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38화 (38/208)

38화. 무조건 넣는다

삐이익-!

“짜식, 너무 멋진 거 아니야? 후반전엔 우리가 한 골 더 넣을 거다!”

“야 인마, 같이 8강에 올라가면 얼마나 좋냐? 이대로만 끝내자.”

“에이 장난치지 마. 아무튼 그 정도면 마드리드로 다시 와도 될 것 같은데, 어때?”

“우리 약속 잊었냐? 이미 내 발로 뛰쳐나온 이상 다른 팀에서 빅이어를 목표로 할 거다.”

유건의 세레머니 이후 재개된 경기는 종료까지 촉박한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금방 하프 타임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자신의 오랜 친구 루이스.

미소를 지은 채로 투닥거리고 있는 둘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팀의 승패를 떠나 서로 활약한 전반전에 대해 죽마고우로서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45분…, 한 번 더 해보자 유건아. 할 수 있다!’

‘…방심하면 안 되겠네. 후반전에 기대하라고 친구!’

어깨동무를 한 채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라커룸 앞에서 헤어졌지만, 두 명 다 속으로는 후반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승부는 서로 티끌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각자의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생각을.

그 이유는 승부욕이란 게, 특히 스포츠 경기 선수들에게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욕구가 아니기에.

- 으아아아, 진짜 미쳤다 축따형!!

- 와 개쩔었다 진짜

- 한 경기에 미친 골이 두 개나 나오네

- 아니 근데 축따형 개인기 저렇게 잘하는데 이때까지는 왜 안 한 거임?

└ 서울 유나이티드시절 경기 한 번 보셈. 용인 입단하고 포지션 미드필더로 바꾸고 나서는 안 했는데 원래 개인기는 엄청 잘하는 편이었음

유건의 멋진 골에 환호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 마찬가지였겠지만, 특히 광란의 도가니를 보여주는 곳은 바로 축따튜브의 채팅창.

축따형을 외치는 팬들의 대화는 텍스트로만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흥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가 환호하고 있을 그 시각에도, 대표팀의 라커룸에서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수비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감독님!”

“전반전에 보여준 모습들이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던 대표팀의 모습이었다. 공을 포기하지 않으며 끝까지 쫓아가고, 팀을 위해 한 발 더 뛰는 모습. 후반전에도 이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우리가 사고 한 번 크게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보자!!”

전반전의 문제점을 토대로 전술 변경이 가능한 하프 타임의 시간.

그러나 김진용 감독의 선택은 지금 그대로 맞불 작전으로 계속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의가 있냐는 그의 질문에 침묵으로 긍정하는 선수들이었고, 그런 선수단을 보며 자신감을 심어준다.

세간의 평가를 뒤엎을 사고를 한번 쳐보자고.

“다들 집중력 잃지 말고!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잖아!”

“한 골만 넣으면 이기니까 화이팅하자!!”

“가보자고, 이 자식들아!”

김진용 감독이 던진 격려의 바톤을 이어받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김수영.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원을 만든 선수단 중앙에서 크게 외친다.

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와일드카드인 송화경, 양두광이 반복해서 한 마디씩 외친다.

힘찬 화이팅이 끝난 이제는, 다시 한번 전쟁터로 나갈 시간이었다.

삐이익-!

양 팀의 운명이 결정될 45분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거세게 치고받았던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얼마든지 골이 더 터질 가능성이 있었고, 최후의 승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떨립니다 정말! 라커룸에서 혹시 전술에 대한 얘기를 나눴을까요?”

“전반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팀의 점유율이 40%로 약간 밀리긴 했지만, 점수는 똑같지 않습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니, 후반전에는 대한민국이 조금 더 우세한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이 되면 좋겠습니다!”

조별 예선 통과의 가능성을 보여준 전반전에 댛산 기대감은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안준성의 목소리에서도 이어졌다.

지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굳이 전술을 바꾸겠냐는 의문은 후반전을 기대했기에 자연스레 나올 수 있는 마음이었다.

‘…전반처럼 달려드는 건 아예 안 하기로 작정했나 본데.’

유건이 몇 번 뚫어내는 데 성공했던 피코와 마르티네스의 허리 라인은 그들이 압박과 커팅을 위해 앞으로 달려 나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리 봐둔 동료를 활용한 패스나 간단한 개인기를 통해 뚫어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후반전이 시작한 뒤로는 볼을 잡은 유건에게 압박을 하지 않고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시선만 공에 집중한다.

언제라도 치고 들어올 때 순간적으로 빼앗을 수 있게 말이다.

투우욱-!

“호준이형!”

하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다.

유건에게 있어 선택지의 우선순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료에게로 향하는 패스였으니까.

사이드백의 몸을 등지고 있다가, 반동 삼아서 튕겨 나오며 안쪽으로 파고드는 이호준을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패스를 찌른다.

“아으, 아까워라!”

그리고 유건의 선택도 이번에는 정답이 아니었다.

피코보다 약간 낮은 포지션에 위치하여 유건에게서 패스가 나오는 걸 기다리던 마르티네스가 순간적으로 압박을 위해 돌아가고 있었기에.

먼저 발이 닿은 이호준이 살짝 몸과 반대방향으로 공을 돌리며 역동작을 유도했으나, 아르헨티나의 진공청소기라 불리는 마르티네스는 속지 않고 침착하게 공을 쓸어담는 데 성공했다.

“피코!”

곧바로 패스하는 대상은 몸을 앞으로 전진시키며 기다리던 헤르단 피코.

주장 완장을 달고 있을 정도로 실력은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활약으로 검증을 끝낸 미드필더였기에, 빠르게 들어오는 박창수의 압박을 동료와의 패스로 쉽게 벗겨냈다.

스으으-!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종착지는 항상 이 선수.

후안 루이스였다.

잔디를 가르며 뻗는 피코의 낮은 패스는 루이스의 발에 정확하게 안착한다.

“…개자식이!”

울분을 토하며 자신을 지나쳐가는 상대 선수의 등을 바라보는 정상백.

오늘 도대체 몇 번을 제쳐진 건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루이스에게 농락당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넓게 벌린 채로 공을 받았던 루이스는 안쪽으로 드리블을 하며 사이드백을 쉽게 넘어선다.

“페레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자신에게 미드필더의 압박이 들어오자 빠른 속도로 오버래핑을 올라온 윙백에게 공을 전달한다.

달려오던 속도를 이용해서 공을 치며 한 번 더 가속하는 알렉시스 페레스.

비야레알의 서브 선수였다가, 주전의 부상으로 출전을 시작해 자리를 확고히 다진 그의 오버래핑은 명불허전이었다.

투욱-!

공을 잡아두고 크로스를 올리든지, 바로 크로스를 올리든지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예상했다.

코너라인이랑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는데 거기서 한 번을 더 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대한민국의 수비수들.

넣을 수 있는 골대의 각도가 좁긴 했지만 골키퍼와 일대일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상황이 되자, 위험을 느낀 중앙 수비는 뛰쳐나온다.

그 선택이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잘못된 게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큰 실수였다.

“루이스!”

페레스의 목적 자체가 처음부터 슈팅이 아니었으니까.

중간에서 슛 코스를 차단하기 위해 달려 나오는 중앙 수비가 원래 위치하던 텅 빈 공간으로, 번개같이 달려가는 누군가에게 공을 건네주는 게 목적.

골키퍼의 앞쪽으로 강하게 붙이는 크로스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패스를 주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달려왔던 루이스가 있는 방향으로 공을 보낸다.

단둘이서 만들어낸 완벽한 컷백에 이은 골 찬스.

콰앙-!

골키퍼가 막기 힘든 땅볼로 가까운 포스트를 향해 다이렉트로 슈팅을 날린다.

방해를 할 수 있는 수비가 없었기에 당연히 노마크 찬스.

그러나, 전반전에 이어 한국을 구해낸 영웅이 또 한 번 탄생했다.

‘저놈, 오른발잡이니까 때릴 수 있는 슈팅 코스는 가까운 쪽일 거야!’라고 내심 짐작을 하며 몸을 이미 날리고 있었던 골키퍼.

그리고 그 도박은 먹혀들었다.

퍼엉-! 티잉-!

강한 슈팅이었기에 공은 뻗어낸 골키퍼 장갑을 터트리는 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하지만 덕분에 살짝 다른 방향으로 꺾이는 공은 운이 좋게도 골포스트를 맞히고 코너라인으로 아웃되었다.

후반 10분, 먼저 역전 골을 넣을뻔한 것은 아르헨티나였다.

‘…막힐 줄이야, 다음에는 무조건 넣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만들어낸 루이스의 머릿속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유건을 포함한 대표팀 선수들은 아직 인지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잠깐 숙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맹수의 눈빛처럼.

***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조 마지막 경기는 후반 35분을 향해 가고 있었고, 루이스가 골대를 맞힌 이후로 다른 선수들이 두 번을 더 맞혔다.

총 3번의 골대, 이길 날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보통 드는 게 이때쯤이다.

하지만, 후반전 양 팀의 점유율은 22% VS 78%.

물론 대한민국이 전자였는데, 피코를 붙이고 마르티네스를 조금 내리는 아르헨티나의 전술이 유건의 활약을 꽤 성공적으로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각, 경기를 보며 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루이스 저 친구, 세계 최고 유망주라더니 진짜 같은데요? 오늘 드리블 실패하는 걸 못 본 것 같아요.”

“후반전 들어 정신을 차린 피코도 괜찮아. 미드필더에 저렇게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되잖아.”

“페레스 선수는 이제 자신감이 붙은 건지 오버래핑이 아주 대단하네요.”

한국보다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오가고 있었는데, 단 한 명만은 논외였다.

그들 일행이 모인 곳에서 상석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그 사람.

“…모두 대한민국의 공격형 미드필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그의 입이 열리자 일행들은 모두 집중하기 시작했고, 각자 받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다.

“좋은 선수 같긴 한데, 큰 매력은 느껴지지 않네요.”

“저도 저 친구를 보고 있긴 했어요. 대한민국의 모든 공은 저 친구에게서 시작되고 끝나더라구요.”

주변 사람들 중 일부 의견을 종합하면 반반.

엄청 매력을 뽐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하, 저 선수가 만약 아르헨티나 팀이었다면 올림픽 우승은 정해져 있으니까 나는 결승전을 보지도 않을 거야.”

하지만 상석의 옆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유건이 아르헨티나 팀의 공격형 미드필더라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일 거라고.

“…역시 친구라면 볼 줄 알았다니까. 어떤 팀을 가든지 1순위 영입대상으로 올리자고.”

그의 질문에 만족한다는 듯이 웃으며 상석에 앉아있는 남자의 말.

아직 팀은 구하지 못했지만 영입리스트 최상단에 유건을 올려두자는 것.

“그만한 선수인가…요? 어, 어! 저거저거!”

자기도 모르게 남자의 말에 질문하던 중 중계화면을 보며 놀란다.

후반전의 종료를 4분 앞둔 시점, 루이스에게 또 한 번 찬스가 찾아왔기에.

“와, 또 아까처럼 넣나 설마!”

두 명을 제쳐내고 골대의 빈 공간으로 발을 크게 휘두르는 루이스.

콰앙-!

공이 터질듯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다.

‘…이건 들어가야지!’

그리고 중계화면에 잡힌 그 장면을 직접 만들어낸 루이스의 속마음은 당연히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이었다.

발등에 제대로 얹혔을 때 받는 감각이 순간적으로 느껴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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