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12화 (12/208)

12화. 용인 오케스트라

“저 자식 막으라고!”

“공 발밑에 확실히 줘!”

“8번 체크!”

“쟤 오른발이야!”

3분 만에 유건의 첫 골이 터진 이후, 고요하던 필드는 전쟁터로 바뀌었다.

한 팀은 1부리그의 수준에 자신들의 능력을 비교해보고 뛰어넘기 위해서.

한 팀은 1부리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용인 FC 정말 대단합니다. 전주 FC는 중위권 이상의, 이번 시즌은 특히 상위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거든요!”

“선수들 눈빛 한 번 보세요! 상대가 강팀이라고 해서 전혀 주눅 들어 있지 않습니다!”

“역시 흥미진진한 국내 축구 리그입니다!”

해설자들도 흥분한 상태인 건 마찬가지였다.

2부리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승리는 전주 FC일 거라는 경기 전 축구팬들의 평가.

그런 예측이 뒤집어지는 건 언제나 흥미진진했으니까.

“…후우, 조금 더 빡세긴 한데 우리가 질 것 같지는 않은데?”

“아! 우리 건이가 한 골 넣었었구나!”

“으아아아 가자 후반도 이대로만 하자고!”

치열했던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 타임 시간을 이용해 라커룸에 들어온 용인 FC 선수들의 대화.

경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었기에 선제골을 넣었다는 걸 다시 한번 자각하는 선수도 있는 반면,

생각보다 훨씬 더 비등비등하게 흘러가는 경기에 자신감을 키워가는 선수들도 있었다.

‘이번 경기는 분명 중계되고 있을 거야. 조금 더….’

‘1부리그 별거 아니구만!’

‘이대로만 가면 이길 수 있다!’

“이놈들아,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방심하는 놈은 없겠지? 아직 45분 더 죽도록 뛰어야 된다.”

하지만, 팀원들의 마음 한편에는 조금씩 조금씩 방심이란 괴물이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한 건지, 후반전 시작에 앞서 한 번 주의를 주는 이상찬 감독의 말에 일부 선수들은 뜨끔했다.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방심이란 놈을 완전히 없앨 수 있겠는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몸집이 커버렸다.

마치 경기 시작 전 전주 FC 선수들의 마음속처럼.

삐이익-!

후반전 킥오프를 알리는 긴 휘슬 소리.

그와 동시에 일시적으로 휴전했던 전쟁터의 상황은 재개된다.

‘뭔가 다들 움직임이….’

가장 먼저 팽팽하게 유지되던 팀의 균형에 금이 가는 것을 느낀 건 유건.

“공 조금 더 빨리 돌리자! 한 박자씩 계속 늦어!”

크게 소리쳐보지만, 조금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아니 사실 더 빨리 소리치더라도 한 번 키워진 방심이란 놈을 걷잡을 순 없었을 것이다.

평소보다 더 좋은 시간, 좋은 화질로 중계화면에 나오는 자신의 활약을 조금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한 박자씩 더 늦게 패스를 주는 일부 선수들.

‘나 하나’라는 생각.

‘겨우 그 정도로는’이라는 생각.

그 사소한 생각들은 한데 모여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한다.

이번 시즌 강인한 피지컬을 이용해 중간에서 커팅을 하고 안정적인 빠른 볼 처리로 주목받고 있는 용인 FC의 수비형 미드필더 김대건.

‘몇 초만 더 키핑해보고 패스를…’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나온 백패스는, 박범호에게 도달되기 전 상대 팀이 낚아챈다.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하던 전주 FC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그 순간적인 실수를 포착한다.

미리 달려가고 있는 상태였기에, 가속을 붙여 백패스를 쉽게 빼앗았고 이미 박범호는 공을 받으러 전진하고 있던 상황.

그럼 그가 마크하던 상대 팀의 공격수는 어디 있겠는가?.

공을 뺏어내자마자 뒷공간에 노마크 찬스로 대기하는 자신의 팀원에게 패스하며 한 마디 외친다.

“까부는 것도 여기까지야! 운 좋게 선제골 넣은 걸로 설치기는!”

패스의 루트를 보자마자 골키퍼가 반응하여 빠르게 나왔지만, 사실 놓치기가 더 어려운 공이었다.

출렁-!

힘겹게 지켜냈던 전반전의 리드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대건이형 아직 원점이야. 한 골 더 넣으면 되잖아!”

골을 넣고 홈팬들 앞에서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상대 선수를 보기 힘든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김대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는 유건.

그가 말하는 대로 아직 원점일 뿐이었고, 상대 팀과 이제 동일한 상황에 섰을 뿐이었다.

“대건아 미안하다! 내가 조금 더 빨리 달라고 했어야 되는데….”

“자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해보자고. 부담가지지 말고 편하게 마음먹고 전반처럼 해보자!”

그리고 유건에 이어서 김대건을 위로해주는 박범호와 그의 자리를 메꿔서 팀원들을 독려하고 있는 강바람.

갑작스레 찾아온 실점은 다행히도 팀원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방심이란 괴물의 몸집을 조금씩 줄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의 상황이었다.

실점을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경기 시작 전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온 용인 FC였다.

이 경기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진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삐이익-!

세레머니가 끝나고 다시 한번 울리는 킥오프 휘슬과 함께 경기는 재개된다.

이윤성이 공을 뒤로 빼며 시작되는 또 한 번의 전쟁.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는 팀이 주인공이 되는 상황에서, 양 팀의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력을 다한다.

“범호! 놓치지 말라고!”

“중거리 나오게 놔둬도 되니까 돌파만 당하지 마!”

“사이드 뚫어보자!”

“세컨볼 확실히!”

급한 경기상황 중 일일이 나이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단지 팀원들의 이름만을 호명하는 게 편하기에.

경기장 안은 양 팀이 서로 동료들의 이름을 외치고 플레이를 맞춰가기 위해 소리치는 얘기들로 가득했다.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냐?”

“그래야 후회 안 하겠죠?”

그 이후 유효슈팅은 서로 두 개씩 주고받았지만 양 팀 다 득점이라는 결과물은 없었다.

후반전 정규시간을 약 3분여 남기고 상대 진영에서 빌드업하는 것을 압박을 통해 코너킥으로 만들어내었다.

헤딩하러 올라오면서 유건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박범호.

마침 유건도 동일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오른쪽 손바닥을 머리 위로 크게 펼치며 소리친다.

“오케스트라!”

유건이 요즘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해 지휘 과정을 연습하는 걸 놀리는 의미에서 작명한 작전의 이름.

그렇기 때문에 용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시 유건이다.

“크크, 확실히 이름이 촌스럽긴 해.”

“잘 부탁한다 우리 마에스트로!”

“유건아 기대한다!”

“범호형 빨리 빠져줘야 돼!”

서로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면서 한 마디씩 외친다.

누군가는 세트피스 작전명의 이름을 놀렸고, 또 누군가는 유건을 놀린다.

그 이외의 선수들은 상대 팀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그냥 내뱉는다.

이 상황에서 서로 어떤 대화를 할지는 안정해뒀으니까.

뻐엉-!

왼쪽에서 진행되는 손태민의 코너킥.

그가 찬다고 신호를 주기 위해 오른손을 슬쩍 들었다가 놓는 순간, 박범호와 이윤성을 제외한 선수들은 정해진 자리로 빠르게 이동한다.

생각해보라.

수비수의 입장에서 자신이 맡은 상대 팀원에게로 패스가 진짜 올지 안 올지 고민될 때, 당연히 따라가지 않겠는가.

“…크흠, 나는 아닐 텐데?”

날아오는 공은 확실히 바깥쪽을 향하면서 빠져있는 선수에게 패스가 가는 것 같았으나, 곧 안쪽으로 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주 FC의 수비수들은 이미 자신들의 마크맨을 따라서 골대 근처에서는 벗어난 상황.

경기가 시작할 때 자신에게 시비를 걸려 했던 수비형 미드필더가 따라 나오는 걸 보고 뒤돌아서 씩 웃으며 입을 여는 유건.

유건의 첫 골 때도 그랬지만 축구에서 하나는 확실하다.

공은 발보다 빠르다는 것.

그 수비수들이 다시 제 위치로 복귀하려 해보지만, 소용없다.

이미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가장 높이가 높은 두 명이 점프를 하고 있었으니까.

가까운 포스트에서는 박범호, 먼 포스트에서는 이윤성이 공중으로 뜨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세밀하게 짜여진 건, 손태민은 항상 먼 쪽으로 차고 강바람은 항상 가까운 쪽으로 차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더불어 운 좋게도 K리그1에서 마주쳐봤고 부상 당한 이후로 폼이 별로였던 이윤성보다는 박범호 쪽으로 수비가 조금 쏠려 있었다.

하지만 전주 FC가 모르는 게 있었다.

첫 번째는 이윤성은 이미 팀원들의 지원에 힘입어 부상 이전의 실력을 되찾아가고 있었다는 것.

두 번째는 박범호조차 그저 미끼라는 것.

이미 다 속아 넘어간 상태인 전주 FC로서는 이윤성을 막을 수비는 없었다.

물론 한 명이 있었지만 높이 자체가 달랐다.

강하게 내리꽂는 헤딩을 향해 골키퍼가 손을 뻗어보지만…,

출렁-!

자신의 뒤쪽에 있는 골대 그물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태민이형!!”

“윤성이 이 자식아!”

“으하하하, 윤성이가 해낼 거라고 했잖아!”

자신의 머리를 맞은 공이 골대 라인 안쪽에 있는 걸 확인한 이윤성은 미친놈처럼 손태민을 향해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그 뒤로 달려오는 박범호, 강바람, 김대건 등 모든 용인 FC 선수들.

원정팬들 앞으로 가서 자신들의 열정을 마음껏 뽐낸다.

중계로 보고 있는 국내 축구팬들이 있다면, 꽤 놀랐을 것이다.

체계적으로 선수들이 움직이는 것이 미리 짜여진 작전이었다는 것을 알아채면서 한 번.

경험이 더 많은 전주 FC를 확실히 속여내는 것을 보고 두 번.

그리고, 마지막에는 느낄 것이다.

용인 FC가 보여준 이번 세트피스는 꽤 괜찮은 오케스트라였다고.

실상 유건이 대단한 역할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이었다.

실전에서 마에스트로를 맡은 것이.

“윤성이만 남고 다 내려가!”

“막내야 발 넣지 말고 그냥 따라만 다녀!”

“태민이형, 바람이형 계속 압박해!”

그 이후, 한 번 더 동점 골을 넣기 위해 파상공세를 펼치는 전주 FC.

그러나 용인 FC가 그것보다 더 필사적으로 수비를 해낸다.

점점 수비에서 버텨가는 게 힘들어질 때쯤,

삐익-! 삐익-! 삐이익-!

“으아아아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주심의 휘슬에서 소리가 세 번 나는 순간, 유건을 포함한 용인 FC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드러눕는다.

승리를 잠깐 만끽하고 상대 팀과의 악수를 위해 바로 일어난다.

“축하해요, 솔직히 우리가 이길 줄 알고 방심했어요.”

“승격하시면 내년에는 꼭 복수할 겁니다.”

“승격하면 우승을 노릴 겁니다!”

경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는 나뉘어있지만 경기 중과는 다르게 서로 부드럽게 얘기한다.

축구선수는 축구로 얘기하는 게 맞았으니까.

유건이 상대 팀과 악수를 하고 있는 그 시각, 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축따의 팬들은 최근 영상에 댓글을 점차 달기 시작했다.

- 나 솔직히 하이라이트도 다 챙겨보진 않았는데, 앞으로 무조건 봐야겠다

- 축따 축구 개잘하네 진짜

- 경기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그냥 별튜버였는데, 이제는 뭔가 달라 보이네

그리고 중계를 보던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유건 오빠 이번에 골도 넣고! 중간에 멋지게 나온 장면도 많고….”

작은 단칸방에서 기분 좋아보이는 나여름이 휴대폰을 붙잡고 방방 뛰고 있었다.

축따 별튜브의 관리자가 된 그녀.

- 축따는귀여워 : 아 축따 진짜 너무 멋있다

그녀 역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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