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32화 (32/208)

32화. 초딩 축구장에 나타난 박지상

[이집트를 3대1로 격파한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과연 그들의 목표는?]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와 승점 동일! 다시 한번 메달을 따낼 축구 대표팀?]

[이집트전 MVP 유건, “막내답게 선배님들을 잘 보필하겠습니다”]

첫 번째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난 뒤, 다음날부터 먼저 많은 뉴스가 나기 시작했다.

적절한 내용으로 분석하고 기대가 된다는 좋은 기사들도 있었고, 전혀 도움 되지 않고 대표팀을 욕 먹일 만한 자극적인 기사들도 당연히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과 TV 등 매체에서 나오는 수많은 뉴스들은 대중들에게 서서히 소문나기 시작했다.

“어제 올림픽 축구 진짜 장난 아니던데?”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것을 주제로 얘기하고 있었고,

“대머리 선수 한 명 있는데 엄청 잘하더라고!”

대표팀 경기만 챙겨보는 중년 팬들도 눈에 확 들어왔던 유건의 대머리를 주제로 삼아 말을 했으며,

“머리 길면 잘생길 것 같은 오빠 한 명 있던데!”

그 이야기들은 올림픽, 월드컵 경기도 시간 될 때만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는 사람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번 올림픽 축구 대표팀 경기 재밌다고.”

공통적인 의견은 바로 이것.

단 한 경기였지만, 한 경기만 더 이기면 8강 진출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기에 관심도는 집중.

당사자인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은 이런 세세한 상황까지는 몰랐지만, 국내 뉴스에서 자신들 관련해서 내용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 이번 올림픽 끝나면 우리 축따형 해외 진출도 가능할 것 같지 않냐?

- 아르헨티나전이 중요할 듯! 후안 루이스 얼마나 잘할지 궁금한데

- 우선 코트디부아르전을 이겨야 될텐데. 쿠아바가 좀 못했으면 좋겠다

- 그래도 승점 3점 얻고 시작하니까 맘이 좀 편안할듯한데 다음 경기도 꼭 이기자 축따형!

축따의 유투브는 뉴스 기사들보다 훨씬 더 난리가 나고 있었다.

이집트전에서 가장 활약한 1명을 꼽자면 바로 유건이었으니까.

1골 1어시스트가 공식적인 첫 국제전에서 기록한 공격포인트였고, 그 경기에서 이미 유명선수인 마르무쉬보다 더 빛나버렸기 때문이다.

“오빠! 지금 주변에서 오빠 얘기 너도나도 하고 있어요!”

“제가 축따 별튜브 편집자입니다!라고 광고하고 다니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아직 한 경기일 뿐인데 뭐, 다음 경기도 잘해야 될 텐데.”

“걱정마요. 오빠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여름이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유건은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이 더 많아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기분이 좋았다.

다음 경기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느껴졌지만 이제까지와 같이 그는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뿐.

시작일뿐인데 자만심이 생기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출발이 좋을 뿐이야. 코트디부아르까지 잡고 나서 기뻐하자.’

나이 제한이 있는 올림픽 경기였기에 일반적인 국제전보다 수준은 낮았지만, 그것은 한국 대표팀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유망주들이 2~3명 이상 포함된 일부 팀들을 제외하면 다 비슷한 조건에서 펼쳐지는 매치였고, 해볼 만했다.

당장 같은 조에 자신의 친구이자 세계 최고의 어린 선수 중 한 명인 후안 루이스가 있었기에 오히려 더 방심이라는 감정은 느끼지 않는 유건이었다.

눈앞에 닥친 코트디부아르를 격파하고 8강 진출을 확정 지어놓은 상황에서 맞붙고 싶었을 뿐이었다.

***

“상대 팀의 에이스는 의심 없이 이 선수다. 우리는 다음 경기에서 위치를 낮게 가져가면서 역습 위주의 전술을 가져갈 생각이다.”

김진용 감독의 말에 담겨있는 코트디부아르팀에서 가장 핵심적인 선수는 바로 디데 쿠아바.

얼마 전에 은퇴한 레전드 선수 중 한 명인 홀란드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피지컬과 좋은 발밑 기술, 빠른 주력.

거기에 흑인 특유의 쫀득한 탄력이 더해져 프리미어리그 U-23 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신예.

아직 1군에 콜업되어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아스날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확실히 두광이의 피지컬에 수영이를 합쳐놓은 것 같은데요. 저런 놈이 스물한 살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군요.”

“우리 막내랑 똑같은 나이인데 너무 괴물 같네요.”

“근데 건이도 실력으로 치면 괴물인 거 아니냐?”

“그 말도 맞네요 선배!”

이집트전이 끝난 다음 날 비디오 분석 시간에는 디데 쿠아바를 보면서 여러 선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김수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와 같은 나이인 유건과 비교하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에 돌아오는 송화경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거리는 수영이었다.

실력으로 따지자면 직접 경기를 함께 뛰는 유건이 더 괴물 같게 느껴졌으니까.

“현규도 생각보다 더 밑에서 플레이해야겠는데?”

“창수형은 올라오면 안 되겠는데요.”

“창수가 밑에 있는 게 낫겠네!”

그리고 영상을 보며 어떤 식으로 포지션을 가져가야 할지에 대한 의견도 오고 갔다.

빌드업을 주로 담당하는 김현규와 포백라인 앞에서 커팅과 압박을 담당하는 박창수 중 누가 더 아래쪽에 위치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

쿠아바는 스트라이커로서 혼자 고립된 지역에서라도 볼을 받은 후 좋은 발밑 기술을 통해 키핑에 성공한 다음 주변 동료들을 기다렸다가 그들과 연계하는 스타일.

대표팀의 결론은 어떻게든 그에게 압박을 가해서 공을 기다리는 김현규에게 전달하는 걸 일차적인 계획으로 삼고 박창수를 내리는 걸로 가닥이 잡혔다.

물론 혼자서 불가능하다면 김현규조차 내려와야 하고 위에서 공격을 위해 대기할 유건마저 위치를 낮게 가져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일 훈련부터는 두광이가 쿠아바 역할을 할 예정이다. 완전하게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신체적인 조건이 가장 비슷하니 해보자고.”

“맡겨만 주십쇼 감독님! 저놈이 더 유명하지만 축구선수로서의 경험은 제가 더 많지 않겠습니까!”

오후에 회복훈련만 진행하는 오늘과 달리, 내일부터는 다시 3일 뒤에 있을 경기를 위해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분석 시간이 종료되기 전 김진용 감독의 쿠아바 대비책은 훈련 중 그의 역할을 양두광에게 맡겨보는 것.

가지고 있는 발밑 기술은 클래스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차이가 났지만, 피지컬적으로는 비슷하지 않은가.

아마 김진용 감독으로서도 최선의 결정.

경험은 자신이 훨씬 많다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양두광이었지만 그가 잘하는 헤딩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지금 폼으로는 못 미더울 수밖에 없었다.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기에 아무도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상백이 이놈아. 어깨 좀 펴고! 축구선수 하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다.”

“…예, 예! 알겠습니다.”

“야 평생 프로세계에 있으면 그게 한두 번이겠냐? 잘하니까 너도 대표팀 뽑힌 거 아니겠냐고.”

자신감이 넘치는 누군가와는 반대로 이집트전에서 바닥을 친 자신감이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는 한 명의 선수도 있었다.

90분 동안 마르무쉬에게 영혼까지 털려버렸다가 맞는 표현일 것처럼 괴롭힘을 당했던 오른쪽 사이드백 정상백.

한 골의 실점도 그의 미스에서 나왔기 때문에, 경기 이후에도 그의 실력이 제일 부족하다는 국내 팬들의 평가.

물론 베스트 라인업의 선수가 부상을 당해서 대체로 출전했다고 할지라도 코트디부아르전까지 출전이 결정된 이상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일정이 종료되고 방으로 복귀하는 그 순간까지 대표팀의 다른 선수들은 박창수에게 위로하는 한 마디를 건넸다.

단 한 명만 빼고.

‘코트디부아르전에서도 욕 많이 먹으면 좋겠네. 박창수 놈도.’

밖으로 내뱉을 순 없는 말이었기에, 속으로 생각하는 유건은 위로는커녕 저주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 좋은 경기력으로 욕을 먹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유건, 잠깐 좀 보자?”

“…네.”

“선배가 힘들어하고 있으면 다가가서 기분도 풀어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물론 정상백을 모른 척하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던 유건이 꼴사나워보여 양두광이 불러세우고 불려가기 전까지.

대체 그가 힘들다고 왜 자신이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도 잠시였고, 이내 서울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화풀이 대상이 돼주었다.

“그래도 삼 년간 같이 지낸 선배가 이 지경인데 웃음이 나오냐?”

“니가 수비만 하러 내려왔어도 골 먹히진 않았다. 발발이 새끼야.”

“형님들, 이 새끼 데리고 저 스트레스 좀 풀겠습니다. 딱 대라?”

양두광과 박창수가 같이 쓰고 있는 방에 불려가서는 아직 대표팀 선수들이 모르는 행동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감독과 모든 선수들이 묵인해주던 서울 유나이티드와는 달리 그곳에는 자신들의 편이 없었으니까.

퍼억-! 퍼억-!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과는 반대로, 고개를 숙이며 고통을 참는 유건의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이런 상황이 언제 벌어질지 몰라서 상시로 휴대폰의 녹음 어플이 작동되고 있었으니까.

그들을 파멸시킬 자료가 하나 늘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버텨낸다.

***

‘…개새끼들, 어디 가서 차에 치이던지 칼이나 한 대 맞으면 좋겠네.’

방에 돌아온 유건은 잠깐 낮잠에 빠진 김수영을 뒤로한 채, 음울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 산책을 나섰다.

방금까지 당한 일을 행한 세 명이 사고가 나든지, 어떤 방식으로라든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건물들은 이쁘네.’

유건의 기분을 그나마 풀어주는 건 한국과는 다른 풍경의 예쁜 스페인 건물들.

그것을 보며 감정을 추스르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약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공놀이.

타앙-! 타앙-!

‘초딩 축구장에 나타난 박지성 같은데?’

자연스레 발걸음을 그쪽으로 돌렸고,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체구의 흑인이 스페인 아이들과 함께 벽에 대고 공을 차고 있었다.

다섯 명대 한 명의 경기였지만 어린아이들로서는 그의 공을 뺏을 수 없어 보였지만 공을 차는 모두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Hey! Come on Join? (이봐, 같이 하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몇 명이 있었지만, 약 십 분 이후에는 유건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

같이 공을 차려고 준비하고 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계속해서 지켜보던 유건도 자리를 떠날까 생각하고 있을 때쯤 휴식 시간인지 거대한 체구의 흑인이 가까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쿠, 쿠아바?’

그의 정체는 3일 뒤 맞붙을 코트디부아르 팀의 쿠아바였고, 유건에게 말을 건 이유는 열 명의 아이들이 축구를 하려 하는데 자신과 함께 그들을 상대하자는 것.

공을 차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고 승패에 상관없이 밝은 표정으로 어울리는 그들과 합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Sure! Why not?(그래! 안 될 이유가 있겠어?)”

‘직접 같이 차보면 더 느껴지겠지.’

익숙하지 않은 영어를 아는 단어만 간단히 내뱉은 유건은 쿠아바와 팀을 이뤄 열 명의 아이들을 상대해주기 위해 달려갔다.

하면 할수록 그와의 호흡은 완벽하다고 느낄 만큼 서로가 움직이는 방향을 향해 패스를 주고받았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축구공 하나만으로 처음 보는 사람과 합이 좋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 말이다.

오래전 유스 시절 때 루이스에게서 느낀 그 감정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있는 유건.

‘…대한민국이라.’

그리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에게서 공을 지키고 있는 유건을 보고 있는 쿠아바의 머릿속도 밝은 표정과는 다르게 복잡했다.

자신보다 덜 유명한 선수이긴 하지만, 올림픽 조별 예선에 함께 배치되어 있는 상대 팀의 선수를 모를 리가 없었다.

부드러운 터치와 몸놀림을 보여주는 그를 보며 다음 경기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이내 생각을 비우고 공을 쫓아간다.

눈앞에 축구공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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