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57화 (57/208)

57화. 당신의 선택을 믿습니다

“막내, 이 자식아! 뉴스 진짜냐?”

“네, 조건 합의까지는 완료되었어요. FA컵 이후에 메디컬을 위해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갑자기 리그 수준이 한 번에 높아졌는데? 아무튼 가더라도 부담 가지지 말고!”

다다음 날, FA컵 1차전을 하루 앞둔 날 훈련장에서는 오전에 난 뉴스 기사들로 잠깐 떠들썩해졌다.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과 유건 간의 합의가 완료되어, 메디컬 테스트만 남았다는 것.

그 말은 함께 뛸 수 있는 마지막 경기라는 것이다.

용인 FC 선수들도, 유건도 이제 점점 이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용인 FC에서의 마지막 경기인데 지고 가면 평생 아쉽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길 수 있게 뛰어라, 막내야!”

그래서인지 용인 FC는 이전의 그 어떤 경기보다 이번에 다가오는 경기를 모두가 합심하여 이기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이별이 있기에 후회 없도록 말이다.

- 와, 형들 기사 뜬 거 진짜임? 축따형 아스날 간다고?

- 미쳤네 진짜. 리즈랑 찌라시 돌았을 때 개인적으로 빠르게 진행안 돼서 아쉬웠는데, 아스날이면 말이 다르지

└ 그게 다가 아님. 아르테타 감독도 심장병 완치하고 돌아왔음

- 프리미어리그에 축따형 합류! 이제 한국 선수만 4~6명 되는 느낌인데!

축따튜브에서는 떠들썩한 반응을 넘어서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까지는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중에 유건이랑 잘 맞는 팀이 어디일지 장난식으로 말하고 놀았었다.

근데, 오늘 오전에 포털 사이트에 공개된 뉴스 기사는 장난이 아니라 진짜였다.

세계적인 리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리그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팀과 합의가 되었다는 뉴스 말이다.

- 축따형, FA컵 진짜 빡세게 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용인에서 마지막 경기 뛰는 거니까!

- 잠깐이나마 우승을 꿈꿔봤던 서울 유나이티드 팬입니다. 축따형 살살 부탁 드려요

- 형들 기억하고 있지? 축따형이 이겨야 우리 이벤트 할 수 있음!

└ 트로피 들고 박수칠 때 떠나자, 축따형!

└ 축따형! 축따형! 축따형!

그리고, 내일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또 한 번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축따형 유건이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치르는 경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 보러 가야 된다!’

‘용인이든, 서울이든 무조건 이번 경기는 직관 간다!’

아직 유건의 경기를 직관해보지 못한 팬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기회였다.

그가 국내 경기장에서 뛰는 것은 앞으로 보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

“오늘 얘기할 건 따로 없다, 여러분의 일 년을 불태우는 경기니까.”

“아참! 이 말은 해야겠다.”

“지지 마라, 이놈들아!”

유건으로서는 꽤나 익숙한 구장.

서울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에 도착한 용인 FC였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이상찬 감독의 연설이었지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저 그들에게 이때까지 달려온 대로 승리를 하러 가자는 말 밖에 말이다.

삐이익-! 와아아-!

휘슬이 울리자마자, 구장을 가득 메운 서울 유나이티드 팬들이 내지르는 응원 열기는 대단했다.

익숙한 잔디에서 경기를 하는 것 이외에도 홈구장의 이점에는 이것이 있었다.

엄청난 팬들의 응원 앞에서 상대 팀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이 되는 경우가 꽤 자주 있으니까 말이다.

“빠르게 돌려봐! 우리가 미들 앞선다!”

“윤성이까지 내려와!”

유건, 김대건, 김태훈의 미드필더 조합.

상대가 K리그1에서 우승을 한 팀이라고 해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박창수의 압박에서 손쉽게 빠져나가는 유건 덕분에 압도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했다.

더군다나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내려와서 중앙 지역에 숫자를 더해주는 이윤성 덕분에 볼을 점유하는 데 성공하는 용인 FC였다.

“양쪽 윙, 움직여!”

“윤성! 올라가도 되겠다!”

전반이 시작하고 5분 동안 지켜온 밀어붙이는 흐름.

유건이 내린 선택은 가속이었다.

왼쪽의 손태민, 오른쪽의 강바람, 중앙의 이윤성을 모두 한 칸씩 전진시키면서 공격에 치중시켰다.

“태훈이형, 이거 리턴!”

“대건! 바로 왼쪽 벌려.”

경기장 곳곳을 중간중간 살피면서 공격의 방향을 전체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골문이 열릴 때까지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것.

이 기세를 멈추기 위해서는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갑작스럽게 득점을 올리든지 해야 하는데, 경기 양상으로 보아 쉽지 않아 보였다.

미드필더 지역을 장악한 용인 FC의 공을 빼앗질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용인 FC의 저력이 대단합니다. 10분 동안 서울 유나이티드가 공을 잡은 횟수를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인데요!”

“한 선수의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유건 선수의 오늘 미드필더 장악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아스날에서 나를 선택한 것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캐스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감탄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월등한 클래스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유건이었기에.

박창수의 마킹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 추가적으로 인원이 압박을 위해 지원을 오더라도 결국 탈압박해내는 모습.

“맨온이다, 태민! 접지 말고 그대로 가!”

그리고, 결국 기회를 만들어내기까지.

안쪽으로 파고드는 손태민의 발동작에 맞춰 정확하게 패스를 전달해준다.

급하게 방향을 꺾어 따라가는 올림픽 대표팀 출신 사이드백 정상백이 따라붙는 것까지 정보를 말해주면서.

‘…이건 넣어야지!’

뻐엉-!

파고드는 방향으로 한 번 더 공을 치는 그 순간, 슈팅을 위한 코스는 열렸다.

사이드백이 압박을 위해 달려오고 있었기에 중앙 수비로서는 머뭇거리다가, 손태민의 발이 휘둘러지는 그때 뒤늦게 뛰쳐나왔다.

안타깝지만 그렇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오른발을 이용해 먼쪽 포스트로 살짝 감아 차는 슛은 수비수가 뻗어낸 발의 하단을 지나 골대로 감겨들어 간다.

전반 13분, 용인 FC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나이스 슛이요, 태민이형!”

“으아아아! 패스 멋졌다, 막내야!”

원정팬들 앞으로 다가가 포효하고 있는 손태민의 등에 올라타는 유건.

그런 그의 머리를 두드리면서 팬들에게 유건의 패스가 멋졌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가리킨다.

원정 경기에서 선취득점이라니, 응원을 온 팬들 입장에서는 그보다 좋은 상황이 없었다.

삐이익-!

재차 불리는 휘슬에 맞춰 서울 유나이티드는 정신을 차렸다고 말하는 듯이 동점 골을 넣기 위해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압박을 열심히 하고, 패스를 신중하게 하고, 골대 앞에서는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고 온다.

덕분에 용인 FC가 지배했던 경기는 팽팽한 양상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약 20분이 넘는 시간이 한계였다.

“급하게 가지 말고, 천천히 한 골 더 넣자!”

“건아! 맨온이다.”

템포를 올리는 서울 유나이티드에 쫓기면서 플레이 자체가 급해졌던 팀원들을 다독이는 것은 유건.

김대건, 김태훈이 지원해주는 삼각형 진형의 꼭짓점 위치에 서서 공을 천천히 키핑하면서 손동작과 함께 팀원들에게 외친다.

그런 그에게 뒤에서 달려드는 박창수를 보며 알려주는 김대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도 유건이 생각해낸 계략이었다.

조금씩 올라가서 자신감이 붙고 있는 서울 유나이티드의 기세를 끊기 위해서 말이다.

김대건의 말을 듣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리턴 패스를 주는 듯한 유건의 움직임에 발을 뻗는 박창수.

그가 확실하게 속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스윽-!

“…개자식이!”

유건이 지나치는 박창수의 입에서 비속어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자신이 뻗는 발이 그저 허공을 갈랐기 때문이다.

뒤로 패스를 내주는 척 뒤로 젖혀진 유건의 발이 공을 향해 가다가, 순간 발바닥으로 공을 뒤로 가져갔으니까.

“윤성!”

돌아서 전방을 향해 치고 나가는 유건에게 방해를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4-3-3 포지션을 사용하고 있는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유건을 마크하는 건 박창수가 유일했으니까.

뒤늦게 양쪽에 펼쳐진 메짤라 포지션의 선수들이 압박을 위해 달려오고 있지만 늦었다.

이미 이윤성을 향해 패스를 주고 앞쪽으로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이번 시즌 경기 중, 수십 번 이상 반복된 장면.

유건에서 이윤성으로 가는 패스는 높은 확률로 2:1패스를 위한 것이고, 결국 유건에게 공이 되돌아간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윤성이형 나이스! 마무리해!”

“이윤성 선수! 유건 선수에게 리턴 패스를 내주지 않고 직접 키핑해서 측면으로 드리블합니다!”

“옆쪽에 있던 수비수가 이대일 패스를 의식해서 이미 유건 선수 쪽으로 몸을 전진시키고 있는데요!”

이윤성의 선택은 직접 마무리.

등을 지고 키핑한 상태에서 살짝 옆으로 공을 치면서 슈팅각을 순간적으로 만든다.

그대로, 망설이지 않고 반 박자 빠르게 슛.

출렁-!

“이거라고, 이거! 으아아아!!”

아시안 게임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은퇴하기 전까지 국가대표에서 부동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황의조.

그 전설적인 선수가 자랑했던 전매특허는 옆으로 한 번 치고 반박자 빠르게 감아 차는 슛.

그것을 재현해낸 이윤성의 슈팅은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골대의 하단 구석을 향해 빨려들어 갔다.

- 용인 FC 진짜 미쳤다. 축따형 벌써 어시스트 2개 아님?

- 1부리그랑 2부리그 우승팀끼리 경기인데, 용인이 K리그1 우승팀이라고 해도 믿을 듯

- 윤성이형 슈팅 장난 아니다. 저기서 툭 쳐놓고 반박자 빠르게 때려 버리네

- 축따형 웃음 짓는 거만 봐도 난 행복하다. 그대로 우승 가자 축따형!

다시 한번 원정팬들 앞에서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용인 FC 선수단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축따튜브.

그들의 말처럼 경기가 흘러가는 양상은 일방적이었다.

전반 37분, 2:0이라는 스코어가 중계 화면에 잡힌 전광판에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시각, 아르테타가 이끄는 아스날 콜니 트레이닝 센터에서는 미팅이 진행 중이었다.

크뢴케, 팀 루이스 등 사내 이사진이 모두 참석해서 앞으로의 방향을 진행하는 자리.

“…도약을 위한 첫 번째 단추 유건 선수와는 얘기가 잘 되었습니다. 워크 퍼밋이 나오지 않는 선수인데도 불구하고 이적료 부분에서 허락해주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콜업입니다. 추가 검토는 필요하지만 충분히 1군에서 활약할 유망한 선수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유건의 영입에 대한 얘기에 이어서 앞으로의 방향을 확신에 찬 말투로 이사진에게 설명하는 아르테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당신의 선택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르테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조쉬 크뢴케.

옛날 아스날이 다시 한번 부활을 알리는 시즌, 촬영했던 다큐멘터리에 공개가 돼서 팬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그 장면.

지금 이 순간 그 장면이 다시 한번 재현되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리그 테이블에서 13위에 위치해 있지만, 이 미팅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믿고 있었다.

최고의 감독과 스태프들로 구성된 아르테타 사단이 이번 시즌 진출하고 있는 유로파를 넘어 챔피언스리그로 복귀시켜줄 거라고.

그들과 함께 이미 한 번 걸어본 길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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