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26화 (26/208)

26화. 불편하게 소파에서

“마지막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용인 FC의 유건 선수입니다.”

- 그렇지! 축따형 안 가면 누가 가겠어?

- 솔직히 지금 국내 FA컵 활약만 보면 무조건 주전임.

- 강병훈이 부상 때문에 못 뛰어서 아쉽긴 한데 그래도 축따형이 있다!

- 이번 올림픽 진짜 재밌을 듯! 세계적인 유망주들 잔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 나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영광을 다시 한번 누릴 수 있겠네요!”

“진짜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방송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하고 내일은 좋은 경기로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FA컵 8강전과 오케스트라 연주회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유건.

내일 있을 시즌 29라운드 홈구장에서의 경기를 앞두고 방송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방송은 올림픽 명단 발표 시간에 맞춰 방송을 하고 있었기에 시청자들과 한 명 한 명 김진용 감독이 호명할 때마다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지막에 불리는 유건의 이름과 함께 실시간으로 대표팀 승선의 기쁨을 팬들과 나눌 수 있었고 덕분에 깔끔하게 방송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름아, 내일 9시 맞지?”

“네, 맞아요 오빠! 저는 촬영 7시부터 시작이라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때쯤에는 끝날 것 같아요!”

올림픽을 위한 원정길에 합류하는 게 확정되었다고 내심 속으로 가정하면서, 이미 여름이와의 축하 파티 일정을 짜뒀던 유건.

내일 오후에 있을 리그 경기를 마치고 밤에 지난번처럼 여름이가 지금 살고 있는 자신의 서울집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PD의 눈에 좋게 보였던 건지 분량이 조금씩 많아지는 여름이의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고, 유건이 차를 렌트해서 픽업 간다는 것까지는 확정된 사항.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간단한 전화 통화로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건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저기, 내일 그 V사 차량 렌트하기로 한 사람인데요. 그거 위에 뚜껑 열리는 오픈카 맞는 거죠?”

그리고 사실 한 번 더 전화할 곳이 남았다.

그녀의 주변인들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몰래 좋은 차를 끌고 가려는 유건이었다.

차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터넷에서 한두 시간가량을 검색했던 건 그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단지 운전 경험이 많지 않아, 시내 주행 도로에서 차량을 오픈시키고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건 몰랐을 뿐이다.

그래도 기특한 유건의 마음을 보고서는 여름이가 봐주지 않겠는가.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

“건아! 뒤로 빼줘 봐!”

리그 29라운드가 진행 중인 용인 FC의 홈구장.

이제 K리그2를 거의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건의 볼 키핑력.

상대방에게 공을 뺏기지 않고 소유권을 유지하며 공간을 찾던 유건의 귀로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김대건의 목소리.

듣자마자 살짝 뒤를 돌아보며 그의 위치를 인지하고, 힐킥으로 김대건이 달려오고 있는 방향으로 공을 살짝 빼준다.

뻐어엉-!

속도가 붙은 채로 체중까지 실어 차는 강한 중거리를 장기로 삼는 김대건의 슈팅은 공이 터질듯한 효과음을 내면서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뒤에서 보기에 회전이 거의 없는 상태로 날아가는 공은 그게 중간에 조금만 휘어도, 골키퍼가 방향을 예측할 수 없기에 막기 쉽지 않았다.

퍼엉-!

하지만 불행했던 두 가지.

공이 날아가는 방향이 골키퍼의 정면이었다는 점.

그리고 무회전 슈팅이 생각보다 휘어지지 않아 거의 일직선으로 날아갔다는 점.

그 두 가지의 불행이 섞여버린 슈팅은 골키퍼가 두 손 모아 뻗어내는 펀칭에 막혀 튕겨 나와버린다.

삑! 삑! 삐이익-!

그 슈팅이 막혀버린 건 아쉬웠지만, 그게 경기의 결과를 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용인 FC가 3-0의 스코어로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유건과 김대건의 콤비 플레이가 나온 시점 자체가 경기 막바지였고, 덕분에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를 끝내는 청명한 휘슬 소리가 울렸다.

“나이스!!”

“이제 몇 경기 남은 거지? 그때까지만 마음 놓지 말자고!”

라커룸으로 들어가며 하나둘씩 어깨동무를 한 채 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나누는 용인 FC 선수들.

그들 전체를 이끌며 말하는 박범호의 말대로 이제 몇 경기 안 남았다.

2위와의 승점 차이가 이미 벌어져 있었기에 승격을 확정 짓기까지의 승점이.

그때부터는 주전들은 실전 감각만 유지하기 위해 경기를 뛰고, 그동안 많이 출전하지 못한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거라고 예고한 이상찬 감독.

하지만 아직 조금 남은 상황이었기에 그전까지는 긴장을 유지해야만 했다.

“여수 유나이티드가 중간에 한 번 미끄러진 덕분에, 우리는 7경기 앞서나가고 있다.”

“앞으로 승격까지 4경기가 남았다. 나는 너희들이 충분히 일찍 승격을 확정 지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31라운드까지는 일정이 그나마 여유로우니 특이사항이 없다면 오늘 멤버로 뛸 생각이다.”

“그다음과 FA컵 4강은 크흠…, 에라이 유건 이 자식아! 너 올림픽 안 가면 안 되겠냐?”

“크크 감독님! 막내 군대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인데 한 번 봐주십쇼! 우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너를 젤 못 믿겠다, 이놈아!”

오늘 라커룸의 분위기는 댄스파티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제 올림픽 대표팀 명단 발표와 함께 에이스의 부재가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근심에 빠진 표정으로 말하는 이상찬 감독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희생하는 박범호.

덕분에 입가가 조금 씰룩였기에 그에게 장난을 걸어보는 이상찬 감독이었다.

“막내 너무 애정하시는 거 아닙니까 감독님! 건이보다 우리 오래 봤지 않습니까!”

“공격포인트는 참고로 제가 더 많은 거 아시죠?”

“저번에 평가전 뛰러 갔을 때도 잘할 수 있는 거 보여드렸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쇼.”

순서대로 위로를 더하는 강바람, 이윤성, 손태민.

그들의 말대로 유건이 없는 상황에서도 처음에만 미끄러졌지 다시 질주를 달렸던 용인 FC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상찬 감독은 머릿속으로 유건이 생각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빠져있을 때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을.

‘인천 유나이티드, 춘천 유나이티드…. 쩝, 상위권 팀들은 죄다 찔러보는구만.’

K리그1의 상위권 팀들은 10억이라는 바이아웃을 가지고 있는 유건을 영입하기 위해 다 달려든 상태였기에.

***

“오빠,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이 정도야 뭐! 근데 조연인데 생각보다 되게 오래 촬영한다?”

“헤헤, 그렇진 않죠. 감독님이 표정이랑 연기가 너무 역할에 잘 맞는다고 조금 더 비중을 높여주셨어요!”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정말. 역시 잘할 줄 알았다니까? 방송되면 이제 너무 인기 끌어서 못 보는 거….”

“어휴, 저번에 식당에서 오빠한테 사람들 모였던 거 기억 못 해요? 이미 오빠 때문에 밖에서는 못 보잖아요!”

유건이 촬영지 앞에 주차해놓고 기다린 지 약 30분 뒤, 촬영이 끝난 여름이 차에 도착했다.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미안함을 덜어주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하는 유건.

사실 자신의 플레이 하이라이트를 보며 피식피식 웃고 있었기에 진짜 아무렇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감독이나 선배 배우들에게 예쁨을 받고 잘하고 있는 여름이 기특하기도 하고 내심 걱정하던 일들이 안 일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유건이었다.

여름의 말대로 그들이 파티 장소를 외부가 아닌 집으로 정한 건 국가대표 평가전을 통해 얼굴이 이미 다 알려졌기 때문에.

지이잉-!

“크크, 그래도 이 오빠가 파티 느낌을 지금부터 내기 위해 좋은 차를 빌렸다는 거 아니야! 신기한 거 보여줄까?”

그 말과 함께 열리는 차의 뚜….

찌이잉…!

“…오빠, 오늘 날씨 습한 거 알죠? 당장 닫아요!”

반쯤 열리던 차의 뚜껑은 여름의 외침을 듣자마자 다시 한번 같은 버튼을 누른 유건의 손에 의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우렁차게 열리던 소리가 돌아올 때는 풀 죽은 듯이 작게 들리는 것은 유건의 착각이리라.

“오빠, 서울에서 운전해본 적 있어요?”

“우리 빠져야 된다니까!”

구단의 홈구장과 숙소까지 출퇴근길만 운전해봤던 유건은 몰랐다.

서울에서 운전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지 말이다.

뒤에 초보 딱지를 안 붙여서일까, 차선을 바꾸려 깜빡이를 켜는 순간 액셀을 밟는 다른 차들.

아니 사실 고급차량의 뒤에서는 그렇게 엑셀을 안 밟겠지만 사이드 미러의 감이 부족한 유건이 너무 가깝다고 느낀 것이다.

게다가 내비게이션은 왜 이렇게 보기가 힘든 것인가.

분명 용인에서는 안 보고도 운전을 잘했는데 말이다.

“여기서 좌회…!, 으으으으 오빠!”

20분이면 갈 거리를 돌아 돌아 50분 만에 겨우 도착했는데, 집을 앞에 두고 좌회전을 가리키는 내비게이션을 또 못 본 유건.

결국 장장 1시간 10분을 타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크흠, 미안하다 여름아.”

“이제 내렸으니 뭐라 안 할게요. 운전은 위험하니까 제가 뭐라 한 거 알죠 오빠? 긴장 많이 했을 텐데 좀 쉬어요. 제가 준비할게요, 오늘은!”

집에 도착해서는 차 안에서 유건을 너무 뭐라고 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건지 아름다운 얼굴로 싱긋 웃어주며 다독여주는 여름.

하지만 누가 탔어도 여름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긴장한 채로 말도 잘 못 꺼내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주변의 차량들을 체크하는 유건의 운전은 조수석에서 보기에 많이 불안했으니까.

그러나 그 불안함 속에서 탈출하고 도착하고 나서야 자신을 위해 마음 써준 유건에 대한 고마움이 생각나서, 준비를 자신이 하겠다고 맡는 여름이었다.

뽀옹-!

오늘의 주류는 나여름이 미리 검색을 통해서 사둔 와인.

안주인 생선회에 맞춰 화이트 와인을 산 것까지는 좋았지만, 몇 번 먹어보지도 않은 와인 맛을 그 둘이 알겠는가.

“소….”

“…맥?”

와인을 몇 잔 마시더니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낀 건지 여름의 눈을 쳐다보며 한 글자만을 내뱉었다.

바로 화답하는 나여름.

마치 짜놓은 것처럼 타이밍이 맞는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며 눈을 마주 보며 싱긋 웃는다.

각자 속으로 ‘꽤 잘 맞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채앵-!

“크으, 이거지!”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한 잔 홀짝이자마자 그들의 얼굴은 와인을 먹고 난 뒤 찡그리던 그 표정과는 너무나 달랐다.

조금 더 알맞은 것을 마시는 것 같은 그들의 감탄사와 함께 자리는 무르익어갔다.

서로 얼굴이 붉어지고 빈 소주병과 맥주병이 식탁을 가득 채워갈 때쯤, 그들은 취기에 몸을 맡겼다.

“…딸꾹, 범호형! 저 유건인데요!”

“FA컵 4강 꼭 좀 이겨주세요! 서울 유나이티드 개새끼들 꼭 부숴버리고 싶어요 진짜.”

“진짜요! 형 제가 믿는 거 아시죠!? 딸꾹.”

먼저 잠깐 자리에서 일어난 유건은 휴대폰을 들고 박범호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더니 FA컵 4강을 이겨달라는 부탁을 한다.

계속 언제 말할까 기회를 보고 있던 말이 취기를 빌려서 나온 것.

그리고 유건보다 취한 건 여름이었다.

“오빠, 오늘은 불편하게 소파에서 자지 말구요.”

“…편하게 침대에서 같이 잘래요?”

“어, 어…?”

멍하니 듣던, 유건의 얼굴은 순식간에 홍당무로 변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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