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23화 (23/208)

23화.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시즌 26라운드 2-0 승리.

시즌 27라운드 4-1 승리.

유건의 복귀는 용인 FC의 질주에 가속을 붙였다.

사실 박범호의 안정적인 수비 리딩 덕분에 나머지 수비진의 불안한 실수들이 커버됨으로써 버티고 있다는 평론가들의 평가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질주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를 뛰어넘는 막강한 공격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건이 조율해나가는 용인 FC의 공격 과정은 스트라이커인 이윤성이 K리그1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 폼을 회복하게 해주었고,

빠른 주력을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왼쪽 날개 손태민과 돌파로 치고 들어가 득점을 꽂아 넣는 오른쪽 날개 강바람에게는 순풍을 불어주었다.

오늘 치러진 시즌 28라운드 경기는 2-2 무승부.

2위 팀인 여수 유나이티드와의 승점 6점이 걸린 경기였지만, 이상찬 감독은 과감하게 유건을 비롯한 베스트 멤버들을 로테이션했다.

그들과의 승점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나는 것도 그 이유였겠지만 바로 다음 경기가 FA컵 8강 경기라는 것.

상대는 K리그1에서 단단한 수비를 통해 골문을 지키고 주력이 빠른 공격수들을 이용한 역습으로 승리를 가져오는데 정평이 난 춘천 유나이티드.

“다들 고생했다. 오늘 경기를 뛴 너희들이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경기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상대의 준비된 세트피스를 못 알아차리고 대응하지 못한 내 실수다. 우리는 이제 다음 경기…, 또 한 번의 도전을 앞두고 있다. K리그1의 상위권 팀이라고 쫄지 마라. 내년에 우리가 지금처럼 압도적으로 치고 나갈 리그의 한 팀일 뿐이다.”

“감독님 그건 좀….”

“크흠, 아무튼! 사실 승격팀은 매년 강등 후보로 꼽히지만, 우리 팀은 내년에 이전의 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라 확신한다. 내일 경기는 그걸 증명하는 자리일 뿐이니 긴장하지 말고, 알지? 부숴버리는 거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무승부를 기록했음에도 오늘 라커룸의 분위기가 좋았다.

스타팅 라인업을 대다수가 후보였던 선수들이 구성했음에도, 자신들을 쫓아오는 2위 팀과 무승부를 기록했으니까.

그 말은 어찌 보면 확실히 1부리그에 올라가도 경쟁할 만한 선수진을 갖추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었으며,

용인 FC가 승격에 대한 준비를 확실하게 하고 있다는 걸로도 볼 수 있었다.

훈련에서 펼쳐지는 베스트 멤버와 후보 멤버들의 경기는 실력적으로는 종이 한 장 차이.

사실 유건이 후보 멤버팀으로 뛰게 되면 승리할 때가 더 많을 만큼, 근소한 차이였다.

‘FA컵은 무조건 이겨야 돼. 한국 FC 놈들을 만나서 복수하기 전까지 절대 떨어질 수 없다!’

‘8강 경기가 끝나고 나면 나한테는 또 한 번의 도전이 남아있지만….’

이상찬 감독의 말에 다음 경기에 대한 승부욕을 불태우는 팀원들을 보면서, 유건도 다짐했다.

K리그1뿐만 아니라 FA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8강에 함께 진출해있는 한국 FC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그리고, 춘천 유나이티드 경기를 마치고 다음 날에는 드디어 유건의 지휘 과정 마지막 수업인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을 쪼개서 연주자들과 화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누었고, 그들 몰래 경기 일정에 여유가 있을 때 밤새워 연습까지 하고 있는 유건의 또 다른 숙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지만, 아마추어 과정임에도 자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죽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확실히 대머리로 삭발하라는 거 빼고는, 도움이 되는 것만 시킨단 말이야.’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마에스트로 연습은 축구 경기 전체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흐름이라는 건 이 포지션의 이 선수가 빛날 수 있는 타이밍을 알아차려 유건이 그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머릿속에 울리는 메세지는 남아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개인 훈련까지 하게 만들어주는데,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47.32%]

[강하게 들어오는 패스를 부드럽게 볼터치 하세요 (58/50)]

벤치멤버였지만 몸을 풀 때 이미 오늘 해야 할 머릿속의 메세지를 완료한 유건이었고, 지단의 플레이와 조금씩이지만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었다.

아직 영문조차 모르는 데이터 동기화율이라는 게 올라갈수록.

***

“여름아,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되면 연주회 보러올래?”

“와 오빠 진짜 결국 끝을 보네요! 일단 촬영 스케줄을 봐야 해서 내일쯤 알려줄게요.”

춘천으로 원정을 떠나기 전날 밤, 나여름에게 연주회 일정을 다시 한번 되새겨주는 유건.

사실 마에스트로 과정에 참가하는 부분에 대해 처음에는 긍정적이지 않았던 여름이지만, 점차 그의 열정을 보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어떤 점이 축구에 도움 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유건이었지만 그가 축구 실력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은 여름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 다 떠나서 여름에게 유건은 마냥 멋있게 보일 뿐이었던 건 비밀이다.

“오늘도 방송에 와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내일 원정을 떠날 예정이라 오늘은 한 시간 정도만 방송하겠습니다.”

“우선 저는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만 지금은 생각을 하고 있구요. 감독님이 시킨다면 골키퍼까지 볼 의향은 있습니다.”

“경기는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이겨야죠!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떤 경기든 상관없이 그냥 승리가 목표입니다.”

“…사실 지는 건 생각 안 해봤는데요. 지면 크흠, 며칠 동안은 우울해서 방송 못 켤 수도 있습니다.”

잠들기 전 약간의 시간을 이용해서 방송을 하는 유건.

팬들과 대화하며 간단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고, 특별한 테마가 없더라도 이런 종류의 방송은 호응이 좋았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매번 이긴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혹시 지면 어쩔 거냐는 질문에는 항상 표정이 우울해지며 솔직하게 감정을 표출한다.

앞에선 웃으며 뒤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는 일부 별튜버들과 다르게 순진한 별튜버 축따가 인기를 끌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시즌을 잘 마무리하게 되면 구독자분들과 함께하는 이벤트를 좀 마련해볼까 생각하고 있구요.”

“물론 다들 아시겠지만 목표한 바를 다 이루면서 잘, 아주 잘 마무리된다는 전제하에서요!”

“그때까지는 축구나 지휘 과정에 집중하려는 점 양해 부탁드릴게요.”

“항상 팬분들의 응원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뛰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게요. 방송은 이쯤에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래, 축따형 잘 자고. 그래도 건강보단 축구가 우선인 거 알지?

- 형 밥은 챙겨 먹으면서 살자. 아 밥 먹으면서도 지단 영상 볼 수 있는 건 알지?

- 잠은 죽어서 많이 잘 수 있대. 항상 축구 잊지 말자

- 위에 형들이 축구 우선으로 하라고 말하지만 그게 또 방송 너무 쉬라는 말은 아니다 축따형

아직 한국의 2부 리거이며, 올림픽에서 빛이 날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따의 팬들은 항상 응원해주었다.

그가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게 만드는 성공 가도를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하면서.

그리고 사실 응원의 댓글만 유건이 확인할 수 있는 데에는, 욕설이나 비속어 채팅을 칼같이 차단해버리는 여름의 채팅방 관리 능력 덕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작은 인연으로 시작된 관계는 점점 둘에게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고 있는 건 행운이었다.

‘내일 경기는 상대방의 빈 공간을 찾아내는 데 달렸어.’

‘올림픽에서 강병훈의 패스 길을 주로 살펴본 게 도움이 되려나….’

몸을 침대에 던지고는 이미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내일 경기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던 유건.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그의 의식은 꿈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

“이번 시즌 용인 FC의 모습은 정말 대단합니다!”

“현재 유일하게 FA컵에서 생존하고 있는 K리그2의 팀이죠. 그들의 질주가 이제 대체 어디서 멈출지가 궁금해질 지경입니다.”

“오늘 경기도 상당히 재밌겠는데요. 창과 방패의 대결이죠!”

“막강한 공격력의 용인이 춘천의 방패를 뚫을지, 실패하고 제풀에 지쳐 쓰러져있다가 춘천의 역공을 맞을지! 벌써부터 제가 다 흥분되는군요!”

경기의 시작을 예고하는 해설자들의 말과 함께 경기장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포지션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였다.

K리그2 최강의 창이 K리그1 최강의 방패를 뚫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오늘 축구팬들이 기대하는 관심사였고, 이상찬 감독을 비롯한 용인 FC의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바였다.

삐이익-!

“건아!”

“막내!”

“맨온! 건아 이거 리턴 줘야겠다!”

마침내 시작된 경기는 유건을 위주로 한 용인의 볼점유가 잘 먹혀들었다.

이제 하나의 전술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그 부분에 있어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유건.

공을 빼앗기 위해 무작정 달려들면 간단한 볼터치를 통해 제쳐버리고, 패스를 받는 타이밍을 노려 달려들면 첫 번째 터치로 바로 패스를 주고는 빠져나가 버린다.

공격형 미더필더의 자리에서 그렇게 안전하게 공을 점유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 뒤의 선수들은 편안한 게 당연했다.

공을 빼앗길 위기에서도 어떻게든 유건에게 주면 다시 안전하게 공을 점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공을 보내주었으니까.

“바람 라인 보고 뛰어! 윤성이형 조금 내려와 줘!”

“범호 전체적으로 올려줘! 지금 뛰었어도 돼 태민이형!”

반말, 존댓말을 섞어가며 쉬지 않는 유건의 입.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을 끌어가기 위해 매 순간 동료들의 위치를 체크하면서 외친다.

패스 길에 양쪽 날개가 막혀있으면 스트라이커인 이윤성을 내려오게 해서 패스를 통해 길을 만들고,

공격 쪽에서 점유를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면 박범호까지 라인을 올리라고 지시하며 팀의 진형 전체를 조율한다.

이제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지네딘 지단이 경기장에 있는 것만 같은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유건이었고, 점차 마에스트로로 거듭나는 역사의 한 발자국이었다.

“니가 그렇게 잘한다지? 우리 둘이 동시에 마크하면 뚫을 수 있을 것 같냐?”

“우리 둘이 뭉치면 둠바보다 뚫기 어려울걸?”

“아직 어린놈인데 당연하지. 월드 클래스 수비수도 아니었잖아.”

춘천 유나이티드가 자랑하는 투 볼란치 전술의 핵심.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이 똑같은 볼란치 역할을 하며 상대 공격의 패스 줄기가 되는 사람을 패스가 나오기 전에 먼저 마크한다.

축구 경기 중 상대 팀 선수를 흥분하게 하기 위한 당연한 도발.

투욱-! 투욱-!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둠바 월드클래스 맞습니다.’

도발적인 언사를 외치면서 달려오는 두 명의 볼란치.

왼발바닥으로 공을 끌어오며 한 명, 바로 오른발바닥으로 공을 끌어와 바로 뒤돌면서 남은 한 명마저 손쉽게 떨쳐내고 곧바로 앞을 향해 달려가는 유건.

그들이 언급한 둠바는 훨씬 뚫기 어려운 확연한 월드클래스였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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