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고향이 되었고, 가족이 되었습니다
[한국축구협회, “서울 유나이티드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
[반박할 수 없는 증거로 가득 찬 서울 유나이티드의 지난 행적들]
[서울 유나이티드 팬클럽, 구단의 잘못된 과거가 바로잡히기 전까지 모든 활동 중지 선언]
유건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 국내 축구계는 뒤집혔다.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그리고 유건의 사건 이외에도 서울 유나이티드에 스폰서, 협찬 등을 지원했던 회사들이 너도나도 제출한 그들의 악행들.
팬들마저도 돌아선 지금 상황은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시즌 첫 골을 터트린 번리의 김수영, “유건 선수에게 그런 과거가 있는 줄 몰랐다. 서울 유나이티드가 꼭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에 성공한 이호준, “제가 본 유건 선수는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용인 FC감독 이상찬, “명장이라고 불렸던 장익현 감독의 행태는 너무 실망스럽다”]
한창 팬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있는 올림픽 대표팀 멤버들의 유건을 지지하는 인터뷰.
승격과 FA컵 우승이라는 더블을 이뤄낸 이상찬 감독 및 용인 FC 선수들의 추가 인터뷰까지.
모두가 비난하고 있는 서울 유나이티드와는 다르게, 모두가 지지해주고 있는 유건이었다.
“하하, 다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생각보다 여성분들도 되게 많으시네요.”
“여러 이벤트들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 미친. 너무 부럽다 진짜!
- 흑흑, 추첨에서 떨어지다니! 이거 떨어졌으니 진짜 복권은 당첨되겠지
- 축따형이랑 풋살찰 수 있다니, 평생 기억에 남을 듯
└ 저기 구석에 오늘 일정 한 번 보셈. 그것뿐만 아니라 사진 촬영, 사인 유니폼 증정도 있음!
서울 유나이티드로 아직까지 떠들썩하고 그들의 징계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는 않고 있는 그 시각, 유건은 별튜브 구독자들을 위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큰 풋살장을 대여하고 구장 근처에 장소를 마련하여 출장뷔페까지 섭외하였다.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면 약 60여 명의 대인원이 모여있었다.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인 시각이었기에 나여름이 올 수 없었고, 덕분에 최창훈이 많은 고생을 해주고 있었다.
그는 전체적인 이벤트 진행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미니게임을 진행하는 당일 아르바이트 인원들까지 신경을 써야만 했다.
‘흐흐, 유건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형이 언제든 도와주마!’
그러나 하루 고생하는 것에 비해 많은 비용을 챙겨주는 유건이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스날과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난 뒤에 엄청난 금액을 보수로 받았으니까 말이다.
임신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은 육아용품의 종류는 모르고 비싸다는 것만 알고 있다”라는 괴상한 이유를 대면서 봉투를 건넸던 유건.
용인 FC의 직원으로 일할 때 받았던 연봉과 비슷한 돈을 한 번에 받았으니 최창훈으로서는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 이후 유건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모든 성심을 다해 지원해왔던 것.
“풋살 경기의 경우, 여성분들은 희망자에 한해 참여하시면 되구요!”
“경기에 참여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저기 보이는 뷔페에서 음식을 드시거나, 마련된 미니게임들을 하면서 즐겨주시면 됩니다!”
“모든 게임에 제가 상품을 걸어놨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최창훈이 속으로 만족하고 있는 사이, 진행을 이어 나가는 유건이었다.
축구 별튜브답게 가장 핵심적인 메인 이벤트는 풋살 경기였지만 다른 것도 준비를 많이 해놓았다.
풍선 터트리기, 스피드건으로 측정되는 슛팅 속도 대결, 구역마다 점수를 정해두고 공으로 맞히는 제구력 테스트 등 많은 이벤트를 말이다.
그리고 각 종목마다 실착했던 축구화, 유니폼 등 여러 상품도 걸어둔 상태였고.
‘사인회랑 촬영은 마지막에 하면….’
등번호가 확정되고 구단에서 지원받은 수량에 사비로 구입한 사인된 아스날 유니폼까지.
오늘 참여하는 모든 인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질 상품이었다.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은 나여름만큼은 아니겠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
“감독님, 저 돌아왔습니다!”
“박 팀장님도 잘 지내셨죠?”
축따튜브의 구독자들을 위한 이벤트가 끝난 지 3일 뒤, 유건은 용인 FC구단으로 복귀를 했다.
한 시즌이 끝나고 이적하는 선수들이 있을 때마다 홈구장에서 팬들을 초청하여 함께 고별회를 하는 게 용인 FC 구단만의 전통이었기에.
승격에 큰 역할을 하고 프리미어리그라는 큰 무대에 진출하는 유건이었기에 이번에는 예상 참가자가 천 명이 넘었다.
입장 가능한 팬들의 조건은 한 경기 이상 직관을 왔어야 했는데, 이번 시즌 용인의 활약에 급속도로 팬이 늘어났던 게 이유였다.
보통 고별회 때 500명이 안 되는 팬들이 왔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에라이, 도움 안 되는 놈! 너 때문에 늙은 우리가 고생하고 있잖냐!”
돌아온 유건을 맞이해주는 것은 이상찬 감독과 박 팀장이었다.
그들은 다음 시즌 공백이 된 포지션과 더 좋은 스쿼드를 갖추기 위해 휴일에도 활발하게 영입할 선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K리그 1로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오히려 유건의 존재만 어느 정도 대체하는 데 성공한다면, 용인 FC는 상위권을 노려볼 만한 공격력이었다.
물론 충족하기 쉽지 않은 전제지만 말이다.
“건아, 별튜브 이벤트를 아주 화려하게 했더라고?”
“에이 감독님, 용인 FC 송별회는 더 크게 준비했겠죠!”
“그럴 줄 알았다니까, 우리 막내! 우리가 막내 하나는 잘 뒀다니까, 그렇지 박 팀장?”
“아무렴요!”
“큭큭, 장난 그만 치시구요. 시간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제가 보고 싶어 했던 거 아십니까!”
유건이 일요일에 구단을 방문한 이유는, 다음 주에 홈구장에서 있을 고별회 때문.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할지 등 전체적인 시간 분배에 대해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장난을 치는 그들이 못 말린다고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었다.
“어렵게 생각하지는 마, 인마. 다들 그냥 네가 좋아서 오시는 분들이니까.”
“팬 여러분들을 함부로 대할 성격도 아닌 놈이 뭘 그리 걱정해?”
“…그래도 저 때문에 다들 와주시는 거니까요.”
“막내야, 지금이라도 이적 취소할래? 아스날에는 내가 얘기해준다!”
고민 아닌 고민이었던 것은 어떻게 해야 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겠냐는 것.
단 한 시즌만 뛰었지만, 그들이 보여주었던 열정적인 응원은 자신에게 너무나 힘이 되었었다.
그 좋은 감정을 전해준 사람들에게 자신도 뭔가 특별함을 전해주고 싶었던 유건이었다.
침울해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유건에게 이적을 취소하고 다음 시즌도 여기 남겠냐는 장난을 걸어오는 박 팀장.
“…에이, 그건 안 되죠!”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그 말은 정확하게 들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반박한다.
용인 팀을 아끼는 것은 당연했지만, 지금 자신에게 찾아온 것은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으니까 말이다.
“진행 순서는 전통적으로 해왔던 방식이랑 거의 비슷하니까 별로 준비할 거 없다.”
“마지막 순서에 네가 팬들과 구단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거나 준비해봐.”
그래도 불안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유건.
이상찬 감독은 한 가지를 제안하며 그의 마음을 다독여주려 했다.
고별회의 하이라이트이자, 정말 마지막으로 하게 되는 작별 인사.
그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하라고 말이다.
“어떤 말을 해도, 후회가 남을 테니 고민 많이 해서 준비해라.”
마지막에 덧붙이는 이상찬 감독의 말대로였다.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순간이라는 것은 몇 개 없는데, 고별회는 아마 그 순간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잘 써도 돌이켜보면 후회가 남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직원분들, 선배들, 팬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라….’
그리고 그런 의도는 유건에게 잘 전달되었다.
일주일 동안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되겠지만, 해야만 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후회들은 그것 말고도 수없이 많을 예정이니까.
***
“안녕하세요, 유건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주일간 가능했던 고민의 시간은 거짓말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기자회견장에서 뱉었던 첫 마디와 단어는 똑같았지만, 의미와 억양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때는 누군가의 잘못을 드러내기 위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력하게 말하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도를 전하기 위해 침착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전달하는 상황이었다.
와아아-!
돌아오는 팬들의 힘찬 함성.
단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인데 그에 화답해주는 팬들의 함성은 용인 FC 홈구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벅차오르는 감정.
“일 년 동안 부족한 저를 챙겨주신 구단 직원분들, 존경하는 선배님들, 사랑하는 팬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운명처럼 도착한 용인 FC 구단에서 행복한 기억만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처음은 그저 감사밖에 할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 수없이 많이 바꿔보았지만, 이 말부터 하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몸은 이곳에 머물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용인 FC는 제게 단지 거쳐 가는 구단이 아닌, 고향이 되었고 가족이 되었습니다.”
진실이었다.
축따가 되어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자신을 받아준 게 이곳이었으니까.
평가전이나 올림픽을 위해 차출되어 떠나있던 시간 항상 그리워했었던 걸 떠올리며, 정말 가족으로 여겨졌었던 그들.
“그러니 여러분도, 단순히 제가 이적하는 것이 아닌 집안의 청년이 제 꿈을 찾아 도전하기 위해 다녀온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일 년 전 처음 이 구장에 발을 들인 순간, 처음으로 승리를 한 순간, 우승 트로피를 따낸 순간.”
“그 모든 것은 제가 평생 가져갈 추억이 되었으며 유럽에서 혹시 힘든 시간이 닥친다면 버텨낼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이라고 욕해도 좋으니 유건은 매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절대 이 구단에서의 기억과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겠으니 당신네들도 기억해달라고.
그저, 집을 떠나 잠깐 여정을 다녀올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달라고.
“잘 다녀와라, 유건아!!”
그 말에 돌아오는 것은 천 명이 넘게 모인 팬들 중 한 명이 외치는 소리.
모두가 유건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이었기에, 온 힘을 다해 외치는 팬의 한 마디는 구장에 있는 사람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잘 다녀와라, 유건아!!”
다시 한번 같은 말이 반복될 때는 한 명이 아닌, 천 명의 팬들이 함께였다.
그걸 듣는 순간 번개라도 맞은 듯 주체할 수 없게 떨리는 유건의 몸이었다.
전신에 소름이 돋아나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니까.
“짜식, 멋진 척은 혼자 다 하네. 막내야 가서 기죽지 마라!”
“우리 대표해서 가는 거니까 가서 쪽팔린 행동 하지 마라!”
그리고 주변에서 장난스럽게 놀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얘기를 걸어온다.
물론, 그게 흐르는 눈물을 막아낼 웃음을 주지는 못했다.
“…다, 다녀오겠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과 메어오는 목을 쥐어짜서 마이크에 대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한다.
용인 FC 홈구장에서 유건의 고별식이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아스날에 입단하기까지 3주가 남은 시점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