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그것이 문제였다
- 와 처음으로 연장전 가네. 아까 축따형 중거리슛만 들어갔어도 지금 경기 끝난 건데!
└ 골키퍼가 너무 잘 막아서 어쩔 수 없었음
- 김수영의 슈팅이 골대를 맞힌 게 더 아쉽지. 후반전에 수비는 안정적이었는데, 연장도 이대로만 가자!
- 진짜 경기 뛰지도 않는데 왜 내 마음이 더 쫄리냐
└ 나도임! 그만큼 오늘 경기가 막상막하라 그런 것 같음
축따튜브의 채팅방에서 나오는 얘기대로, 대한민국과 잉글랜드의 후반전은 서로 득점 없이 끝나게 되었다.
서로 유효슈팅은 꽤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광판의 숫자를 올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여러분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남는 건 결과다.”
“4위를 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과 이기고 동메달을 따고 돌아가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모두 집중해라, 이제 우리에게는 30분 남아있다. 선발전부터 준비했던 모든 걸 쏟아부을 때가 바로 지금이다!”
올림픽 대표팀으로서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연장전을 위해, 대한민국 벤치 앞에서 김진용 감독의 연설이 있었다.
결과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승리뿐이라고.
선수들에게 이겨야만 하는 이유를 알려주며 승부욕을 자극시킨다.
“다들 손 모으고, 훈련했던 대로만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당당하게 목에 메달 걸고 귀국해보자고! 대한민국 화이팅!”
“화이팅!”
거기에 이어서 선수들을 한데 모아 기운을 응집시키는 것은 바로 김수영.
이제까지 준비했던 대로 좋은 마무리를 위해 노력하자고 외치며, 화이팅을 주도한다.
따라서 외치는 올림픽 대표팀 선수단의 목소리는 너무 커서 경기장을 울릴 정도였다.
“가보자고!!”
“으아아아아!!!”
후반전 전에 하프 타임을 가지는 것과는 다르게, 연장전은 따로 라커룸에 들어가서 전술 변경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방금까지 있었던 대표팀 선수단의 화이팅은 경기장 내에서 발생한 상황.
후반전 막바지에 마지막 교체까지 사용했던 터라, 조금이라도 힘을 내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각자 개인마다 다른 포효를 내지르며 자신의 포지션으로 가서 경기 준비를 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이었다.
삐이익-!
그리고 곧바로 시작된 경기는, 킥오프가 되자마자 마치 이제 전반전인 것처럼 양 팀 선수들은 거칠고 끈질기게 플레이했다.
치열한 경기장의 열기가 이미 체력이 떨어진 선수들에게 압박을 가했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내는 양 팀이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란 그런 거니까 말이다.
쓰러질 것 같더라도, 국민들을 대표하는 자신들은 쓰러지지 않겠다며 버텨내야 하는 그런 자리 말이다.
‘…허억, 허억!’
유건의 숨도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90분 내내 뛰어다니며 공을 받기 위해 빈 공간으로 이동하고, 패스를 내주고 또다시 빈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플레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한 번이라면 별로 뛰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전후반의 시간을 모두 합산하면 약 10km 내외의 수치.
아무리 프로 선수라 하더라도 로봇이 아닌 인간이었기에 체력의 한계가 있는 건 당연했다.
“바로 때려!”
“한 번 접고 때려보자!”
하지만 양 팀 선수들의 외침에 따라 골을 노리는 움직임만은 대한민국, 잉글랜드 두 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수백번씩 연습했던 슈팅은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차더라도 골대 근처로 향했으니까.
물론, 그 말이 득점에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수영이형! 뒤로 내줘봐!”
연장 전반 8분경, 유건이 비어있는 하프스페이스로 침투하면서 김수영이 빼주는 패스를 받아내자마자 날린 슈팅.
압박이 들어오는 선수가 없었기에 임팩트가 정확했던 슈팅은 골대 구석으로 향했지만 실려있는 힘이 모자랐다.
더군다나 속도보다는 정확성에 치중했으니 골키퍼가 펀칭은커녕 쉽게 충분히 캐칭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휴즈! 그대로 때려봐!”
“리네커 컷백…, 아니다 니가 직접 해봐!”
EPL에서 주목받는 세계적인 유망주들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체력이라는 건 공통적인 요소였으니까 말이다.
비록 그들의 슈팅에 담긴 파워가 유건보다는 강했다 할지라도, 골대의 그물망을 흔들어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삐이익-!
그렇게 양 팀의 치열했던 공방전으로 가득했던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연장전 후반의 끝을 알리는 휘슬.
선수들이 뿜어낸 몸의 열기는 경기장 전체를 메우고 있었지만, 그에 반해 관중들은 각자의 팀에 대한 걱정으로 침묵을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실력보다는 긴장, 운에 충분히 좌지우지될 수 있는 페널티킥으로 돌입하게 되었으니까.
“득점 없이 연장전이 종료됩니다! 페널티킥까지 가게 되는군요!”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순간이라는 겁니다.”
“그래도 각자 리그에서 차본 경험들이 있을 테니 다들 잘 차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기에서 키커로 나선다는 건 긴장감이 엄청 날 겁니다! 어리지만 정신력으로 무장된 우리 선수들을 믿어보는 수밖에요!”
경험이 많은 선수들도 빈번하게 실수를 하는 것이 페널티킥.
연령대가 어린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으로서는 위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위로가 되는 것은 상대 팀도 피차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은 실력보다는 다른 요소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로 누가 덜 긴장을 하느냐의 싸움이 되리라는 캐스터의 예상대로 말이다.
“미리 정해둔 대로 수영이가 첫 번째, 형석이랑 현규가 이어서 차보자.”
“네 번째랑 다섯 번째는 으음….”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이 피케이를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계획이 꼬인 점은 정해둔 5명의 선수가 경기장에 없었다는 점이다.
김수영, 이호준, 김현규, 송화경, 박창수, 최형석의 순으로 짜여진 페널티킥 순번.
최형석과 교체된 송화경이 없었고, 연장전에 체력이 빠져 퍼져버린 박창수도 다른 미드필더와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호준마저 세트피스를 위해 양두광과 교체되었었기에 두 명이 모자란 셈.
그렇기 때문에 김진용 감독이 지금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양두광, 자신 있냐?”
“그게 저는 좀 발기술이…, 상백이 이놈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피케이 순번에 들어가는 놈이에요. 믿고 맡겨보시죠!”
사실 여섯 명 이후로는 피케이 연습이나 내기를 할 때 다들 엇비슷한 실력이었다.
그래도 긴장을 가장 덜할 것 같은 맏형 양두광에게 제안해보는 김진용 감독이었지만, 꽁무니를 빼버렸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경험 많은 와일드카드를 데리고 왔는데 핑계를 대고 같은 소속팀 후배를 떠넘기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았다.
“제, 제가 네 번째로 해보겠습니다!”
‘…개자식, 변한 게 없군.’
혹시라도 실수하면 엄청난 욕을 먹게 되는 게 당연하니까 그런 중요한 역할에서는 빠져버린다.
선배로서 후배를 감싸주지 못할망정 말이다.
그렇게 등 떠밀려 스스로 하겠다는 말을 내뱉는 정상백의 모습을 보는 유건은, 애처롭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물론, 아주 잠깐.
유건의 기억 속에 서울 유나이티드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방관자일 뿐이었으니까.
“건아, 마지막으로 찰 수 있겠냐?”
“…맡겨주신다면 한 번 차보겠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자신은 없었다.
실전, 다시 말해 공식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차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엄청 중요하고 걸린 것이 많은 경기 아닌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잠깐을 고민하는 척하다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56.32%]
[국제경기에서 메달을 수상하세요 (0/1)]
하루에 한 가지를 시키는 알 수 없는 머릿속의 메세지.
처음으로 그게 두 가지를 한 번에 시켰으니까 말이다.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서 파넨카킥으로 골을 넣으세요 (0/1)]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주문과 함께.
***
- 김수영이 스타트 잘 끊어줘서 진짜 너무 다행이다
- 아 역시, 리네커 절대 못 막게 구석으로 때려 버리네
축따튜브에서는 페널티킥을 한 명, 한 명 찰 때마다 실시간으로 반응을 내비치고 있었다.
첫 번째 키커는 김수영과 스콧 리네커.
서로 자신 있어 하는 코스로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정확히 차넣었다.
- 최형석 믿는다!
- 어…? 라이스가 찬다고?
두 번째 키커는 최형석과 스티븐 라이스.
이번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송화경이 없었다면 주전 자리를 차지했을 최형석의 슛이 골키퍼의 손끝에 막혔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잉글랜드의 스티븐 라이스.
투박한 볼터치가 단점인 그가 준비하는 것을 보고 팬들이 의문을 표했던 게 정상이었던 것이, 야구선수인 양 홈런을 때려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 키커는 대한민국의 믿음직한 수비형 미드필더 김현규와 첼시의 루키 게리 휴즈였다.
‘…침착, 또 침착이다.’
심호흡을 하면서 숨을 길게 내뱉으며 침착함을 유지한 채 느리지만, 정확하게 구석으로 밀어 넣는 데 성공한 김현규.
정확하게만 차면 키커가 훨씬 유리한 페널티킥이기에 골키퍼가 방향을 읽었으나 소용없었다.
‘피케이는 이렇게 차는 거란다, 보고 환호해라.’
반면에, 잉글랜드의 세 번째 키커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침착보다는 자만심에 조금 더 가까웠다.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루키의 설레발은 실수를 초래했다.
티잉-!
보통 왼쪽, 오른쪽 둘 중 하나의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골키퍼.
그것을 속이기 위해 큰 도움닫기를 활용해 정중앙으로 때린 강한 슈팅이 힘이 들어가서 위쪽 크로스바를 맞히고 튕겨 나가버렸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는 게리 휴즈로서는 몰랐을 것이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사실 그게 너무나 큰 무대와 중요상황에서의 긴장감이었다는 것을.
“상백아! 편하게 차라!”
“믿어주십쇼!”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은 중앙선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차례가 오면 해당 키커만 나가서 차고 들어오는 식으로 하고 있었다.
이번에 찰 선수에게 자신의 역할을 떠넘겨놓고, 웃으면서 화이팅을 외치는 양두광.
마지못해 대답하면서 공을 들고 가는 정상백이었지만 중계 화면에 잡히는 그의 모습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 상백아, 표정 좀 풀어라. 벌써부터 못 넣는 표정으로 가면 어떡하냐!
누가 페널티킥은 키커의 표정만 보아도 안다고 했던가.
여기서 넣으면 아주 유리하게 갈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킥을 준비해서 찬 정상백의 슛.
힘없이 중앙으로 찼기에 이미 방향을 정해서 몸을 날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로 막아낼 수 있었던 잉글랜드 골키퍼.
- 콜 형, 형은 공격 아니고 수비인 거 알지?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홈런을 날려줘!
네 번째 잉글랜드의 키커는 레들리 콜.
오늘 닿을 수 없는 위치에서 골을 넣은 이호준의 슈팅을 허용한 것 빼고는, 거의 철벽의 수비를 보여준 중앙 수비수.
불행했던 것은 그가 대한민국 골키퍼의 심리전에 당했다는 것이다.
5명의 키커를 상대하면서 모두 한 방향으로만 몸을 날렸는데, ‘이번에도 설마’라는 생각으로 그쪽으로 슈팅을 날려버렸다.
결국 스코어는 다섯 번째인 유건의 차례가 올 때까지 2:1.
여기서 넣으면 동메달이었다.
‘…아씨, 이거 못 넣으면 진짜 안 되는데.’
정상백의 슈팅이 중앙코스로 가다가 막히는 것을 보고, 파넨카킥을 차기로 결정했었던 유건.
하지만 레들리 콜의 페널티킥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는 고민하고 있었다.
터억-!
긴장하지 않으려는 척, 손에 올린 공을 공중으로 던졌다가 잡았다가를 하면서 골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페널티킥을 차기 위해 공을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 머릿속에서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었다.
‘자신 있는 왼쪽 하단으로 강하게 때릴 것이냐, 머릿속에 울리는 대로 파넨카킥을 시도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