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47화 (47/208)

47화. 엄청 싸다고 들었다고

삐이익-!

“너무 아쉽지만, 오늘 브라질에게 2-1로 패배를 하게 되는 우리 대표팀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결과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선수들 고개를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요!”

“맞습니다. 아직 고개를 숙이긴 이르죠? 반대편 시드의 4강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배한 영국이 기다리고 있는 메달 결정전이 남아있거든요.”

“아르헨티나와의 재대결이 성사되지 못한 건 아쉬우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거든요!”

유건을 대신해서 들어간 교체 선수와, 최형석 등 모든 선수들이 남은 시간 미친 듯이 뛰었으나 부족했다.

남아있는 5분이란 시간이 너무 짧기도 했고, 유건이 나간 뒤로는 공의 소유권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으니까.

안준성과 전지우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캐스터 특성상 본심을 모두 다 가감 없이 표현할 수는 없었다.

- 아, 진짜 아쉽긴 하지만 축따형 컨디션 조절 잘해서 3, 4위전 이겼으면 좋겠다!

- 솔직히 처음 목표가 결승은 아니었을 거니까 너무 실망 안 했으면 좋겠네

- 늦게 들어와서 설렁설렁 뛰는 양두광 너무 꼴 보기 싫더라. 다음 경기부터는 교체로도 안 넣었으면!

- 축따형은 오늘도 미쳤었음. 나가자마자 공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이제 영향력이 큰 것 같음

축따튜브의 반응만을 보더라도 아르헨티나전에서 패배했을 때처럼 “졌지만 잘 싸웠다”의 분위기였다.

실질적으로 올림픽 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인 8강 진출을 훨씬 뛰어넘은 성적이었기도 하고, 경기력 자체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 차라리 김수영이 계속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음. 양두광 걷는 거 진짜 꼴 보기 싫음

- 와일드카드로 갔으면 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 될 텐데, 진짜 실망임

하지만 공통적으로 양두광에 대해서는 비난의 의견이 가득했다.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와일드카드로 뽑혔음에도, 교체 출전 후 설렁설렁 뛰는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기 때문에.

예선전 때부터 지적받던 공을 기다리기만 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양두광의 플레이 장면들까지 캡쳐되면서 더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패배한 경기에서 보여준 대충 뛰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모두들 고생했다. 여러분은 내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패배해서 아쉽지만 다음 경기에 집중하자.”

“아직 우리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으니 아쉬워하지 마라. 동메달을 따서 돌아가자고!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캐스터들과 팬들이 아쉬운 반응을 내비치던 그 시각, 대표팀의 라커룸에서는 김진용 감독의 연설이 있었다.

아쉽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남은 한 경기에 좋은 결과를 얻으면 될 거라고.

그랬기에 선수단은 패배의 슬픔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당장 3일 뒤에 메달 결정전이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어제 아르헨티나와의 4강전 경기에서 패배한 팀.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인 프리미어리그의 고장.

영국과의 메달 결정전이.

***

[올림픽 대표팀 유건, “승리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픽 대표팀 양두광,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브라질에 2:1로 패배한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다음 상대는 프리미어리그의 나라 영국!]

[메달 결정전의 관건은 근육 경련으로 교체 아웃된 에이스 유건의 컨디션]

4강에 진출한 대표팀의 성적 때문일까,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국민들도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기에 뉴스 기사는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

당장 패배한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소감에서부터 부족한 모습을 보인 양두광의 인터뷰까지.

심지어 아직 3일이나 남은 3, 4위전 경기에 대한 승리를 하기 위해서 꾸려야 할 라인업을 개개인의 생각대로 구성하여 칼럼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까지.

주목할만한 점 한 가지는, 모든 뉴스 기사나 팬들의 작성 글 중에 4강 라인업에서 유건을 제외한 사람은 없었다는 점이다.

단 한 명도.

“건아, 다리는 괜찮냐?”

“네, 잠깐 쥐 올라온 거니까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된다니까요. 다음 경기에 집중하자구요!”

“그래! 무조건 이겨야지.”

“그럼, 그럼!”

다음날 예정된 휴식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유건은 주변의 팀원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호준의 걱정에 괜찮다는 듯 다리를 몇 번 휘젓는 제스처를 취하는 유건.

이어서 다음 경기에 집중하자는 말을 던지고는 한 가지를 물어보는 순간 그의 말에 모든 이들이 동의를 표시한다.

내일은 그들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였으니까.

“이기면 군면제….”

받아내야만 하는 한 가지.

20명이 넘는 선수단의 미래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군면제라는 보상.

어제의 패배 후, 오늘 훈련에서 그게 걸려있다는 걸 깨달은 대표팀 선수들은 열정을 불태웠다.

심지어 브라질전을 준비할 때보다 더.

“쩝, 이겼으면 쉽게 가는 건데 말이지. 생각하면 더 아쉽긴 하네.”

물론 푸념을 내뱉는 김현규의 말대로, 이겼으면 각오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결승에 진출했으면 군면제는 따라오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이미 슬프게도 패배였고, 남은 희망 한 줄기를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다음에 해야 될 경기도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승리의 가능성이 생길 경기였기에 말이다.

“어떻게 된 게 매경기 유명한 선수가 없는 팀이 없냐? 여기도 마찬가지네.”

“아무래도 EPL의 나라잖냐. 주전으로 뛰는 애들은 몇 명 없더라도 영국은 영국이라구.”

이호준의 혼잣말에 대답하는 김수영의 말처럼, EPL의 나라 영국.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올림픽 대표팀 특성상 세계적인 선수의 숫자가 적지만,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름을 들어본 선수만 따지자면 브라질 팀보다 더 많았다.

‘…EPL이라.’

옛날 박지상이라는 레전드 선수 때 만들어진 EPL 중계의 역사가, 그들을 가장 친밀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팀에서 뛰는 잉글랜드의 몇몇 선수들에 대해서는 이미 직접 경기로 본 적도 있을 정도였다.

위협적인 선수로 지목되는 레들리 콜, 스콧 리네커, 스티븐 라이스, 게리 휴즈 등의 선수를 생각하며 며칠 전의 일을 곱씹는 유건이었다.

이상찬 감독이 알려주었던 번리의 오퍼.

그들이 속한 리그도 자신이 가고 싶은 리그 중 하나인 EPL이었으니까.

***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다니, 진짜 잘됐다 여름아! 나도 이제 한 경기밖에 안 남았으니까, 금방 돌아갈게!”

“오빠, 이왕 할 거 메달은 따고 오셔야 돼요. 알겠죠?”

“그럼! 너 고무신…, 아 아니야 크흠! 끊을게!”

“네, 네?”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경기가 있기 하루 전날, 마지막 일정인 비디오 분석실에 가기 전에 미리 테라스에 나와서 나여름과의 통화를 하고 있는 유건.

어째 서로 좋은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이상한 드립을 치며 전화를 끊어버린 유건 때문에 당황하는 여름이었다.

‘…귀엽다니까, 오빠.’

당황하면서도 그가 했던 말을 한 번 곱씹어 생각해보니,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대한민국 남자가 고무신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건 군대와 연관이 있다.

유건이 한 말은 메달을 따면 군대를 가지 않으니, 여름이 고무신을 신을 필요도 없다는 말이었으리라.

물론 여름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건아, 가자!”

같은 시각, 전화를 급하게 끊고 붉어진 얼굴을 추스르던 유건의 귀에 들려오는 김수영의 목소리.

급히 몸을 일으켜 일정을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어라, 또 여자친구랑 통화했냐? 무슨 얘기를 했길래 그렇게 얼굴이 붉어졌냐?”

“아, 아니라구요 여자친구! 아직은….”

다가오는 유건의 얼굴을 보며 놀리는 김수영이었지만, 차라리 맞는 말이었으면 기쁘게 놀림 받을 수 있었다.

아직 여름과 공식적으로 교제하는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희망 사항을 담아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는 유건의 마지막 말은, 아주 목소리가 작았다.

“스콧 리네커와 게리 휴즈가 구성하고 있는 양쪽 날개는 주요 마크 대상이다. 둘 다 공통적으로 주력이 빨라.”

“레들리 콜은 수영이가 겪어봤으니 나중에 따로 얘기해보고, 스티븐 라이스도 무시할 수 없다.”

“볼터치가 거친 편이지만 피지컬을 이용해서 미드필더 지역에 힘을 보태는 그 녀석은 유건이가 뚫어내야 된다.”

“이름값은 저쪽이 높지만 실력적으로는 나는 우리 팀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비디오 분석 시간.

코치진에서 분석한 영상을 보고, 경기의 핵심적인 요인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상대 팀에서 위협적인 선수를 꼽아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를 생각해본다.

주전이든, 후보든 전체적으로 EPL의 1부 혹은 2부리그에서 뛰고 있는 잉글랜드 선수단을 한 명 한 명 꼽으면서 말이다.

“내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고 생각해라. 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마라.”

“여러분이 골을 넣으면 이기고, 먹으면 지는 마지막 경기니까 단순하게 생각해라. 무조건 이길 거라고!”

분석 시간의 마지막은 언제나와 같았다.

김진용 감독의 연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면서 경기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시간.

그렇게 올림픽 대표팀은 긴 여정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쁜 결과보다는 좋은 결과를 바라면서.

메달 결정전, 결승전 단 2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올림픽 시즌.

그 마무리를 구경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은 이미 뛰고 있었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 리그 등 세계 축구 리그가 바로 최근에 개막을 했으니까 말이다.

리그마다 일정의 차이는 있지만 이번 주에 개막한 프리메라리가와 세리에 A를 마지막으로 모든 리그가 개막했다.

“후안 루이스, 우리 팀 왔으면 좋겠다!”

“가브리엘 피냐의 나이와 실력이라면 투자할 만한 것 같은데 말이지!”

“알렉스 둠바가 몸값이 비싸겠지만 우리 팀에 오면 비싸게 주고 산 값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이 올림픽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또 하나가 있을 것이다.

각자 응원하는 팀의 부족해 보이는 포지션에 올림픽에서 활약하는 젊은 유망주가 영입되는 것을 상상해보기 위해서.

수많은 유망주들의 잔치였던 이번 올림픽은 특히 영입할 만한 선수가 많았기에, 토론이 활발한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사 오면 좋겠어. 번리가 바이아웃 제시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몸값이 엄청 싸다고 들었다고!”

└ 아스날 와줬으면 좋겠다. 마르틴이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우리 팀은 다시 리빌딩이 필요해

└ 번리가 이미 오퍼했다고 들었는데, 축구 스타일이 안 맞을 것 같아

└ 간결하게 축구하는 게 우리 팀에도 어울릴 것 같은데! 클롭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중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영입 희망리스트 중에서는, 유건이 꽤 주목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유명한 유망주들에 비해 10억이라는 바이아웃은 거의 푼돈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올림픽에서 공을 안전하게 소유하고 공격권을 이끌어나가는 부분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축따형 진짜 EPL 갈 수도 있겠는데?’

‘와, 유건 이거 유럽 진출 각이다!’

그런 분위기는 해외 축구를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국내의 축구팬들에게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긍정적인 해외 팬들의 댓글만 보면 유건의 유럽진출 가능성이 엄청 높아 보였기에.

아직 결과적으로 공식 뉴스가 뜬 곳은 많이 없었지만, 긍정적으로 보였다.

분위기로만 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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