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축따는귀여워가 저예요
이번 패스의 목적지는 상대 팀의 중앙 수비수를 뒤에 달고 내려오고 있는 이윤성.
그는 지체하지 않고 패스를 하자마자 빈 공간으로 움직이면서 공을 달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는 유건 쪽으로 리턴패스를 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중거리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공간이 난 셈이었지만,
‘슛을 때리기에는 애매한데….’
유건이 느끼기에는 위협적인 슈팅이 되기에는 거리가 조금 멀었다.
슈우욱-!
잠깐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페인팅.
거리가 있긴 했지만 너무 뻥 뚫린 공간이었기에 걱정이 된 상대 수비수가 유건의 슈팅을 막기 위해 발을 뻗어온다.
‘그렇지!’
하지만 그게 바로 유건이 노린 것이다.
공격을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 지을까라는 선택권을 강바람에게 전해준다.
그는 자신을 마크하던 수비수가 유건에게 발을 뻗는 그 순간 골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바람이형, 뒤에 한 명!”
강바람을 수비하고 있다가 유건의 중거리 슈팅을 막기 위해 앞으로 나오면서 발을 뻗은 수비수는,
급하게나마 몸을 돌려 다시 수비를 위해 뛰어가고 있었다.
패스를 전해주며 유건이 그 정보를 인지시켰고, 덕분에 강바람은 고민을 줄이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다.
콰앙-!
지체하지 않고 바로 슈팅으로 이어간다는 결정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팬들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특유의 세레머니를 하며 달려가는 강바람.
와아아아-!
팬들이 손을 들고 좋아하는 모습.
경주 FC의 골키퍼가 땅을 치면서 울분을 토하는 모습.
달려가는 강바람의 뒤로 보이는 장면들은 골이 터진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삑! 삑! 삐이익-!
“와아아아아!”
약 후반전 40분 상황에서 터진 강바람의 골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용인 FC.
추가시간까지 진행되는 경기는 양 팀에게 한두 번의 기회를 더 만들어주었지만,
역전을 노리는 경주 FC, 승리를 노리는 용인 FC 모두 단 일 초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경기의 끝을 알리는 휘슬 소리와 함께 팀원들 사이에서는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괴성이 터져 나온다.
“으아아아아아!”
유건의 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고했다, 얘들아!”
“수고하셨어요 형.”
“다음에는 우리가 이길 거예요 형.”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이 울려 퍼지는 것도 잠시, 팀원들끼리 끌어안고 승리를 자축하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경주 FC의 선수들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 얘기를 하기도 했다.
‘훨씬 기분 좋다!’
한국 FC에서는 사실 주전으로 출전한 경기도 많지는 않지만, 승리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기쁘진 않았었다.
반면에 경기가 종료된 이후부터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팀원들과 기분 좋게 얘기를 나누면서 가는 모든 시간들.
용인 FC에서는 이러한 것들 하나하나가 모여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까지 잘 느끼지 못했던 팀에 대한 소속감도 느껴지고 있었고 말이다.
“저 유건 선수님! 잠깐….”
“오늘 MVP에 선정되셔서 그런데 인터뷰 잠깐 괜찮으실까요?”
“…네, 네!”
만회 골이나, 역전 골을 넣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보니 유건은 당연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압박이 강한 위치에서 공을 한 번도 뺏기지 않고 어시스트까지 만들어낸 점은 충분히 MVP를 받을 만한 활약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1부리그에서 방출된 이후 첫 경기다 보니 조금 더 기사에 대한 집중을 받을 수 있기도 했고 말이다.
“간단하게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무엇보다도 팀이 홈구장에서 치르는 이번 시즌의 첫 경기다 보니 부담감이 없진 않았는데, 이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팬분들이 기분 좋게 귀가하실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 시즌 영입되었는데, 기대하시는 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게 계속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프로리그의 1부와 2부를 모두 경험해보셨는데 혹시 리그 수준에 큰 차이점이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사실 팀들의 실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을 하구요, 오히려 K리그2의 팀들이 더 절박하고 경쟁이 치열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유건 선수는….”
MVP 수상을 전혀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그에 맞춰 따로 준비한 대답도 없었다.
그냥 물어보는 말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빨리빨리 대답할 뿐.
사실 어떻게 대답한지도 나중에 뉴스로 나오는 것을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인터뷰를 끝낸 유건은 라커룸으로 돌아갔다.
한 손에 K리그2에 데뷔전 기념으로 받은 MVP 트로피를 유심하게 살피면서 걸어가는 유건.
눈앞에 가져다 대고 구석구석을 살핀다.
‘진짜 금인가?’
사실 유건이 트로피를 자세히 보는 이유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는 그냥 금으로 만들어진 건지 궁금했다.
본다고 알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둥둥-! 둥둥-!
유건이 마침내 도달한 라커룸 문을 열었을 때는, 승리에 취한 채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팀원들이 있었다.
큰 덩치로 두 주먹을 움켜쥔 채로 몸을 왼쪽, 오른쪽 한 번씩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고 있는 박범호.
작은 체구지만 날렵한 몸을 움직이며 발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강바람.
‘……거기서 뭐 하고 계세요?’
누구보다 가장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면서 몸을 튕기는 건 딱 한 사람.
넥타이를 풀어 헤친 이상찬 감독이었다.
그리고 비트를 타는 그의 움직임을 보며 유건의 몸도 조금씩 움찔움찔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재밌어 보이는 댄스 파티에 참가하고 싶은 유건이었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본보기로 삼은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지 못했다.
***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시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오늘 실수해서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더 잘할게요.”
“유건이랑 윤성이요? 오늘 보셨잖아요 되게 잘하니까 응원 많이 해주세요.”
라커룸에서의 기분 좋은 춤사위가 끝나고, 정리를 한 팀원들과 직원들은 하나둘씩 퇴근을 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팬들은 나오는 선수와 친근하게 한 마디씩을 주고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나가고도 다섯 명 정도는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었는데, 아직 유건이 안 나왔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시즌 첫 경기부터 좋은 활약을 펼친 영입생을 환영하고 사인을 받기 위해서.
“경기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찍는 게 뭐 어려운 거라구요. 많이 찍어가셔도 됩니다.”
마침내 나온 유건은 팀의 유니폼을 내미는 팬들에게 웃으면서 사인을 해주고, 사진까지 찍어준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마 팬들에게는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되리라.
“저기, 오빠! 저 친필싸인 유니폼 받으러 온다고 했었는데요.”
“축따는귀여워가 저예요.”
눈앞에 보이는 마지막 한 명까지 사인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찰나, 유건의 뒤에서 생각도 하지 못했던 예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당연히 형님이실 줄 알았는데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유건이 조금 당황한 티를 내는 것은 당연히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 팬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축따는귀여워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나여름은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좀 많이 예뻤다.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붉어진 볼을 유건은 같이 사진을 찍는 그 순간까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럼, 오빠 연락 기다릴게요! 생각해 봐주세요.”
“그래 여름아. 조심히 들어가!”
마지막까지 남은 나여름과 유건은 구장을 나오는 순간까지 대화를 나눴고, 편하게 말을 하기로 했다.
유건도 자신이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계속 지켜봐 주고 있는 열성팬이 또래라는 것에 마냥 기뻤기에 거부감은 없었다.
나여름이야 당연히 유건의 팬으로서 애청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을 마다할 리가 없고 말이다.
따로 생각하는 다른 것이 있기도 했고….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오늘 나눈 대화 중 가장 메인이 됐던 이야기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여름이는 자신도 얼굴이 안 나오는 브이로그 형식으로 별튜브를 진행하고 있었고,
방송계의 선배가 봤을 때 유건의 방송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편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새로운 사람들이 방송을 보려고 해도 다시 보기는 항상 30분 이상, 거의 모든 영상이 한 시간 이상씩 되니까 막상 시작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유건의 방송에서는 엄청 전문적으로 편집할 부분은 없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편집을 맡아서 해주면 어떻겠냐는 여름의 말.
물론 그에 따른 보수를 요구하긴 했지만, 유건에게 크게 부담이 되는 액수는 아니었다.
“13500원입니다.”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여름이와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서 오던 유건은, 도착하여 미터기에 찍힌 액수를 말해주는 택시 기사의 말에 혼자만의 생각에서 깨어났다.
홈 경기이다 보니 퇴근은 다 각자 하게 되었는데 아직 차가 없는 유건은 택시를 타고 다녀야 했다.
‘면허도 하루빨리 따야겠어.’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기에 내려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와중에 운전면허는 빠르게 따야겠다고 생각하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오늘 유건에게 자신이 편집을 해주겠다고 웃으면서 제안한 여름은 무언가를 노트에 열심히 적고 있었다.
“만약, 유건 오빠가 맡겨준다고만 하면 학원에 다닐 비용을 내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나 줄여도 돼.”
“이제 별튜브가 월세 정도는 수익을 가져다주니 지장 없을 테고, 오디션도 더 보러 다닐 수 있겠지.”
“제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는데…, 편집자를 구할 시간은 따로 없는 것 같으니까 그냥 나를 쓰실 확률이 높아.”
그녀가 제안한 액수는 편집 한 건에 십만 원.
평균 일주일에 두 번 내지 세 번을 방송하는 유건의 스케줄에서 시즌이 시작되는 것을 고려해 한 달에 최소 다섯 건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제안한 일이었다.
6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보다 시간을 조금 적게 들이면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였기에.
‘유건 오빠도 다시 성공했는데, 나도 다시 도전하면 되겠지, 엄마?’
노트를 덮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하는 여름의 머릿속에는 희미하게나마 밝은 미래가 보이고 있었다.
K리그1에서 방출당한 뒤 절망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재기에 성공한 유건을 생각하면서.
형광등이 반쯤 깜빡거리고 있는 허름한 원룸의 상황과는 대비되게 말이다.
무언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그녀는 용인 FC 구장 앞에서 유건과 대화를 나눌 때와는 다르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유건 앞에서 웃던 게 연기였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