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더 빨리 올릴 수 있다고
‘…후우, 이번에는 위험했어.’
대한민국이 멕시코를 상대로 준비해온 전술은 꽤 성공적으로 먹혀들어갔다.
마르티노와 수아레즈가 수비를 떨쳐내고 어떻게든 크로스까지 연결시키긴 했지만, 여유롭지 못한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정확도가 다소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멕시코의 공격수가 두 번 정도 머리에 맞히긴 했던 게 불행이었지만 골키퍼의 정면과 골대 밖으로 향하는 슈팅이었던 건 행운이었다.
“확실히 크로스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멕시코가 자랑하는 양쪽 윙백은 명불허전이군요!”
“맞습니다. 준비할 새도 없이 러닝 크로스를 올리는데도 가끔 공격수의 머리로 정확하게 향하는군요!”
“이쯤에서 우리 선수들이 한 골 넣어주면 좋겠는데요! 기세를 끊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안준성과 전지우의 중계처럼, 연이어 성공시킨 멕시코의 크로스 덕분에 기세가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다.
이때, 먼저 골을 넣는다면 지배하고 있는 점유율을 기반으로 상대 팀의 희망을 잠시 꺾어놓을 수 있는 타이밍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전반 34분경, 그 기회는 찾아왔다.
“…아으, 저게 닿아?”
김현규의 압박으로 인해 마르티노가 중앙 쪽으로 패스를 선택했을 때, 미리 코스를 읽었던 박창수의 커팅이 빛을 발했다.
미드필더에게로 향하는 패스에 살짝 발이 터치가 된 덕분에 굴절된 공의 소유권은 한국팀으로 넘어왔다.
“건아!”
“화경!!”
흘러나오는 공을 쫓아가서 잡은 김현규의 선택지는 당연히 유건.
팀의 공격을 조율하는 유건이 몸을 전방을 향해 반 바퀴 회전시키며 터치했고, 흐름을 살리기 위해 비어있는 송화경 쪽으로 지체하지 않고 찔러준다.
‘이건 쳐야지!’
공을 잡고 달리는 송화경의 생각대로, 지금은 치고 나갈 타이밍이었다.
자신을 마크하던 마르티노가 공격을 나가다가 커팅을 당해 턴오버를 일으킨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자신에게 커버를 들어오고 있는 중앙 수비가 있었지만, 송화경도 나름 분데스리가 2부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였다.
“미안하지만 내가 더 빠르다고!”
그 말은 자신보다 주력이 느린 수비는 충분히 가속을 붙여서 일대일 돌파를 성공해낼 수 있다는 말.
크로스를 막기 위해 달려드는 상대 팀 선수를 같은 방향으로 공을 앞으로 한 번 더 치면서 제쳐낸다.
그리고는, 동료를 향한 크로스.
“화경이형!”
“컷백!”
멕시코의 수비 지역에 남아있는 한 명의 중앙 수비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손을 들고 콜을 하고 있는 현재 마크 상대 김수영에게 붙어있을지, 비어있는 하프 스페이스 공간으로 컷백을 위해 침투하고 있는 유건을 마크하기 위해 뛰쳐나갈지.
그 찰나의 망설임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위기로 변한다.
“수영아!”
이번 패스의 목적지는 바로 스트라이커였으니까.
“나이스으!!”
달려들어오는 유건의 움직임을 의식하는 사이, 직선적인 크로스에 닿기 위해 이미 몸을 전진시켜 발을 뻗는 김수영.
수비가 눈동자를 침투하는 선수에게 돌리는 순간, 늦은 것이다.
공은 발보다 빠르지 않은가.
투욱-!
김수영은 강하게 차는 것보다 살짝 방향만 틀어 골대의 빈 공간을 노리는 슈팅을 선택했다.
빠른 크로스의 상황에서 골키퍼에게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몸을 전진시키며 뛰쳐나오는 멕시코의 골키퍼 왼쪽 하단으로 방향이 갑자기 꺾여버린 슛은, 뒤늦게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출렁-!
“화경이형!!”
“형들, 나이스였어요!!”
두 손을 들고 크로스를 올려준 송화경을 가리키며 달려가서 껴안는 김수영.
그리고 그 위를 덮치기 위해 점프하며 소리치는 유건.
원정팬들 앞에서 예로부터 많은 선수가 했던 유명하고 고전적인 세레머니를 펼친다.
“우리 행님, 축구화가 아주 번쩍하지 말입니다!”
꿇어 앉아 있는 유건의 무릎 위에 김수영의 발이 올려지고, 손에 뭐라도 든 것처럼 닦아주는 흉내를 낸다.
가보지도 못한 군대 특유의 말투를 쓰면서 말이다.
삐이익-!
“대한민국, 화이팅!”
“화이팅!!”
세레머니 이후 시작된 경기를 알리는 휘슬 소리와 동시에 기세를 올리기 위한 김수영의 외침이 있었다.
지금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 보자는 뜻에서 크게 한 번 따라서 화이팅을 외치는 선수단.
힘찬 목소리는 그들의 현재 기분을 보여주는 듯했다.
- 이거지! 축따형 기점 패스 나이스
- 김수영 마무리 진짜 클래스 있었다. 슬쩍 방향만 바꿔버리네
- 진짜 올림픽 팀들 중에서는 충분히 경쟁력 있는 것 같음. 아르헨티나한테 졌잘싸한 거 보면 멤버도 좋은 편인 듯
- 김수영이랑 유건, 이호준까지 발전해서 대표팀 합류하면 진짜 월드컵에서도 다시 16강 이상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팬들은 이번 골 장면을 넘어서 장밋빛 미래까지 꿈꾸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표팀에는 이미 세계적인 선수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좋은 자원들이 합류한다면 훨씬 강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호준이야 원래 송화경을 후보로 밀어낼 만큼 대표팀의 오른쪽 윙이었고 이미 차출 경험이 있는 김수영은 사실 언급이 많지는 않았다.
강병훈을 밀어낼만한 혜성 같은 유망주인 유건이 나타나서 팬들의 언급을 독차지했으니까.
‘큰 실수만 없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유건은 방심이라는 단어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남은 시간이 많기도 했고, 직접 경험해본 적은 거의 없지만 공은 둥글지 않은가.
물론 현재까지의 점유율과 경기 양상을 보았을 때 대한민국의 4강 진출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었다.
앞으로 큰 실수만 없다면 말이다.
***
“키퍼!”
“수비가 처리해야…, 아씨!!”
공이 둥글다라는 표현은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으로 알맞은 문장이었다.
사이드 지역이 아닌 중앙에서 박창수를 슬쩍 제치고 찌르는 수아레즈의 패스가, 대한민국의 골키퍼와 중앙 수비 간의 호흡이 어긋나게 만든 것을 보면 말이다.
그들 사이 공간으로 떨어지는 애매한 롱패스에 골키퍼는 수비가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뛰쳐나오지 않았고,
머리를 살짝 넘어갈 듯한 패스 코스를 보며 헤딩을 뜨지 않고 공격수가 달려가자 급하게 뒤를 돌아보며 키퍼를 외쳐보는 수비들.
‘제발!!’
뛰쳐나오며 속으로 소리치는 대한민국의 골키퍼.
상대 공격수가 때린 슈팅은 자신의 측면을 향해 가고 있었고, 급하게 몸을 돌리며 손을 뻗어보지만….
출렁-!
아쉽게도 신은 이번에 멕시코의 손을 잡고 들어주었다.
전반전 종료가 단 1분 남은 44분경, 결국 동점 골을 내어주고 마는 대한민국이었다.
삐이익-!
경기 재개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마자 다시 한번 앞서나가는 골을 넣어보려 했던 대표팀 선발 선수들이 남은 시간 동안 밀어붙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다급해진 마음은 부정확한 슈팅을 유발했고 남아있는 시간 자체도 얼마 남지 않았었으니까.
애석하게도 선수들의 귀로 들려오는 전반전 종료 휘슬은 금방 울렸다.
콰앙-! 콰앙-! 콰앙-!
“수비! 왜 헤딩을 안 뜬거지? 왜 골키퍼랑 서로 말을 안 한 건지 말이라도 해봐라.”
“몇 분 전 장면은 너무 쉽게 먹혔다고 생각하지 않나? 점유율을 그렇게 잘 유지했는데도, 방심이란 놈은 그 모든걸 소용없게 만든다.”
“여기서 한 번 더 실수해서 만약 패배한다면, 여러분이 졌지만 잘 싸웠다는 소리를 들었던 아르헨티나전을 누가 기억이라고 해줄 것 같나?”
하프 타임을 맞이한 라커룸의 분위기는 싸했다.
한마디씩 할 때마다 문을 한 번 강하게 치며 말을 이어나가는 김진용 감독의 물음은 선수들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날아가 꽂힌다.
그의 말 그대로 대중들은 패자를 기억하지 않으니까.
만약 8강에서 패배해서 돌아간다면, 조별 예선 통과라는 활약상보다는 메달을 따지 못한 대표팀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예정이기에 말이다.
“김수영, 지고 싶냐?”
“…아닙니다!”
“주장이 그렇지 않으면, 다른 선수들 모두가 이기기가 싫은 거냐?”
“아닙니다, 감독님!!”
선수단을 대표하여 가장 첫 번째로 지목받는 것은 당연히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김수영.
당연한 대답이 돌아오겠지만 상관없었다.
김진용 감독의 질문은 단순한 대답만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라는 압박의 의도가 더 컸으니까 말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수단을 쏘아보며 외치는 그의 매서운 질문에 저마다 다른 표정을 보이며 통일된 대답을 하는 대표팀 선수들이었다.
“정신 차리고 가자! 여기서 지면 한순간이지만, 메달 따면 평생이다!”
“가자아아!!”
이제 시작될 후반전을 위해 경기장에 나가야 할 시각이 다가오고, 김수영의 손짓에 선수들은 서로 어깨를 부여잡고 원을 그리며 몸을 숙인다.
필요한 말은 김진용 감독이 다 해주었기에 추가적인 말이 크게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전의를 불태우려는 의도로 함께 화이팅을 하는 것은, 팀의 기세를 올리기에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효과 있었다.
목이 부서져라 외치는 선수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것을 보면.
삐이익-!
“전반전에서 긍정적인 부분만을 기억하고, 우리 선수들 남은 후반전에 집중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얘기가 오고 갔을 걸로 예상됩니다. 대표팀의 입장에서도 미드필더 지역을 지배했음에도 동점이라는 건 아쉬운 결과거든요!”
“…저처럼 많은 국민 여러분이 긴장하고 계시겠지만 자랑스런 우리 선수들을 믿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응원이 선수들의 귀에는 안 들리겠지만 마음속에는 분명히 닿을 겁니다!”
후반전 휘슬소리와 함께 중계를 보고 있는 국민들께 응원과 믿음을 요구하는 안준성과 전지우였다.
점수만 놓고 봤을 때는 아쉬운 결과였으나, 경기 내용만 놓고 보면 충분히 다시 리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 차라리 세트피스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 양두광을 넣는 건 별로이려나?
└ 솔직히 공격 쪽은 문제없는 것 같음. 김수영에서 양두광으로 바뀌면 오히려 공격패턴 단조로워져서 별로일 듯
- 김현규, 박창수 미들 조합 좋긴 한데 손지민이 그리운 건 어쩔 수가 없구나
└ 손지민 끌고오면 박준철에 비해 송화경이 아쉬운 것도 말해야 됨
- 축따형 믿습니다. 하나만 더 해주세요!
- 이호준, 유건 조합 하나 만들어 보자!
축따의 팬들도 후반전에 대한민국의 승리를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의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랜만이었기에.
‘…이왕 올라온 거, 더 가야지!’
‘메달 따면 군대 면제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마음속에도 승리라는 단어가 목표.
저마다 다른 것을 생각하며 의지를 불태운다.
‘4강에 가야 더 빨리 올릴 수 있다고!’
남들과는 달리 지단과의 데이터 동기화율을 올리고 싶은 유건의 생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