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확실한 증거가 없잖아?
“먼저, 지금 나오고 있는 기사가 사실인가요?”
“축소되면 축소되었지, 전혀 과장 없는! 모두 사실에 근거한 기사가 맞습니다.”
유건이 처음으로 대답한 말.
그대로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기사에 담긴 모든 악행들은.
“왜 이제서야 공개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서웠습니다. 구단에 소속되어있을 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냥 묻어둘까 했지만, 구단을 나간 상태에서도 반복된 행동을 하는 그들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서울 유나이티드에 있을 때 공개를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오지 못했을 건 분명하고, 당시에는 사실 무서움이 컸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성인이 되지 못한 나이에는 말이다.
“한국에 소속되었을 당시, 개인플레이만 추구한 것도 연관이 있을까요?”
“개인플레이보다는…, 당시 지옥에 있던 저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발악은 눈에 띄기 위한 화려한 플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구단을 나와서 보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그런 행동을 해서 조금이라도 더 다른 팀의 눈에 들어 이적하기를 희망했었습니다.”
이것도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어떻게 보면 방출의 결정적인 이유가 이것이었으니까.
준비했던 답변을 말하는 유건이었지만, 그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발악하던 시절은 지옥 같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전 소속팀인데 이 기사 때문에 피해를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도 해보셨습니까?”
“…피해, 제 생각보다 더 크게 입었으면 좋겠네요! 가해자분들은 이런 일까지 생각하고 행동한 게 아닐까요? 솔직한 마음을 말씀드려요? 더 이상 피해자가 안 나오도록 서울 유나이티드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고 그러잖아요. 받으면 좋겠네요! 아주 강한 처벌로요.”
출국수속 전 마지막 질문을 장식하는 유건의 답변.
기자의 질문대로 서울 유나이티드는 피해를 입을 것이다, 생각보다 큰 파장이니까.
그들을 지켜주던 팬들마저도 등 돌릴 수도 있을 것이고 스폰서들도 계약을 해지할지 고민할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후련하네.’
이런 쓰레기 같은 구단이 당당하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리그 1부리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쓰레기 같은 구단의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된다.
그저 세상에 알려주고, 의견을 묻고 싶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구단의 사람들은 처벌을 받아야 되는 게 정상 아니냐고.
자신이 당했던 행동들이 정상은 아니지 않냐고 말이다.
‘너희가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달라질 거야.’
어떤 처벌을 당할지 아직 정해진 사항은 아니지만, 유건은 바라고 있었다.
최소 징계로 인한 자격정지, 최대는 K리그2로의 강등이나 비슷한 수준을.
그리고 그것도 아니라면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처벌을 받기를.
***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이사진분들한테 미스터 유를 모셔 와 달라고 부탁받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터 유, 기다렸습니다! 우선 편하게 이동하면서 필요한 건 천천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약 10시간가량의 비행이 끝나고 히드로 공항에서 내린 유건.
그를 맞이하기 위해 구단에서 직접 마중을 나왔고, 덕분에 콜니 트레이닝 센터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중간중간 같이 차에 탑승한 직원분이 최창훈과 소통 뒤에 건네는 서류들만 간간이 확인하면서 말이다.
“메디컬 테스트는 크게 이상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님.”
“다행입니다, 특이 병력이나 결격사유는 보이지 않는군요!”
메디컬 테스트는 거의 탈락하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간단한 확인 수준이었다.
심전도, 혈액, 흉부 및 하체 쪽 엑스레이 등 프로선수 생활에 크리티컬한 부분만 확인하는 정도.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적이 거의 확정 난 분위기였던 것이다.
유건이 왔다는 소식에 확인하러 온 아르테타 감독은 메디컬 테스트의 결과도 유심히 확인했다.
“감사합니다! 집과 차량 문제는 혹시 해결되었을까요?”
“에이전트분이랑 메일로 얘기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크 퍼밋 관련 서류들은 잘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얘기를 나누는 것은 런던에 거주할 집과 출퇴근을 위한 차량 문제.
최창훈과 부인이 살아갈 집과 자신의 집 두 채가 붙어있는 것을 찾고 있었던 유건이었고,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구단과 적절한 곳으로 찾아달라고 얘기 중인 최창훈이었다.
차량의 경우 따로 아스날은 스폰서가 없었기에 원하는 차량을 골라주면 계약 기념으로 사준다는 얘기도 되어있었다.
다 이미 한 번 이상 들었던 사항들이었지만, 서울 유나이티드를 이기는 데 신경이 팔려있던 유건이 몰랐을 뿐이다.
“그럼 유건 선수, 사진은 오늘 찍고 복귀하시죠! 유니폼은 이미 준비해뒀습니다.”
다행히도 일 처리가 깔끔했던 최창훈은 구단에서 필요로 하는 서류들을 다 챙겨왔다.
덕분에 아스날로서는 계약에 필요한 추가 서류 요청 없이, 마지막 절차로 넘어갈 수 있었다.
유건의 등번호는 21번.
에이스 번호라고 불리는 7번, 8번, 10번은 이미 입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냥 고른 것이다.
축따로 다시 태어난 21살의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제 거의 마무리네요. 내일 마지막으로 오피셜 영상만 촬영하시면 끝입니다!”
“아, 그리고 마틴이 선수단을 대표해서 간단하게 환영회를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잠깐 들렀다 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영입생이 올 때마다 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계약서에 사인하는 사진.
그것까지 촬영한 유건의 다음 목적지는 라커룸이었다.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덕분에 콜니 트레이닝 센터에는 모든 선수들이 와있는 상태였다.
거기서 10년 이상 주장 완장을 맡고 있는 마틴 외데고르의 주도하에, 조촐한 환영식을 준비해놓은 선수단.
와아아-!
“미스터 유? 미스터 건? 어떻게 부르면 되는 거야, 친구.”
“그냥 건이라고 불러줘. 우린 거, 거너스잖아!”
“하하, 환영한다 루키!”
간단한 통성명의 과정에서 유건은 자신의 이름과 팬들의 별명을 간단한 라임으로 맞춰서 소개했고, 덕분에 초면에 어색했던 분위기는 약간 부드러워졌다.
유럽 진출과 함께 앞으로 백넘버와 함께 달게 될 이름의 마킹은 성씨인 [유]보다는 [건]으로 정했다.
구단의 모든 직원 및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더 익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한 것도 없지는 않았다.
아스날의 팬들은 거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크, 앞으로 잘 부탁해. 올림픽 스타!”
익살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수비 라인의 핵심 윌리엄 살리바.
아무리 최근 몇 년 동안 최상위권에서 내려오고 있는 아스날이었지만, 최소한 유로파리그라도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이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지금은 은퇴한 레전드들인 가브리엘 마갈량이스, 벤 화이트, 롭 홀딩 등 어떠한 수비수랑 파트너로 나와도 철벽같은 수비를 보여주는 것은 똑같았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이번 시즌 13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살리바의 부상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
“우리 팀에 좋은 열정을 가져다주면 좋겠네, 어린 친구.”
“부담가지지 말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물어봐라.”
다음으로 말을 건네는 것은 마틴 외데고르와 함께 미드필더진을 구성하고 있는 또 한 명의 핵심 선수 찰리 파티노.
아스날 유스에서 나온 최고의 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간결한 터치, 순간적인 바디페인팅뿐만 아니라 앳된 외모와는 상반되는 터프한 플레이 등의 장점이 많은 선수였다.
더군다나 살리바와 함께 리그 베스트에도 매년 후보로 선정될 정도의 베테랑 선수.
그런 그가 신입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말을 계속 걸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1군으로 콜업되어 올라왔던 첫날 어리둥절했던 자신의 표정이 생각날 정도로 지금 유건이 짓고 있는 표정이 꽤나 멍청해 보였으니까.
“…다들 환영해줘서 고마워. 내일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겨울에 돌아올 때까지 멀리서 응원하고 있을게!”
“그때까지 한 경기도 지지 말라구!”
그 뒤로도 많은 선수들과 인사를 하며 간단한 통성명을 마친 유건.
다음 경기를 위한 오후 훈련이 시작할 시간까지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고, 다시 돌아와도 어색함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는 아르테타 감독과 코치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동안 떨어져 있기 위한 작별 인사를 고했다.
물론 내일 오피셜 영상을 촬영하러 왔을 때 만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제 정말 새롭게 시작하는 거네!’
그들이 모두 훈련장으로 떠나고 난 후, 잠깐 라커룸에 앉아 생각에 잠긴 유건이었다.
일 년 만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 자체가 변화되었으니까.
그에 적응하기 위해 앞으로는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아직 실감 나지 않는 현실을 자각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우선, 돌아가서 끝을 보자고.’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끝을 맺어야만 가능하니까 말이다.
***
[아스날 FC, 약 190만 파운드로 올림픽 스타 유건 영입!]
[(오피셜) 아스날, 유건 영입]
[아스날 감독 아르테타, “유건은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선수이며 영입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런던에서의 이적 절차, 앞으로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집과 차량.
추가적인 사항은 최창훈이 처리해주기로 했기에, 핵심적인 절차를 끝낸 유건은 국내로 돌아오고 있는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기까지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있었기에, 국내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동하고 있는 와중 아스날이 올린 오피셜 영상과 기사는 유건에 관해 변화되는 여론의 방향에 기름을 부었다.
- 축따형! 축따형! 축따형!
- 서울 유나이티드 쓰레기들이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축따형 1~2년은 더 빨리 유럽 진출했을 듯!
- 축따형 우선 다시 구독했습니다. 결론날 때까지 일단 중립 기어 넣겠습니다.
- 와 진짜 한국 나이로 21살에 아스날이라니!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런던으로 출국하기 전 인터뷰한 유건의 기사가 나오고, 그를 지원하는 용인 FC 선수단과 감독의 인터뷰.
그것만으로도 축따의 팬들은 다시 믿음을 주기 시작했고 국내 축구팬들도 조금씩 유건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두광이형, 창수형! 제발 그만해주세요. 저 이제 서울 유나이티드 소속 아니잖아요!”
“상백이형! 형이라도 제발 그만해주시면 안 돼요?”
그리고 녹취록에서 적나라하게 들리는 실명 언급과 폭력 소리, 애원하면서 비는 유건의 연기.
“감독님! 우리 발발이 정신 못 차린 것 같아서 교육 좀 하고 있습니다!”
“어이구, 발발이! 팀 나가더니 아주 신수가 훤해졌네?”
목소리로 유추 가능한 장익현 감독이나 서울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유건을 비춰놓고 비속어가 섞인 말로 하는 언어폭력의 상황.
그렇게 유건이 제시한 충분한 증거자료를 한 장소에 모여서 함께 보고 들으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서울 유나이티드 직원들과 선수들이었다.
“이 미친 새끼들아! 발발이한테 이렇게 녹음되면 어쩌자는 말이냐!”
“그러니까요. 그 새끼가 녹음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가서 당장 잡아 오겠습니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여론의 심각성에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건 아직까지 험담만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 때문이리라.
“…잠깐, 저거 우리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잖아?”
“오히려 명예훼손죄 같은 걸로 고소 못 하나? 아스날 간 거 꼴 보기 싫어 죽겠는데!”
그중 한 명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유건이 제시한 녹취록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신들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단들에게 그 짧은 의문은 안도감을 준 것뿐만 아니라 복수하기 위한 생각을 가지게 한다.
오히려 자신들이 눈 딱 감고 피해자인 척을 해보자는 생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