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25화 (25/208)

25화. 그것도 둘씩이나

철썩-!

재빠르게 반응한 골키퍼가 손을 급히 뻗었지만, 이미 그물을 때린 박범호의 헤딩.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헤딩은 골키퍼의 입장에서는 특히 반응하기 어려웠다.

공은 발보다 빠른 건 물론이고 손보다 빠르니까.

와아아-!

춘천까지 경기를 보러온 용인 FC 팬들이 자리한 원정석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

“막내야아아아!!”

“거기서 그걸 어떻게 생각했냐, 이 자식아!!”

그리고 경기장 안에서 용인 FC 선수들이 내지르는 함성.

골을 넣고 바로 유건을 껴안으러 달려오는 박범호의 거대한 덩치를 피하기 위해 슬쩍 몸을 트는 유건이었지만 잡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위로 손태민, 강바람에 이어 이윤성 등 다른 선수들이 몸을 차례대로 덮으면서 환호한다.

순간적으로 작전을 생각해낸 자신들의 막내가 대견했기에.

삑! 삑! 삐이익-!

“영상으로만 봤는데 훨씬 더 잘하시네요, 유건 선수. 올림픽 잘 부탁해요!”

“…아닙니다, 좋은 경기 감사합니다! 내년에 1부리그로 가게 된다면 다시 한번 좋은 경기 부탁드리겠습니다!”

“범호형, 내년에는 진짜 올라오시겠는데요?”

“흐하하하 그럼, 그럼! 올라가야지. 가서도 우리는 잘할 거니까 긴장하고 있으라구!”

결승 골이 들어가고 열한 명 모두가 수비에 투입되어 결국 한 점을 지켜냈다.

2-1로 끝난 경기는 용인 FC의 승리.

그 말은 그들이 FA컵 4강 진출에 성공했다는 뜻.

경기가 끝나고 좋은 경기를 펼친 양 팀의 선수들은 언제 으르렁거렸냐는 듯 덕담을 나눴고, 유건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선배들도 많았다.

오랫동안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온 박범호는 춘천 유나이티드의 몇몇과 인연이 있었는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말이다.

“으아아아, 4강이라고 4강!”

“작년에 32강에서 떨어졌던 걸 생각하면, 지금 진짜 믿기지가 않습니다!”

유일하게 4개의 팀 중에 남아있는 K리그2의 용인 FC.

그들의 질주는 이번 경기에서 멈출만한 게 아니었던 건지, 또 한 번 전진에 성공했다.

라커룸에서 포효를 내지르는 이상찬 감독을 감격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잠시, 선수들의 등을 두드리며 독려하는 박 팀장.

자세히 살펴보면 선수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고, 박범호의 눈가는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붉어져 있었다.

작년과 많이 달라진 상황에 감격을 숨길 수 없었기에.

“…솔직히 말하면 믿기지가 않는다. 그냥 너희들이 이뻐죽겠다.”

“다만 지금 내가 마무리 짓지 않고 기쁨을 숨기는 건 우리에게는 아직 리그 경기와 FA컵의 다음 라운드가 남았기 때문이다.”

“크크, 감독님 기쁨 지금 안 숨기고 있는데요? 안면근육이 씰룩입니다!”

“맞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집중하고 오늘 기뻐합시다!”

“티 났냐? 그래도, 안 돼 이 자식들아! 마음 흐트러지지 마라!”

아직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상찬 감독은 최대한 기분을 자제시키고 선수들의 기강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씰룩이는 안면.

그리고 진지하게 말해야 된다는 머릿속의 생각과는 반대로 웃음이 나오고 있는 게 그걸 방해했을 뿐이다.

그것을 선수들도 놀리지만 이내 다시 한번 다그치는 감독의 말에 조금은 조용해진 라커룸.

“그리고 알잖냐. 우리 막내가 4강전에 못 뛸 확률이 크다는 거?”

“김진용 감독이 강병훈도 없는 상황에서 저 괴물을 안 데려갈 리가 있겠냐고.”

이상찬 감독은 알고 있었다.

운 좋게 자신이 맡고 있는 팀에 들어온 보물.

유건이라는 어린 괴물은 감독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팀에 데려가고 싶은 선수였다.

그게 눈에 확연히 보이는데 올림픽 감독만큼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된 능력 있는 김진용 감독이 안 데려가고는 못 배길 거라 생각했기에.

“…그러니까 우리는 확정적으로 승격을 할 수 있을 때, FA컵에서 마지막 결과를 냈을 때 그때 모든 걸 풀고 웃는 거다.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또 한 번 견뎌내야 하는 유건이 없는 시간.

그걸 생각하니 조금은 답답함을 느끼는 선수들은 어느새 조용해졌고, 감독의 말에 집중한 채 우렁차게 대답한다.

막내가 돌아올 자리를 따뜻하게 만들어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 오늘도 다들 고생 많았다. 집 가서 푹 쉬고! 아무리 기분 좋아도 술은 자제해야 하는 거 알지?”

“유건이는 아까 감독님이 부르시더라. 사무실 좀 들렀다 들어가고.”

“네, 팀장님!”

단체로 구단 버스를 타고 복귀한 용인 FC 선수들과 직원들.

먼저 처리할 게 있어 인사도 못 하고 내린 이상찬 감독 대신 오늘의 마무리는 박 팀장이 맡아서 진행했다.

선수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할 때, 유건은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당황했지만 호출에 응했다.

똑똑-!

“감독님, 유건입니다!”

“…그래, 들어와서 앉아봐라.”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이상찬 감독.

말을 섣불리 걸기가 애매했던 유건은 옆에 앉아서 그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너를 원한다고 공식적으로 접촉해온 팀이 있다.”

“…네?”

“그것도 둘씩이나….”

유건을 영입하기 위한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

“여름아, 내가 앞자리로 빼놨다니까!”

“…거기서 영상 찍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니죠? 저라서 빼둔 거죠?”

“크흠, 제일 잘 보이는 자리 중 하나라고 그러더라구.”

회복훈련을 마치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온 유건은 쉬지 않고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시간을 맞춰서 참석이 가능했던 나여름과 잠깐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눈빛을 슬쩍 피하며 말을 하는 유건이었다.

잘 보이는 자리라는 건 사실이었기에.

와아아아-!

“안녕하세요, 용인문화회관에서 진행한 마에스트로 과정 수강생 유건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자분들께 본의 아닌 민폐를 많이 끼쳤지만 다들 이해해주신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자리를 채워주신 분들께 좋은 곡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즐거운 감상 부탁드립니다.”

총 다섯팀이 연주회를 진행하는 마지막 수업이었고, 앞의 네 팀은 이미 성공적으로 마친 뒤 마지막 차례를 맡게 된 유건이었다.

문화회관 건물에서 열리는 연주회다 보니 많은 자리가 있진 않았지만 주변에 사는 일반인들, 평가를 위해 참석한 전문가들 등 수십 명은 참석을 했다.

- 진짜 축따형, 열정 하나는 알아줘야 된다니까!

- 축구선수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데뷔하는 걸 내가 보고 있다니.

- 그동안 사실 제목에 지휘라는 말 들어가면 영상 안 봤던 형들 나와봐. 이건 봐주자

- 다 본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보다 실력 점점 늘어가는 거 보는 재미가 있긴 함

여름이가 촬영하면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축따의 방송 구독자들을 포함하면 매우 많은 숫자였고 말이다.

타닥-!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 유건은 그들을 뒤로한 채 마치 군인이 제식을 보여주듯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연주자들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 지휘봉을 잡은 손을 올린다.

꽤 오랫동안 반복 재생하기 위해 팬들이 축따의 별튜브를 접속하게 할 연주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빌드업.

‘시작은 부드럽게.’

“너무 듣기 좋은데?”

“그러게. 악기들 소리가 다들 아름답다.”

마치 축구선수들이 수비지역에서 공을 천천히 돌리면서 팀의 전술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게 시작되는 수많은 악기들의 연주.

아름다운 선율의 조화는 관객들의 귀에 소음이 아닌 듣기 좋은 음악으로 전달된다.

패스.

‘차례대로….’

“와, 저 악기 처음 보는데 소리 진짜 예쁘다.”

“…이거 플루트 소리야? 미쳤다!”

빌드업을 하며 기회를 보던 축구팀이 자신들의 동료에게 패스하듯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낸 뒤 다음 악기 연주자에게 곡의 흐름을 부드럽게 넘긴다.

유건의 오른손에 따라 주가 되는 악기가 정해지고, 왼손으로는 박자를 맞춰준다.

마치 공을 잡은 한 선수를 받쳐주기 위해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처럼 메인 악기가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연주자들이 잔잔하게 배경음을 채워준다.

차례대로 빛나는 각기 다른 악기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

조율.

‘지금!’

“뭔가 애매한 느낌이긴 하지만, 듣기 싫지는 않네요.”

“저런 해석이라니 처음 보는 방식이에요. 전공자들은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방향인데, 참신하군요!”

악기들을 돋보이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팀 전체의 조화를 만들어낼 차례.

지휘자의 역량이 중요해지는 순간이었고, 유건이 나름대로 해석해낸 곡의 흐름대로 지휘하는 시간이었다.

작곡가의 의도와 같지는 않겠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팀의 공격 방향을 지휘하던 것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리듬과 박자를 조율한다.

평가를 위해 참가한 전문가들의 귀에는 약간 이상하고 어색한 악기 소리들도 들려왔지만, 실망스러워하지는 않았다.

사실 초청받기는 했지만 아마추어 연주회였기에 더 낮은 수준일 거라고 예상하고 듣고 있었기에.

절정.

‘…올린다!’

- 와, 장난 아니고 진심으로 개멋있다 축따형.

- 나 좀 소름 돋는 것 같은데.

유건이 자신만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해석해낸 곡의 80% 지점.

천천히 움직이던 지휘봉이 조금씩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그에 맞춰 점점 악기의 속도들이 빨라지고 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마치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 중앙 지역과 사이드 지역을 두드리는 팀의 공격작업처럼 말이다.

동점 골이라도 넣겠다는 것처럼 쉬지 않고 몰아붙인다.

물론 전문가들의 눈에는 ‘벌써 올린다고?’라는 의문이 들 만큼 빠른 타이밍에 연주의 흐름을 가속시키는 유건의 지휘였지만, 연주자들은 믿고 따라간다.

누가 뭐래도 지금 자신들의 마에스트로는 유건이었기에.

‘더 세게! 마지막까지!’

마지막 3분 동안, 가속시킨 연주의 흐름을 유지하고 마지막에는 더욱더 몰아붙인다.

그 시간은 평가를 하러 온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 관객들, 방송으로 보고 있는 유건의 팬들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몸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소름이 팔에 닭살을 돋게 하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게 오케스트라의 마지막을 향해 쉬지 않고 지휘봉을 흔드는 유건.

마침내 힘차게 흔들리던 유건의 팔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모든 악기들의 연주가 일시에 멈춘다.

짝짝짝짝짝-!

“…대단한데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구요.”

전율.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수십 명이 수십, 수백 번을 연습했던 지금 이 지점.

아마추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막을 내린 오케스트라는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그제서야 몸을 타고 찌릿하게 올라오는 소름이 느껴지는 일반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박수를 친다.

심지어 전문가들마저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릴 정도였으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겠는가.

“제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연주회에 찾아와주신 관객분들과 함께 열연해주신 연주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박수가 사그라든 뒤, 손을 한 바퀴 돌리면서 절도있게 오케스트라의 종료를 알리는 유건.

다시 한번 그에 화답하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달려가서는, 해냈다는 표정을 지으며 끌어안고 있는 악기 연주자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감정을 공유한다.

‘…이 오빠 미친 거 아니야? 이렇게 멋있으면 대체 어쩌라는 거냐구.’

이미 좋아하는 유건에게 다시 한번 반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여름의 감정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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