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부숴버려라
“지난번에 유니폼 당첨되신 분들께는 제가 조만간 택배로 발송해드릴 예정이구요!”
“축따는귀여워님께서는 내일 첫 경기 날 경기장 앞에서 기다려주겠다고 하셔서 직접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내일 경기를 위해 이쯤하고 방송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진짜 이번 시즌 열심히 해서 다음에는 조금 더 큰 이벤트를 열어도 될만한 선수가 되어보겠습니다.”
“죽도록 훈련하고 리그에서 성과를 내보겠습니다!”
- 부상은 당하지 말자 축따야
- 경기 영상 빨리 보고 싶긴 한데, 사실 그것보다 나는 빡빡이 축따가 보고 싶어서 방송 켤 때마다 오고 있음. 익숙해져서 정들었나 봄
- 다음에는 지단의 뭘 따라 할지 궁금해진다 이제
- 축따야 아직 이렇다 할 활약은 없는 게 사실이지만 여기 니 팬들 많다. 이번 시즌 일 한 번 내보자!
시즌이 시작되기 전날인 오늘까지 별다른 일정은 없었다.
그저 구단의 훈련에 계속해서 참가했고,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계속되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는 바로 내일 경주 FC와의 경기에서 드러날 것이다.
[지네딘 지단 데이터 동기화율 33.37%]
‘실제 구단에서 훈련하고 난 이후로 동기화율이 이전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
확실히 개인 연습과 단체 훈련은 다른지, 삭발을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동기화율이 벌써 33%를 넘겨 있었다.
그와 함께 눈에 보일 정도로 늘어가는 실력은 유건 스스로에게 점차 자신감을 키워주고 있었다.
다음번에도 삭발과 같은 당황스러운 메세지가 언제 머릿속에 울려 퍼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이놈들아, 무섭냐?”
“전혀 안 무섭습니다!”
“그럼, 질 것 같냐?”
“그럴 리가요!”
“근데 왜 몸을 떨고 있어 이놈들아! 어차피 축구는 감독싸움이야. 지면 내 탓이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뛰라고.”
“네 감독님!”
“자 그럼! 홈구장에서 상대 팀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지? 부숴버려라!”
“으아아아아아!”
용인 FC의 홈구장에서 펼쳐지는 시즌 첫 경기의 날이 밝았다.
지난 시즌 우수한 성적을 냈지만 승격을 못 해서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기에, 이번 시즌은 각오가 남다른 팀원들이었다.
노련하게 라커룸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이 감독의 말은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에 반응하듯 선수들도 괴성을 지르며 사기를 함께 끌어올린다.
콰-앙! 콰-앙!
“자, 가보자고 이놈들아!”
“홈구장에서 지면 나 어떻게 변하는지 알지? 다들 알아서 미친 듯이 뛰는 거다!”
그것을 뒤이어 라커룸의 출입구를 주먹으로 두어 번 내리치면서 문을 열면서 선수들을 이끌려는 박범호.
그의 등을 손으로 밀어주면서 얼굴만 뒤로 돌린 채 활기를 더하는 강바람.
팬들 앞에 유건이 처음 얼굴을 선보이는 날이었다.
삐이익-!
“힘차게 달려라 용인 FC! 나가서 싸워라 용인 FC!”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약 500명의 홈 팬들이 내지르는 응원가는 미약하지만 유건의 귀에도 들렸다.
훈련과는 사뭇 다른 경기장의 열기가 느껴졌고, 시작하자마자 달려드는 상대 팀의 선수를 피해 패스를 돌리면서 분위기에 적응한다.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아이씨!”
바로 용인 FC의 주장이자 수비의 핵심 박범호.
그는 지난 시즌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 팀원들을 잘 독려해야겠다는 마음을 너무 앞세우고 있었는데, 막상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었다.
실수하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지는 포지션이라는 것을 말이다.
출-렁!
왼쪽 센터백한테 패스 준다는 것을 세기 조절을 잘못해 압박해서 들어오던 상대 팀 공격수에게 패스를 주고 말았다.
서로 수비지역에서 패스하며 경기를 풀어가는 빌드업을 위해 약간은 거리를 두고 서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패스 실수라는 것은 남은 건 골키퍼뿐이라는 말.
용인 FC의 골키퍼가 빠르게 뛰쳐나오긴 했지만 이미 공격수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이 주어졌다.
이미 어디로 찰지 정하고 오른쪽 하단으로 깔아서 슬쩍 밀어 차는 슛은 달려오는 골키퍼가 막기는 쉽지 않았다.
아쉽게도 시즌을 실점으로 시작하게 돼버린 용인 FC였다.
“아! 미안하다 얘들아 진짜 빡 집중한다.”
“범호형, 긴장 좀 풀라고! 실수한 거보다 형 지금 긴장하고 있는 게 애들한테 더 쪽팔려!”
실점을 내준 수비수는 망연자실한 채 경기 자체를 망치는 경우가 있는데, 범호를 잘 아는 강바람은 오히려 놀리는 식으로 그를 위로해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다음부터 박범호는 다시 노련한 선수답게 용인 FC의 수비진을 리드했다.
하지만 처음 팬들에게 이번 시즌의 모습을 선보이는 홈구장에서 먼저 실점을 한 탓인가, 선수들의 플레이가 조금은 조급해지고 있었다.
유건을 제외하고.
투욱-!
경합 상황에서 공중으로 뜬 공이 운 좋게 유건이 찾아낸 빈 공간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고려청자를 다루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터치하여 발밑에 둔다.
‘전반이 끝나기 전에 동점 골만 넣어도 충분하다, 지금 다들 너무 급해.’
“건아!”
“막내야!”
동시에 들려오는 용인 FC 돌격대장 둘의 목소리.
강바람과 손태민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만 유건은 볼을 천천히 끌며 손을 아래를 향해 반복적으로 내리면서 진정하자는 제스쳐와 함께 크게 소리친다.
“왜 이렇게 다들 급한 거야! 천천히 우리 훈련한 대로 하자고!”
가장 어리고 실전 경험이 적은 막내의 외침.
그 외침이 팀원들을 일깨운다.
‘짜식, 막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가끔 든단 말이야.’
‘그래!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급할 필요 없다. 홈구장에서 이게 무슨 꼴사나운 짓이야.’
레알 마드리드와 프랑스 대표팀 등 세계 유명 클럽들의 중원 지역을 지배하고 전체적인 경기를 조율했던 지단이 얼핏 보인 것은 기분 탓이리라.
“윤성아!”
그 이후로 조금 더 세밀하게 공격하고, 조금 더 촘촘하게 수비를 한 결과 전반전에서 가장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냈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공을 간단하게 흘리는 것을 통해서 뒤에 압박이 들어오는 수비를 벗겨낸 유건은 곧바로 공을 쫓아가서 손태민이 달릴 수 있는 방향으로 길게 패스.
주력이 장점인 팀의 돌격대장은 그걸 잡을 능력이 충분했다.
유건이 반 박자, 아니 한 박자가량 빠르게 패스를 넣었기에 경주 FC의 수비진은 아직 재정비를 못 한 상태.
그 상황에서 손태민은 잡자마자 중앙의 이윤성을 향해 땅볼로 빠르게 패스한다.
출-렁!
손태민이 바로 슛을 할 수도 있다고 의식했던 골키퍼는 이미 가까운 포스트바 쪽에 몸이 가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윤성의 눈앞에는 그저 빈 골대뿐.
아무리 부상에서 복귀한 뒤 컨디션을 부상 전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더라도, 1부리그 출신으로서 그런 걸 놓치진 않았다.
“태민이형 나이스 패스요!”
“으아아 형들 굿 플레이요!”
윤성은 상대의 그물이 출렁거리는 소리를 귀에 들으면서 손태민을 향해 달려가서 어깨동무를 한 채 홈팬들 앞에서 소리를 지른다.
마치 자신이 데뷔전 데뷔골을 넣은 공격수라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듯이.
그리고 좋아하는 그 둘의 등에 올라타는 건….
누구겠는가, 기점 역할을 한 선수이자 막내인 유건이었다.
삑-! 삑-! 삐이익-!
세레머니가 끝나고 경기가 재개된 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전반전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렸다.
만회 골을 넣은 팀원들의 얼굴에는 그래도 안도감이 조금씩은 보였다.
“쓰읍, 얘들아 미안하다. 후반전에 한 골만 더 부탁하자! 내일 훈련 때 음료수는 내가 쏜다.”
팀이 비기고 있는 게 아직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박범호도 하프 타임을 맞아 라커룸으로 들어가며 후반전에는 역전할 수 있을 거라며 팀원들을 독려했다.
“…이제 조금 더 건이의 역할이 중요해질 거다.”
“다들 한 발자국씩만 더 뛰어라. 우리 팀의 실점은 상대 공격수 주력을 깜빡하고 빌드업 전술로 가자던 내 착오다.”
“범호! 홈구장에서 개막전 경기를 지고 오면 진짜 끝나고 대가리 박을 줄 알아라.”
하프 타임의 주된 대화는 이상찬 감독의 지시.
가장 먼저, 후반전에 팀의 플레이 방향을 설정해준다.
다음으로는 독려. 범호의 실수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그의 부담을 덜어준다.
마지막으로는…, 협박. 장난이 섞인 말로 홈팬들에게 보답하자는 이상찬 감독만의 방식이었다.
“바람이형, 후반엔 조금 더 벌려 서줘요. 길게 때려볼게.”
“범호형 실수 한 번 정도는 더 해도 되니까 어깨 좀 펴! 이번 실수는 내가 골키퍼로서 막아줄게.”
“윤성이형, 조금만 내려와서 플레이해줄 수 있어요? 쟤네 약간 라인이 낮아서 아까처럼 태민이형이나 바람이형이 뚫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케이. 어쩐지 건이 네가 발밑에 줘도 직접 돌파하자니 애매해서 뭐 할만한 게 없더라고.”
하프 타임 종료 이후 나가는 팀원들은 서로 한 두 명씩 붙잡고 경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거나 간단하게 농담을 했다.
유건이 말을 건 상대는 이윤성.
후반전을 맞이한 이상찬 감독의 전술은 윙플레이 위주로 가는 거였는데, 유건은 거기서 하나를 더 추가했다.
상대 팀이 라인을 너무 낮추고 있기에 이윤성이 조금 더 미드필더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수비 라인에서 한 명을 끌어내는 것.
‘이 정도는 상관없겠지.’
이윤성에 관련된 감독의 지시는 없었지만, 유건은 그러한 플레이가 더 팀의 전술에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막내로서 그런 의견은 그저 마음에 담아두는 게 맞겠지만…, 팀의 공격 방향을 설정하는 유건은 이미 신뢰받고 있었다.
“유건이에게 볼을 조금 더 집중시킨다.”
이상찬 감독이 후반전엔 윙플레이를 하자는 말보다 먼저 꺼낸 한 마디였다.
한국 FC에서 항상 의기소침한 상태로 개인 플레이만을 추구하던 유건이 용인 FC에 입단한 이후로 훈련을 하면 할수록 점점 실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기에.
20년 동안 개인기만을 연습했던 경험은 미드필더 지역에서 공을 뺏기지 않고 소유하는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 직접 돌파를 하기보다는 팀원들의 움직임을 보고 패스 위주의 플레이가 익숙해져 가고 있는 유건은 확실히 팀의 에이스가 될 자격이 있었다.
삐이익-!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과 함께 경주 FC의 공으로 경기가 시작되고, 한 골을 더 먼저 넣겠다는 두 팀의 경기는 더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유건이 공을 잡는 빈도는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용인 FC의 패스는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더라도 유건에게서 끝났다.
‘이번엔…, 여기다!’
그리고, 유건의 발에서 공이 떠나가는 그 순간 팀의 공격 방향이 정해지고 팀원들은 의심 없이 따른다.
중원의 마에스트로가 프랑스 대표팀을 지휘하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