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42화 (42/208)

42화. 가장 자신 있는 코스

“건아, 맨온!”

“이거 리턴 줘야 돼.”

“윙, 크로스 조금 더 빠르게 올려줘!”

후반전 20분이 지나가는 시각까지 정신 무장을 하고 나온 양 팀 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계속해서 크로스를 고집하는 멕시코와, 70%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반으로 공을 소유하며 기회를 찾는 대한민국.

아직 서로 유효슈팅이 없었지만, 선수들이 뛰는 모습은 마치 결승전을 치른다는 각오를 얼굴에 써놓은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 기회는 찾아왔다.

“올라가자!”

점유율이 낮은 멕시코는 수비적인 형태를 취하다가 역습을 통해 공격을 나왔는데, 전체적으로 진형을 올리던 상대의 공을 뺏어내는 데 성공했다.

공을 탈취한 이호준은 안전하게 백패스로 김현규에게 전달했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유건에게 공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패스를 주자마자 뛰기 시작한 이호준의 앞 공간은 비어있었다.

‘…찔러보자 한 번!’

“호준이형!!”

그 기회가 찾아온 이유는 멕시코의 왼쪽 윙이 치고 올라오다가 뺏겼던 게 첫 번째.

왼쪽 라인의 핵 수아레즈가 보다 미드필더 쪽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 말은 압박해서 들어오는 윙백이 없다는 말.

중앙 수비가 마크를 하러 들어오고 있었지만 유건은 도전적인 패스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스으으-!

중앙선 부근에서 잔디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쏘아지는 빠른 패스는 이호준과 상대 수비수의 사이 공간을 향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호준의 발에 조금 더 가까운 방향으로.

그리고 그 사소한 차이는 생각보다 큰 결과를 만들어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전유물 킬러패스가 전달된 것.

‘이거지!’

먼저 발이 닿은 이호준이 치고 나가기보다는, 순간적으로 접으면서 방향을 바꾼다.

달려 나오는 수비로서는 역동작에 걸려 쫓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남은 한 명의 중앙 수비는 패스를 기다리는 김수영의 움직임을 신경 쓰느라 빠르게 압박하러 이동할 수가 없었다.

“이호준 선수! 좋은 자리에서 슈팅 찬스를 잡습니다!”

“옛날 아르옌 로벤 선수의 전매특허 매크로 슈팅인데, 이호준 선수도 그 방법으로 많은 골을 넣었거든요!”

“이번에도 좋은 결과…, 아 바로 때립니다!”

대한민국의 왼쪽 날개에 손지민이 있다면 오른쪽 날개에는 이호준이 있었다.

국내파임에도 불구하고, 해외파들을 밀어내고 국가대표 주전을 차지한 젊은 선수.

로벤을 생각나게 하는 매크로 슈팅은 K리그의 오른쪽 사이드를 지배하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콰앙-!

가장 자신 있는 코스.

수비를 떨쳐낸 노마크 상황.

이런 순간에 슈팅을 때리지 않는다면 공격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사이드를 이용해 골대의 왼쪽 상단을 향해 감겨들어가는 강한 슈팅을 차는 이호준이었다.

조금 더 공이 빠르게 뻗어나가게 하기 위해 체중이 실린 발을 끝까지 밀면서 말이다.

“…크윽!”

멕시코의 골키퍼가 몸을 날리면서도 옅은 신음을 흘리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도 김수영에게로 향하는 패스가 있을까 봐 조금은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호준의 슛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코스였다 보니 앞에 있는 선수들의 몸에 가렸던 것.

뒤늦게나마 쫓아가 보려고 급히 몸을 날렸지만…,

출렁-!

자신의 손이 닿기 전 골대로 빨려들어 가는 공을 보며 울분을 토하며 땅을 치는 멕시코의 골키퍼.

그를 뒤로한 채, 이호준은 가슴의 호랑이 엠블럼을 두드리면서 원정팬들에게 달려가며 세레머니를 한다.

“막내야!!”

“으아아, 형 미친 골이었어요!”

팬들과 카메라 앞에서 특유의 세레머니를 마친 후, 자신을 껴안으러 달려들어 오는 유건을 가리키며 외치는 이호준.

그런 그들의 주변으로 대표팀 선수들이 모여서 다 함께 득점의 기쁨을 만끽한다.

후반 28분, 다시 한번 골을 넣은 대한민국이 리드하기 시작했다.

“창수형, 붙어줘요!”

“상백아, 확실히 압박해!!”

“두광이형, 클리어!!”

득점을 올린 대한민국의 전술은 곧 수비적으로 바뀌었다.

역습을 위해 양쪽 날개를 투톱의 형태로 배치하고, 3명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김수영을 불러들이고 공격수였지만 수비진영에 높이를 더하기 위한 양두광을 배치했고,

체력 안배를 위해 유건과 송화경을 각각 수비형 미드필더와 빠른 주력의 공격수로 교체했다.

‘끝까지 버텨낼 수 있으려나’

김현규가 속으로 생각하는 대로 교체 이후 점유율이 오히려 역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진용 감독이 의도한 대로 수비가 강화되고 위협적인 공격은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5-3-2로의 포지션 변경이 이루어졌었다.

중앙에 김현규가 전체적으로 경기를 리드하고, 나머지는 각자 지역에서 수비에 집중하는 포지션.

실점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보기 위한 전술.

“10분만 버티자, 얘들아!!”

“화이팅!!!!”

그래서일까, 공의 소유권은 전체적으로 멕시코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남은 10분가량만 버텨낸다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주장 완장을 이어받은 김현규가 크게 소리치고, 주변의 선수들도 목소리에서 지지 않기 위해 악에 받쳐 소리친다.

4강전이라는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서 말이다.

“···아씨!”

하지만, 올림픽은 모든 것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수준의 대회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수비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양두광이 습관적으로 공격수의 압박이 들어오자 등을 지고, 볼 처리를 망설이다가 백패스를 건네다가 차단당한 것.

물론 김진용 감독의 용병술이 역효과를 가져온 것이지만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실수였다.

“빨리 커버 들어와!”

“앞에 집중해! 발 넣지 말고!”

“끝까지 붙어 있자!”

차단한 공격수의 앞에 남은 것은 두 명의 중앙 수비와 골키퍼뿐.

계속해서 몰아붙이고 있던 멕시코였기에, 수비보다 그들의 공격 숫자가 우세한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건 대한민국의 중앙 수비들.

사이드 지역의 선수들에게 커버를 요청하며 시선을 공에 응시한다.

‘내가 막아낼 테다!!’

하지만, 수적 열세는 그렇게 집중한다고 해서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2대1 패스를 주고받으며, 세 명이 삼각형을 구성하면서 하는 패스는 수비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어느새 멕시코의 최종 공격수가 골대 앞에서 공을 건네받았지만, 대한민국의 골키퍼가 이미 앞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전반전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생각에 신경을 곤두서고 있었기에 패스의 종착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 결과는···.

퍼엉-! 티잉-!

“키퍼 나이스으!!”

“바로 클리어해!!”

손끝을 이용해 가까스로 쳐낸 슈팅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고, 지체하지 않고 바로 클리어하는 수비수.

후반전 종료가 몇 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방금까지 있었던 일 분은 동안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동점 골을 넣고 연장을 간다는 희망을 가진 멕시코가 느낀 기분 말이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지옥에 끌려가다가 구원받은 기분이었고.

삑! 삑! 삐이익-!

다다다-!

“으아아아, 이겼다!!”

휘슬이 울리자마자 대한민국의 벤치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예상보다 더 힘들었던 경기는 자연스레 대표팀 선수단의 그런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만큼 멕시코와의 대전이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했으니까 말이다.

“나이스!! 이제 4강이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은 이상 경기력에 대한 걱정은 미뤄둬도 되었다.

출전했거나, 안 했거나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 그라운드에 모두 모여 승리를 즐길 뿐.

***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 멕시코를 2:1로 꺾으며 4강 진출!]

[과연 4강 상대는 누가 될 것인가?]

[한 골씩 넣은 김수영과 이호준의 득점, 대표팀에게 승리라는 단어를 선물해주다]

[대표팀이 계속된 질주를 가능하게 하는 보석, 팀의 막내 유건]

[1어시스트와 득점으로 연결되는 1개의 기점 패스를 만든 유건, 승리의 열쇠가 되다]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멕시코 선수단과 악수를 하며 마무리를 하고 있는 그 시각, 이미 도배되고 있었다.

각종 국내 포털 사이트에 축구 대표팀의 승리 소식이 담긴 뉴스가 말이다.

심지어 아직 경기가 진행되지도 않은 남은 4강 경기를 예측하는 기사도 있었고, 활약한 선수들을 칭찬하는 기사들이 대부분.

승리를 가져다준 득점을 만들어낸 김수영과 이호준의 칭찬이 제일 많긴 했지만, 유건을 조명해주는 뉴스도 적지 않았다.

[나여름 : 오빠 4강 진출 축하해요! 오늘 너무 멋있었어요!]

[루이스 : 결승까지 올라와서 다시 한번 도전해라, 받아주마 크크]

그리고 유건이 라커룸으로 복귀한 뒤 확인한 휴대폰은 주변인들에게서의 연락 때문에 불이 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경기가 끝나자마자 보낸 나여름과 루이스가 있었고,

[박범호 : 잘했다 막내야! 메달 못 따고 돌아오면 죽는다?]

[강바람 : 범호 형 말은 신경 쓰지 말고 다치지만 마라. 아 바르셀로나에 구찌가 좀 싸다고 그러던데 형이 필요해서 알아본 건 아니다?]

[이윤성 : 이 자식아, 나보다 빨리 군대 제대하지 말라고!]

사실 그 둘을 제외하고 남은 주변인이라고 해봤자 모두 용인 FC 직원들 혹은 선수들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단체 채팅방에서 유건을 응원해주는 선배들이 있었다.

‘필요하지도 않으신데 왜 알아보신 거지? 나 옷 사라고 저런 것도 알아봐 주시다니···!’

물론 농담 섞인 강바람의 진담은 유건에게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대신 의도하지 않게 그를 감동시켰을 뿐이다.

혹시 아는가,

강바람에게 감동 받은 유건이 명품은 아니더라도 주변인들을 위해 좋은 것들을 사서 돌아갈지 말이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어라, 감독님이…?’

“유건이 이놈아! 4강 진출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우리 팀 승격하는 겁니까! 드디어 단 한 경기 남았던데!”

“우헤헤, 그렇지. 우리가 승격한다! 아,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인마, 말하려다 까먹었잖냐!”

채팅방을 확인하고 나서 갑자기 울리는 전화 소리에 화면을 보니 발신자는 이상찬 감독.

올림픽을 위해 떠나온 기간 동안 그와 직접 통화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고, 선배들과 영상통화를 할 때 옆에서 가끔 나타나서 얘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다른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건 아닐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유건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소식이었다.

“너를 영입하고 싶다는 제의가 또 들어왔다.”

“아, 그거는 시즌 마지막···.”

“번리에서 오퍼가 왔다, 건아.”

“네, 네? 진짜예요?”

‘번, 번리요? 영국이라구요?’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경쟁하는 팀이 자신을 영입하기를 희망한다는, 생각하지도 못한 희소식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