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오랜만입니다, 선배님들
[올림픽 대표팀의 새로운 희망이 등장하다]
[강병훈과 유건, 올림픽 대표팀은 어떤 선수를 써야 하는가?]
[강병훈보다 멋진 실력을 보이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유건]
[유건, 알고 보니 구독자 5만 명을 보유한 별튜버!?]
김수영의 골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승부로 끝난 경기는 그날 저녁 이후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유건을 강병훈과 비교하는 기사부터 심지어 유건을 주전으로 써야 한다는 의견이 담긴 기사들까지.
그리고 축따라는 별튜브가 알려지면서 하루 만에 구독자가 10만 명으로 늘어났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축따의 별튜브에 올라온 하나의 영상이었다.
여름이가 올려준 [축따&둠바 유니폼 교환 하이라이트]라는 제목의 영상.
제목 그대로 경기가 끝나고 말이 통하는 유건에게 둠바가 다가와 유니폼을 벗으며 교환을 요청했고 일 분가량 이야기를 나누는 동영상이었다.
화제가 되는 이유는 축구팬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초특급 유망주와의 유니폼 교환이었기에.
게다가 영상에서 대화를 하며 서로 놀라는 표정도 짓고, 마지막에는 서로를 보며 주먹을 맞대더니 씨익 웃는 둘의 멋진 모습까지.
영상에서 나온 그날의 전말은 이랬다.
삑! 삑! 삐이익-!
“이봐, 잘생긴 대머리! 마무리 짓지 못한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그때는 내가 이긴다.”
경기가 끝나고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탓에 멍한 표정을 짓던 유건에게 다가오며 둠바가 유니폼 교환을 신청했고, 당연히 응했다.
물론 잘생겼다며 말하는 그 뒤의 단어는 못 들은 척했다.
“꿈 깨라 덩치! 일단 내가 어디든 입단부터 해야 만날 수 있다.”
“…이 나라의 2부리그에 있다고? 장난치지 마라!”
“맞다고! 레알 마드리드 유스에 있다가 여기로 넘어왔다.”
“어쩐지 스페인 말을 알더라니, 꽤 오래전에 넘어왔나 보군. 유스 경기에서 너 같은 동양인은 없었다.”
처음에는 서로 간단한 정보를 주고받고, 마드리드 시절 얘기까지.
우선 둠바도 이렇게 먼 나라에 와서 말이 통하는, 게다가 마드리드 출신의 선수를 만난 게 신기했기에 계속 말을 걸었고,
유건으로서는 TV중계로만 보던 친구가 말을 걸길래 긴장한 채로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긴장 안 하는 척하면서.
“…아무튼!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붙자고. 그땐 패배감에 머리를 박게 만들어 대머리를 초록색 잔디로 뒤덮이게 해주마.”
“이 자식아, 대머리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때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나는 당장 오늘 니 근육 같은 삼겹살을 구워 먹을 테다.”
“사켜살?”
“내가 세계 무대로 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다, 덩치.”
“좋지! 가능하면 다시 스페인으로 오라구!”
대화 중 살짝 도발을 섞은 둠바의 마지막 말에, 앞의 대답은 스페인어로 하고 삼겹살을 구워 먹겠다는 말은 한국어로 했다.
처음 듣는 발음에 되물어보는 둠바가 있었지만 지가 알겠는가.
그랬기에 유건은 태연한 표정으로 다음에 만날 기회를 기다리라며 씨익 웃고는 먼저 주먹을 내민다.
그에 씨익 웃으며 주먹을 맞대는 둠바였다.
그들이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준 친선전 경기였다.
그리고 이 대화가 담긴 영상은 특히, 축따의 기존 팬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 축따형 대머리로 밀기 전부터 방송 봤습니다. 진짜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 축따 이제 꽃만 걷자
└ 버릇없게 행동하지 마라. 축따 ‘형’이다.
- 와 제가 처음 봤을 때보다 구독자가 100배 늘었습니다 축따형. 실버버튼 받으시겠는데요?
- 김진용 감독님, 다음에도 강병훈보다 축따형을 선발로 써주세요!
- 얘들아 둠바형도 관심 써줘라. 먼저 축따형 알아보고 와서 유니폼 교환해줬잖냐
- 이란전이랑 일본전 빨리 보고 싶다. 당장 올림픽 했으면 좋겠다!
이제 댓글창에 축따형이 아닌 축따라고 말을 하면 대댓글로 장난스런 비난이 쏟아질 정도로.
“…으음, 이제 아마 10일 정도 남았을걸? 에이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사주냐?”
“축따튜브는 네가 없었으면 망했을 거야. 고기는 내가 쏴야지!”
“그치, 그럼 내가 합숙 끝나는 날 일단 서울집으로 갈게. 집에서 구워 먹자! 그래 그때 보자.”
바로 그 시각, 유건은 이란전을 이틀 앞두고 전술 훈련이 끝난 뒤 잠깐 여름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5일 간격으로 펼쳐지는 친선 경기 및 합숙 일정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약 10일이 남아있는 상태였고,
올림픽 대표팀 데뷔를 축하한다며 고기를 사준다는 여름이었는데 반대하면서 자신이 내겠다는 유건.
이제는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장소를 고민하던 그들의 결론은 서울에 있는 유건의 집에서 모이자는 것.
‘어 잠깐만, 여름이랑 집에서…?’
전화를 끊고 나서야 장소 선정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유건이었지만,
‘오빠랑 집에서 단둘이서….’
알고 있음에도 굳이 거부하지 않은 여름이었다.
***
“통성명은 굳이 필요 없겠지? 서로 만난 경험도 많을 테고 대충 해후를 나누도록.”
이란 전을 하루 앞두고 이틀 전의 리그 경기까지 참여하고 합숙에 참여한 와일드카드 세 명.
김수영과 다른 스타일의 공격수이자 덩크 헤더라는 별명으로 국내팬들에게 불리는 양두광.
전체적인 빌드업에 기여하는 스타일인 김현규와 잘 맞는 조합의 볼란치이자 공을 쓸어 담는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는 박창수.
이들이 유건과 악연이 깊은 한국 FC의 선수들이었고,
독일 2부리그로 진출해서 지난 시즌 꽤 괜찮은 활약을 펼쳤던 왼쪽 윙 포지션의 송화경이 마지막 세 번째 와일드카드였다.
“두광이형! 창수형!”
“나이지리아전에서 왜 출전 못했냐? 애들 다 모여서 TV로 봤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요. 형님들, 유건 저놈 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도 경기 봐서 안다. 뭐 그래도 우리한텐 아직 장난감일 뿐 아니겠냐? 크크.”
“그렇죠! 여긴 김수영이 분위기를 좀 잡고 있어서 제가 굳이 나서고 있진 않았는데, 형님들이 오셨으니!”
“일단 나중에 보자고, 김진용 감독은 나도 처음이라 바로 앞에서 뭐라 하긴 좀 그러니까.”
올림픽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지만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벤치를 지켰던 오른쪽 수비수 정상백.
그도 한국 FC 선수였던 유건이 들어오자 아는 척을 하려 했으나, 자신을 원수를 바라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에 애써 고개를 돌리며 무시했다.
하지만 양두광과 박창수가 오는 순간 그때의 순간적인 민망함은 괜한 분노로 변해버렸기에 다가가서 가장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이다.
“창수형 요즘 너무 날아다니는 거 아니에요?”
“두광이형 리그에서 만나면 좀 살살해요!”
유건이 보면서 감탄했던 K리그1의 인천 유나이티드.
2위인 그들을 앞서서 자리하고 있는 게 바로 유건의 전 소속팀이었던 한국 FC였다.
올림픽 대표팀은 사실 몇 명을 제외하면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띄워주는 한 마디와 함께 인사를 건넨다.
“지난 경기 잘 봤다. 막내 아주 잘하던데?”
“운이 좋았습니다. 다른 선배님들이 부담 갖지 말라고 긴장 풀어주시면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화경이형, 인마 이거 물건이에요. 사고만 안 치면 대표팀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니까요.”
“좋지! 수영이도 확실히 더 잘해진 것 같고! 형들이 보면 좋아죽겠는데?”
“에이, 아직 선발 자리도 못 따내고 있는데요 뭐.”
그리고 그들과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는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해서 이미 친한 상태인 송화경, 이호준, 김수영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머지 대표팀 멤버인 강병훈은 성격이 맞는지 저쪽에 있었고, 유건은 은근슬쩍 이 대화모임에 껴있었다.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한국 FC 선수들도 이유였지만 볼 때마다 계속 시비를 걸어오는 강병훈도 마주하기 싫었기에.
“다들 오늘 하루 푹 쉬고, 내일 경기는 나이지리아 전을 안 뛴 사람들 위주로 편성할 계획이고 밤에 모일 때 스타팅 라인업을 발표하겠다.”
“아직 못 뛰어봤다고 실망하지 말고! 최종 라인업을 구상하기 위한 평가전이니 부담가지지 마라.”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경기장에서 보여서 내 눈에 들란 말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자리를 끝내는 김진용 감독의 마무리 말과 함께 오후까지의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다.
이제 이란전 스타팅 라인업 발표와 전술 지시가 밤에 있을 때까지 휴식 시간이었다.
‘…그래, 조급해지지는 말자.’
김진용 감독의 마지막 말에 유건은 스타팅에 대한 욕심을 조금은 버릴 수 있었고, 출전을 하는 경우에 최대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대표팀으로의 첫 승선이었고 시작이었을 뿐이니까.
“건아, 나 잠깐 밖에 다녀올 건데 필요한 거 있냐?”
“아! 그럼 형 저는….”
합숙기간 동안 룸메이트로 배정된 김수영이 잠깐 볼 일이 있어 밖에 다녀온다고 했고, 유건은 사고 싶었던 물건을 부탁했다.
대표팀에 있는 동안 휴식 시간마다 유건이 하는 것은 바로 지휘 연습.
주민센터 지휘 과정의 구성된 오케스트라대로 연주회를 진행하는 마지막 과정이 남았는데, 합숙으로 인해 2주간 연습에 참여할 수 없는 유건이었고,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준 악기 연주자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짬짬이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높은음의 악기들을 위해서 팔동작을 조금 더 크게, 그때 애매했던 그 부분은 낮은음을 담당하는 연주자들이 잘 보면서 흐름을 따라올 수 있게 해야 돼.’
‘가장 중요한 파트는…, 어휴 여기를 내가 무슨 음악적 감각이 있다고 내 해석대로 끌고 가라는 거지.’
‘아! 이분은 크게 바꾸시진 않았구나.’
‘…이렇게도 바꿀 수 있네?’
지휘자의 역할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따라 통일되게 연주자들을 끌고 가야 했다.
하지만 기초적인 음악지식이 없었던 유건이기에 그 부분을 더 어려워했고, 할수 있는 것은 유명 지휘자들의 영상을 보며 참고하고 더 노력하는 것뿐.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우리 발발이 안 본 사이에 많이 컸네?”
한창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는 것에 열중했던 유건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지난 삼 년간 듣는 것조차 끔찍하게 싫었던 그 단어와 함께 지옥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쓰레기 같은 놈들, 역시 바람이형 말이 맞았어.’
“…오랜만입니다, 선배님들.”
이를 악물었지만 그들을 향해 몸을 돌릴 때는 겁먹은 표정을 지으려 했다.
아니 사실 어쩌면 몸에 남아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 의도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겁을 먹은 유건의 표정.
하지만 그 시절과 다른 게 있다.
방금까지 들고 있던 유건의 휴대폰은 녹음 어플의 버튼이 눌러져 있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