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17화 (17/208)

17화. 어때, 친구?

“유건 선수 놀랍습니다! A매치 데뷔전인데 긴장을 전혀 안 하는 듯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어요.”

“제가 처음 유건 선수의 승선 소식을 듣고 본 용인 FC 경기의 하이라이트에서 딱 저런 플레이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제일 눈이 가는 점은 빠른 볼처리로 공을 뺏기지 않고 쉽게 축구를 하고 있는 저 모습입니다.”

“이 선수가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개인기만 추구하는 플레이로 욕을 먹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완전 달라졌습니다 유건 선수!”

나이지리아와의 후반전 경기는, 유건에 대한 축구팬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별튜브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관심을 끊었던 기존 팬들.

2부리그까지 챙겨볼 정도로 축구에 진심인 축구광들.

방송이 업로드 될때마다 챙겨보던 축따의 팬들.

심지어 올해 유건의 발전을 지켜봐 왔던 별튜브의 구독자들마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유건은 말 그대로 경기를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현재 점유율은 대한민국 68% : 나이지리아 32%.

강병훈과 함께 뛰었던 전반전의 점유율이 약 5:5였던 것에 비해, 압도적인 격차였다.

그도 그런 것이 공을 위험지역에서 받는 유건이 뺏기지 않고 바로바로 빈 공간으로 패스를 보내주었으니까.

아직 전방으로 골을 쉽게 넣을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전매특허인 킬러패스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 축따의 방송을 시작부터 지켜봐 왔지만 이게 진짜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 채팅창 조용한 게 다 그런 생각이라서 그런 듯 생각보다 훨씬 잘한다 진짜

- 이제부터 축따형이라 불러라. 축구 잘하면 형인 거 다들 알지?

- 강병훈보다 잘한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냐?

└ 솔직히 아직 그건 무리지

실시간으로 켜져 있는 축따의 별튜브 채팅창에서도 칭찬 일색.

리그 경기에서 활약하는 것과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곳에서 활약하는 건 다른 얘기였기에.

아무리 나이 제한이 있는 올림픽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팬들이 감탄하면서 중계를 지켜보는 그 시각, 경기장은 선수들이 뛰면서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현규형! 지금 넣어도 돼!”

“맨온!”

뒤쪽에 붙어있던 상대 선수의 몸을 이용해 뒤로 눕는 척하다가 반동을 이용해서 앞으로 튀어나오며 유건이 외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K리그1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 김현규도 바로 패스를 넣어준다.

상대 선수가 붙고 있다는 의미에서 실제 축구에서 사용하는 Man On!이라는 용어와 함께.

‘현규형 땡큐요.’

급하게 공을 받으러 오면서 뒤쪽을 슬쩍 돌아보긴 했지만, 상대 선수가 발을 뻗기에는 거리가 조금 있다고 생각해서 일단 잡아두려 했던 유건.

하지만 김현규의 외침을 듣고 즉시 판단을 바꿨다.

상대편 골대를 등지고 있던 상황에서 반대편으로 몸을 순간적으로 틀며 오른발로 공을 끌어온다.

‘…됐어!’

“건아!”

그리고 쉬지 않고 곧바로 왼쪽으로 가려는 듯한 간단한 바디페인팅.

압박을 거세게 들어가는 상황에서 상대편이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슬쩍 멈칫하는 사이 왼발로 공을 옆으로 밀며 오른발로 치고 나가는 유건.

멋진 팬텀드리블을 보여주는 그 찰나의 순간, 올림픽 대표팀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인 이호준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유건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다.

‘이거지! 뭔가 다르다니까 막내!’

이호준이 그렇게 미리 움직이기로 마음먹은 건 훈련에서부터였다.

유건과 같은 팀이 되면 자신이 좋은 자리로 침투를 하고 있을 때 항상 패스를 찔러주었기에.

달려가고 있던 상황에서 공을 받은 호준은 몸을 뒤돌려 따라오는 상대편 왼쪽 수비수를 떨쳐내기 위해 한 번 더 앞으로 치고 나간다.

그리고는 전반전부터 변경된 작전대로 땅볼 크로스.

조금 달랐던 건 이번에는 컷백이었다는 것.

거기에 자연스레 달려들고 있는 건 몸을 조금 뒤로 뺀 채 기다리던 김수영이었다.

훈련때 익숙해진 이호준의 스타일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지체하지 않고 들어오는 공을 다이렉트로 슈팅으로 연결한다.

티-잉!

하지만 어느새 슈팅 코스를 가로막기 위해 뻗어오는 둠바의 발.

거기에 맞고 살짝 굴절된 공은 그물을 건드리지 못한 채 포스트바를 맞고 튕겨 나간다.

“나이스 슛이요!”

“수영아 아깝다 나이스!”

아쉬워하는 김수영의 뒷모습이 보이자마자 크게 박수를 치며 좋은 슛이었다고 위로해주는 유건을 필두로,

어시스트를 못 올렸다는 것에 실망하지 않고 함께 다독여주는 이호준.

전반전과 달리, 보다 조금은 호흡이 맞는 팀으로 변화되고 있는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이었다.

‘이번엔 위험했어, 저 동양인이 문제군….’

대한민국 선수들이 자신을 지독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른 채 유건을 의식하는 둠바.

올림픽에서도 토너먼트 정도는 되어야 자신이 긴장할 상대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후안 루이스, 토마스 에르난데스를 제외하고는 의식하고 있는 출전 선수는 없었기에.

하지만 오늘, 그 목록에 한 명을 추가해야 되겠다고 내심 생각하는 둠바였다.

“…유건이, 생각보다 훨씬 물건이군요. 감독님이 옳았습니다.”

“보기 위해서 내가 직접 구장에도 다녀왔다니까. 저놈 잘 발전하면 강병훈도 뛰어넘을 놈이야.”

“아직 무리겠지만, 확실히 오늘은 막내의 승리네요.”

“만약 저 친구가 더 발전해서 대표팀까지 가게 된다면, 손지민이나 박준철과의 호흡이 볼만하겠어.”

김진용 감독과 코치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경기장의 패스를 이끌어가는 유건을 보며 대화했다.

바르셀로나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는 손지민과 리버풀의 왼쪽 날개 박준철.

이미 군 면제를 받은 그들은 올림픽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지 않았지만, 유건이 만약 대표팀에 승선한다면 그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그려보는 김진용 감독의 표정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유건이 도전적인 패스를 많이 넣는 스타일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아니었지만, 감독과 코치들의 눈에는 강병훈과 또 다른 장점들이 많이 보였다.

우선 그런 스타일과는 반대로 안전하게 볼을 점유하며 경기를 이끌어가는 패스를 곧잘 하는 유건이었기에.

만약 그가 득점력이나 어시스트를 위한 패스를 넣는 부분에서 능력을 발전시킨다면, 김진용 감독의 생각대로 꽤 멋진 조합을 볼 수 있으리라.

“막내 장난 아닌데?”

“용인이 승격 못 하더라도 내년에는 K리그1은 오겠는걸.”

“작년까지 간간이 나올 때 경기력을 생각하면 방출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훨씬 잘해진 건지 궁금하네.”

마찬가지로 벤치에서도 유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

그들 중에서는 한국 FC에서 출전할 때마다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유건을 기억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오히려 더 놀라울 것이다.

그런 선수가 지금 눈앞에서 단순 변화 수준이 아닌, 거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바뀐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윙! 뛰어!”

대한민국의 벤치 쪽이 막내의 활약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또 한 번 공을 잡은 유건.

만회 골을 못 넣고 있는 탓에 약간은 조급해진 팀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는지 잠깐 공을 몇 초간 멈춰 세우는 듯하더니,

상대 미드필더가 달려들며 발을 뻗는 찰나의 순간을 노려 반대 발을 이용해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외친다.

‘세 개, 아니 네 갠가?’

앞으로 볼을 터치하며 한 명을 따돌린 유건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패스의 선택지는 총 네 가지.

둠바를 등진 채 손짓하고 있는 김수영.

나이지리아 수비수의 뒤를 돌아가며 안쪽으로 파고들려 하는 오른쪽 날개 이호준.

조금 더 사이드로 벌리며 넓게 위치하고 있는 왼쪽 날개 최형석.

뒤에서 달려 들어오고 있는 김현규.

‘…뒤는 막혔고, 형석이형과 호준이형 쪽으로도 주기 힘들어.’

뒤쪽은 방금 자신이 제친 상대 팀 선수가, 최형석 쪽으로 주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다.

아까 좋은 장면을 만들어냈던 이호준도 유건이 판단했을 때 약간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결국 남은 건 하나.

김수영이 둠바를 등지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그저 팀원을 믿을 뿐.

“…크윽, 부탁한다!”

그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김수영은 팔을 둠바의 허리를 두르는 듯한 몸짓으로 버텨낸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피지컬적으로 뛰어난 팀 중 하나인 번리의 교체 멤버로서 훈련에 열심히 참여했던 경험은, 체구가 딸리더라도 등을 진 채로는 둠바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수영에게 공을 주고 자신의 앞에 있던 상대 미드필더를 스쳐 지나서 달려온 유건에게 리턴 패스를 정확하게 내주는 수영.

유건의 귀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좀 힘겨워 보였지만 말이다.

“아 유건 선수! 아까 포스트바를 맞힌 슈팅 이후 가장 좋은 찬스를 또 한 번 만들어내는데요!”

“발을 뒤로 크게 젖히는데…, 아 둠바 선수가 또 발을 뻗고 있어요!”

“저 선수의 민첩성은 사람이 맞는 걸까요? 나이지리아가 수비를 한 명 줄이고 미드필더에 한 명을 더 넣는 쓰리백 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저 선수입니다!”

해설진들의 말대로 김수영의 패스를 건네받은 유건은 접지 않고 슈팅을 찰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둠바의 발이 뻗어오기 전까지는.

‘예상은 했지만, 이놈 진짜 사람 맞는 건가?’

하지만 그것을 예상하고 있던 유건이었다.

분명 아까 이호준의 컷백으로 만들어진 공격 기회에서도 김수영의 슈팅 타이밍은 적절했는데, 둠바의 발에 살짝 걸리는 것을 보았던 그때부터 말이다.

투-욱!

크게 휘둘러지는 유건의 발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소리.

둠바도 사람이었던 티가 났던 것이, 바로 앞에서 슈팅을 막기 위해 발은 뻗고 있었지만 몸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적으로 약간 틀어버렸다.

바로 찰나의 그 순간, 유건이 휘두른 발은 슈팅이 아닌 패스를 선택했다.

자신을 끈질기게 압박하던 등 뒤의 둠바가 없어지자마자 이미 자세를 정비하고 준비하고 있던 김수영.

아무리 프리미어리그에서 팀의 확실한 베스트 멤버가 아니더라도, 교체로 나와서 몇 골 넣은 적이 있다.

출-렁!

“으아아아아! 유건 이리와!”

그 세계적인 리그에서 골을 넣는 선수의 눈앞에 골대가 비어있는 상황.

골키퍼마저 유건의 큰 동작에 속아 그곳에 몸이 이미 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한때 우리나라의 영웅이 되었던 야쿠부가 부활하지 않는 한 넣지 못하는 게 더 어려웠다.

가볍게 패스하듯이 밀어 넣는 공은 마침내 나이지리아 골대의 그물을 흔드는 데 성공했다.

몸을 돌려 유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경기장을 가득 채운 붉은 악마들에게 뛰어간다.

앞이 아닌 뒤로.

‘으아아아아! 아니, 저 형 뒤로 뛰는데 뭐 저렇게 빨라?’

만회 골을 만들어낸 것에 기뻐하면서 따라가기 시작한 유건은 흥분한 김수영이 몸을 돌려 뛰고 있는데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무언가 깜빡한 게 있기라도 한 듯, 달려가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외친다.

“Qué tal, amigo? El fútbol no puede detener todo solo(어때, 친구? 축구는 혼자서 모든 걸 막을 수는 없어).”

분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둠바의 두 눈을 쳐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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