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예상과는 다른데?
- 축따 : 여러분! 5:24 이 선수 진짜 잠드신 줄 알았다니까요? 직접 눈앞에서 보면 모릅니다.
- 축따 : 아참! 7:36 여기 나오는 이 선수 카메라에는 안 잡혀있는데, 30초 누웠다가 일어나면서 씨익 웃는 거 제가 눈앞에서 봤슴다.
여름이가 올린 이란전 편집 영상에 달린 고정된 댓글.
휴식 시간을 이용해 유건이 올렸는데, 그건 바로 침대 축구에 대한 소감을 써놓은 것.
후반 88분에 교체되었는데 경기 종료 때까지 이란 선수가 쓰러져서 안 일어난 게 유건이 헤아린 것만 10번.
물론 그 시간을 일부 반영해주긴 했지만, 실제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의 체감상 훨씬 빠르게 끝난 느낌이었다.
- 축따형이 처음부터 출전했어야 됨
- 강병훈도 솔직히 잘하는 건 맞는데 사실 그냥 축따형 보고 싶음
- 일단 둘은 인성부터 너무 차이가 나니까, 축따가 더 잘됐으면 좋겠음
- 일본전에는 꼭 선발로 출전하면 좋겠다!
댓글창에는 축따의 다음 경기 선발 여부에 대해 얘기가 반 정도를 차지했고, 이번 경기에서 너무 조금 뛰어서 아쉽다는 반응이 남은 반을 채웠다.
‘…좋기는 한데, 아무리 맘에 안 드는 애라도 불쌍하긴 하네.’
아직 대중들에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합숙소의 분위기가 침체된 건 김진용 감독이 말한 한 가지 소식 때문.
유건에게는 좋지만, 대한민국에 있어 안 좋았던 소식은 강병훈의 부상이 꽤 심하다는 것.
올림픽이 끝난 후 다음 시즌 리그 전반기까지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덕분에 발표된 일본전의 스타팅 라인업에는 유건이 포함되어 있었고, 크게 실망시키지 않는다면 올림픽 대표팀 승선이 기정사실화되었다.
‘한국 FC 쓰레기들은 부상을 안 당하나?’
“건아, 내일 또 한 번 잘해보자. 아니지! 올림픽 끝날 때까지 잘 부탁하마!”
첫 번째, 두 번째 친선전 전날과 같이 선발 라인업과 일본전에 사용할 전술 공유의 시간이 끝난 뒤에야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강병훈의 부상 소식과 선발로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으로 돌아와 잡생각에 빠져있던 유건.
의식을 못 하던 차에 방에 들어온 김수영이 말을 걸어왔다.
“에이 형, 제가 할 말인데요! 올림픽에 앞서서 일단 내일은 꼭 이기자구요.”
“아참, 일본전 아직 안 뛰어봤지? 내일은 혹시라도 지게 되면 진짜 10년 먹을 욕 다 먹는다고 생각해라.”
한일전.
유건도 그 경기의 중요성을 들어봤고 결과에 따라 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하루 내내 그것을 더 찾아본다고 하더라도, 직접 경험해본 김수영의 썰을 듣고 있는 지금보다 실감이 안 날 것 같았다.
승리와 패배라는 두 단어.
역사적으로도 깊게 관계되어 있는 일본에게는, 가위바위보조차 이겨야 된다는 게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 생각.
바로 그 일본과의 경기이자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축구.
패배라는 단어는 절대 허용되지 않고 승리만이 허락되는 경기였다.
‘내일 멤버는 지금 내가 같이 뛸 수 있는 사람들 중 베스트야.’
‘…범호형, 바람이형 등 용인 FC 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대표팀이 미약하게나마 한 단계씩 앞서 있어.’
올림픽 대표팀에 오고 나서 깨달았다.
그동안 K리그2가 실력으로는 1부리그에 비해 별로 안 밀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개개인별로 조금씩 차이 나는 게 팀으로 합쳐진다면 꽤 큰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유건.
일본전 선발 라인업에 속한 사람들은 올해 유건이 같이 뛰어본 팀원들 중 베스트 라인업이었다.
그래서일까 내일 경기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
***
[사우스햄튼 소속 강병훈,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 불가!]
[올림픽 대표팀 강병훈, “부상으로 낙마하게 돼서 아쉽습니다. 제가 꼭 국민분들께 메달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에이스의 부재, 과연 김진용 감독은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인가?]
경기가 시작하기 전, 아침부터 쏟아진 기사들은 강병훈에 관련된 기사.
인기가 좋은 프리미어리거답게 옹호하며 위로해주는 댓글이 많았지만, 한 곳만은 달랐다.
- 이제 에이스의 칭호는 우리 축따형이 가져간다 병호야!
- 나이지리아전만 봐도 둠바가 축따형을 더 인정한 거임.
- 솔직히 강병훈은 유건보다 쓰기 위해 제약이 많음.
- 오늘 축따형 공격포인트 기대한다. 일본은 제발 이겨줘!
나이지리아전 이후로 이미 강병훈보다 유건을 높게 보고 있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팬심이 담긴 축따의 별튜브였다.
그들도 이제 곧 시작할 경기에 출전할 축따를 너무나 기다리고 있었다.
삐이익-!
“…한일전은 역시 저희도 너무 긴장되는군요.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 기분입니다.”
“오늘이 올림픽에 참가하기 전 서로의 마지막 경기인데요. 과연 이제까지 누가 더 준비를 잘해왔는지 드러나겠죠?”
“저는 우리 선수들을 믿습니다! 강병훈 선수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유건 선수가 나타났거든요!”
그동안의 친선전과는 관심도가 달랐다.
직관을 온 팬들은 경기장을 빈 공간이 없도록 빼곡히 메우고 있었고, 중계로도 거의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오늘의 경기였다.
상대가 일본이었기에.
“초반 5분, 한 골 잡자고!”
[지네딘 지단과의 데이터 동기화율 44.35%]
[일본전에서 패스 성공률 90% 이상을 기록하세요 (100%/90%)]
한국의 공으로 킥오프가 시작되었고, 김수영이 빼준 공을 받은 유건이 팀원들을 고무시킨다.
경기 전에 서로 입을 맞추고 나온 대로 초반 5분 동안은 열한 명이 모두 다 미친개처럼 압박하고 위협하기로.
유건이 한국팀의 흐름을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이끈다.
“건아, 돌아! 반대 바로 나가도 되겠다!”
“…아, 맨온!”
곧바로 시작한 첫 번째 공격은 왼쪽의 송화경을 통해 크로스로 가려 했으나, 일본의 수비수가 마킹이 좋았다.
두 번, 세 번의 페이크 동작에도 다리를 뻗지 않고 계속 기다리는 그때문에 다시 패스를 받으러 달려가는 중앙의 유건.
다가오는 공을 보며 받는 즉시 돌면서 오른쪽에 넓게 벌려있는 이호준 쪽으로 주려던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소리.
좋은 압박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뛰쳐나오는 상대 팀의 수비를 보며 김현규가 말한 것.
‘…어렵게 갈 필요 없지.’
한 번 마르세유턴을 통해 곧바로 달려오는 수비를 제쳐서 나가볼까 생각해봤지만, 한순간이었다.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였기에.
“현규형 땡큐! 이거 근데 바로 리턴 줘도 되겠다!”
슬쩍 뒤로 공을 내주고, 달려드는 상대 수비가 타이밍을 뺏긴 사이 움직이면서 다시 한번 외친다.
훈련 때도 느꼈지만 김현규의 패스는 자기 입맛에 딱 알맞다고 느끼는 유건.
그것을 생각하면서도 공에 집중한다.
상대 수비 지역을 등지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미 뒤에서 달려오는 수비는 보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오른쪽으로 반대 전환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 상황에서는 내가 왼발로 잡으며 돌아서는 것을 예상하겠지.’
순간적인 판단.
돌아서면서 오른쪽으로 치고 나가려는 움직임을 제약하기 위해 상대 수비는 유건의 왼발 쪽으로 발을 넣는다.
이미 반쯤 몸을 돌리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지금!’
하지만 몸이 약 70% 정도 돌아갔을 때, 유건이 살짝 땅에서 몸을 띄우며 왼발을 이용해 안쪽으로 공을 터치한다.
그것과 동시에 돌아가던 몸이 멈추고 반대 방향으로 훨씬 빠른 속도로 되돌아간다.
찰나의 순간에 유건이 성공해낸 바디 페인팅으로 인한 터치는 많은 것을 해결해주었다.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지키고 있던 중앙 지역의 오픈.
이제 남은 것은 김수영을 압박하고 있는 한 명의 수비와 유건을 조금 떨어진 채로 견제하는 다른 한 명의 중앙수비.
그래서일까 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쪽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날개들을.
물론 송화경과 이호준을 마크하는 각각의 수비들이 마크를 하긴 했지만,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움직임은 공격수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막말로 비어있는 한 공간으로 달려가는 건데 팀원이 거기로 공을 보내주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유건은 이미 보고 있었다.
상대 수비가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도전적인 패스를 보내는 강병훈 같은 킬패스 능력은 모자랐지만,
오히려 동료의 위치를 파악하고 인지하는 부분에서는 유건이 한 수 앞섰다.
“막내! 앞으로 찔러넣어!”
“건아!”
양쪽에서 들려오는 송화경과 이호준의 외침.
일본의 중앙수비들이 이제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흠칫 놀라며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리고 뛰어난 공격수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이대일 치자 막내야!”
곁눈질로 자신의 등쪽에 있는 수비를 계속 의식하던 김수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짝 돌아가는 수비의 고개를 보자마자 빈 공간으로 움직이며 유건을 향해 외친다.
그리고 유건의 머릿속에서도 선택지 중 가장 정답에 가까운 한 가지를 선택한다.
세 명 다 괜찮은 위치였지만 골대에서 가장 가까운 김수영이라는 정답을.
“나이스 패스!”
그리고 그 정답은 옳았다.
마크하던 사람을 따돌리고 앞으로 나가는 김수영에게 패스가 들어가자 당연히 유건을 떨어져서 견제하던 중앙 수비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수영이 바로 달려 들어오는 빈 공간의 유건에게 리턴을 보낸다면?
바로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진다.
투-욱!
망설이던 골키퍼는 골대를 아직 비우고 나오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유건의 눈에 넣을 수 있는 빈 공간은 너무나 많았다.
그중 하나로 패스하듯이 공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골대가 출렁이기도 전에 이미 코너 부근으로 뛰어가며 미소짓는다.
출-렁!
와아아-!
“이 미친놈! 개잘한다니까 우리 막내!”
“방금은 완벽했다 이놈들아!”
뒤늦게 공은 골대의 그물에 도착했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대한민국의 팬들이 환호한다.
그리고 그 환호를 들으며 산책하는 유건.
신나 하며 따라오는 김수영을 필두로 송화경, 이호준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도 뒤따라 조깅하듯이 따라간다.
‘…뭔가 통쾌한 기분이다.’
옛날, 대한민국의 명실상부 레전드 박지상 선수를 시작으로 황희창 등 다른 선수에게 이어진 한일전 전용 세레머니.
산책 세레머니였다.
경기장에 들어온 일본 원정팬들 쪽을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으로 조깅하듯이 뛰는 유건의 표정은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서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짝였다.
‘그리고, 너무 예상과는 다른데?’
유건은 오늘 라인업을 보고 절대 질 자신이 없어서 이길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의 실력이 예상과는 좀 많이 달랐다.
‘예상보다 더 못하네.’
유건과 경기를 하고 있는 이번 일본 올림픽 대표팀은 약했다.
생각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