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바로 지금
“드디어 내일이면 다시 프로축구선수가 되었다는 게 체감이 될 것 같아요.”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보답하기 위해 큰 건 아니지만, 시청자분들 중에 세 분 정도를 뽑아 사인한 유니폼을 보내드리려구요.”
“딱히 참가를 부탁드릴 이벤트가 아직 없어서 그냥 제가 뽑겠습니다.”
- 두근두근! 축따야 날 뽑아다오!
- 오예 오늘 방송 보기를 잘했다!
- 축따야 내 아이디를 읽어줘라 형은 첫 방송부터 꾸준히 있었다
“처음이다 보니 제가 몇 번 방송을 안 했는데도, 계속 찾아와주시고 채팅 쳐주시는 분들을 기억나는 대로 뽑아볼게요.”
“가장 먼저 축따는귀여워님, 다음으로는 zl존축따님, 마지막은 축따이레놀님입니다.
“다른 분들도 모두 드리고 싶지만 다음 기회를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와 축하드려요! 축따는귀여워님은 솔직히 받았어야 됨
- 축따이레놀님도 진짜 받을 줄 알았음
- 축따이거님은 좀 아쉬우실 듯! 당첨된 분들 축하드려요!
“제가 말씀드린 세 분은 쪽지로 주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구요. 유니폼은 시즌 시작 전에 나온다고 해서 그때 맞춰서 발송해드리겠습니다!”
“내일은 첫 훈련이 있다 보니 오늘은 이쯤에서 방송을 종료할게요.”
“아! 마지막으로 이 영상도 다시 보기로 올릴 텐데, 혹시 제 방송에 조금 바라는 점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훈련 끝나고 쉬는 시간에 빠짐없이 다 읽어보면서 더 재밌게 방송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좋은 밤 되시구요!”
구단에서 전세 계약을 통해 제공해준 숙소는, 작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었다.
도착한 뒤 옷이나 생필품만 간단히 정리한 유건은 하루의 마무리를 하기 전 한 시간가량을 방송했다.
사실 이때까지 유건은 전문적인 장비는커녕 마이크도 없이 핸드폰으로 항상 방송을 켰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큰 이벤트는 아니지만 시청자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친필사인 유니폼도 준비했고 말이다.
‘내일 밤은 첫 훈련에서 느낀 것과 내가 부족한 것을 정리하고, 모레는 환영회가 있으니 방송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눕고 나서도 어둠 속에서 다음 날부터의 계획을 정리하던 유건은 피곤했는지 자신도 모르는 새 단잠에 빠졌다.
그는 시청자들도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는 팬들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었기에 방송에 대한 생각도 빼놓을 수 없는 유건의 머릿속이었다.
물론, 그보다 축구가 가장 우선이었지만 말이다.
***
퍼-엉!
“어딜!”
“아 또 범호형!”
공이 터질 듯한 소리와 함께 조끼를 입고 있는 팀의 수비진영에서 중앙 미드필더 지역까지 공이 클리어링되었다.
강바람이 윙백까지 제쳐버리고 확실하게 달려 들어오는 공격수에게 빼주는 컷백을 박범호가 미리 읽고 차단한 것이다.
투-욱!
공을 잡은 것은 유건.
“뒤에 붙었다 건아!”
“여기 편하게 내줘도 돼!”
입단 테스트 때보다 훨씬 강한 압박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K리그1에서의 경험도 있는 유건이었다.
“움직임 너무 좋은데 막내!”
당황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를 내주고 곧바로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서 다시 돌아오는 리턴 패스를 편하게 잡는다.
지금부터가 바로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이었다.
어떻게 보면 팀의 공격 방향을 정해줘야 하는 게 유건의 포지션이었고, 지체하지 않았다.
리턴 패스를 준 선배의 칭찬을 들으면서 왼쪽 윙 쪽으로 패스를 보낸다.
수비가 클리어링해낸 공을 받자마자 공격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상대 진영의 수비수들은 아직 복귀를 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날개의 자리에 위치한 왼쪽 윙이 공을 잡았다는 건 드리블을 할 공간이 열렸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양쪽 날개 자리에 위치한 선수들이 팀에서 주력이 제일 빨랐다.
용인 FC도 마찬가지.
강바람보다 공격포인트나 위협적인 공격은 적지만 주력만큼은 앞서는 손태민이 공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태민이형 사십오! 컷백!”
가까스로 맞춰서 돌아온 윙백이 치고 달리면서 발을 휘두르는 손태민의 크로스를 차단하기 위해 발을 뻗는 것을 보고 유건이 소리쳤다.
정상적인 용어라면 컷백이겠지만 실전에서는 사십오도 각도로 패스 달라는 걸 줄여 사십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게 실제로 잘 들리기도 하고 말이다.
크게 소리친 덕분인지 손태민은 그대로 크로스를 하는 척하면서 달려오는 유건에게 살짝 빼준다.
퍼-엉!
안타깝게 골키퍼의 펀칭에 막혔지만 충분히 좋은 공격이었다.
실전이었다면 넣었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야 축따야, 너나 윤성이나 생각보다 축구를 훨씬 잘하는데? 역시 K리그1 출신들이라 그런 건가.”
유일하게 강바람은 유건을 축따라고 부를 때도 있었는데, 친밀함의 표시인 것 같다고 생각한 유건은 듣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사실 바람의 말대로 용인 FC의 기존 선수들은 약간 놀랐다.
유건과 윤성의 실력이 바로 리그 경기에 투입되어도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고,
처음 맞춰보지만 호흡도 그렇게 썩 나쁘지 않았기에 말이다.
“이거 오히려 작년보다 더 승격 가능성이 커졌을 수도 있겠는데?”
“형이 매 경기 하나씩만 더 막아주면 가능하지?”
단 하루의 훈련이었지만 박범호가 평가하는 이번 시즌 전력의 평가는 좋았다.
유건과 윤성의 영입으로 작년의 공백을 메울 듯하다면서 말이다.
물론 신입생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입바른 소리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듣는 유건과 윤성의 기분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범호에게 옆에서 장난치는 다른 선수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굳이 태클을 안 건 이유는 내심 영입생들에게 만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실제 리그 경기에서 까본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자! 새롭게 들어온 유건이와 윤성이의 입단을 축하하고 올해 시즌 화이팅 한번 해보자는 의미에서 건배다!”
“용인 FC!”
“화이팅!”
짜-안! 짜-안!
이틀간의 연속된 훈련 이후, 다음날은 회복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구단 앞에 있는 술집에서 신입생을 위한 환영회가 열렸다.
분위기 메이커인 강바람이 먼저 한마디를 하며 건배 제의를 했고, 맥주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명쾌하게 울려 퍼졌다.
“자, 그럼 우리 신입생들의 건배 제의 한 번 들어봐야지!”
“어휴 범호형 그런 거 우리 이제 안 시키기로 했잖아. 꼰대같이 계속 그러기냐고.”
“흐흐, 이게 다 젊은이들의 센스를 배워가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니 거부는 거부하겠다!”
다음으로는 박범호의 주도하에 신입생들의 건배 제의 차례가 다가왔다.
막내는 제일 마지막이라는 괴상한 논리로 이윤성이 먼저 하게 되었는데….
“용!”
“용기 내서 이 구단으로 결정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인!”
“인간 이윤성! 이번 시즌 좋은 활약으로 선배님들과 구단 직원분들을 기쁘게 만들고 저를 영입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간단하게 구단의 지역을 딴 2행시.
특별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각오를 포함시킨 평범한 건배 제의였기에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유건도 준비해온 게 있었다.
“흠흠…, 이 아름답고도 멋진 세상에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데 정말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세 가지 종류의 금이 있습니다.”
“잠깐 막내야, 너 내가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렇다고 말해줘라.”
“저놈 민증 까봐! 스물한 살 아닐 수도 있어.”
‘크흠흠, 스물한 살 맞습니다 선배님들!’
마음먹은 이상 부끄러움은 뒤로 접어둔 채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한 유건.
“첫 번째는 가장 중요한 금전적인 거죠. 바로 돈에 관련된 황금!”
“다음으로는 살아가는 데 필수적으로 먹어야 하는 음식에 관련된 소금!”
“마지막으로는…, 잔을 다들 들어주시고.”
“용인 FC가 모두 함께하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지금!”
침묵.
조용하고, 조용했으며 또 조용했다.
약 5초간의 정적이 지나고…,
“어휴! 저게 막내라고 시켰더니!”
“나도 이제 그렇게 철 지난 건 나이트에서도 안 써먹는다 이놈아!”
박범호는 유건의 등을 때리면서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고, 강바람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소리쳤다.
짜안-! 짜안-!
어째 아까 용인 FC 화이팅이라고 외치며 짠을 할 때 약간 서글픈 건배 소리가 들리는 건 착각이었을까.
별튜버 축따의 방송 중 채팅창에서 한 시청자가 가르쳐준 건배 제의였던 것은 유건 그 자신만 아는 비밀이다.
이 순간 그래도 용인 FC의 팀원들과 구단의 모든 직원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시즌이 시작하고 나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이런 자리를 또 마련하기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니까 중요하다.
바로 지금!
유건이 소속된 회식 자리가 무르익어가는 그 시각, 다시 보기로 올렸던 지난 방송에는 댓글이 조금씩 달리고 있었다.
- 축따야 근데 편집을 좀 하면 좋긴 할 것 같은데….
└ 오 이거 좋은 생각이다. 전문적인 크리에이터는 아니지만 중요 부분만 편집해서 올리면 방송이 더 잘 될 것 같음.
└ 맞는 말인데 축따가 직접 할려면 프로 생활에 지장 갈 것 같아서 따로 편집자 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 언제 한 번 날 잡고 Q&A 방송해도 좋을 듯!
- 방송에서 바라는 건 없고 나중에 잘되면 골 넣고 우리가 원하는 세레머니 한 번 해줘라.
└ 이 악마야 그거 방송 타는 거다. 대체 뭘 시키려고!
- 카메라랑 마이크도 좀 사서 방송해줘!
‘편집자라, 확실히 인기 있는 별튜버들의 다른 방송들은 그게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편집자를 어디서 구한담?’
‘Q&A 방송은 쉽겠다. 조만간 해봐야지!’
‘카메라, 마이크. 메모해둬야겠다.’
다음날, 회복훈련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몸을 풀고 준비하던 유건은 지난 방송의 영상에 올라온 댓글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는 슈퍼스타였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일까.
팬들에 대한 중요성은 당연히 알고 있는 유건.
모든 의견을 수용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팬들이 원하는 건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아차차, 출발할 시간이다!’
맞춰둔 알람이 울리자, 부랴부랴 구단으로 출발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유건이었다.
구단이 운영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빛이 났다.
이제 막 떠오르고 있는 태양보다 조금 더 반짝반짝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