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31화 (31/208)

31화. 오는 게 고와야 가는 게 곱다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안준성입니다. 옆에 있는 전지우 캐스터님과 함께 오늘의 중계를 맡게 되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종목 첫 번째 조별 예선 경기가 펼쳐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선발 라인업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정상백 선수가 눈에 띄는데요!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만큼, 좋은 활약이 기대됩니다.”

“무엇보다 마르무쉬 선수를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올림픽 대표팀의 첫 경기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데요.”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준성, 전지우 캐스터가 중계하는 채널에서 울려 퍼지는 그들의 목소리.

안정적이고 핵심을 짚어주는 안준성, 전체적인 선수들을 상세 설명과 덧붙여 소개해주는 전지우의 조합은 국내 축구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이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그까지 중계하기도 했고, 오늘 올림픽 중계까지 맡게 된 것.

와아아-!

“첫 승은 상당히 중요해. 모두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있는 만큼 부끄러운 모습 말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고!”

“하나 둘 셋! 화이팅!”

“화이팅!”

애국가 제창을 마친 이후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중앙에 모여 원을 만들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중간에서 외치는 김수영의 외침과 신호에 따라 다 같이 화이팅을 외친다.

삐이익-!

청명한 호각 소리가 울림과 함께 경기는 시작됐고, 촬영 시간이 아니었던 여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따튜브의 채팅창을 켜놓았다.

- 축따형! 진짜 너무 보고 싶었다 오늘 1골 1어시만 하자!

- 편집자분 항상 이렇게 경기 때마다 켜줘서 여기서 떠들 수 있어서 너무 좋음

└ 인정. 축구 카페보다 축따형 경기는 여기서 채팅하면서 보는 게 재밌는 것 같음

- 마르무쉬 진짜 리그에서도 날카롭던데 오늘만 좀 살살해주면 좋겠다

└ 형 걱 정마. 훈련 영상에서 축따형이랑 김수영 호흡 진짜 좋아 보였음

덕분에 유건의 팬들은 TV로는 중계를 보면서 대표팀의 아쉬운 장면, 좋은 장면에 대해 채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아! 미스입니다. 정상백 선수 집중해야 됩니다!”

“바로 압박을 들어오고 있던 마르무쉬 선수가 공을 가져가네요!”

서로 탐색을 끝내고 점차 공격을 주고받던 전반 30분경, 박창수가 압박을 피하기 위해 사이드 쪽으로 빼낸 백패스.

패스가 조금 약했던 것도 있지만 마르무쉬가 거세게 달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정상백은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제대로 터치하지 못했다.

둔탁하게 가져다 댄 발은 공을 생각보다 멀리 튕겨 내었고,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실수로 인해 너무 당황한 걸까요! 너무 손쉽게 제쳐지면 안 됩니다 우리 선수들!”

자신의 터치로 인해 공을 빼앗기자, 살짝 당황한 정상백은 이미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슬쩍 미소를 띠며 공을 길게 치는 마르무쉬.

일대일 상황에서는 사실 공격이 유리했는데, 그건 바로 공격수가 가속을 붙인 이상 수비수는 몸을 순식간에 틀어서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길게 쳐놓고 주력이 장점인 마르무쉬가 가속을 붙인 이상 타이밍을 놓쳐버린 정상백이 막기란 불가능했다.

“상백아! 형이 커버할 테니 정신 차려라!”

‘슬라이딩하면 발 닿을 수 있다. 제발!’

누가 실수했든 자신의 백패스로 인해 벌어진 일을 보고는,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커버를 들어온 박창수.

다행히도 마르무쉬가 크로스를 올리려고 할 때 슬라이딩하며 태클을 넣을 수 있었다.

주력만 빠르다고 프리메라리가에서 주전을 뛸 수 있을까? 그럴 리가.

크로스를 하려던 발에 슬쩍 힘을 빼더니 반대편으로 툭 쳐놓고 손쉽게 박창수의 태클을 피하며 앞으로 공을 한 번 더 치는 마르무쉬였다.

“아아, 뚫렸습니다! 대한민국 위기입니다!”

“저 선수는 사실 장점이 주력일 뿐이지, 드리블이 약점은 아니거든요!”

해설자들이 말을 하는 사이, 중앙 수비들은 돌격해오는 그를 막기 위해 급하게 위치를 수정하고 있었다.

한 명은 중앙에서 크로스를 받기 위해 달려오는 공격수를, 다른 한 명은 바로 슈팅을 날리는 걸 조금이라도 방해하기 위해서.

뻐엉-!

다행히도 그들의 커버마저 늦지는 않았다.

마르무쉬의 반 박자 빠른 슈팅을 몸으로 막아낸 중앙 수비수는 곧바로 자신의 발 쪽에 떨어진 공을 멀리 차 낸다.

패스의 의도보다는 클리어에 의미를 둔 그 공이 운 좋게도 김현규가 있던 위치로 향하고 있었고, 안전하게 트래핑한 그는 곧바로 유건에게 패스를 전달한다.

팀의 실수, 상대 선수의 개인 능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찬스였기에 이집트 대표팀의 수비 지역에 선수가 비어있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는 게 고와야 가는 게 곱다. 이 자식아!’

투욱-! 투욱-!

볼을 잡아낸 유건은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어낸 상대 선수를 속으로 곱씹으며, 공을 줄 곳을 찾고 있었다.

자신을 막으러 달려오는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는 말을 안 해도 미리 도와주러 내려온 김수영과의 이대일 패스를 통해 뚫어낸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꽤 먼 거리에서 슈팅 자세로 들어간다.

콰앙-!

‘대건이형한테 체중을 더하는 법 좀 배울 걸 그랬나.’

발등에 제대로 맞힌 공은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골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수비수가 달라붙기 전에 멀리서 때린 공이라 그런지, 골키퍼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 전부터 힘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임팩트가 좋았던 슈팅이라 바로 캐칭을 하진 못했지만 손쉽게 펀칭으로 막아내는 이집트의 골키퍼.

그 모습을 보며 용인 FC의 전문 중거리 슈터 김대건에게 배워놓을걸이라며 혼자 아쉬워하는 유건.

‘…서로 한 번 공격을 교환한 것뿐이지.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길게 가져가진 않았다.

좋은 기회를 창출한 상대가 기세가 올라갈 듯한 흐름을 보이자 그 분위기를 깨트리려고 때린 슈팅이었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정확히 임팩트가 되어 좋은 슈팅이 나갔던 탓에, 예상치 못하게 기대를 하게 되었기에 아쉬웠던 것뿐이었다.

자신감을 가지려던 이집트 대표팀에게 유건의 기습 중거리는 다시금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아깝다 건아! 나이스 슈팅!”

“조금만 더 가까웠으면 무조건 들어갔을 것 같은데!”

경기에 대한 집중을 잃지 않기 위해 자리로 복귀하는 자신을 향해 팀원들이 배려하기 위한 말을 하나둘 건네는 걸 들으면서 생각하는 유건.

‘생각보다 미드필더 지역의 수비가 안 빡세단 말이야.’

방금 쉽게 뚫어버린 그 공간.

이집트 대표팀의 약점일 수도 있는 부분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빛내면서 말이다.

***

대한민국 2 : 1 이집트

86:43

추가시간을 포함하여 후반전 종료를 약 10분 남겨둔 시점에서의 스코어였다.

전반전에 한 번 더 있었던 정상백의 실수로 마르무쉬에게 선제골을 먹혔던 대표팀이었는데 후반전에 와서는 거의 반코트 경기를 하고 있었다.

“다들 라인 올려!”

다시 한번 유건의 외침에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은 전체적으로 라인을 올리며 공격에 나선다.

전반에 유건이 추측해낸 이집트 대표팀의 약점을 하프 타임 때 라커룸에서 공유를 했고, 후반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격과 수비에 비해 미드필더진이 많이 약하다는 것.

반면에 유건, 현규, 창수로 구성되어 라인업 중 미드필더가 가장 강한 한국 대표팀이었고, 수비의 라인을 올려 중앙 지역의 숫자를 늘린다.

“호준이형!”

그리고, 이제는 다시 한번 스코어를 위한 공격을 할 차례였다.

중앙 지역의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점유율 위주의 경기를 펼치고 있었고, 거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히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유건은 주변 동료들과 함께 쉬운 패스로 공을 주고받으며 상대 선수들의 압박을 피하다가,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면서 날카롭게 파고드는 이호준의 발밑으로 패스를 찔러넣는다.

송화경, 김수영, 이호준 세 명 중 슈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공간을 만들어낸 사람.

월드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라면 없는 공간까지 만들어주는 킬패스를 하겠지만, 유건은 아직 그럴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위협적인 찬스로 이어질 공간을 만들어만 낸다면 그곳으로 패스를 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팀원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경기 중에 고개를 가만두지 않고 돌아보는 유건이었기에.

‘…이건 못 넣으면 욕 제대로 먹겠는데!’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이호준.

그의 전매특허는 용인 FC의 강바람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는데 빈 공간을 파고들어 가면서 들어오는 패스를 다이렉트로 골대에 꽂아 넣는 것이었다.

물론 국가대표이자 리그 베스트에 포함될 만큼 강바람보다는 실력이 한 수 위였고, 이미 스스로가 만들어낸 골을 위한 공간으로 유건이 패스를 넣어준 상황.

망설이지 않고 목표한 위치로 공을 강하게 때린다.

발에 맞고 날아가는 공을 보며 이번 기회에서 넣지 못한다면, 국내 팬들의 욕이 들려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뻐어엉-!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노릴 수 있는 위치는 세 가지.

첫 번째, 다리 사이로 알을 까서 살짝 밀어 넣기.

두 번째, 팔을 뻗기 전에 빠르게 측면으로 슈팅.

세 번째, 칩슛을 통해 달려 나오는 키퍼의 머리를 살짝 넘기거나 죽일 듯이 힘을 담은 슈팅으로 골키퍼의 머리 상단을 노리는 것.

공의 소리만 들어도 이호준이 전력을 다해서 슈팅을 한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큰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간다.

출렁-!

아무리 동체시력을 단련한 골키퍼의 포지션을 가진 프로축구선수라도, 사람이다.

머리 상단으로 지나가는 강력하고 빠른 슈팅에 눈을 살짝 깜빡이는 건 사람의 본능이었다.

물론, 잠깐 어둠이 찾아온 시야가 걷히고 나면 공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게 당연했지만 말이다.

“우리 선수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사실 후반전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걱정을 했었는데요!”

“강합니다! 첫 경기부터 아주 멋진 모습을 보여주네요 우리 대표팀 선수들!”

와아아아-!

대-한민국!

동점 골의 김수영, 역전 골의 유건에 이어 쐐기골을 넣는 이호준.

스페인의 경기장이었지만 경기를 보러 온 원정팬들이 있었고, 그들 앞에서 세레머니가 펼쳐진다.

힘차게 점프하며 주먹을 밑에서 위로 휘두르는 이호준의 동작에 큰 소리와 응원가로 화답하는 팬들.

삑! 삑! 삐이익-!

올림픽 대표팀의 첫 번째 경기가 승리했음을 알리는 휘슬 소리.

팬들이 만족할만한 경기력으로 좋은 출발을 보여주는 그들의 경기는 생각보다 훨씬 큰 반응을 가져올 예정이었다.

기대를 하지 않고 아예 시청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었기에.

압도적으로 승리를 따낸 이집트전은 국내팬들을 넘어 일반인들까지 회자될 것이다.

적어도 코트디부아르전을 치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