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36화 (36/208)

36화. 공은 둥글다는 말

“조금 더 집중해!”

“상백아, 나한테 바로 찔러도 돼!”

“호준아 한 번 죽여! 볼 잡고 천천히 돌려보자!”

아르헨티나를 상대하기 위한 올림픽 대표팀의 훈련은 끝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일모레 경기를 치르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서로의 움직임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호흡을 맞춰가고 있는 합숙 2주 차.

각자 원하는 바를 망설임 없이 외치는 훈련장의 분위기는 후끈했다.

“건아! 조금 더 빠르게 돌렸어야지!”

“거기서는 한 번 니가 찔렀어도 돼 인마!”

유건에게 들어오는 감독과 코치진의 주문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4-2-3-1이란 포지션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유건의 존재가 이유였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별 예선 통과뿐만 아니라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거기서 더 발전된 활약을 필요로 하는 포지션임은 틀림없었기에.

“수영! 한 칸 내려와서 플레이해줘!”

“왼쪽, 안쪽으로 먼저 파고들어와 줬어야 돼!”

“뒤에서 패스받을 수 있게 자리 잡아줘 현규형!”

유건도 그렇게 발전하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던 건 마찬가지.

주변 동료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하면서 빈 공간을 향해 달리고, 경기장 전체를 쉬지 않고 둘러보면서 더 좋은 흐름으로 팀을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현규야, 니가 거기서 압박을 못 풀어 나오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창수! 너도 전진패스 비율 좀 늘려봐.”

“상백아, 거기서 패스 미스가 나오면 어떡하냐? 위험지역이라고! 조금 더 집중해라.”

“화경이도 파고드는 게 늦어. 안쪽으로 미리 들어왔어야지!”

그리고 사실 요구하는 바가 많아지는 것은 모든 선수단에게 동일한 상황이었다.

축구는 열한 명이 함께 하는 스포츠였지만, 한 명의 실수가 치명적인 실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한 스포츠이기도 했다.

더불어 다음 경기에서 핵심적인 위치로 꼽히는 포지션의 선수들은 훨씬 더 감독의 지시를 잘 수행하고, 사소한 실수를 피해야만 했다.

‘…유건이의 움직임은 확실히 좋아. 헤나단 피코, 하비에르 마르티네스가 단단한 허리라인을 구축하고 있지만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그리고 그들의 훈련을 확인하고 있는 김진용 감독.

훈련과 경기를 진행하면서 선수들의 호흡이 점차 맞아들어가고 있는 게 눈에 보였으며, 이제는 두 명의 압박조차 벗겨내는 경험을 쌓고 익숙해지고 있는 유건의 모습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다음 경기에 관한 세간의 평가보다 훨씬 승리에 대한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삐이익-!

“자자, 얘들아! 2쿼터 종료다. 오늘 4쿼터까지 진행하니까 다들 편하게 휴식해라!”

그러던 와중, 시간을 체크하던 코치가 이번 훈련타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크게 불면서 외쳤다.

“허억, 허억!”

“어으, 오늘 진짜 빡세네!”

“오늘 열심히 준비하고 내일은 이집트 응원해보자고!”

휘슬 소리와 함께 있던 그 자리에서 드러눕는 것은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동일했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휴식 시간을 만끽했고 내일 예정된 일정은 전술 훈련과 컨디션 조절을 위한 자유시간.

물론 그 시간에는 자신들보다 하루 전에 시작되는 같은 조에 포함된 팀들 간의 마지막 경기 시청도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마르무쉬야, 우리가 친하진 않지만 말이다. 제발 두 골 정도만 넣어주면 안 되겠냐?’

그래서일까 접점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일만은 이집트 국민으로서 응원할 유건이었다.

코트디부아르를 격파시켜달라는 마음을 담아 머릿속으로 마르무쉬를 애타게 외쳐본다.

‘내일 이집트가 제발 이겨다오.’

‘쿠아바 내일 하루만 어떻게 부상으로 출전 못 하면 좋겠네.’

‘마르무쉬야 믿는다!’

마르무쉬가 허락하지 않더라도 내일 그는 기존에 응원하는 이집트의 팬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염원까지 두 다리에 담고 뛰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

내일 코트디부아르를 좋은 활약으로 격파하기라도 하면 국내 축구팬들의 초코파이 공세를 받게 될지 말이다.

***

- 그렇지이!! 마르무쉬 믿고 있었다니까!

- 입벌려라 마르무쉬야. 지금 형 손에 초코파이 들고 있다!

- 제발 이대로만 가자! 쿠아바 오늘 너무 무섭다 진짜

- 일단 조별 예선 통과만 확정 짓고 내일 편하게 경기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집트 선수단 여러분. 축따형을 봐서라도 이겨주세요!

축따튜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집트 VS 코트디부아르 중계방송.

저작권 문제로 나여름이 유건의 사진만을 띄운 채 채팅방만 열어두었지만, 축구팬들이 채팅방에서 나누는 대화는 활발했다.

후반 10분경, 동점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마르무쉬는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영웅 취급을 받고 있었다.

“경기가 이대로 종료된다면 우리 대표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방금 마르무쉬 선수의 돌파는 당장 초코파이를 입으로 넣어달라는 무언의 시위라고 봐도 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하하하, 마음같아서는 몽쉘까지 보내주면서 한 골만 더 넣어달라고 하고 싶지만!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력도 날이 서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8강 진출이 걸려있기 때문일 텐데 잠깐의 집중력을 잃은 틈을 타 득점에 성공한 이집트 대표팀 정말 대단합니다!”

중립을 요구하는 중계진 사이에서도 은근슬쩍 이집트를 조금 더 응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환상적인 돌파를 통해 득점을 만들어낸 마르무쉬를 편파적으로 칭찬하는 것도 잠깐, 캐스터의 본분을 깨닫고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력을 치켜세우며 마무리하는 안준성과 전지우였다.

아무리 중요한 경기더라도 한쪽에 치우친 중계는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말이다.

“나이스으으! 쿠아바야 제발 사고만 치지 마라!”

“마르무쉬야, 사랑한다 이 자식아!”

같은 시각,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합숙소에서도 비디오 분석 장소에 모여 다 함께 경기 중계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천금같은 골장면에 모든 선수들이 기뻐할 수밖에 없었고 김진용 감독의 불끈 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내일 결과와 상관없이 조별 예선 통과를 확정 지을 수도 있는 상황이 오기까지 한 시간이 채 안 남았으니까 말이다.

“아아…, 결국 쿠아바 선수가 한 건 해내고 마네요!”

“이집트 대표팀의 중앙 수비가 단 한 명에 의해 끌려다니고 결국 실점까지 연결되었습니다. 쿠아바 선수 정말 대단한 골입니다!”

예상하지 못하는 사고라는 건 원래 모든 이가 희망에 가득 차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대한민국 대표팀과 국내 팬들을 신이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이다.

후반 89분경, 종료를 앞두고 쿠아바를 믿고 롱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치던 코트디부아르 팀에서 결국 득점에 성공하고 말았다.

두 명을 등지고도 공을 뺏기지 않은 것은 물론 마침내 돌아서면서 터닝슛으로 골을 넣어버린 선수의 세레머니가 나오는 중계화면.

그건 어떤 상대적 관계가 있건 간에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장면임은 분명했다.

하아아….

“아으, 내 저 자식 오늘 폼이 좋아 보여서 어째 불안하더라니!”

“크흠, 내일 우리가 이기면 되는 거잖냐! 다들 긴장하지 마라.”

결국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난 뒤, 올림픽 대표팀이 있는 장소에는 긴 한숨을 내뱉는 일부 선수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쿠아바의 멋진 골에 감탄하면서도 성질을 내면서 죄 없는 물통을 우그러트리기도 했고,

힘이 들어가면서 꽉 쥐었던 두 손의 힘이 자신도 모른 채 풀려버리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애써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는 김진용 감독도 있었다.

‘에라이, 공이 둥글긴 개뿔!’

앉아서 한숨을 잠시 내뱉고 있는 것은 유건도 마찬가지.

조별 예선 통과라는 목적지로 쉽게 갈 수 있는 상황이 이제 사라져버렸기에.

공은 둥글기에 경기가 종료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옛말을 속으로 반박하면서, 아쉬움을 표현했다.

‘루이스 자식, 한 경기만 쉬라고 해볼까…?’

꽤 진지하게 자신의 절친한 친구에게 로비를 해볼까도 고민해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유건.

그렇게 승리를 쟁취하고 조별 예선을 통과해봐야 가짜일 뿐이었고 그 전에 먼저 루이스가 반대할 것이었다.

아무리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해도 자신이 사랑하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망가트리는 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자자, 분위기 처져 있지 말자고! 훈련했던 대로만 하면 내일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수영이 말이 맞다. 다들 긴장하지 말고 자신감 가지자고!”

전체적으로 조용해진 분위기에 다시 한번 장작을 넣고 열정을 불피우는 것은 이번 올림픽 주장을 맡게 된 김수영.

그에 뒤따라 코치들이 돌아다니면서 선수들의 등을 한 번씩 두들겨주며 화이팅을 외친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라는 여정에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첫 번째 갈림길에 도달하기 하루 앞둔 날이었다.

***

“…오늘은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만큼 긴장하고 있는 게 저뿐만은 아니겠죠?”

“준성 캐스터님. 지금 책상 떨리는 거 안 느껴지십니까? 저도 모르게 떨리는 다리가 제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라, 지진이 난 게 아니었군요? 아무튼, 드디어 약 삼십 분 뒤! 올림픽 대표팀의 중요한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국내 축구팬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들이 치킨을 주문한 채 기다리고 있는 올림픽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

대한민국 VS 아르헨티나.

중계를 하는 캐스터들도 선수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고, 그들과 같이 승리를 바라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 크, 나는 딱 맞춰서 치킨 도착했다! 축따형 한 골 가즈아!

- 진짜 아르헨티나 라인업 장난 아니다. 반 이상은 한 번쯤 들어봤던 이름임

- 8강 진출하게 제발 무승부라도 했으면 좋겠다

└ 무승부라니 형! 난 우리가 오늘 이길 거라고 본다

- 이번 대회 스카우터들 엄청 왔다던데 오늘 후안 루이스 경기니까 시선 집중되지 않을까? 선수단 중에 또 누가 유럽 진출할지 궁금해진다

└ 축따형 진짜 유럽 나가도 충분히 먹힐 것 같지 않음?

유건의 별튜브에서 대화를 나누는 팬들의 채팅만 보더라도 긴장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은 다 했다.

그리고 곧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는 세계의 축구 리그였기에, 올림픽 스타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스카우터들이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있다는 뉴스는 수없이 나왔다.

월드컵보다 어린 나이로 구성되는 올림픽은 젊고 창창한 유망주를 미리 선점하기에는 좋은 국제대회였으니까.

“대한민국!”

“화이팅!”

“으아아아!”

대한민국 대표팀의 라커룸에서는 포효가 울리고 있었다.

원을 그리고 모여 손을 맞댄 올림픽 대표팀은 우렁찬 함성과 함께 신호에 맞춰 하늘을 향해 팔을 들며 화이팅을 외친다.

“우리는 3승을 챙기고 무조건 1위로 진출한다!”

“더불어 루이스의 친구 놈을 박살 내보자고!”

그리고 같은 시각,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라커룸에서도 분위기는 똑같았다.

상대 팀에 자신의 친구를 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던 루이스였기에, 승리는 물론이고 유건에게 한 방 먹여주자는 게 그들의 오늘 경기 목표.

서로 다른 결과를 바라지만 승리라는 두 글자를 향해 경기를 뛰는 것은 두 팀 모두 마찬가지.

8강 진출과 함께 승리를 거머쥔다면 조 1위까지 넘볼 수 있는 대한민국이 상대적으로 얻을 것은 많았지만, 다른 조 2위와 경기를 할 수 있는 선두의 자리를 뺏기고 싶지 않은 것은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

삐이익-!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휘슬 소리가 지금 바로 이 순간,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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