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60화 (60/208)

60화. 모두 동일합니다

[서울 유나이티드, “유건 선수의 앞날을 응원했는데 아쉽다.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니며 녹취록은 구단의 선수들과 전혀 관련이 없다”]

[서울 유나이티드, “창창한 선수인 건 분명하지만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

[양두광, “선배로서 안타깝다. 주전을 뛰지 못했었다고 이렇게 악의적인 소문을 만드는 것은 프로선수로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

유건은 아직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었기에, 서울 유나이티드가 반박 기사를 내고 있는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너무 당당하게 나왔기 때문일까, 아스날 오피셜 이후 유건 쪽으로 치우쳤던 여론이 다시 중립 쪽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팬들이 결론 내린 방향은 조금 더 진행되고 결판이 나 봐야 누구의 잘잘못인지 알 수 있겠다는 것.

말 그대로 중립 기어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찰칵-! 찰칵-!

“그들이 그렇게 말하던가요? 기사에 쓰인 자료들이 제가 가진 다가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 그러겠죠.”

그런 상황에서, 인천 공항으로 귀국하는 유건에게 출국할 당시보다 많은 기자가 달려들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되었고 말이다.

수많은 기자들이 앞다투어 유건에게 관련된 질문들을 하려 했으나, 간단하게 서울 유나이티드의 의견을 한마디로 반박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예정되어 있는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을 공개하겠습니다.”

“그것들을 보고도 이렇게 오리발 내밀듯 부인하는, 심지어 고소라는 단어를 꺼낸 그들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요.”

유건은 자신이 있었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서울 유나이티드 사람들이라는 걸 밝혀낼 증거 말이다.

그것도 없이 준비했겠는가.

그들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이미 예상을 했고, 이런 식으로 반박을 해야만 더 확실하게 각인될 것이라 생각했다.

믿어준 팬들마저 우롱하는 행태를 밝혀주는 것 말이다.

‘…팬들이 떠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처벌이지.’

그리고, 유건은 확신했다.

2부리그로 강등 혹은 구단 해체보다 팬들에게서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이 프로 구단으로서 가장 큰 타격이라는 것을.

프로선수로서 자신들이 마음 놓고 훈련해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모든 이면에는 팬들이 있다.

좋은 경기력으로 그들에게 보답하지는 못할망정, 거짓으로 그들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것은 큰 배신감으로 다가오는 게 당연할 것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건 견디기 쉽지 않은 일이니까.

***

“오, 진짜 일정 괜찮아?”

“사실 그때까지 가기 전에 다음 달까지 제 분량이 거의 촬영이 끝날 것 같아요.”

“그러면…, 내가 맞춰서 다 준비해놓을게!”

유건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확인하고 있는 것은 귀국을 기념하여 주방에서 요리를 해주고 있던 여름의 일정이었다.

국내의 모든 일을 마무리한 뒤에, 아스날과 약속된 합류 일정 전에 런던에서 브이로그를 찍기 위해서.

살아갈 집도 소개시켜 주고 국내 팬들의 눈을 피해서 데이트도 할 겸 말이다.

후루룩-!

“…요리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

유건의 입에서 자연스레 그런 감탄사가 나올 만큼 맛있었다.

그녀가 만들어서 그릇에 퍼준 김치찌개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서야 국내에 남아있을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중요한 일인 것은 분명했지만 나여름보다는 중요도가 떨어졌으니까.

“기자회견, 별튜브 이벤트, 용인 FC 고별식.”

EPL의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처리해야 될 일들이었다.

가장 먼저 5일 뒤에 있을 서울 유나이티드 관련 기자회견.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들은 발뺌하기로 결정했기에 유건으로서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

그 거짓마저 밝혀주는 수밖에.

“오빠, 기자회견 끝나면 우선 좀 쉬어요. 시즌 끝났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구….”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파에 앉아 고민하고 있는 유건의 옆으로 다가온 것은 여름이었다.

최상의 결과로 시즌을 마무리 해나가고 있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 때문에 항상 머금고 있던 미소가 최근 사라져 있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입을 닫고 아직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유건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영국 갈 때까지 계속 그런 표정 지을 거예요 오빠? 나랑 함께 있는 순간에도?”

결국 대답하지 않는 유건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끌어당겨 눈을 크게 뜨면서 마주 보는 여름.

자신과 함께 있는 순간에는 아무 걱정 없이 휴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숨 막히게 예쁘네, 진짜.’

자신과 눈을 맞춰주는 여름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던 유건이었으니까.

여름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함께 있는 순간을 행복하게 웃으며 보냈으니 서로 윈윈 아니겠는가.

***

“안녕하세요, 유건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여름을 제외하고 유건이 기자회견이 있는 오늘까지 만난 사람들이라고는 최창훈과 용인 FC 선수들밖에 없었다.

사실 딱히 만날 사람이 없었던 건 비밀이지만, 아무튼 그 정도로 유건은 열심히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미리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 예상하는 것부터 답변을 어떤 식으로 할지.

마치 신입사원으로서 입사 면접을 준비하는 듯한 자세로 말이다.

따로 예전부터 준비해서 이미 진행 중인 사항도 있고.

“우선, 지금까지 공개된 녹취록과 제가 말했던 내용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서울 유나이티드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입장이신데요. 입증할 만한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역시 예상했던 대로 처음부터 반박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그게 어떻게 보면 오늘 이 기자회견의 핵심이었으니까 말이다.

유건도 사실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지이잉-!

“안 그래도 그 질문부터 나올 줄 알았습니다, 앞을 잠깐 봐주시죠.”

모여있는 기자들을 향해 유건이 말을 한 뒤, 얘기되었던 대로 최창훈은 프로젝터의 화면을 내려주었다.

수십 명이 넘게 모인 공간이었기에 다 함께 보기 위해서 말이다.

“아, 증거를 보시기에 앞서 여러분께서는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당한 제가 양두광을 비롯한 박창수, 정상백을 마주할 만한 장소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올림픽 대표팀으로 뛰셨고, 그 외에는 딱히….”

준비한 영상을 틀기 전 화두를 던지는 유건.

기자들이 대답한 대로 질문에 맞는 답변은 하나밖에 없었다.

앙두광, 박창수, 정상백과 마주칠만한 장소는 국가대표 평가전, 올림픽 출전 기간뿐이었으니까.

“추가로 사전에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지금부터 보여드릴 증거들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법 제 18조의 예외 조항을 이용하여 취득한 정보임을 밝힙니다.”

“수사와 공소의 제기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해당했기에 증거자료 확보에는 경찰과 검찰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미 폭행, 갈취, 협박 등의 혐의로 형사 재판 의사를 밝히고 고소장을 접수한 뒤 고소인 조사까지 마쳤습니다.”

“지금쯤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분들과 장익현 감독님도 피의자 관련 연락을 받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고소였다.

사실 재판의 기일이 열릴 때마다 출석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망설였지만, 자문을 통해 차후 서울 유나이티드가 제시해볼 합의점을 예상해보고는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개인정보 보호법에 위배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증거확보를 위해서는 해야만 했다.

비록 고소 대상이 구단 전체에서 가지고 있는 증거에 포함된 선수들과 감독으로 한정된 게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보여드릴 것은, 올림픽 대표팀이 묵었던 호텔 복도의 CCTV 영상들입니다.”

“조작 여부는 영상의 오른쪽 하단을 보시면 날짜와 시간이 모두 나오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면 됩니다.”

유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자회견장의 정면에 있는 프로젝터 화면에는 복도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수영이 외출을 위해 방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건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서울 유나이티드 삼총사.

몇 번 반복해서 나온 CCTV 영상에서 그들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각은 매번 30분 이상 소요되었다.

더불어 노골적으로 김수영이 없을 때만을 노려서 행동했다.

“얼굴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데요! 다른 사람들 아닙니까?”

“…그 방에 있던 장본인이 저인데요? 말도 안 되는 답변으로 혼란 주지 마시죠 서울 유나이티드 관계자분.”

서울 유나이티드에서도 당연히 진행 상황을 알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멍청한 질문으로 덤벼들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두세 번 스쳐 지나가며 안면을 마주친 기억이 있는 남자가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기자회견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불가능했다.

유건이 칼같이 말을 차단하기도 했을 뿐더러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빼도 박도 못하겠는데요.”

“얼굴이 적나라하게 나왔어요.”

그리고 프로젝터에서 다음 장면이 나오자, 기자회견장은 서로 웅성대는 소리에 시끄러워졌다.

유건의 목을 팔로 감아 끌고 가는 양두광.

그 앞뒤로 서서 주변을 살피는 정상백과 박창수.

방에서 나와 건물의 테라스 쪽으로 이동하는 그들의 얼굴이 확실하게 잡혔으니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증거가 생각보다 명확해요.”

“진, 진짜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그들은….”

현장이 시끄러워진 사이 적나라하게 찍혀있는 그 영상을 보고 있는 서울 유나이티드 관계자들은 급하게 어딘가로 통화를 했다.

수화기 내에서 돌아오는 답변에 놀란 건지 당황하며 눈을 크게 뜨는 그들.

이내 각오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을 꺼낸다.

“독단적인 선수들의 행동에 유감을 표합니다. 하지만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은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 및 직원들은 전혀 관계없습니다.”

“장익현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 전원은 영상통화를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선수보다는 구단을 지키는 방향이었다.

아마 최창훈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통해서 방송되는 축따튜브 채널을 보고 있는 양두광, 박창수, 정상백으로서는 등을 맞댄 동료가 배신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구단의 이사진이나 단장의 입장에서 그들보다 중요한 게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본 영상통화 속에서 비웃던 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녹취록이 촬영된 시각은 아시다시피 휴대폰에 모두 남아있습니다.”

“바르셀로나 호텔에서의 CCTV가 촬영해준 영상 속에서 그들이 제 방에 들어온 시간 중에 발생한 일입니다.”

추가적으로 유건이 제출하는 증거.

서울 유나이티드 삼총사가 유건의 방문을 열고 머무른 시간.

그사이에 발생한 영상통화.

한국과 스페인 사이의 시차를 고려한 모든 시간 기록은 기사가 나오면서 공개된 증거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 와, 축따형 믿고 있었다! 서울 유나이티드 미친 새끼들 이제 벌 받는 일만 남았다!

- 증거 제출 미쳤다. 축따형 진짜 마음먹고 준비했네.

- 서울 유나이티드 응원단장 김현준입니다. 경기가 있는 날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서울 유나이티드를 위해 응원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 서울 유나이티드 유니폼 불태우러 갑니다. 축따형 대체 3년 동안 어떤 싸움을 해오셨던 겁니까

- 진짜 이미지 나락 가겠네. 선수들까지 버리면서 구단 살려보려 했는데 역효과 났음

그것을 모두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축따튜브의 팬들 사이에서는 채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러 감정이 오가고 있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유건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게 드러나고, 기존에 서울 유나이티드 팬들이었던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흘러가는 상황은 서울 유나이티드에게 더 안 좋은 상황이 있겠냐라고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러나, 있었다.

더 최악으로 만들만한 추가증거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 유나이티드가 FA컵 4강전에서 승리하던 날 회식을 하며 휴대폰 하나를 보며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게 촬영된 CCTV를 제출합니다.”

“보시다시피 영상통화 기록시간, 그들이 제 방에 머물던 시간, 고깃집에서 서울 유나이티드가 단체로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시간.”

“…모두 동일합니다.”

“이상으로 모든 증거를 제출하였고 존경하는 협회 여러분들의 서울 유나이티드에 대한 정당한 징계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자리에 모여주신 많은 분들 고생하셨고, 감사드립니다. 유건이었습니다.”

장익현 감독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이 휴대폰 하나를 붙잡고 단체로 비웃는 영상이 촬영된 고깃집 CCTV.

체크메이트였다.

그 말 그대로 유건이 준비해놓은 마지막 증거는, 기자회견장을 침묵하게 만드는 완벽한 한 수였다.

‘…서울 유나이티드는 끝이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머릿속 생각.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고, 축구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유건의 입을 통해 나온 증거들.

그것들은 지적할 곳 없는 완벽한 증거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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