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출국 시간이 다 돼가서요
“…기사는 2차전이 끝나고 하루 뒤, 바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상당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데 구단에 얘기는 되었습니까?”
“이상찬 감독입니다. 그런 놈들 따위, 터트려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용인 FC 구단에서도 FA컵 결승 1차전이 끝나고 이상찬 감독의 사무실에서 화상으로 미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제는 결승전 상대인 서울 유나이티드에 대한 비밀을 언제 터트릴 거냐에 대해서.
선수단, 구단 모두 사전협의는 종료되었고 구단과 친한 기자들에게 증거자료를 모두 제출한 상태.
“유건아, 우리가 생각한 계획은 승리했을 때다. 알고 있냐?”
“자신 없습니다.”
“지면 오히려 욕먹을 가능성이 있다니….”
“질 자신이요, 한국 말끝까지 듣는 거 아닙니까!”
무조건 이기고 나서 터트려야 된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이상찬, 유건, 박 팀장 모두의 생각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질문이었는데 자신이 없다고 말하자 큰소리를 치려던 찰나, 말을 이어서 하는 유건이었다.
자신감을 내비칠 만도 했다.
며칠 전 경기 결과가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었으니까.
FA컵 결승전 1차전, 용인 FC 3:0 승리.
‘…개새끼들, 얼마 남지 않았다. 기다려라.’
생각만 해왔던 일을 현실로 만들기까지, 며칠 남지 않은 유건이었다.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세상에 공유하는 게 꺼려지긴 했지만 확실한 복수를 위해서 선택한 일이다.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아스날로 이적하기 전에 그가 끝맺음을 맺고 가야만 했다.
비록 아직 그게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모르겠지만.
***
와아아-!
FA컵 결승 2차전이 펼쳐지고 있는 용인 FC 홈구장.
관중석에는 수많은 사람이 응원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침묵을 하고 있었다.
서울 유나이티드 원정팬들이 앉아있는 좌석의 지역 말이다.
경기 결과가 그들에게 허탈함을 안겨주고 있었기 때문에.
“…없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단언컨대 FA컵 결승전 역사상, 그것도 K리그1의 우승팀이 이렇게 무너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놀라울 따름입니다. 정말 유건 선수의 활약은 미쳐 날뛰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말이 안 나오는군요. 유건 선수는 이번 2차전까지 합치면, 결승전에서만 2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광판에 비치는 스코어는 용인 FC 2 : 0 서울 유나이티드.
1차전까지 합산하면 총 5:0의 스코어로 진행 중인 2차전 경기였고, 아직 전반전이었다.
5개의 득점에서 모든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는 유건은 캐스터들이 말하는 그대로 미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1차전에서는 어시스트 3개를 일컫는 어시트릭, 지금 2차전 전반전에만 두 골을 밀어 넣었으니까.
“이 미친놈아! 진짜 작정하고 나온 거냐? 해트트릭 가보자고!”
“으아아!! 막내야, 형이 남자한테 처음 말하는 건데 진짜 사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경기장에서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유건을 얼싸안고 좋아하는 용인 FC 선수단.
방금 두 번째 득점 상황에서, 태클을 위해 달려오는 박창수를 제치고 체중을 실어 때렸던 중거리 슈팅은 정확한 임팩트로 인해 무회전으로 날아갔다.
제대로 맞은 공은 날아가면서 골키퍼가 방향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이리저리 흔들렸고, 결국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 말은, 자신의 뒤에 있는 골대의 그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
전반 42분, 서울 유나이티드 팬들마저 좌절하게 하는 유건의 두 번째 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삐이익-!
전반전이 끝나는 휘슬소리에, 한숨을 내쉬는 두 팀이었지만 많은 차이가 있었다.
더 이상 실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단의 한숨.
몰아붙이는 경기 결과가 너무 기쁘지만, 단지 45분이라는 시간을 뛰어다닌 뒤 올라오는 체력에 대한 한숨을 내뱉는 용인 선수단.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표정만 보더라도 승자와 패자가 보일 정도였다.
콰앙-! 콰앙-! 콰앙-!
“빌어먹을 새끼들아! 너희가 축구선수냐? 2부리그 따위한테 다섯 골이나 처먹는 게 말이 되냐고!”
“그것도, 유건 저 멍청한 새끼한테 휘둘리는 게 정상이냐!”
“박창수! 못 막겠으면, 차라리 담가라 이 새끼야! 발발이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안들어?”
“쓰레기 새끼들!”
서울 유나이티드의 라커룸 분위기는 당연히 그보다 더 나쁠 수가 없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기에 명장이라고 불리는 장익현 감독이었는데, 다 개소리였다.
대외적인 인터뷰에서는 좋게 말하지만 라커룸에서는 모든 잘못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까.
프로축구선수의 감독이란 놈이 상대 선수가 잘한다고 부상을 입혀 버리라는 게 말이 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선수들과 직원들이 심한 따돌림을 할 때, 방치를 넘어서 오히려 가담했던 장익현 감독은.
삐이익-!
분한 표정을 지으며 휘슬을 기다리는 서울 유나이티드와, 함박웃음을 얼굴에서 잃지 않은 채로 후반전을 준비하는 용인 FC.
그 두 팀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기다림에 대한 이유를 끝내줄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다.
“유건아, 한 골 더 잡자!”
“한 골 더 가자!”
서울 유나이티드의 팬이라면,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용인 FC 선수단의 경기집중력은 엄청났다.
벌어져 있는 점수 차를 의식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공을 상대방의 골대 안으로 한 번 더 집어넣고 싶어 했으니까.
그들은 여느 때와 똑같이 유건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경기와 이번 경기에서 반복된 장면처럼 서울 유나이티드는 하프라인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적당히 하라고, 이 새끼가 진짜!”
후반 15분경, 또 한 번 자신이 뻗는 발을 피해버리고 마르세유 턴으로 곧바로 몸을 돌려 전진하는 유건을 바라보는 박창수.
내심 ‘다섯 골이면 이제는 그만 넣겠지’라는 생각도 해봤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유건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박창수의 머릿속에서는 라커룸에서 장익현 감독이 말했던 악의적인 생각이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윤성이형!”
그 생각을 알 리가 없었던 유건은 또 한 번 이윤성과 주고받는 2대1 패스를 위해 그에게 공을 주고, 해트트릭을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1차전에서 어시트릭, 2차전에서 해트트릭.
축구 경기로 복수하는데 이보다 더 환상적인 결과가 있겠는가.
그것을 위한 일념 하나로 이윤성에게서 리턴을 받은 공을 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던 유건이었다.
스으윽-!
하지만 뒤에서 잔디를 쓸며 스터드를 들고 들어오는 박창수의 태클은 유건의 정강이 쪽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지만, 언젠가 발생할 상황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던 유건이었다.
슬쩍 몸을 뒤로 돌아보고 자세를 급하게 틀면서 공중으로 몸을 띄워서 피하려 했다.
물론 그 순간에 피해를 입지 않고 피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부딪힌 박창수의 발에 걸렸고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역시 바뀌지 않아, 너희들은.’
뻐억-!
하지만,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어떻게 몸이 떨어질지는 유건이 선택할 수 있었다.
어딘가 부러지기라도 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큰 소리와 함께 태클을 한 상대와 몸이 겹쳐졌다.
급하게 몸을 틀려고 노력하는 척, 양발에 달린 축구화의 스터드로 박창수의 배 쪽과 갈비뼈 쪽을 가격하면서 떨어졌던 것.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기에 살짝 통증이 오는 발을 부여잡고 그라운드 위를 구르고 있었다.
물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 몸의 주인공인 박창수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삐익-!
급하게 경기를 중지하는 심판의 휘슬.
그만큼 심각한 반칙이었다.
스터드를 드는 것만으로도 위험한데 상대 선수가 인지하지 못하게 뒤에서 하는 백태클.
“정상적인 태클이 아닙니다! 저게 프로선수가 할 태클입니까!”
“심판님, 이거 당연히 레드죠?”
명백하게 레드카드였다.
태클을 하고도,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박창수에게 레드카드를 꺼내 드는 심판.
유건이 쓰러지자마자 흥분해서 달려오면서 크게 소리치는 용인 FC 팀원들이었다.
반대로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들조차 반박할 여지가 없는 태클이었기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이었다.
“…저 이거만 차고 나가도 되죠?”
상황을 정리하는데 약 3분 정도가 걸렸고, 태클을 한 박창수는 들것에 실려 나갔고 유건은 일어났다.
라인 안쪽에서 발생한 백태클은 당연히 페널티킥도 주어졌는데 그것을 차기 위해서 말이다.
벤치에서는 유건을 교체하겠다는 신호를 주었지만, 이것만 차고 나가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다.
결국 이상찬 감독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공을 들고 PK를 차기 위한 자리로 걸어갔다.
후우-! 후우-!
‘…니가 매일같이 때렸던 복부가 아직도 아프다.’
페널티킥을 막기 위한 서울 유나이티드의 골키퍼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이미 여섯 골을 먹었는데 추가적으로 한 골을 더 헌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유건의 머릿속은 오히려 평온했다.
방향을 이미 정해놨으니까.
‘너도 한 번 맞는 기분을 느껴봐야지?’
정면이다.
폭력을 당했던 대상 중에는 서울 유나이티드의 골키퍼도 있었으니까.
멀찌감치 떨어져 도움닫기를 준비하는 유건.
공식 경기에서 이제까지 찼던 슈팅 중에, 가장 강하게 찰 마음이었다.
피하든지, 막든지 그건 상관없었다.
그저 앞에서 막고 있는 선수의 복부를 가격하고 싶었을 뿐이다.
뻐어엉-!
그렇게 유건의 발에 맞은 공이 앞으로 튕기듯이 쏘아져 나갔다.
***
[용인 FC 유건, “악의적인 태클은 프로 의식 결여. 사후 징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FA컵 트로피를 가져가는 주인공은 용인 FC]
[FA컵 역사상 가장 큰 점수 차, 두 경기 합산 8:0의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한 용인 FC]
유건의 해트트릭에 이어서 한 명이 모자란 채 경기를 뛰게 된 서울 유나이티드는 추가로 2실점을 하면서 경기는 끝났다.
총합산 8:0의 스코어.
역사상 이런 점수 차가 없었고, 사후 징계를 바라는 유건의 인터뷰에는 동의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그만큼 박창수의 태클은 악의적이었으니까.
[FA컵 결승전 MVP 유건, “서울 유나이티드는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프로축구선수의 수준이 아니었다”]
[FA컵 결승전 MVP 유건, “전 소속팀? 서울 유나이티드에 소속되었던 기간은 내 커리어에서 제외할 생각”]
하지만 다른 인터뷰에서는 유건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서울 유나이티드에 대한 비난이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 유건 선수 그렇게 안 봤는데 서울 유나이티드에 대한 비난이 너무 선 넘은 거 아님? 구독 취소하겠습니다.
- 그래도 전 소속팀인데 진짜 너무하네. 못할 때도 응원했었는데요
- 축따형, 이렇게 강하게 발언하는 거 처음 보네
- 서울 유나이티드 팬들은 들고 일어날 만할듯, 전 소속팀에 대한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었음 이번에는.
심지어 어제 경기가 끝난 이후로 멈추지 않을 정도로 축따튜브의 구독자들마저 비난할 정도였다.
그리고, 입소문을 타서 서울 유나이티드의 팬들까지 모여 오늘까지 계속된 비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이제 막 업로드된 기사 몇 개가 퍼져나가기 전까지.
“…기자님, 세 시간 전에 올라갔지 않나요? 공항에 기자들이 많네요.”
“모두 다 아스날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 모인 건…, 아닌 것 같군요.”
그로부터 세 시간 뒤, 유건은 아스날과의 계약을 위해 메디컬 테스트를 하러 출국이 필요했기에 인천공항에 거의 도착했었다.
차에서 내려 최창훈과 함께 출국수속을 밟기 위해 이동하면서 기자와 확인 전화까지 마쳤다.
[(단독공개) 유건이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당한 것은 지독한 따돌림 때문! 폭력, 갈취 등 그가 당한 일을 고발한다]
[서울 유나이티드는 폭력으로 관리되는 구단인가]
[사라진 줄 알았던 구단 내 폭력, 따돌림! 그게 다시 부활한 구단은 어디인가?]
찰칵-! 찰칵-!
“유건 선수, 이 기사가 정말 사실입니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서울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뉴스에서 나온 녹취록 내용이 모두 사실인가요?”
“그런 일을 겪고도 왜 이제야 말씀하시는 건지 이유를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유건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공항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모두 몰려와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지금 이 순간, 떠들썩한 기사의 주인공에게 진실을 듣기 위해서.
하나만 따내도 특종은 따놓은 당상이었기에 너도나도 질문을 하려 했다.
‘…무참히 깨졌음에도 옹호해주는 팬들의 반응에 잠깐 기뻐했겠지? 그게 너희들 마지막 웃음이다, 새끼들아.’
속으로 서울 유나이티드 관련 사람들의 표정을 잠깐 상상해보던 유건은, 한 마디로 그들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한 분당 하나의 질문만 받겠습니다. 출국 시간이 다 돼가서요.”
그런 그들의 입을 닫는 유건의 한마디.
시끄러운 기사의 주인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표정의 유건이었다.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