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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따-11화 (11/208)

11화. 나 지금 떨고 있냐?

“여름아, 여기서는 이 부분을 중심으로 삼고 살려줬으면 좋겠어.”

“다르다고 볼 수 있는 분야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똑같고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런 느낌으로?”

“알겠으니까 오빠 얼굴 좀 너무 가까이 오지 말라구요!”

유건이 지휘 과정을 편집하기 위해 잡은 장소는 손님들마다 방을 예약해서 들어가는 룸카페.

밀폐된 공간이라 안 그래도 붉어지는 볼을 감추기가 힘들었던 여름이는 괜히 소리쳤다.

“그러니까 오빠, 이렇게 직접 악기들의 악보를 보여주더라도 우리가 전문적인 설명이 불가능하잖아요?”

“그래도 그런 게 영상에 딱 나오면…, 뭔가 더 있어 보이지 않나?”

“관련 지식 없는 시청자들은 안 좋아해요. 안 넣는 게 낫다고! 말 좀 들어 이 화상아!”

“편집자인 내 권한이야 이건 절대 안 돼.”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유건이었지만, 그게 어디 통했겠는가.

‘그냥 장난으로 시작해본 줄 알았는데, 오빠 꽤 진지하네.’

칼같이 차단해버린 여름이었지만 내심 생각하긴 했다.

아주 기본적인 정보도 없이 시작한 분야에 대해 열정을 보여주는 유건이 멋져 보였기에.

‘머리를 밀었는데도 잘생기면 어떡하자는 거야?’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의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는 유건의 옆모습.

날카로운 턱선과 남자치고 꽤 높은 코는 매력적이긴 했다.

물론 머리는 반짝반짝 빛났었지만.

‘귀걸이를 바꾼 것 같은데, 알아보면 여름이가 좋아할까?’

눈은 편집을 위한 화면에 집중시켰지만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건 유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가는 나여름.

그녀의 사소한 변화들은 왜 눈에 다 들어온단 말인가.

축구 경기 중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팀원들보다 더욱.

서로가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아낸다면 둘 사이의 관계는 조금 달라질지도.

선남선녀의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모태솔로로 살아온 둘에게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

“한 번 더!”

“태민이형 조금만 더 길게요!”

“건아, 지금보다 더 빠르게 빠져서 끌어내야 돼.”

전주 FC와의 경기를 위해 원정을 떠나기 하루 전날까지 용인 FC의 훈련장에서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세트피스 연습 중 코너킥 상황이었는데, 베스트 라인업 중 최장신에 속하는 이윤성과 박범호를 이용한 공격 루트였다.

왼쪽 코너킥은 오른발의 손태민.

오른쪽 코너킥은 왼발의 강바람.

바깥에서 휘어져 들어오는 크로스를 위해 반대 발로 편성되었다.

그들 네 명을 제외하고 유건을 포함한 다른 선수들이 맡은 역할은 각자에게 붙은 수비수를 끌어내 주기 위해 약속된 장소로 빠져주는 것.

단 며칠 동안 한다고 되는 훈련은 아니겠지만 혹시 아는가.

실전에서 한 번 먹힐지 말이다.

티-잉!

“나였으면 넣었다 윤성아!”

“어차피 나나 형이 헤딩할 거 알고 다른 형들이 지금 위치선정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다구요. 머리 맞힌 거 자체가 대단한 거라니까요!”

훈련 종료 시간에 맞춰서 올라온 마지막 코너킥 연습은 이윤성의 머리를 거쳐 골포스트를 맞히고 튕겨 나갔다.

경쾌한 골대의 소리를 만들어낸 이윤성은 목을 감싸며 약 올리는 박범호를 떨쳐내며 투닥댄다.

“그만하고 정리하자!”

“자자 다들 공 챙기고, 조끼 벗어서 저기 던진 놈 누구냐?”

“코치님 누구겠습니까! 유건이 얼굴에 범인이라고 써있슴다!”

“막냅니다!”

훈련 종료를 알리는 이상찬 감독의 말을 시작으로, 코치들의 주도하에 뒷정리가 시작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형광조끼를 가리키며 소리치는 코치의 말에 짜기라도 한 듯이 막내 꺼라고 대답하는 팀원들.

어떻게 보면 따돌림이라도 하는 것 같지만, 3년간 버텨냈던 한국 FC와는 많이 달랐다.

“장난인 거 알지 막내? 삐지지 마라 이놈아, 전주 한번 이겨보자고!”

웃으면서 조끼를 주우러 가는 유건 옆으로 강바람이 옆에서 같이 달려가는 와중에 장난치면서 헤드락을 걸고 있었으니까.

***

“난 우리 팀이 절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 비해 상대가 약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걸 위해 우리가 요 며칠 동안 수비수와의 신장 차이를 이용한 공격 연습을 했고, 통할지에 대한 확신은 사실 없다.”

“그래도 이놈들아! 승격에 성공하면 어차피 만날 놈들이다. 그러니까….”

“감독님! 오늘 답지 않게 왜이렇게 떨고 그러십니까? 몸이 아주 흔들립니다 지금.”

“…크흠흠, 나 지금 떨고 있냐?”

이틀 뒤, 전주 FC의 경기장에 있는 어웨이팀 라커룸에서는 조금의 해프닝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몸을 풀러 나가기 전에 이상찬 감독의 연설이 있었다.

K리그1에 소속된 팀과 경기가 올해는 처음이기에 보통보다 훨씬 긴장을 하고 있는 이상찬이었다.

그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을 알아본 박범호가 장난식으로 분위기를 풀어주고,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기다리던 선수들의 긴장까지 덩달아 조금 풀렸다.

“아무튼! 난 우리 팀의 승리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긴장한 놈들도 있을 테니 상대 팀 경기장이지만 오늘은 한번 하자 얘들아.”

“부숴!”

“버려라!”

“으아아아아!”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웃다가 침착을 되찾은 이상찬은 선수들의 긴장을 좀 더 풀어주기 위해 제안한다.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들만의 구호를 외치자고.

상대 팀을 부숴버리자는 그들의 외침은 경기 시작 전 라커룸을 울린다.

반면, 홈구장에서 경기하는 전주 FC의 지금 분위기는 조금 상반되어 보였다.

“올해 시즌 출발 너무 좋다니까 정말! 대진 잘 걸려서 편하게 가겠네.”

“며칠 전에 한국 FC랑 차고 얘네랑 찬다니까 힐링하는 느낌이네.”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용인 FC를 무시하고 깔보는 듯한 분위기.

사실 그도 그럴 것이 K리그2에서 승격을 한 팀들이 바로 그다음 해에 다시 강등되는 게 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힘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아니 근데 저팀 잘하는 선수는 있나?”

“그러면 우리처럼 1부리그에 있겠지. 2부가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

“아 별튜브하는 애는 있는 것 같던데? 프로를 장난으로 아는 그런 놈은 박살 내줘야지.”

그러나 이건 선을 넘었다.

프로로서 상대 팀에 어떤 선수가 있고, 어떤 전술을 들고 나올지 등은 기본으로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 1도 진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그런 분석조차 안 했던 것이다.

“얘들아, 간단하게 다섯 골만 넣고 와라. 오늘 같은 날 골 넣고 2부리그 놈들이 부러워하는 눈빛을 즐기란 말이야.”

“크크! 저는 골 먹히고 허탈해하는 표정 보는 게 더 좋던데요!”

“아무렴 좋으니 부상 당하지 않게 차라. FA컵은 리그 집중을 위해 사실 포기하고 있었는데 대진이 올해 잘 걸려서 좋군.”

심지어 그들의 감독조차 상대 팀에 대한 분석을 하나도 안 하고 왔는데 무얼 더 말하겠는가.

약 2시간 이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지금으로서 신만이 알겠지만, 양 팀의 분위기는 참으로 상반되었다.

삐이익-!

무조건 이길 생각으로 베스트 라인업을 갖추고 온 용인 FC.

누가 뛰더라도 절대 안 진다는 생각으로 1.8군 정도의 라인업을 갖추고 온 전주 FC.

워밍업 시간 이후,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경기가 시작되었다.

“1부리그에서 쫓겨나고 별튜버 된 기분은 어떠슈?”

공을 들고 패스의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는 유건을 앞에서 일대일 마킹하며 시비를 거는 상대 팀의 수비형 미드필더.

방심한 채로 공을 향해 조심성 없게 내미는 그의 스탠딩 태클을 살짝 점프하며 오른발에 있던 공을 왼발로 튕기듯이 가져온다.

그리고 왼발에 공이 닿는 순간 멈추지 않고 몸을 앞으로 치고 나간다.

“별튜버한테 지면 많이 쪽팔릴 텐데, 감당되겠슈?”

아무것도 못 하고 손쉽게 제쳐져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귀에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개인기로 유명했던 선수들은 필수적으로 자주 사용했던 팬텀드리블로 한 명을 뚫어내자마자 보이기 시작했다.

패스를 줘야 할 곳들이.

‘…생각보다, 수비 진형이 엉망인데?’

그 느낌 그대로 유건은 지금 전주 FC의 수비수들이 용인 FC의 공격수들에게 붙어있지 않고,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패스를 주는 그 타이밍에 공을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유건으로서는 이해가 안 갔다.

공은 발보다 빠르니까.

“윤성이형, 이거 리턴 줘봐!”

곧바로 등을 지고 있는 이윤성에게 패스를 하면서 외친다.

확실하게 몸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거의 항상 반복했던 유건에게 향하는 리턴 패스이기에 오차 없이 정확하게 패스가 전달된다.

그리고 바로 유건이 달려드는 상대 수비수 중 한 명을 윤성과의 2대1 패스를 통해 따돌린 그 순간.

용인 FC의 날개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얘네 왜 아무도 막으러 안 와?’

사실 유건은 대부분 마지막 패스는 손태민이나 강바람을 향해서 주었기에 이번에도 똑같이 하려 했다.

그러나 윤성의 패스를 받아 중앙 지역을 뚫으며 가고 있는 자신에게 수비가 아무도 붙지 않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기회라고 생각하고 골대의 가장 빈 공간을 향해 다리를 크게 휘두른다.

콰-앙!

유건이 노마크 찬스에서 마음먹고 제대로 중앙부에 맞힌 공은…,

골키퍼가 손쓸 새도 없이 골대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간다.

와아아-!

그것을 보고 미소를 지은 채 원정팬들을 향해서 달려가는 유건.

자신도 애타게 기다렸던 시즌 첫 골을 중요 경기에서 꽂아 넣은 것에 대한 기쁨.

먼 곳까지 방문해서 응원을 멈추지 않는 팬들에 대한 감사.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무릎으로 잔디를 쓸어내리다가…, 걸려서 넘어졌다.

해외 축구에서 유명 축구선수들이 세레머니를 하다가 잔디를 쓸다가 걸려서 넘어지며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그 상황 말이다.

그런 유건의 몸 위로 가까이서 달려온 공격 트리오의 몸이 포개어진다.

‘큭, 크억, 끄어억! 그만!’

창피해서 일부러 안 일어나고 있었던 유건은 결국 잠깐의 세레머니 시간 동안 햄버거의 패티가 되었다.

“큭큭, 막내야 잔디 한 번도 무릎으로 안 쓸어봤으면서 나대지 마라!”

“골 넣은 건 잘했다! 근데 너 세레머니 집 가서 다시 보지는 마라 좀 많이 어설펐다.”

골에 대해 칭찬받는 것보다 세레머니 비판을 많이 받으면서 말이다.

“아 유건 선수! 정말 멋진 골입니다!”

“전주 FC의 수비 선수들이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초반이라 몸이 덜 풀린 걸까요?”

그리고 그 골 장면은 불행하게도, K리그1 VS K리그2의 매칭으로 인해 이목을 끌어 스포츠 채널에 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이었던 것은 실시간으로 축따 별튜브의 구독자가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었다는 것.

감동적인 시즌 첫 골의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저 개자식이….’

‘2부리그한테 우리가 진다고?’

‘홈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야!’

어느 누군가에게는 불이 붙는 순간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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