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30화 (30/208)

30화. 들었을까

“두광이형 막아!”

“각자 마크 놓치지 마!”

“길게 올려라!”

어느덧 조별 예선 첫 번째 경기인 이집트전은 하루 전으로 다가왔고,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의 훈련장에서는 세트피스 연습이 한창이었다.

양두광을 이용한 공격과 이집트의 에이스를 마크하기 위한 수비위치까지.

프리킥, 코너킥을 가리지 않고 반복하는 세트피스 훈련이었기에 지겹고 지칠 만도 했지만 선수단은 체력을 아끼지 않았다.

내일 경기를 위해 오후에는 훈련을 하지 않고 비디오 분석 시간이 있었으니까.

이집트 올림픽 대표팀의 에이스는 모하메드 마르무쉬.

23살의 그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세비야 소속으로 데뷔했고, 그 후 주전으로 자리 잡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건의 주변인으로 비교하자면 손태민과 강바람을 합쳐놓은 스타일.

빠른 주력은 물론 공간을 파고드는 그의 움직임은 프리메라리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수비 위주의 세트피스 연습에서는 그를 이미지 메이킹하여 각자 자신이 맡은 선수를 놓치지 않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잠깐 방심하는 사이 마크를 따돌리고 자유로이 움직일 능력을 가진 선수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마르무쉬 말고도 유명 팀의 유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은 이집트였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

“유건! 한 박자 빠르게 빠져나가!”

“현규! 뒤에서 세컨볼 더 빠르게 쫓아야지!”

“화경이 크로스 조금 더 정확하게 올려봐!”

“두광아 너 리그에서 하는 거에 반만 헤딩해봐라! 골대 안으로 내려찍으라고.”

경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만큼, 코치진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대표팀 선수단 중 지적을 받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날카롭게 수정하려 했고, 태극마크를 달 자격이 있는 그들인 만큼 빠르게 부족한 부분을 메꿔나갔다.

물론 K리그1에서 헤딩으로만 10골을 넣을 정도인 덩크 헤더 양두광의 헤딩 정확도는 형편없긴 했지만 말이다.

오히려 키가 더 작은 김수영의 머리에 걸릴 때가 더 정확할 정도였다.

“선발 라인업에는 수영이로 가는 게 맞겠지?”

“두광이 저 녀석, 리그와는 완전 딴판인데요. 몸 상태가 안 좋은 건지 너무 폼이 안 좋아요.”

“그래도 현규랑 창수 조합이 상당히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마치 옛날 기성용과 박정우 조합을 보는 것 같아요.”

“유건이는 있을 때랑 없을 때랑 전체적인 경기력이 차이가 나서 대체 불가할 것 같은데….”

“감독님 말씀이 맞습니다. 미드필더진은 확실히 선발 라인업이 결정된 것 같아요.”

오전 훈련이 종료되고 휴식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구석에서 김진용 감독과 코치진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장 내일 있을 선발 라인업을 짜야 하기도 했고, 꼭 들어가야만 하는 선수들을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무대이니만큼 경험이 많은 양두광을 내심 포함시키고 싶었던 그들이었지만 보여주는 폼으로는 겨우 조커카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체자인 김수영이 그보다 훨씬 월등한 폼을 보여주고 있었고 실력적으로는 사실 앞선다고 볼 수 있었기에.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은 미드필더진은 지금 구성이 가장 좋다는 것.

‘미들은 대표팀과도 비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김진용 감독의 머릿속에는 미드필더진만큼은 대한민국 성인 대표팀과 비교해도 그리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김현규와 박창수의 역할을 혼자서 하는 명실상부 에이스 손지민이 있었지만, 유건의 존재가 거기에는 없었다.

인천 유나이티드를 맡고 있는 이강인 감독 이후로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하는 선수가 그동안 없었던 대한민국.

강병훈이 새롭게 떠오르는 기대주였지만 부상으로 잠깐 축구팬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그를 뒤이어 나타난 유건이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대표팀 승선까지 한다면 팬들은 열광하리라.

‘강병훈의 패스 능력을 저놈이 기를 수만 있으면….’

유건이 강병훈처럼 킬패스 능력을 가졌을 때를 상상해보던 김진용 감독.

나중에 그런 선수를 자신의 전술로 사용해본다는 건 감독 입장에서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대로 만약 유건이 공을 뺏기지 않으면서 기회가 날 때마다 도전적인 패스를 찌르게 되는 날이 온다면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오전 훈련 종료, 오후 일정 브리핑을 위해 선수들에게로 걸어가는 김진용 감독이었다.

***

“건아, 가자. 시간 됐어.”

“네 형! 삼십초만요.”

훈련이 끝나고 돌아온 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는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유건이 샤워를 마치고 한 일은 감독과 코치진에서 찍어준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자신의 오늘 연습경기를 복기하는 것.

일정이 시작된 이후로 매일같이 반복해서 더 잘해지려고 노력하는 유건이었고, 그것은 눈에 띌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52.06%]

[연습경기에서 마르세유 턴을 성공시키세요 (4/2)]

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확실히 국가대표 훈련은 올림픽 멤버들이긴 했지만 강도와 수준이 높았고 동기화율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었다.

지단을 제외하고 다른 선수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언제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플레이를 복기하며 부족한 점을 하나둘씩 파악하고 있었다.

‘내 템포는 확실히 늦긴 하구나. 킬패스를 넣는 능력은 어떻게 기른담….’

빠르게 볼을 처리하긴 하지만 유건의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공을 안전하게 간수한 뒤 찔러주는 모습이 많았다.

그렇기에 갑자기 템포를 올리는 방법이나, 강병훈처럼 조금 더 위협적인 패스를 넣는 방법 등은 보완해야겠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가까운 친구 루이스의 경기만을 보더라도 세계 무대를 노리려면 그 정도 능력들은 더 필요하다고 느꼈으니까.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집트 올림픽 대표팀은 마르무쉬를 이용한 사이드 플레이를 할 확률이 높다.”

“분명 다른 위협적인 선수들도 있지만, 그를 저지하는 게 내일 경기의 핵심이 될 것 같다.”

김수영과 함께 걸어오면서도 머릿속에서 축구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던 유건은 비디오 분석실에 도착을 했고, 선수들이 다 모이자 약 20분간의 영상이 이어졌다.

이집트 올림픽 대표팀의 경기 영상.

마르무쉬가 있는 왼쪽 사이드 지역으로 공략하는 빈도가 70% 정도가 될만큼 그들은 한 명에게 의존적이었다.

나머지 선수들도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이니만큼 크게 보이는 약점은 없었지만 승리할 수 있을 만한 경기였고, 8강에 진출하려면 승리해야만 했다.

“내일 선발 라인업은 수영이가 스타트, 미들진은 현규와 창수 그리고 건이가 선다.”

“양쪽 윙은 화경이와 호준이로 시작하고, …오른쪽 풀백은 상백이가 뛸 예정이다.”

“선발이 아니더라도 벤치에서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먼저 스타팅 멤버로 시작한다고 해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라.”

“첫 번째 경기, 그리고 두 번째 경기를 잡고 아르헨티나를 상대하자고!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비디오 분석이 끝나고 일정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이집트전에 출전하는 스타팅 라인업 발표가 있었다.

부상을 당한 오른쪽 사이드백을 대신해서 나온 서울 유나이티드의 신예 정상백을 제외하고는 베스트 멤버였다.

그가 마르무쉬를 마크하게 된게 올림픽 대표팀으로서는 변수라면 변수였다.

그를 대비해서 내일은 밑에서 커팅을 통해 쓸어 담는 스타일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박창수가 오른쪽에 위치하여 정상백을 백업할 예정.

같은팀 선수인 그들이 호흡을 맞추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김진용 감독의 지시였다.

‘…알아서 하겠지. 그냥 처음 보는 같은 팀 선수라고 생각하자.’

그들이 출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유건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싫다 하더라도 경기에서는 사적인 마음을 빼고 경기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도 했고, 아예 패스를 그쪽 방향으로 주지 않는 것은 경기에 영향을 충분히 줄 요인이었다.

훈련기간 동안 양두광을 필두로 지속적으로 걸어오는 시비와 괴롭힘이 있었지만, 이미 유건의 휴대폰에 다 녹음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괴롭힘에 반발심으로 패스를 전혀 주지 않고 개인 플레이하는 건 이미 작년에 자신에게 영입 제안을 하는 팀이 하나도 없던 것에서 깨달은 점이 있었다.

‘너희는 내 장기 말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서 패스를 주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팀원들은 함께 경기를 뛰는 동료라면, 그들은 인간으로도 취급하기 아까운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냥 유건 자신이 그리는 경기의 흐름에 끼워 맞추기 위해 이용할 생각이었다.

일말의 믿음 자체도 주기가 싫었으니까 말이다.

“상백이랑 창수는 잠깐 남고, 나머지는 내일 경기를 위해 휴식하도록.”

“다들 컨디션 조절 잘하고! 방을 같이 쓰는 선수들끼리 아침 일찍 준비해서 나와라!”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마르무쉬를 막기 위한 특별 전술을 지시하려는 건지, 호흡을 맞추게 된 둘을 제외하고는 숙소로 복귀해도 좋다는 김진용 감독의 말.

그 말을 듣고는 각자 방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이었다.

“내일 잘해보자 얘들아!”

“무조건 이겨야죠! 조별 예선은 통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복귀하고 있던 김수영과 유건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동시에 돌아봤다.

그곳에는 송화경이 이호준과 김현규의 어깨에 양팔을 걸고 걸어오고 있었다.

이집트전을 잘해보자는 그의 말에 유건은 힘차게 대답하며 자신감을 내세운다.

“니가 잘하면 된다 막내야. 형들한테 패스 좀 잘 줘봐!”

“에이 현규형, 형이 중거리 슈팅으로 하나 넣어주세요.”

웃으며 유건에게 부담을 주는 척 장난을 걸어오는 김현규의 말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치는 유건이었다.

아직 용인 FC 팀원들만큼 편안하진 않았지만, 지금 함께 있는 4명은 그래도 올림픽 대표팀에서 가장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선배들이었다.

그런 그들과 목표하는 성적을 이룰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유건.

“형, 저 다녀올게요!”

“크크, 그래그래. 여자친구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이거!”

방으로 돌아와서 유건이 곧바로 한 일은 훈련과 함께 하루에서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바로 나여름의 목소리를 듣는 전화 시간.

“여름아!”

“오빠 잠깐만요! 저 감독님이 방금 부르셔서, 끊지는 말구요!”

이미 바로 전화하라고 코코아톡을 이용해서 연락하고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발신 버튼을 누른 유건.

하지만 마침 촬영감독이 여름을 호출했고 조금 기다려야 했다.

“…아, 보고 싶다 진짜.”

약 삼 분간을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 돌아오지 않는 그녀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나왔다.

“…뭐라구요 오빠?”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그 말을 들은 여름은 이게 현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되물어보지만….

뚜-! 뚜-! 뚜-!

‘으, 으아악! 드, 들었을까?’

갑자기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종료 버튼을 누르고 자기 머리를 두드리는 유건이었다.

혹시 그녀가 듣지 못한 건 아닐까 희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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