간을 단축시키고 싶었다.

축구 관련 유명 인사 3명의 추천을 받으면, 프리미어리그 등록을 위한 워크 퍼밋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내년에는 더 재밌겠군.’

미켈 아르테타, 산티 카솔라.

2명의 추천서를 쓸 수 있는 상황.

거기서 자신들 둘보다 더 유명한 이 친구의 추천서까지 하면 3장이 되어 워크 퍼밋 발급이 가능했다.

유건이 복귀한 이후의 라인업을 구상해보는 아르테타의 표정은 너무나도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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