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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따-10화 (10/208)

10화. 그게 심판대다

필자는 K리그1뿐만 아니라 K리그2도 직관을 좋아하는 축구팬이며 요즘 돌풍을 일으키는 한 팀을 소개하고자 한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번 시즌 2부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치고 나가는 용인 FC.

그 팀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필자가 분석한 용인 FC 이상찬 감독의 전술은 사실 자세하게는 모르겠으나, 자유분방해 보인다.

꽤 오래전부터 최고의 포지션이라고 불리는 4-3-3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과감해 보이면서도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노련한 수비수 박범호, 활동량을 기반으로 터프한 미드필더 라인을 구축해주는 두 명의 볼란치.

손태민 - 이윤성 - 강바람의 훌륭한 공격 조합.

마지막으로 공격과 수비를 연결시켜 주는 공격형 미드필더 유건의 존재.

이 모든 것이 합쳐졌기에 전통적인 트렌드를 벗어난 4-2-3-1의 포지션을 들고 나온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던 공격형 미드필더가 넘쳐나던 시절, 너도나도 사용한 그 포지션은 오래전부터 축구를 보던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즌 초반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그들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지 이미 10경기가 넘었다.

그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던 경주 FC도, 이미 한 번 낭떠러지로 떨어트렸던 여수 유나이티드도 승점을 좁히지 못하고 있고 말이다.

과연 이번 시즌 그들의 압도적인 승격을 막아낼 팀은 나타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오늘 칼럼의 핵심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심판대는 남아있다.

운이 안 좋게도 FA컵 3라운드의 상대는 K리그1에서 10년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주 FC와의 매치.

이상찬 감독의 클래식한 전술이 과연 1부리그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20년 차 K리그 축구팬 돈미-

“크으, 노련함으로 상대의 공격수들을 경기장에서 지워버리는 박범호!”

“으하하 나를 불렀느냐 윙백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현란한 재주꾼 강바람!”

인기 있는 축구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칼럼을 보고 초등학생같이 놀고 있는 범호와 바람.

2부리그 팀에게 칼럼을 써주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기에 용인 FC의 모든 선수들은 아마 이 칼럼을 두 번 이상씩은 봤을 것이다.

분석을 잘해놓기도 했고 선수 한 명씩 어떤 스타일인지 작성해줘서 그걸 보는 재미도 있었기에.

“자자, 다들 그만하고 오늘 경기 집중하자 이제.”

용인 FC의 좋은 점은 돌아가면서라도 누군가 한 명씩은 적재적소에 흐름을 끊어준다는 점.

이번에 흐트러졌던 주의를 집중시킨 것은 박 팀장이었다.

물론 아직 경기 시작은 아니고 곧 몸을 풀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가는 시간이긴 했지만.

“오늘 이기면 우리 10연승 맞지? 유건이 이 자식이 복덩이야 아주.”

“제가 또 선배님들을 잘 모시니까 이렇게 팀워크가 잘 맞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 팀장의 말과 함께 웃음기를 지운 용인 FC는 워밍업을 위해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

유건의 목을 장난스레 감으며 데려가는 박범호를 필두로,

“태민이형, 바람이형 오늘은 진짜 제 머리로 주기로 하신 거 잊지 마십쇼들.”

“알겠슴다. 우리 동생님을 위해서라면 이 강바람 한 몸 바쳐보겠슴다.”

“바람이형은 솔직히 패스할 때 됐지!”

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내뿜고 있는 세 명의 공격 트리오가 그 뒤를 이었고,

“굼벵이냐? 빨리빨리 준비해서 나와!”

느지막이 준비하던 선수들은 다음으로 나간 이상찬 감독의 불호령에 부랴부랴 뛰어나간다.

다들 말은 안 해도 그의 말이라면 농담 삼아 목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수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이렇게 경기에 있어서는 한없이 진지해지는 감독의 성격도 용인 FC 선수들이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한 장점이 되었을 테고,

패배를 대처하거나 실수를 나무라는 방법들도 노련한 맛이 있었기에.

물론 춤은 좀 많이 못 추긴 하지만 말이다.

***

“아으 또 골대야!”

박진감이 넘치는 경기.

오늘 행운의 여신은 사실 용인 FC의 편이 아니었던 건지, 이번에 이윤성이 맞힌 골포스트를 포함해서 골대를 세 번이나 맞히고 있었다.

상대 팀도 골을 아직 못 넣긴 했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한 골이 필요한 게 축구라는 스포츠였다.

“건아!”

후반전 20분을 지나고 있을 때쯤, 다시 한번 유건에게 연결된 공.

이제 2부리그 팀들 사이에서는 ‘용인 FC를 막기 위해서는 유건을 막아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요 인물이 되었다.

거의 모든 공이 그를 거쳐 가고 팀 내 패스 지분 1위, 볼터치 1위, 주요패스 1위 등등 여러 가지 경기 스탯이 리그에서 가장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아차! 또 실수라니.’

왼쪽에서 수비형 미드필더가 달라붙는 것을 확인하며 오른발로 공을 터치하려던 찰나, 오른쪽에서 상대 팀이 한 명 더 나타나서 공을 채간다.

요즘 유건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은 자신에게 두 명, 세 명이 압박을 들어올 때 모든 사람을 체크하지 못해 턴오버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오늘 경기가 특히나 그랬다.

“헤딩 붙이지 말고! 땅으로 넣어!”

유건의 공을 빼앗은 상대 팀 선수는 곧바로 빈 공간에 있는 동료한테 공을 찌르며 소리친다.

그가 헤딩을 피하라고 하는 이유는 박범호가 노련한 위치선정을 통해 헤딩 경합에서 높은 확률로 승리하기 때문.

어느새 왼쪽 윙 포지션에 있는 선수까지 공이 전달되고, 바로 크로스를 올리기보다는 한 번 더 치고 나간다.

크로스를 의식하던 용인 FC의 오른쪽 윙백은 생각보다 손쉽게 제쳐졌고 골키퍼가 각을 좁히고 나오는 순간,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이 아닌 바깥쪽으로 많이 꺾은 컷백을 내주는 상대 팀.

출렁-!

그리고 그 공은 유건의 공을 뺏어낸 상대 팀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달려와 손쉽게 빈 골대로 차넣는다.

유건이 내려와서 수비를 도와줬어야 했다.

높은 지역에서 공을 뺏겼기에 자신이 내려가기 전에 팀이 수비를 성공해낼 거라는 안일한 생각.

열한 명이 함께 플레이하는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해서는 안 되는 사소한 실수는 실점으로 이어졌다.

“태훈이 웜업시켜.”

“감독님, 그래도 지고 있는 상황에서 건이를 빼는 건….”

“다음 경기를 위한 휴식이야 인마. 최근에 건이만큼 휴식 없이 뛴 애들 없어.”

“그리고 방금 상황에서 집중력을 잃지 말라는 경각심만 한 번 심어주려는 거야.”

“상대 팀이 잘했을 뿐이고 어쩔 수 없었던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코치가 만류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경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최근 확실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팀의 에이스를 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상찬 감독이 내린 결정의 실상은 유건의 휴식을 위한 결정이었고,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그리고 너도 알잖냐? 다음 경기…, 우리는 그게 심판대다. 오늘 지더라도 거기서만 이길 수 있으면 승격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질 거라고.”

전주 FC와의 FA컵 3라운드.

이상찬은 이번 시즌 리그에서 승격하는 것을 최대한의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진행되는 시즌의 과정은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

‘참 대단하단 말이야. 한국 FC의 장 감독이 왜 이런 보석을 못 알아본 거지?’

국내리그에서 명장이라고 불리는 전통적 강팀 한국 FC의 장익현 감독.

놀라운 속도로 적응하고 심지어 매 경기 발전해나가는 유건의 장점들을 그가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상찬으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삑! 삑! 삐이익-!

경기를 지켜보다가 딴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코치들의 우려는 사실이 되었다.

결국 오늘 경기에서 승리는커녕 실점 당한 점수를 따라잡지도 못했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10연승에 실패하긴 했지만 용인 FC의 현재 리그 성적은 13승 2패.

2위에 위치한 팀과 10점 이상의 승점이 차이 난다는 점 말이다.

“오늘 모두들 수고 많았다. 골대를 세 번이나 맞혔다는 것은 방금까지 치른 경기에서 너희들의 운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들 집에 빠르게 돌아가서 푹 쉬고, 오늘 경기에서 나온 좋지 않은 장면들은 내일 회복훈련 하면서 같이 얘기해보도록 하자.”

“주말에 있을 경기를 위해 우리는 내일부터 컨디션을 끌어올릴 예정이다.”

“침울한 분위기는 오늘 집에 가서 다 잊고 새롭게 출발하면 된다. 너네 이 정도도 못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오랜만에 겪는 패배의 감정은 라커룸에 복귀한 선수들의 표정 관리를 힘들게 했다.

그것을 위로해주는 것도 감독의 역할.

부드럽게 달래주면서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해보자며 위로한다.

지금 리그에서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고 있는 팀에게 굳이 실망스럽다는 표현 같은 걸 쓸 필요는 없었기에.

“할 수 있습니다!”

“다음 경기는 꼭 이겨보자고!”

“우리 다음 경기가….”

“…이길 수 있다 이자식들아!”

감독의 위로에 보답하기 위한 선수들의 힘찬 대답.

어째 잘나가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잘못된 길로 빠지긴 한 것 같지만, 그래도 그들은 화이팅했다.

‘역시 감독님이셔.’

유건이 보기에 침울한 팀원들을 한 번에 독려하는 것은 이상찬 감독이 적어도 용인 FC 내에서는 최고였다.

강압적인 분위기와 폭력을 허용하는 장익현 감독이 만들어낸 라커룸 분위기와 지금 유건이 느끼는 바가 다른 것은 그런 것 때문이리라.

놀 때는 놀고 할 때는 하는 사람.

그 말의 표본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기에 말이다.

‘아까 하셨던 말들도….’

“건아, 방금은 어쩔 수 없이 골을 먹게 되었지만 말이다. 너는 그때 최소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까지는 내려와야 했었다.”

“물론 나도 축구는 한 명이 엄청나게 뛰어나면 강한 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말이다. 지지 않는 팀은 특출나게 잘하는 한 명이 없더라도 열한 명이 제 역할 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팀이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열심히 뛰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순간 안일했던 것 같아요.”

교체돼서 나오는 유건이 나눈 대화였다.

라커룸을 부드럽게 만든 후 선수 한 명과 구석에서 팔을 서로 툭 치면서 장난치는 이상찬 감독.

그를 보면서 유건은 자신이 들었던 개인적인 말들을 가슴 깊게 새겨두기로 결심했다.

그냥 사람 자체가 멋있잖은가.

그 시각, 한 장소에서 축구팬들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감독님, 이번 선수 선발에 관련해서 중점적으로 보시는 점이 있으실까요?”

“우선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 모든 것 다 신경 안 씁니다.”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를 맡겨준 협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제가 가진 선수 선발의 권한을 잘 사용할 예정입니다.”

“오직 실력, 실력만 보고 선발하겠습니다.”

올림픽 대표팀의 김진용 감독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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