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9화 (9/208)

9화. 이거 진짜 해야 되는 거예요?

둥둥-! 둠칫-!

“윤성이형, 이제 같이 출 때 됐다니까? 중앙으로 나와서 흔들엇!”

“막내야! 선택받은 사람만이 비트에 몸을 맡길 수 있는 법이다!”

“범호형, 감독님 정도 되어야 비트신이 들린 거라니까. 형은 그냥 박치일 뿐이야!”

- 솔직히 언제봐도 범호형 특유의 댄스는 비트랑 전혀 안 맞고 따로 놀고 있음

- 춤은 바람이형이 제일 잘 춘다. 반박시 니 말이 맞음

- 그래도 제일 시선이 가는 건 언제나 감독님이라고

- 요즘에는 축따도 춤 실력이 좀 볼 만해짐

- 사실 중앙 스테이지에 이윤성이 언제 올라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임. 처음이랑 지금 영상 비교 한번 해봐. 저기 구석에서 몸 흔들고 있잖아

[K리그2 순위표]

1. 용인 FC 9승 0무 1패 27점

2. 경주 FC 6승 2무 1패 20점

3. 여수 유나이티드 5승 2무 2패 17점

힘겹게 승리를 얻어낸 시즌 첫 경기 이후, 용인 FC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경기에서 여수 유나이티드에게 한 번 미끄러진 것을 빼면 리그 9승 1패.

리그 중간에 펼쳐진 FA컵 첫 경기에서마저 쉽게 승리를 따냈다.

아직 섣부르지만 시즌 마지막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승격에 가장 가까운 것은 유건이 속한 용인 FC.

그들이 연승가도를 달리는 데는 시즌 11경기에서 0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는 유건의 존재가 컸다.

그리고 시즌 첫 패배 이후에 용인 FC의 라커룸 영상이 축따의 별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 와 패배하면 진짜 라커룸 분위기가 개침울해지는구나

- 저 분위기에서 무슨 말 꺼내냐

- 축따 입 봉인하고 있는 거 귀엽네

- 그래도 용인 FC 감독님 진짜 멋있으시다. 패배가 자신의 전술 때문이라니

첫 번째 올라간 라커룸 영상은 패배 직후였기에 단지 호기심 있는 축구팬들을 자극했다.

프로팀들은 경기에서 지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그런 궁금증에 영상 조회수가 차츰 올라가기 시작했고,

- 한 경기 이긴 팀 맞지? 무슨 우승팀 라커룸인 줄 알았다

- 이러다가 지면 바로 지난 영상처럼 분위기 다운되는 거야?

- 축따 이번 경기 활약상 미쳤음 진짜. 안 봤으면 다들 한 번 보셈

- 축따가 용인 FC를 아예 별튜브 구단으로 만드는구나

두 번째는 승리한 이후의 라커룸 영상.

처음에는 댄스파티를 즐기는 선수들을 보며 사람들은 재밌다는 반응보다는 우려를 표했다.

프로팀이 한 경기 승리했다고 너무 신나서 진지함을 빼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은 바로 다음에 올라온 용인 FC의 훈련 영상.

훈련임에도 실전처럼 임하는 용인 FC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은 시청자들에게 인식을 심어주었다.

‘아, 그래도 얘네가 축구선수의 본업을 잊지는 않았구나’라는 인식.

그 이후로도 구단에 관련된 영상들이 축따의 별튜브를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용인 지역에서 소문을 탄 시민분들의 응원 댓글.

그리고 유건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의 Q&A나 소개 영상이 올라오고 영상의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인기도 점차 올라갔다.

그래서일까 덕분에 축따의 구독자 수는 현재 3만 명을 넘겼고, 가장 인기 있는 종류의 영상이 바로 라커룸 영상.

승리를 거머쥔 이후 클럽 음악을 틀어놓고 라커룸에서 신나게 몸을 흔드는 용인 FC의 선수들 영상 말이다.

‘아니 하이라이트 영상보다 이게 조회수가 더 높으면…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유건의 마음속에서 의심이 피어날 만도 했다.

자신의 어시스트나 하이라이트가 담긴 경기 활약상을 편집해서 올린 영상보다 라커룸 댄스파티 영상이 조회수가 두 배를 넘었으니까.

‘여름이가 보물이야.’

사실 이렇게 별튜브가 성공 가도에 안착하기까지 조금의 위기는 있었다.

유건은 단지 자신의 성장 과정을 기록해가고 팬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재미 부분에서는 신경을 안 썼기에.

매번 단순한 소통과 마지막에 마무리할 때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라는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우지 못했다.

그래서 구독자가 1만 명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었다.

“오빠, 구단에 말해서 우선 경기 볼터치 영상 올려도 되는지 허락받아오시구요.”

“저 지난번 촬영 갔을 때 승리 이후에 라커룸이 어떻게 광란의 파티 현장이 되는지 다 봤잖아요?”

“감독님한테 얼른 그것도 별튜브 올려도 되는지 물어보고 와요.”

“지단 선수를 따라 하는 건 으음, 오빠 그거 진짜 해야 되는 거예요?”

이외에도 여름이는 유건에게 별튜브의 성공을 위해 많은 것을 요청했고, 이제는 그저 따를 뿐인 유건이었다.

최근에 늘어나는 축따와 용인 FC의 팬들은 다 그녀 덕분이었으니까.

‘…그때는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는데 말이야.’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건 유건이 결정한 작은 선택.

“여름아, 앞으로 축따의 별튜브 편집을 부탁할게!”

여름이와의 첫 만남 이후, 유건은 고민을 길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긍정적인 부분이 훨씬 많았기에.

이미 구독자 3만 명을 보유하고 있던 여름이가 직접 편집을 해준다는데 거부하는 게 바보였다.

사실, 유건은 편집에 대한 비용의 수준이 그때는 맞는지도 몰랐었다.

그 이후, 한 편에 10만 원의 편집비용이 꽤 비싼 편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된 유건이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한국 FC에서 마드리드 유스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 긴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기에.

결정을 한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해봐야 아프고 상처받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유건이었다.

“여름아, 별튜브로 창출되는 비용은 사실 모두 기부하거나 유소년 친구들을 위한 지원이나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

“시간 될 때 직접 구단에 와서 영상 찍는 거 촬영 구도 같은 것도 좀 봐줄 수 있을까?”

오히려 유건은 나아가서 나여름에게 제안했다.

축따 별튜브의 운영 방향을 일임하고 수익의 일부를 여름에게 떼주는 걸로.

“해볼게요! 대신 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수익이 많아지는 건 저도 환영하니까요.”

긍정적인 여름이의 답변.

그때부터였다.

별튜브 관련 일로 용인 FC 이상찬 감독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 말이다.

“감독님, 제가 별튜브를 하시는 건 아시죠?”

“지단 선수의 실력을 따라 하는 게 목표인데요. 제가 축구 말고 다른 것을 좀 해야 됩니다.”

“건아, 그럼 축구를 더 열심히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대체 뭘 하려고?”

“형! 유건이는 우리 팀 보물이라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그냥!”

옆에서 미소를 만발하며 유건에게 나가도 된다며 손짓하는 박 팀장의 말은 유건의 이상행동에 기름을 붙인다.

허락한 박 팀장도 그런 걸 할 줄 몰랐겠지만 말이다.

***

“아으, 오빠 이거는 진짜 제가 지식이 하나도 없어서 편집하면서 자막 넣기가 너무 어렵다니까요.”

“여름아! 그래도 이건 꼭 하고 싶다. 조회수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잖아? 최근 거는 5천 조회수도 넘겼어!”

“돈이 원수지, 원수야! 대신 이건 편집할 때 오빠가 옆에 있어야 되는 거 알죠?”

“같이 편집할 공간 대충 예약하고 연락해요.”

어제 끝난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편집하고 있던 나여름에게, 유건이 보낸 또 하나의 영상이 전달되었다.

영상의 배경을 실행시키고 배경을 보더니 바로 일시 정지를 한다.

그리고는 유건의 보고서를 결재하는 상사처럼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전화한 상황이었다.

과연 어떤 영상이길래 나여름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유건의 이상행동이 시작된 건 리그 첫 번째 패배 이후 다시 승리를 거머쥔 리그 4라운드 경기가 끝난 이후였다.

집에서 그날의 경기를 복기하며 실수를 했던 상황을 떠올려보고 있었는데,

[지네딘 지단과의 데이터 동기화율 35.02%]

[중원의 마에스트로 지단은 필드에서 자신이 속한 팀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였습니다]

[오케스트라에 가입하여 지휘를 배우세요]

‘…네 선생님? 제가 잘못 들은 걸까요?’

[오케스트라에 가입하여 지휘를 배우세요]

꼭 유건이 못 알아들은 척을 하면 한 번 더 반복돼서 머릿속에 울리는 메세지.

친절도 하다.

그러나 유건의 마음속은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이걸 진짜 하는 게 맞아? 나 축구선수인데….’

이렇게까지 자신을 변화시킨 메세지를 믿고 삭발까지 했지만, 이번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지휘를 배운다고 지단을 따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말이다.

하지만 유건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어차피 이 메세지를 따라서 행동할 거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유건의 손은 이미 초록창에 검색을 위한 키보드 위에 가 있었기에.

‘오케스트라 지휘자 수업? 과정?’

수업, 클래스 등 여러 검색어를 거쳐서 적절한 결과를 찾아낸 검색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과정.

다행히도 용인문화회관에서 몇 년 전부터 음악가 및 전공자, 아마추어 지휘자에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해당 과정이 있었던 것.

“저기 혹시, 자격요건에 제가 해당하지 않는데 한두 달 정도 전공자한테 마에스트로 강의를 받으면 과정을 수강할 수 있을까요?”

유건은 그 자격에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았기에 먼저 문화회관에 문의를 했고, 수강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휴식 기간이 따로 없는 리그가 계속되고 있었기에 그날 수업에 대한 준비를 끝냈어야 했다.

잠들기 전까지 약 두 시간가량을 알아보면서 숨은 실력자들을 매칭해서 연결해주는 숨실이라는 어플을 발견해냈고,

지휘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 진행하고 있는 클래스를 찾을 수 있었다.

곧바로 연락을 통해 수업을 예약했고 그 뒤로 약 두 달 동안 유건은 중원의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해 지휘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스코어는커녕 악기의 흐름도 완전하게는 습득하지 못했어.’

“유건 선수님, 처음보다 훨씬 발전했으니까 실망하지 마시구요.”

웃으면서 말하던 지휘 강사님의 말을 떠올려보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다.

아직 기초적인 입문 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확실히 팀원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지휘자는 악단 단원들이 연주하는 여러 악기들을 같은 흐름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이었고, 그들 전부를 위해 공통된 목적지로 곡을 이끌어가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축구에서 팀원들을 이 상황에서는 천천히, 저 상황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흐름을 만들어주는 건 바로 공격형 미드필더.

바로 유건 자신의 포지션이었다.

서로 다른 일이었지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이지만 점점 흥미를 느껴가는 유건이었다.

“여러분, 이거는 피아노 악보인데요. 음표를 보는 방법은….”

- 축따야? 크흠, 그거 이때까지 너만 몰랐던 것 같다

- 형은 체르니까지 끝냈다 축따야

- 바이엘은 떼고 우리한테 설명해라

물론 유머로만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지금, 유건은 나여름이 전화한 지 10분 만에 휴대폰을 들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여름아, 오빠가 좋은 장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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