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55화 (55/208)

55화. 지금 당장 뺨 좀 때려봐라

“건아, 맨온!”

“여기 비어있다, 막내야!”

“태민이형 길게!”

시즌 마지막 라운드를 치르는 용인 FC의 활기찬 목소리에서도 보이듯이 공격력은 폭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전 감각을 위해 투입된 베스트 라인업 선수들도 저마다 조금씩 발전하는 게 눈에 보였다.

오늘 올린 세 개의 득점 모두 그런 발전을 통해서 나온 골이었다.

“…태민이, 파고드는 게 좋아졌어 확실히.”

첫 골은 왼쪽 날개 손태민의 발에서.

항상 직선적인 움직임만을 보여주는 게 단점으로 꼽힐 정도로, 안쪽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꺼렸던 그였다.

하지만 시즌 중에도 훈련에서 열정을 보여주면서 보완하려 노력했던 것의 효과가 이제 드러나고 있었다.

볼 점유를 지원하기 위해 미드필더 지역으로 내려왔던 이윤성의 패스를 받아서 골까지 만들어낸 게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윤성이도 옛날 폼을 찾은 것은 물론, 뛰어넘은 것 같은데요?”

이제는 확실히 용인 FC의 스트라이커이자 K리그1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만한 실력을 지니게 된 이윤성.

찬스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어줄 득점은 물론이고,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를 향한 어시스트가 될 만한 패스능력도 향상시켰다.

그 결과, 오늘 두 개의 어시스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태훈이는 어떤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잘해진 거야?”

“이번 시즌 건이한테 밀리고 나서 훈련 때마다 추가로 남아서 하고, 매번 제일 늦게 퇴근했어요 저놈.”

그리고 제일 장족의 발전을 보여준 것은 바로 김태훈.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유건과 비슷하게 볼을 소유하고 안전한 패스를 추구하는 연결고리 역할의 선수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 주전이었던 선수가 이적하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겠다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떡하니 유건이 나타나 버렸던 것.

경기가 진행되면서 유건을 밀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 칸 내려간 3선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연습을 해왔었다.

덕분에 김대건과 원래 호흡을 맞추던 선수를 밀어내고 최근 경기부터 주전을 차지하게 되었다.

“…서울 유나이티드가 전혀 두렵지 않은 건, 나만의 생각이냐?”

“감독님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우리 이번 시즌, 사고 한 번 크게 칠 것 같은데요.”

결국 한 골을 더 밀어 넣는 유건의 슈팅을 보면서 이상찬과 코치진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이는 자신의 팀이 FA컵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트로피를 따는 확률이 올라가겠다면서 말이다.

정규 리그가 마무리되고 2주 뒤에 펼쳐질 FA컵 결승전 1, 2차전.

서로의 홈구장에서 한 번씩 펼쳐질 그 경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은 유건 혼자만이 아니었다.

K리그2 시즌 40라운드.

용인 FC 4-0 승리.

K리그2 시즌 우승, 용인 FC.

K리그1 승격 확정, 용인 FC.

시즌 득점왕, 이윤성.

시즌 도움왕, 유건.

시즌 MVP, 유건.

이윤성, 강바람, 박범호, 손태민, 김대건, 유건.

K리그2 소속 6명선수, 이번 시즌 베스트 일레븐 포함.

최고의 시즌을 보낸 용인 FC의 마지막 숙제, FA컵.

서울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까지 남은 시간은 2주.

그게 이번 시즌의 마무리이자 트로피가 걸린 또 한 번의 매치였다.

***

[K리그2 시즌 MVP, 유건 “다음 해에도 좋은 활약으로 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K리그2 시즌 득점왕, 이윤성 “K리그1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때보다 지금 실력이 더 뛰어나기에 그 당시보다 더 자신 있는 상태”]

[용인 FC의 이상찬 감독, 다음 시즌 K리그1 팀들에게 경고]

[플레이오프 없이 승격확정을 이룬 용인 FC의 다음 과제는 FA컵!]

올림픽이 끝난 이후처럼 기사가 쏟아지지는 않았으나, 국내팬들과 유건의 팬들에게 좋은 소식이 담긴 기사가 여러 개 있었다.

도움왕, MVP, 베스트 일레븐까지 3관왕을 차지한 개인으로서의 성적과 팀을 승격으로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지금까지는 그저 말로만 했던 최상의 결과를 실질적으로 얻어낸 용인 FC였다.

남은 하나의 대회의 결과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스날은 감독을 누구로 선임한대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데, 이게 진짜면 대박이다!”

“미켈 아르테타, 알지?”

“모를 리가요! 근데 그분은 병에…, 설마?”

내일부터 있을 FA컵 결승전을 위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용인 FC 선수단.

유건도 나여름이 지방 촬영을 위해 며칠 비운 사이, 최창훈을 초대하여 이적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침에 메신저 공유받은 아스날 감독 경질 기사는 이미 보았지만, 이 소식은 유건으로서는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대박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으니까.

“그래! 완치되었다고 이미 뉴스가 나왔고, 아스날과 회담을 진행하러 런던에 도착했다는 뉴스도 있어! 삼 년간의 리빌딩을 통해 전설을 써 내려갔던 그들이 돌아온다면 너에게 완벽한 팀이다.”

미켈 아르테타.

아스날의 주장 출신으로서 은퇴 후 맨체스터 시티의 전설적인 감독 펩 과르디올라의 수석 코치로서 일을 배웠고, 아르센 벵거의 뒤를 이었던 에메리가 경질된 이후 아스날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3년, 그에게 필요한 시간은 딱 3년이었다.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던 선수진을 젊은 유망주들로 구성하여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그 이후로는 승승장구였다.

이제는 은퇴한 가브리엘 마르티넬리, 부카요 사카 등의 전설적인 선수들이 결국 빅이어라고 불리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들어 올린 것.

그 이후 어렸을 때의 심장병이 재발하여 반강제적으로 은퇴했던 아르테타였는데 그가 완치해서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어떻게, 메일이라도 보내봐야 하나?’

당연히 가고 싶었다.

티키타카 전술의 일인자 펩 과르디올라.

벵거볼이라고 이름이 붙을 정도로 환상적이고도 아름다운 축구를 추구했던 아르센 벵거.

그 둘의 전술을 혼합했던 아르테타 체제의 아스날은 대단했었으니까.

그 뉴스가 사실이 된다면 마음 같아서는 직접 런던으로 날아가 계약해달라고 난리 치고 싶었지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으음, 알고 있는데요 형. 오퍼가 와야 갈 수 있는 거잖아요?”

“크흠, 그건 그렇지.”

아쉬운 감정을 담아 ‘혹시 형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나요?’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최창훈에게 말을 거는 유건.

하지만 그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저 아르테타가 유건을 마음에 들어 해서 영입 제안을 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근데 건아, 여름이는 촬영 나갔냐?”

“경상도 쪽으로 촬영 간다고 하더라구요. 내일이나 모레까지는 찍고 온다고 했어요.”

“니네 형수가 사인 좀 하나 더 받아달라고 하길래, 크흠.”

그 이후로 서로 대화가 잠깐 끊겼던 둘은 최창훈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원하고 있던 것을 물어보는 질문으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유건과 여름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은 최창훈과 그의 아내가 유일했다.

아직 슬하에 자녀가 없던 둘은 퇴근하면 드라마나 예능을 주로 봤었는데, 최근에 [재벌의 사생활]에 꽂혀있었던 둘.

거기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나여름의 사인을 연속극과 연관된 굿즈에 받아 가는 게 오늘 최창훈의 목적이었다.

물론, 촬영 때문에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나중에 여름이 오면 한 번 형수님이랑 같이 초대할게요. 그러고 보니까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네요.”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와이프가 아주 좋아죽을걸!”

“하하, 그 정도야 뭘요. 나중에 우리 진짜 유럽 가면 거기서 옆집에 살아야 될 수도 있을걸요?”

“그것도 그래. FA컵 끝나고 한 번 초대해주면 바로 올게!”

시무룩해진 최창훈의 표정을 본 유건은, 곧바로 자리를 만들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위로해주었다.

어차피 유건과 나여름, 유건과 최창훈의 관계를 누가 강제적으로 끊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 볼 사람들이었다.

‘아스날이 아쉽긴 하지만, 분데스리가도 괜찮은 리그니까….’

해가 지고, 뒤이어 찾아오는 노을도 지는 그 시각 최창훈은 집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혼자 남게 된 유건은 창밖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생각에 잠겼다.

아르테타라는 네 글자.

그것을 듣고 나서 아스날에 대한 마음이 너무 간절해졌지만, 기대는 조금씩 버리고 있었다.

너무 기대하면 현실이 되지 않았을 때 실망감도 너무 크게 다가오니까.

그리고 일정만 미뤄뒀을 뿐이지, 이미 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분데스리가도 세계적인 리그이니까 말이다.

‘FA컵에 일단 집중하자!’

‘기자님들께는 부탁을 드렸고, 다음은….’

이적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문제.

고민하던 유건은 이내 머릿속으로 FA컵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 터트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말이다.

***

“고생하셨습니다!”

FA컵을 준비하는 훈련기간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지나갔다.

마치 누군가 빨리 결과를 알고 싶다는 듯 뒤에서 밀어붙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약 일주일째 반복되고 있는 오늘의 훈련이 끝났음을 알리는 유건의 외침이 들리는 훈련장이었다.

결승전을 대비하기 위한 전술 자체는 용인 FC가 주로 사용하는 것에서 크게 틀리지 않았다.

“범호형이 양두광만 막아주면, 쉽게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우리가 이긴다. 이겨야만 된다!”

가장 열심히 대비하고 있는 것은, 양두광의 덩크 헤더.

올림픽에서는 제대로 된 헤딩을 하나도 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국내용 공격수라는 별명은 폼으로 가져간 것이 아니다.

좋게 해석하면 국내에서만은 잘 먹힌다는 말.

압도적인 피지컬을 이용하여 내려찍는 그의 헤딩을 막기 위해 박범호가 노력하고 있었다.

가장 좋은 수비는 양두광이 점프를 하기 전에 위치를 먼저 잡고 헤딩 자체를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말이다.

“건이는 오늘도 서울 올라가지?”

“네, 시즌 끝날 때까지는 계속 출퇴근 식으로 할 것 같아요. 운전도 이제 할 만해져서!”

“…크흠, 건아 신호등은 잘 보고 다니자?”

끝나고 저녁이라도 먹기라도 한 것인지, 유건에게 같이 가자고 얘기하는 선배들.

하지만 오늘은 여름이와의 저녁 약속이 있기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즘 운전을 해서 오가고 있었기에 서울집까지 제시간에 가기 위해서는 30분은 일찍 출발해야 한다.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서울에서 원하는 차선으로 빠지기에는 아직 초보자로서 쉽지 않았으니까.

유건이 운전하는 차량의 조수석에 타본 경험이 있는 강바람이 경고를 주었지만 듣지 못했다.

‘아, 오늘은 진짜 자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40분이나 늦게 집에 도착해버린 유건이었다.

여름이와의 약속이 10분 지난 상태였기에, 급히 주차를 하고 집을 향해 달려갔다.

띵띵 띵 띠리 띵띵-!

“…허억, 허억! 형 전화하셨네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울리는 휴대폰의 전화 소리에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최창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수신 버튼을 누르며 통화한다.

“건, 건아! 너 지금 당장 뺨 좀 때려봐라.”

“뭔 소리예요, 형.”

“아, 아프네? 진짜 아파. 이놈아 이거 현실이다!”

믿기지 않는 어떤 사실이라도 알게 된 것처럼, 다급한 목소리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최창훈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유건.

그가 자신의 뺨을 때리며 말하는 상황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그런 행동은 보통 꿈같은 일이 벌어질 때 하는 행동.

지금 최창훈이 이렇게 말할 건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진짜예요?”

“우리가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더군다나 너랑 직접 전화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유건과 최창훈이 기다리는 것은 단 하나였다.

“아스날에서.”

아스날.

EPL의 역사가 담긴 팀.

그곳에서의 영입 제안이 드디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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