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양두광으로는 안 되겠네
‘양두광으로는 역시 안 되겠네.’
“크윽! 가까이 와줘야 패스가 될 거 아니야!”
코트디부아르전을 대비한 연습경기에서 유건이 느끼는 감정은 양두광으로서는 도저히 쿠아바를 상상하며 훈련할 수 없다는 것.
고립되어 있는 한 명을 마크하는 연습이었기에 반대편 선수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K리그를 지배하는 점프 헤더 양두광은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애꿎은 팀원들에게 조금만 더 가까이 와달라며 소리치지만 훈련 내용이 그러한 걸 자기가 큰 소리를 낸다고 달라지겠는가.
“…쿠아바가 저렇게 쉽게 공을 빼앗기진 않겠지?”
“그럴 것 같습니다. 영상으로만 봤을 때도 공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저기서 돌아서서 공격작업에 엄청 기여하던데요.”
“쉽지 않구만.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자리는 정말 쉽지 않아.”
밖에서 지켜보며 답답해하는 것은 감독과 코치진도 마찬가지였다.
“건아, 그놈 몸이 돌덩이 같다고 그랬지?”
“평가전에서 둠바 있죠? 걔랑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무래도 너랑 나까지 내려와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인데, 니 생각은 어떠냐.”
“화경이형이랑 호준이형 믿고 수영이형까지 밑에서 플레이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감독님께 말씀드려야겠네.”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유건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김현규.
이미 어제 훈련에서 쿠아바와 동네 축구를 한 경험을 전파했기에, 기존에 생각했던 전술보다 조금 더 밑에서 플레이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해놓았던 유건.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현규는 방을 함께 쓰는 김수영을 빼고는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었다.
양두광은 박창수 한 명만 내려도 손쉽게 막을 수 있었지만, 거기서 등을 지고 공을 지켜낸 뒤 몸을 돌려 공격을 하기 시작하는 쿠아바를 막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그들의 결론은 김진용 감독에게 제안해서 조금 더 낮은 포지션에서 경기를 시작해보자는 것.
“감독님! 잠깐….”
생각을 마치고는 고민하지 않고 김진용 감독에게 다가가는 둘이었고, 다음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이용해 그들의 의견을 전달한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시작할 때는 안전하게 가보자고.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만 봐도 우리도 그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괴물 같았냐 건아?”
“네, 그놈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것도 되게 좋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을 내리지 않았던 김진용 감독과 코치진이었기에, 유건과 김현규의 의견은 수용되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맞붙어본 유건이 그렇게 말하는데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승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뿐.
쿠아바는 바로 이전 경기인 후안 루이스를 필두로 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상대하면서도 고립된 상황에서 결국 한 골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야수같이 포효하며 세레머니를 위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정말 홀란드와 닮아있었고, 경기를 같이한 루이스에게서 조심하라고 연락이 올 정도였으니까 말 다 했다.
‘루이스 그놈, 이렇게 빠르게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데….’
세계 최고의 유망주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후안 루이스의 재능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왔던 유건이었다.
본인의 실력이 최고였기에 주변 어린이들의 실력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던 그였고, 그런 그가 단 한 경기만에 잘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친구의 연락과 가볍게 찼던 동네 축구에서마저 느껴졌던 그의 아우라를 생각하면서 유건도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
경기를 뛰는 위치상 자주 부딪히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쿠아바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서.
“자! 다시 시작해보자 얘들아!”
‘…내가 패스만 잘 보내면 충분히 한 골을 더 넣을 수 있다.’
유건이 어제와 오늘, 내일까지 연습할 훈련은 역습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송화경, 이호준 등 날개의 위치에 있는 선수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다시 한번 대표팀 선수들을 호출하는 코치의 목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이동하며 내심 생각하는 유건이었다.
한 골을 먹더라도 자신이 패스를 잘하면 충분히 점수를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
“형들, 조금 더 앞으로 주면 어때요?”
“나는 발밑에 받는 게 더 편하긴 한데, 내 쪽 윙백은 안 달려드는 스타일이더라고.”
“왼쪽은 길게 주는 게 좋아. 내 마크맨은 헤딩 경합까지도 같이 뛰는 거 보면 아예 안 닿게 높이 때려도 돼.”
양두광을 위주로 한 수비를 연습하는 무리와는 떨어져 경기장의 한 곳에서는 역습에 관해 조금 더 상세한 얘기가 오고 갔다.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를 보며 양쪽 사이드백의 스타일을 파악한 송화경과 이호준 덕분에 그들이 어떤 패스를 받는 게 편한지에 대한.
달려들지 않고 기다리는 왼쪽 사이드백과 매치업되는 이호준은 발밑에, 미리 나와서 차단하는 스타일의 오른쪽 사이드백은 송화경은 긴 패스를 원했다.
그렇게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유건이 정확하게 패스를 주는 확률이 높기도 했고 그들 스스로도 한 명쯤은 제쳐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기회가 나면 우리 둘이 올라가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다음으로 말을 이어가는 것은 김수영.
주된 전술이 역습이라고 하더라도, 스트라이커에 위치한 김수영과 공격형 미드필더 유건이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에 세부적인 움직임까지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날개가 치고 달리는 게 애가 먹거나 막히는 상황이라면 그들이 받쳐주겠다는 작전.
전술의 큰 틀은 감독이 짜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런 세세한 부분들은 선수들이 직접 얘기를 통해 맞춰나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수비적인 부분도 잘 먹혀들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번 경기는 꼭 잡아야 8강 올라갈 텐데.”
“그 유명한 후안 루이스와 직접 맞붙는 게 기대는 되네. 같이 뛰면 진짜 클래스가 다른 게 느껴지려나?”
“…그 자식 대단하긴 해요. 어릴 때부터 좀 남달랐거든요.”
“으잉 너 그놈이랑 아…, 우리 막내 마드리드 유스 출신이지?”
“게다가 루이스랑은 절친입니다요. 어떻게 말해서 사인이라도 받아드릴까요?”
다시 훈련을 시작하기 전, 양두광이 고생하고 있는 쪽을 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내뱉는 김수영.
그의 말은 아르헨티나전에서 유건의 친구를 만나는 걸 고대하며 기분 좋아 보이는 목소리의 이호준이 뱉는 말에 묻힌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 하나는 루이스와 유건이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는 것.
친구의 사인이라도 받아주냐며 형들을 상대로 장난을 건 대가는 가혹했다.
“막내가 감히 형들을 놀린다 이거지?”
“크크크! 형, 형들 그, 그만요!”
내심 루이스의 사인 유니폼을 탐내고 있는 이호준이 유건의 목을 감싸 안아 움직임을 제한했고, 김수영과 송화경이 달려들었다.
겨드랑이, 허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축구화를 벗기고는 발바닥까지 간질이는 대표팀 선배들.
차라리 몇 년간 굳건하게 버텨냈던 폭력이라면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다들 모이자! 마지막 훈련하자!”
‘하아, 이 형들 진짜! 크크크크 아 이제 그, 그만!’
세트피스 연습을 위해 두 무리로 나뉘어있던 선수들을 불러모으는 코치의 외침이 들리지만, 유건의 주변에 있는 이들은 아직까지 놔줄 생각이 없었다.
몸이 구속된 채로 간지럼만 느껴지는 그 감정은 고통스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으니까.
“세컨볼 집중해!”
“현규 나이스 마무리!”
“좋아! 골이 안 되더라도 그렇게 마무리 짓고 내려와!”
간지럽힘의 시간이 끝나고 시작되는 훈련은 프리킥, 코너킥 상황을 가정하고 마무리를 짓고 내려오는 연습.
실제 경기 중에서 세트피스 상황에서 튕겨 나온 세컨볼을 끝까지 처리하지 않고 뺏겨버린다면 바로 치명적인 역습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골대 근처에서 마무리를 짓는 공격수들과 상황에 따라 안쪽이나 바깥쪽에서 튕겨 나오는 세컨볼을 마무리 짓는 미드필더들.
“자 오늘은 이쯤에서 종료하고 내일은 오전에 빡세게 뛰어보자!”
“다들 컨디션 조절 잘하고 복귀하면 간단하게 휴식할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세트피스 훈련을 끝으로 오늘의 훈련이 모두 종료되었고, 복귀해도 좋다는 김진용 감독의 말이 있었다.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복귀를 했고 몇 명만이 남아있었다.
“먼저 열 골 넣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지는 팀이 저녁 식사 내는 거 맞지? 메뉴는 먹고 싶은 거 다 시키는 거다!”
유건이 제안한 프리킥 내기에 참여하는 몇 명 말이다.
개인적으로 추가 훈련을 진행하고 복귀하려 했던 유건이었지만, 같이 조금 더 하고 가자는 선배들의 말에 내기를 제안한 것.
‘크흠, 형님들 열 골 넣더라도 제가 이거 채우기 전까지는 복귀 안 할 건데요…?’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52.59%]
[왼쪽 하단을 향해 프리킥을 차세요 (3/50)]
유건만 알 수 있던 목적이 있는 내기인 건 아무도 알 수가 없었지만.
***
“다들 알다시피 오늘 경기가 분기점이다. 스타팅 라인업은 어제 말했던 대로 시작할 예정이고 준비했던 대로만 해보자!”
“국내에서 많은 팬분들이 지켜보고 계신다. 공을 잡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나는 조별 예선에서는 멈출 생각이 없으니 혹시라도 패배하고 귀국하고 싶은 놈이 있으면 지금 자진해서 말하도록.”
“아까 잠깐 얘기했던 대로 최종 목표는 4강 이상에 자리하는 것이다. 스스로 얻어낼 성적에 한계를 두지 마라!”
“이기고 오겠습니다!”
와아아아-!
코트디부아르전 당일, 경기장에 워밍업을 나가기 전 라커룸에서 김진용 감독이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경기장에 도착하기 전 버스에서 잠깐 얘기를 하긴 했었지만 4강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감독의 말에, 선수들의 투지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되새기며 대표팀 선수들에게 한계를 두지 말자고 덧붙이는 말에 대답하는 건 김수영.
선수단을 대표하는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김수영의 우렁찬 대답 소리와 함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는 라커룸이었다.
“이번에 상대할 팀은 국내 팬분들이 아시는 대로 코트디부아르입니다!”
“피지컬적으로 우리 대표팀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실력은 전혀 밀리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집트전에서 나온 경기력이 또 한 번 나와준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올림픽 대표팀이 밀리는 부분과 강한 부분을 설명해주는 전지우 캐스터의 말에 안준성이 덧붙이는 승리 가능성.
수많은 세계리그를 중계하던 그들로서도, 국가대표 경기는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일반적인 중계를 할 때는 경기를 하는 두 팀의 승리 여부가 그저 호기심 정도였다면, 이번 경기는 한 팀의 승리를 바라면서 중계하는 상황.
약간 편파적인 내용이 섞일 수밖에 없었고 그게 대중들이 더 좋아하는 요소였다.
삐이익-!
‘…루이스, 기다려라. 우선 8강에 이름을 올려두고 붙어보자고!’
잔디의 감각을 느끼며 친구와의 대전을 기대하고 있던 유건의 귀에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들려왔고, 코트디부아르전이 시작되었다.
한국 올림픽 대표팀, 코트디부아르를 상대로 조별 예선 2차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