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54화 (54/208)

54화.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하는 팀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구단의 지원 아래 법적인 자문을 받고 직접 계약서를 작성한 유건이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일이었지만 계약 문제는 확실하게 하고 싶었기에.

“이적할 팀부터 확정하는 게 우선이겠지?”

계약서를 체결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던 최창훈.

아무리 관련학과와 법적인 지식을 쌓고 스포츠 구단에서 몸을 담으며 직접 선수 영입, 방출에 관해 돌아가는 체계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초짜 에이전트.

그런 자신을 믿고 제안해준 유건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계약을 들고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처리해야 될 일의 중요성이 크긴 했지만, 오퍼를 받는 갑의 입장인 유건의 편이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네가 바라는 조건은 최소한의 선발 보장, 기용될 포지션이 제일 중요하지?”

“이 팀은 사실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 동일 포지션에 선수가 이미 두 명이나 있어.”

“프리미어리그가 가장 끌린다고? 워크 퍼밋 발급이 사실 불가능할 텐데, 임대를 가야 할 거야.”

“여기는 스페인이긴 하지만 외국인 쿼터 자리가 꽉 차 있는 상황이니, 우선순위에서 내려두자고.”

최종적인 목표를 향해 지내왔던 시절이 헛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다음 날부터 유건은 최창훈의 연락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나여름보다 연락의 빈도가 많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유건은 남은 시즌의 마무리와 다른 일들에 대해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훨씬 컸다.

이적을 하더라도 마무리 짓고 가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창훈이형이랑 계약하길 잘했지, 크흠.’

계약 당시와 최근 일주일 동안 일을 맡아서 처리해주는 그를 떠올려보는 유건은 요즘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최창훈과의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지도 약 일주일이 지났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전체적으로 변화가 있는 시간이었다.

시즌 36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끝낸 용인 FC는 마지막 네 개의 라운드를 남겨두고 있었고, 유건에게는 영국의 2부리그에서 6개, 프리메라리가에서 1개, 세리에에서 2개, 분데스리가에서 3개의 제안이 왔다.

그리고 하루 전에 들어온 리즈 유나이티드의 오퍼.

“아마, 다들 그냥 찔러보는 걸 거야. 진심으로 너를 원하는 팀을 내가 골라주마.”

당당하게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만 믿으라던 최창훈.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협상을 위해 연락을 하는 유럽팀들의 컨택을 받고 있었다.

올림픽에서 스타가 된 유건을 다른 팀이 낚아채 가기 전에 자신들의 유니폼을 입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야, 어차피 여름은 끝났잖아.”

그의 말이 맞았다.

계약을 망설이지 않고 하더라도 어차피 이적을 하게 되는 것은 한국 FA컵이 종료된 이후.

겨울 이적 시장에서였기에.

아쉽게도 유건과 최창훈이 원하는 아스날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긴 했지만,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국민 손녀님 전화 받은 남자친구입니다.”

“…아, 오빠 그거 그만 좀 하라고!”

물론, 최창훈이 고생하고 있을 그 시각 유건은 이적에 대한 고민은 잠시 놓아두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재벌의 사생활]의 인기는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고, 주연배우들만큼이나 인기를 끄는 것은 나여름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탄탄한 연기력.

그녀의 활약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촬영 분량을 늘려놓았던 감독의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덕분에 이제 국민 손녀라는 별명을 받고 어르신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가 되어버렸다.

유건이 놀릴 때는 아직 부끄러워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라, 국민 손녀님께서 지금 저한테 화내시는 건가요?”

“…오빠, 지금 출발한다고 그랬죠? 집 비밀번호 바꿔놓을게요.”

“여, 여름아! 오빠가 잘못했다.”

장난을 치면 당연하게도 결과는 항상 유건의 손해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장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부끄러워하는 여름이는 사랑스러웠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가고 있는 서울집의 비밀번호를 바꿔버린다는 소리에 여느 때와 같이 꼬리를 내리는 건 유건이었다.

목적지에 도착은 정상적으로 해야 될 것 아닌가.

뚜, 뚜, 뚜-!

그러나 이미 끊어져 버린 통화.

다급하게 여름에게 문자를 보내보는 유건이었다.

세 정거장만 가면 자신의 집이 있는 역에 도착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유건 : 저, 여름아? 오빠 손에 지금 투쁠쁠 한우 있단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

토라진 여름을 풀어주는 방법은.

한우의 힘은 위대하니까 말이다.

***

“다들 잘하는데? 전체적으로 확실히 실력이 눈에 띄게 올라갔어.”

“그러게, 내년에 우리 범호형 주전 밀릴 것 같은데 어떡하냐!”

“크크, 안 뺏기게 노력할 거다. 1부를 보고 살아온 지 몇 년째인데 바로 뺏기면 쓰겠냐?”

“…까짓거 우리가 한 번 돼보자고, 주목받는 강팀이란 거.”

K리그2의 39라운드가 펼쳐지는 용인 FC 홈구장.

37라운드부터 선발로 출전하게 된 선수들은 그동안 교체로만 나오거나 벤치에 앉아서 지켜보던 멤버들.

실전이 확실히 자신감을 심어주기라도 하듯이, 그들의 실력은 경기를 치르면서 점점 훈련에서의 모습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기를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는 건 기존에 베스트 라인업으로 출전하던 선수들이었다.

칭찬하면서도 자연스레 자신들이 올해 차지했던 주전이라는 자리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각오를 다져본다.

그동안 미친 듯이 노력해서 이제 1부리그로 올라가는데 바로 벤치로 밀려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우리 막내 나가면 누가 들어오려나?”

“…감독님이 적절하게 보완하지 않으실까요? 제가 이적료라도 두둑하게 팀에 안겨주고 떠나겠습니다!”

“크크, 장난이야 인마. 그리고 적절한 팀 없으면 용인에 남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건 그렇죠.”

장난스레 걸어오는 팀원들의 말에 웃으면서 긍정을 표하는 유건이었지만, 이미 그렇게는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최창훈과 얘기를 해본 결과 리즈 유나이티드를 포함해 대다수의 팀이 진심으로 영입을 희망한다기보다 가격이 저렴하니 그저 찔러보려고 오퍼를 넣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에서는 진심으로 자신을 원하는 감독이 있었다.

직접 통역을 끼고 화상통화로 전술을 설명하고 뛰게 될 포지션까지 알려주면서 말이다.

덕분에 FA컵이 끝날 때까지도 다른 팀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그곳의 제안을 수락하기로는 최창훈과 얘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내년에, 어어 나이스!”

“아 형, 같이 가자고!”

다시 한번 내년의 각오에 대해 말을 이어가려던 박범호는,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며 골을 터트리는 동료들에게 감탄하며 나이스를 외치면서 달려간다.

말을 하다 말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세레머니 장소로 뛰어가는 그의 뒤로 다른 선수들이 장난을 치며 뒤따른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뛰어가는 박범호도 머릿속으로 주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료들이 골을 넣는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주장으로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격려하고 응원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제치고 벤치를 박차며 뛰어갔다.

‘으아아아!’

‘…진짜 약하지 않아. K리그1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 나가는 거야.’

내년에 승격팀으로서 좋은 활약을 이어 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말이다.

승격을 해서 올라오면 강등 후보로 꼽히게 되는 생각의 틀.

그것을 깨고 잔류는 물론이고, 상위권으로 치고 나가고 싶었던 박범호였다.

자신이 보기에 용인 FC는 이제 충분히 강팀이 되었기에.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축따 유건입니다.”

“정말 힘차게 달려왔던 시즌의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리그와 FA컵을 모두 합쳐도 3경기밖에 남지 않았네요.”

39라운드에서는 유건이 출전할 필요 없이 2-0으로 승리를 하게 된 용인 FC.

덕분에 집에 복귀하자마자 별튜브 방송을 켤수가 있었다.

약간 변화된 점은, 시즌이 종료될 때까지는 여름과 얘기해서 서울집에 머물기로 했다는 것.

유럽진출이 어느 정도 확실시된 상황에서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붙어있자는 게 목적이었다.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인 그녀가 없는 사이, 팬들과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축따형, 그래서 형수님은 언제 공개하는 거야?

- 이 정도로 숨기는 거 보면 구라인 게 틀림없어. 우리 솔로들을 버리지 말아줘

“하하, 언젠가는 알게 되시지 않을까요!”

“…에이, 제 여자친구 보시면 진짜 여러분 깜짝 놀라실걸요? 얼마나 예쁜데요.”

아직까지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나여름에 관한 질문들도 있었지만, 간단한 대답으로 더 이상의 질문을 막아버렸고,

“이적 관련해서는 에이전트 형이랑 잘 준비하고 있어요.”

“확실하게 정해지기 전까지는 여러분께서도 추측은 조금만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인 이적에 관련된 추측의 댓글도 최대한 자제를 요청했다.

아직 자신도 어디 갈지 확실히 정하지 않은 상황인데, 추측하는 것은 팬들이 아닌 기자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남은 시즌 경기를 마무리한 뒤에 생각하고 있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관련해서 준비는 모두 끝마친 상태이구요. FA컵 결과에 따라 진행 여부가 결정됩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장소를 대관해서 풋살 경기를 주최하는 것과 동시에 파티를 해볼 예정이에요.”

오늘 방송에서의 마지막 내용은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 내용을 슬쩍 스포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많은 팬들에게 참석 기회를 주고자 두 개의 야외 풋살장이 붙어있는 업체에 이미 대관을 위해 예약금을 지불해놓은 상태.

축구 자체를 보는 것만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서 경기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음식을 먹을 벤치들도 마련할 생각이었다.

나여름이 제안해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유건이 말해놓았다시피 전제가 있었다.

FA컵 결승 1, 2차전을 합산하여 용인 FC가 승리를 거둘 것.

‘…해도 될 것 같긴 하지만, 소속팀에 대한 예의지 이건.’

‘이번만 기회가 있는 건 아니니까!’

패배하더라도 직접 팬들과의 만남을 사비로 주최하는 유건의 행동이 좋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트로피가 걸린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비난 여론이 더 많으리라.

그리고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22살을 바라보고 있는, 아직 충분히 유망주 취급을 받아도 될 나이였으니까.

“여러분,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고 다음 경기도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이, 오빠! 조금이라도 질 생각을 하면서 경기 뛰는 게 말이 돼?”

“서울 유나이티드 놈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준다며, 이길 거잖아! 나 보러갈 거라고!”

별튜브 방송은 어느덧 두 시간가량이 되었고, 방금 한 이벤트 얘기를 끝으로 종료를 알렸다.

그리고 끄자마자 유건의 귀로 들려오는 소리의 주인공은 나여름이었다.

어느새 도착한 그녀도 침대에 누워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던 것.

여름에게도 서울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일들을 말해주었기에, 무조건 이기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구장에 보러 가니까 지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을 담아서 말이다.

‘…걱정 말라구, 이길 테니까.’

그리고 방송 중에는 겸손을 보여줬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놈들한테는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지 않았으니까.

원하는 건 오직 승리, 단 두 글자였다.

유건이 FA컵에 대한 각오를 한 번 더 다지고 있을 그 시각, 불안하게 시즌을 시작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팀들은 순위를 올리기 위해 각자의 선택을 내리고 있었다.

[리즈 유나이티드, 영입을 통해 마지막 하나의 구멍을 메우려고 하다! 겨울 이적 시장 이후 과연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세비야, 감독 경질을 통해 반등을 꾀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알렉스 둠바를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선수단 개편 예고]

영입, 감독 경질, 선수단 개편 등을 통해서 더 나은 쪽으로 팀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어느 팀은 자신들이 속한 치열한 리그에서 그 변화를 통해 강등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고자,

다른 팀은 그 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면서 우승까지 노려보고자.

[이제는 상위권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올 시즌 13위 아스날, 또 한 번의 감독 경질]

[5년간 4명 이상의 감독을 경질시킨 아스날, 다음 감독은?]

[조쉬 크뢴케, “팀의 모든 부분에 대한 리빌딩이 필요하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감독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이번 시즌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간의 시즌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를 원하는 팀도 있었다.

그건 바로, 유건과 최창훈이 가장 오퍼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팀.

아스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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