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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따-43화 (43/208)

43화. 원하고 계시잖아요

“건아, 잘 생각해야 된다. 감독이 아닌 너의 미래를 응원하는 팬으로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아니에요. 저를 진짜 필요로 하면 시즌 마무리한 후인 겨울에도 오퍼를 넣겠죠.”

“그래도, 이놈아! 이건….”

“이번이 아니면 다음번에도 갈 수 있을 거예요! 저 아직 어리잖아요, 감독님.”

번리의 오퍼가 기쁘긴 했지만 이상찬 감독에게는 시즌을 마치고 결정하겠다고 거절의 표현을 전달하는 유건이었다.

물론 좋은 기회였으나, 유건 자신의 스타일과 김수영이 있는 번리 팀 스타일 자체가 그렇게 잘 맞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은 당장으로서는 거절.

“감독님, 제 이적은 걱정 마시고 FA컵에 집중하자구요.”

“올림픽에나 신경 써라! 난 내 선수가 어디 가서 활약 못 하는 걸 보면 창피해서 아주 얼굴을 못 들고 다니는 성격이다!”

툴툴대는 말투 사이에 묻어나는 이상찬 감독의 감정은, 유건에게는 따뜻한 감정으로 느껴졌다.

‘참 좋은 분이라니까.’

마치 어린 시절, 치기 어린 자신을 토닥여주고 보살펴주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느낌.

오랜만에 느껴지는 그 감정은 연속된 경기로 인해 체력적으로 지쳐있던 유건에게 약간의 쉼터가 돼주었다.

‘가기 전에….’

이번 시즌을 끝으로 K리그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오퍼가 들어온다면 이적하기로는 마음을 먹은 유건.

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 매 경기 긴장감을 주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체감하고 있었으니까.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쇼. 그리고, 원하고 계시잖아요?”

다시 한번 웃음을 찾게 해준 용인 FC.

선배들과 직원들도 좋았지만 이상찬 감독은 아버지처럼 의지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유건이 할 수 있는 보답이 뭐가 있겠는가.

“트로피.”

서울 유나이티드를 박살내고 들어 올릴 FA컵 우승 트로피.

그게 주고 싶은 선물이었다.

***

“와, 저 덩치를 두 번이나 뚫어내다니! 역시 둠바 한 명만으로는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이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브라질이 될 것 같다.”

멕시코와의 경기가 있던 다음날, 4강 상대를 알고 분석하기 위해 대표팀 선수단은 모두 모여 분석실에서 이미 끝난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브라질과 나이지리아의 8강 경기를.

그들 중 승자가 대한민국의 4강 상대.

후반 30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전광판에 적힌 2대0이라는 스코어는 경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 보였다.

물론, 이미 어떤 팀이 승리한지 알고 보는 경기였지만.

“토마스 에르난데스…, 저놈 말로만 들었는데 뻥뻥 때리는 롱패스가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냐?”

옆에서 푸념하는 김현규의 혼잣말.

토마스 에르난데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핵심 선수로서, 레전드 축구선수 피를로의 재림이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에이스 플레이어였다.

수비형 미드필더 지역에서 그가 구사하는 정확한 롱패스와 주변의 동료와 간단한 패스로 압박을 풀어 나오는 움직임은 정평이 나 있었다.

“어차피 마무리 짓는 건 히카르도 세네스잖아. 쿠아바가 오히려 막기 쉬운 놈처럼 보이는 건 나만 그러냐?”

“쿠아바는 아직 프로도 아니었는데 그 정도였던 거고, 쟤는 주전이라구.”

김현규의 목소리가 작은 편은 아니었고, 그걸 들었던 수비 라인 쪽의 선수들도 하나둘씩 얘기를 꺼낸다.

무승부를 이뤘던 코트디부아르의 에이스 디데 쿠아바와 한 선수를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 주인공은 히카르도 세네스.

PSG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삼바 리듬을 타며 예측할 수 없는 드리블을 하는 스타일을 보유하여 인기 유망주였다.

“거기까지 연결시켜 주는 건 누군데? 가브리엘 피냐잖냐.”

높은 크로스 성공률을 자랑하는 유벤투스의 윙 포지션 대기 1순위 선수.

보다 더 뛰어난 베테랑 주전 선수들에 비해 벤치에 앉아있지만 나올 때마다 높은 크로스 성공률과 파고드는 움직임을 보이는 선수.

그게 바로 브라질의 오른쪽 날개 가브리엘 피냐였다.

“야, 피냐냐 세네스냐가 중요하냐? 핵심은 에르난데스라니까.”

“그래도 골을 넣는 세네스가 핵심이지!”

“피냐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더 이상 골이 터지지 않고 브라질과 나이지리아의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 옥신각신 이야기가 오가는 대표팀 선수단.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에 충분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경우였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한 명이었다.

어떤 선수를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하여 전술을 준비하는 것은 코치진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김진용 감독이 할 역할이었으니까.

‘다른 선수들도 위협적이지만, 역시 에르난데스가 제일 핵심이지.’

유건도 한 명을 꼽아서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인 손지민의 어린 시절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토마스 에르난데스가 핵심이라고.

롱패스에서부터 경기 전체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을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이 지금부터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4강전을 간단히 치를 것도 아닐뿐더러, 목표는 승리이니까.

‘레지스타라….’

그리고 에르난데스의 포지션은 포백라인 앞에서 전체적인 빌드업을 담당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구체적인 포지션으로 말하자면 안 드레아 피를로와 같은 위치인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다른 말로 레지스타라고도 하며 이탈리아어로는 연출가라는 뜻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조금 더 낮은 위치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라고 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비유하자면 유건보다는 김현규의 역할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압박을 해서 불편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공격과 수비의 연결고리를 하는 그를 경기 중에 가장 많이 수비할 사람은 바로 유건.

커팅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수비 능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지만 끈질기게 따라붙어 볼 각오를 해본다.

공을 빼앗아내지 못하더라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걸 팬들은 더 바랄 것이니까.

그리고 만약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지금 팀의 에이스 수준으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단 한 순간에 자신에 대한 평가는 바뀔 수가 있었다.

자만심에 빠져서 수비는 대충 하는 어린 선수.

아마 그런 별칭으로 놀림을 받으면서 말이다.

***

“건아, 다리 쉽게 뻗지 말라니까!”

“그렇게 수비하면 그냥 지나가세요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

다음날부터 시작된 훈련에서, 유건은 이리저리 치이고 있었다.

토마스 에르난데스를 이미지 삼아 그의 역할을 해주는 김현규에게 압박을 가하는 연습.

오전 내내 세 번도 수비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점심을 먹으며 마음을 다잡고 왔는데 오후 훈련에서도 훈련이 끝나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 동일한 상황의 반복이었다.

“다리 바닥에 붙이고! 상대 페인팅에 속지 말고, 공을 지켜보라고 유건!”

“드리블도 잘 치는 놈이 막는 방법을 모른다니, 어휴!”

김현규를 포함한 주변 선수 두 명이 볼을 돌리고, 유건을 포함한 공격형 미드필더 후보 선수가 압박을 가했다.

그리고 유건의 수비 실력은 엉망이었다.

생각보다 더.

단지 압박 능력이나 수비 성실성만 놓고 봤을 때는 유건이 벤치로 가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아으, 어렵다 어려워!’

코치들의 한숨 섞인 말을 하루종일 듣는다면 자신감이 하락할 만도 했지만,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보충하는 지금 이 시간이 만족스러웠기에.

그리고 원래 없었다.

수비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삐이익-!

“허억, 허억!”

하지만, 오늘 훈련의 끝을 알리는 코치의 휘슬소리는 유건에게도 반가웠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공을 쫓아다니느라 체력이 고갈되어 숨이 차던 중이었으니까.

“다들 고생했고! 오전에 각자 들었던 개인 전술들을 복기해보고 내일 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제 이기든, 지든 단 두 경기 남았다. 체력적으로 모두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끝까지 후회 없이 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뒷정리까지 마친 선수단의 앞에서 일정의 마무리를 짓는 김진용 감독의 말.

전술적인 부분이나 중요한 말들은 오전 훈련 시작 전에 모두 브리핑했기에,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휴식 시간을 준다.

다다다-!

“…와, 눈 감았다 뜨니까 도착하네?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못 하겠다. 푹 쉬자!”

“아주 온몸이 뻐근하다.”

“숙면, 숙면이 필요하다!”

숙소로 복귀하는 버스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진 선수들은, 오래 걸리지 않고 도착한 시간에 대해 원망을 표한다.

그러다가도 문이 열리자마자 조금이라도 더 휴식해보겠다고 너나 할 것 없이 방으로 달려간다.

각자 한마디씩 하면서 말이다.

끼이익-! 태앵-!

“건아, 오늘 형 부르지 마라! 미친 피곤함이다. 1초라도 더 자자!”

유건의 방문이 열리자마자 몸을 침대에 던지면서 스프링 소리를 방안에 울려 퍼지게 하는 장본인은 김수영.

룸메이트인 그가 바로 숙면을 선택한 이상, 유건은 통화하기 위해서는 복도로 나가야만 했다.

“저는 그럼 전화 좀 하고 들어올게요!”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곧바로 방문을 나와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 테라스로 향했다.

그도 당연히 자고 싶었지만 오늘만은 전화를 할 필요가 있었다.

“여름아, 첫 방송 축하해!! 내가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 가면 밀린 거 몰아서 볼게!”

“고마워요, 오빠. 헤헤, 이제 처음 방송된 거고 사실 시청률이 높게 나오지는 않았어요.”

바로 나여름이 조연으로 출연하는 일일연속극이 첫 방송을 시작한 날이었으니까.

이제 스스로의 마음도 알아차린 유건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이런 중요한 날을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과는 반대로 유건과 여름은 서로 떨어져 있는 이 기간 동안 마음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엔 다 그렇지. 내가 예상한다고 했지? 너 분량 많아지는 부분부터 시청률 올라갈 거라니까!”

“치이, 말이라도 고마워요. 이제 훈련 끝나고 들어온 거예요?”

“으응, 오늘은 아마 전화 끊으면 바로 곯아떨어질 것 같네.”

“조금만 더 해요, 전화.”

가볍게 위로를 하며 그녀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유건.

그런 그의 토닥임이 싫지 않은 여름이었기에 행복함을 느끼며 통화를 이어나간다.

끊자마자 자겠다는 유건을 보내주기 싫은지, 평소에는 말하지 않던 더 오래 통화하자는 얘기까지 하면서.

“응응, 별튜브에 그렇게 좀 올려주라. 직접 올리기는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걱정 좀 그만하라니까요. 제가 다 알아서 아주 잘해놓겠습니다요.”

“그러면 이제 2주도 안 남았으니까 들어가서 빨리 보자! 할머님도 뵙구!”

“네네, 힘내요, 오빠! 저는 이제 점심 먹고 촬영갑니다!”

꽤 오랜 시간 전화상으로 말을 주고받았는데도 서로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지만, 테라스 한쪽 편으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본 유건이 끝을 제안한다.

끊기 전에 별튜브 관련 부탁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빨리 보고 싶다는 말도 돌려서 전한다.

공식적으로 성립된 관계는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확실히 연인이라고 할만한 둘의 통화였다.

끼이익-!

‘목걸이는 아직 사주지 못했으니…, 우선 걸어줄게.’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눕는 와중에도 여름에게 주기 위한 선물을 생각하는 유건이었다.

‘올림픽 메달.’

목걸이 선물을 메달로 대신하겠다는 괴상망측한 생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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