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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따-44화 (44/208)

44화. 리듬이 애매해

둥둥둥-! 두둠칫-!

이번 시즌, 어떤 경기 후에 그 어느 팀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던가.

용인 FC의 오늘 승리 파티는 라커룸이 아닌 경기장 중앙이었다.

용인 FC 2 : 1 경주 FC.

에버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홈 경기.

와아아아-!

“용인! 용인! 용인!”

K리그1로의 승격을 확정 짓는 바로 그 순간, 광기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경기를 끝낸 경주 FC 선수들과 인사를 한 뒤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말이다.

두 무리로 나뉘어있었는데 첫 번째는 박범호의 주도하에 선수들이 이상찬 감독을 헹가래 쳐주는 상황이 보였고,

나머지 일부 선수들은 경기장에 뛰어 들어온 1000명이 안 되는 홈팬들과 함께 오늘 경기의 승리와 승격 확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둥둥-! 둠칫-!

“즐겨, 즐겨!”

이제는 리듬에 맞춰 꽤 몸을 흔들고 있는 스카우트 팀의 박 팀장.

홈팬들이 둘러싼 원의 중앙에서 현란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강바람을 필두로, 이윤성과 손태민 등 많은 선수들이 즐기고 있었다.

‘…아! 나도 저 현장에 있었어야 되는데!’

올림픽에 출전 중인 상황이었기에 영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유건만 빼고 말이다.

- 크, 축따형도 이 현장에 있었으면 춤사위 난리 났을 텐데!

- 그래도 올림픽에서 진짜 날아다니고 있어서 아쉬움은 덜할 것 같음

- 여기 축따튜브인가요? 뉴스 댓글인데 거기서 본 분들이 대부분인듯요

- 우리라도 외쳐줍시다. 축따형! 축따형!

유건이 없었지만, 승격을 확정 짓는 경기였기에 관련 뉴스 기사는 꽤 많이 보도되었다.

물론 기사들의 댓글창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축따튜브에서 용인 FC와 친숙한 유건의 팬들.

일부 다른 얘기들도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와 FA컵도 우승하면, 올해 용인 FC 트로피 두 개나 따는 거네?

기사를 확인하던 중, 유건의 눈에 들어온 하나의 댓글.

생각만 해도 좋은 상황이었고 모두가 바라는 바였다.

‘무조건 이긴다! 어떻게 해서라든 이길 테다!’

서울 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결승전.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올림픽 4강 브라질전보다, 유건 개인적으로는 더 이기고 싶은 경기였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르는 사실이었고 심지어 용인 FC 선수들 중에서도 일부만 아는 사실이었다.

***

“내일 선발 라인업은 크게 변화를 주지 않을 생각이고, 유건이가 에르난데스와 매치업이다.”

“공을 빼앗지 못하더라도 발만 넣지 말고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패스를 방해해줘라.”

“예, 알겠습니다!”

브라질 대표팀과의 중요한 시간을 앞둔 하루 전날, 훈련을 마무리하며 김진용 감독이 내일 경기의 전술을 확정짓고 있었다.

미리 얘기되었던 대로 공격형 미드필더인 유건을 중심으로 플레이하는 4-2-3-1 전술.

세부적으로 약간 변경된 점이라고 한다면 유건이 다른 경기들보다는 훨씬 수비적으로 압박을 더 힘써야 한다는 것.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오늘까지 있었던 훈련에서 수비자세나 압박 진형을 중점적으로 연습한 건 사실이지만, 자신은 없었다.

김현규에게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한 압박을 보다 더 뛰어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수 상대로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말이다.

감독과 코치도 물론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차선책이었다.

유건을 벤치에서 스타트시키자니 전체적인 경기 양상이 밀릴 것 같았고, 그대로 출전시키면 수비적인 부분 말고는 그래도 괜찮았기에.

“내일은 어떤 팀이 더 득점을 많이 하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들 알다시피 브라질도 수비가 엄청 강한 편은 아니니까 말이야.”

김진용 감독이 말하는 대로 브라질도 실점을 조별 예선에서부터 가끔 할 정도로 수비가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 팀 상대로 수비가 약한 유건을 출전시킨다는 건 바로 정면승부를 한다는 얘기였다.

물론 올림픽 기간 중 보여준 경기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더 우월한 공격력을 가진 쪽은 브라질이긴 했지만 말이다.

“건아! 다리만 뻗지 말고 그냥 붙어만 있어 인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너한테 그 위치에서 공 잘라서 역습해가는 걸 기대하겠냐? 그냥 압박을 조금 더 함으로써 덜 위험하게 가보자는 거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일정이 마무리되고 숙소로 복귀하는 와중, 말을 걸어오는 건 김현규와 김수영.

같은 팀이자 선배로서 막내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그들의 위로였다.

그게 순식간에 유건의 수비 능력을 키워줄 만한 마법 같은 대화는 아니었지만, 심적 압박을 조금은 내려놓게 해주었다.

‘한 골 먹히면, 내가 두 골 만들면 되는 거잖아.’

오히려 나아가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어차피 경기 양상이 난타전이 예상된다면, 자신이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해버리면 되지 않겠냐는 자신감 말이다.

물론 실제 경기에서 까봐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긴 하겠지만.

[박범호 : 막내야! 내일 꼭 이기고 와라!]

[박범호 : 동영상]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확인한 유건의 휴대폰 어플 용인 FC 단체 채팅방에는 하나의 동영상이 전달되어 있었다.

짜안-! 짜안-!

“마셔! 마셔! 오늘은 마시라고!”

“야 이 자식들아! FA컵까지 끝내고 마시자니까!”

“감독님, 다 한잔 마시는데 혼자 양손에 맥주 두 잔을 들고 계시면서 그렇게 말해도 됩니까?”

경기 승리 후 뒤풀이로 몇 번 다녀왔던 유명한 고기집의 단체 룸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환호하는 팀원들.

그들을 만류하는 이상찬 감독의 목소리도 동영상에 나왔지만, 바로 뒤이어 잡히는 맥주 두 잔을 든 그의 모습은 꽤나 유쾌해 보였다.

소주로 속을 적시면서 무작정 취하고 싶은 날인 게 분명하지만 FA컵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 그들이었기에 기분만 내는 그들이 나오는 영상.

‘바람이형도 참….’

팀의 분위기메이커 강바람이 주도해가는 자리는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을 만큼 말이다.

약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떨어져 있었지만, 나여름을 제외하면 가장 보고 싶은 사람들은 바로 용인 FC 팀원들과 직원들이었다.

[유건 : 이제 두 경기 남았습니다. 메달 따고 돌아가겠지 말입니다!]

[유건 : 아 윤성이형, 메달따고 가면 저한테 다나까 쓰셔야 되지 말입니다?]

아직 한국시간으로는 대부분 잠들어있을 시각이었기에, 영상에 대한 코멘트와 함께 장난스런 메세지를 채팅방에 던져놓는 유건.

그들과 다시 재회할 시간을 기약하며 생각하는 것도 잠시였고 이내 현실을 자각하고 내일 있을 경기를 이미지 트레이닝한다.

덜컥-!

“형, 저 잠깐 바람 쐬고 올게요!”

한동안 생각하던 유건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워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는 김수영에게 말을 건넨 뒤 방을 나선다.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길거리를 걷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어라, 발발이 어디 가냐? 형들 좀 잠깐 보자?”

하지만 유건이 방을 나와서 걸어가는 순간, 뒤쪽에 있는 테라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제 익숙해진 습관처럼 재빠르게 녹음 어플을 켜고 돌아보며 유건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그쪽으로 걸어간다.

“…네, 부르셨어요?”

‘후, 한동안 잘 피해 다녔는데 말이지.’

걸어가는 와중에 남모르게 한숨을 옅게 내뱉으면서.

***

“오늘 경기는 정말 긴장됩니다. 국제대회에서 4강까지 올라오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 오랜만이군요.”

“그렇습니다! 현재 인천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있는 이강인 감독의 어린 시절, U-20 월드컵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브라질과의 경기가 시작되기 30분 전, 이미 치킨을 배달시켜 시청하기 위해 기다리는 팬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중계는 진행되고 있었다.

안준성과 전지우 캐스터가 나누는 얘기대로 대한민국 대표팀으로서는 국제대회에서 이렇게 높은 자리로 올라온 건 오래간만이었다.

“전지우 캐스터님은 오늘 경기 어떻게 예상하고 계십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우리 선수들이 승리하는 건데, 쉽지는 않은 경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에르난데스 선수와 우리 팀의 유건 선수가 맞붙는 장면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두 선수의 포지션이 서로 만나는 위치다 보니 오늘 핵심적인 포지션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평소에 해외 축구를 보던 팬들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르난데스였기에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이 예상하고 있던 우려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전지우 캐스터였다.

히카르도 세네스, 가브리엘 피냐의 포지션에도 흥미로운 매치업이지만 양 팀에 오고 가는 패스의 시작점은 유건과 에르난데스였기에.

보전하세-!

30분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고, 어느덧 애국가가 끝나고 경기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TV 앞에서 배달된 치킨을 이미 상에 차리고 먹고 있을 시간이기도 했고.

- 오늘은 조금 걱정되는 게 솔직히 축따형이 수비적으로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게….

- 확실히 에르난데스가 패스를 뿌리도록 자유롭게 놔두면 경기가 어려워지긴 할 듯

- 형들 걱정 마. 축따형도 팬심 더하면 그 정도로 패스 잘 뿌리는 편이잖아.

└ 이게 오늘 현실이 되면 좋겠다. 에르난데스-세네스 라인 한 번에 롱패스 넘어오는 거 무서움

축따튜브의 팬심을 끌어모으더라도 유건의 수비력이 뛰어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팬들도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적이었지만, 올라온 이상 승리를 바라는 게 당연했으니까 말이다.

삐이익-!

“가보자!”

브라질의 선축으로 진행된 경기는, 세네스가 뒤로 돌린 공을 빼면서 시작되었다.

휘슬이 울리자마자 김수영의 외침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기에, 공을 전달받은 에르난데스를 보자마자 압박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유건.

하지만 왼쪽, 오른쪽으로 가기 위해 움찔거리는 간단한 바디페인팅만으로 압박을 벗어 나와 공을 안전하게 간수하는 에르난데스였다.

‘…끄으, 리듬이 애매해.’

특유의 삼바리듬을 타며 치는 그들의 드리블은 바디페인팅의 템포가 애매했다.

겪어본 적 없는 흐름은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그 결과로 10분 동안 에르난데스에게 압박다운 압박을 성공한 적이 없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 한가지.

‘빨라.’

자신이 마크해야 되는 상대의 패스 타이밍이 너무나 빠르다는 것.

월드 베스트를 뽑는다면 후보에 꾸준히 들어가는 절친 후안 루이스나, 알렉스 둠바는 90분 내내 붙어있는 포지션의 선수들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체감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유건은 성인이 되고 난 후,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리그에서 팀의 핵심 수준으로, 엄청난 활약으로 승리를 가져다주는 선수들에게 붙는 호칭.

월드 클래스라는 높은 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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