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재밌으신 분들이네
“박 팀장, 그거 진짜 도움 되는 거 맞나?”
“솔직히 도움은…, 근데 컨디션 유지나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쯧쯧, 그게 뭐가 재밌다고 젊은이들이란!”
축따의 방송이 시작되기 하루 전, 계약을 하고 돌아간 유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둘이었다.
과연 어떤 대화가 오고 갔길래 저런 말이 오고 가는 걸까.
“…이러한 이유들로 우리 팀은 자네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영입하고 싶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포지션이든 관계없이 뛰게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만, 그런 좋은 패스 실력을 가지고도 1부리그에서는 왜 개인플레이만을 추구했나?”
‘…나중에, 진짜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합격이라는 연락을 받고 기분이 좋아 집주변 운동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뛰어다닌 게 며칠 전이었고, 용인 FC의 사무실에 방문해서 계약에 앞서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개인플레이에 관한 질문에 유건만 아는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아직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기에.
“그때는 저도 아버지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서 계속….”
“어렸구만. 아참 자네 아직 어리구만? 아무튼 그런 팀플레이를 할 줄 안다면 오히려 내가 무릎 꿇고 빌고 싶네.”
“감독님, 아직 무릎 안 꿇으셨어요? 저 아까부터 이 자세로 있는 거 안 보이세요?”
“…크흠 박 팀장, 우리 체통을 좀….”
‘재밌으신 분들이네.’
이 감독과 박 팀장의 선을 지키면서 친밀하게 지내는 대화를 보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해가는 유건이었다.
“우리가 제시할 계약조건은 4년 계약에, 보너스 조항을 다 포함해서 연봉 7천만 원이네. 물론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 더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을 할 생각이네.”
“혹시 추가하고 싶거나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항이 있는가?”
“바이아웃을 계약에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출전 기회가 최소한 20경기는 보장되면 좋겠는데, 추가할 수 있습니까?”
“출전보장 같은 경우 당장 가능하지만, 바이아웃의 경우 직원들과 상의가 필요하네.”
“만약 조항을 삽입하게 되면 바이아웃 금액은 10억 정도로 책정해도 되겠나?”
“…네,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알겠네, 그 부분은 내일 같은 시간에 한 번 더 얘기를 하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혹시 있는가?”
“아! 혹시 훈련에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별튜브는 계속해도 됩니까? 축구선수로서 새 출발 하는 기념으로 시작한 거라 계속해보고 싶습니다.”
“그건, 으음.”
“하셔도 됩니다! 시간을 많이 뺏는 일도 아닌데요! 오히려 팬들과의 직접적 소통이 돼서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바이아웃이 받아들여져야 할 텐데!’
‘10억 정도는 올림픽 명단에 들어서 활약을 할 수 있다면, 큰 금액은 아니야.’
사무실을 나오는 유건은 꽤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다음날 있을 바이아웃 조항 삽입에 대한 생각을 했고,
‘별튜브도 삭제 안 해도 되겠어.’
한 가지 또 안심되었던 것은 별튜브 관련 문제.
그게 사실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되더라도 유건은 축구선수를 따라 하면서 성장해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런 일들이 있었고, 오늘 구단에서 뉴스 기사를 낸 이후에 공개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응원해주신 여러분 정말 많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조금 더 올바른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구단에 소속된 입장이다 보니 훈련 등을 정해진 규정에 따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별튜브 방송의 빈도는 좀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축하한다 축따야!
- 와 진짜 이렇게 바로 다시 프로선수가 되는 게 가능하다고?
- 약 한 달 조금 넘게 솔직히 열심히 하긴 했음. 방송에서 그 정도면 밖에서는 어땠겠음?
- 입단 기념으로 시청자들한테 이벤트 한 번 가자 축따야
“이벤트…, 한 번 생각은 해볼게요. 근데 지금은 좀 너무 설레발 느낌이라 그렇구요.”
“앞으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해서 K리그2에서 활약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그동안은 축구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지단 선수의 머리 스타일이 아닌 실력을 따라 하면서요.”
- 이쯤 되면 입단 테스트 영상 마려울 정도임
- 얼마나 잘했기에 바로 합격한 거임?
- 미안하다 축따야 머리 밀 때만 해도 솔직히 별튜브 크리에이터로 전향하는 줄 알았다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선 것뿐이야. 절대 자만하지 말자.’
유건의 생각대로 그의 축구선수 인생은 다시 한번 출발점에 발을 내디뎠다.
비록 시작은 2부리그에서라도 끝 지점은 아무도 모르는 법 아니겠는가….
“이번에 새롭게 영입된 두 사람일세. 몇 년 동안 동고동락할 사이가 될 수도 있으니 서로 날 서서 대하지 말고.”
“자네들의 동료들일세. 간단하게 소개의 시간을 가지자고.”
“안녕하세요, 유건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올해로 스물한 살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윤성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스물네 살입니다.”
와-아!
계약을 체결한 뒤, 용인 FC 구단에서의 환영식은 며칠 뒤에 있었다.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유건과 함께 영입생으로 인사를 한 이윤성은 입단 테스트의 지원자는 아니었다.
K리그1에서 활약하다가 꽤 큰 부상에서 회복하고 돌아온 뒤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시즌에 용인 FC에서 영입을 했다.
이윤성도 어린 나이에 화려한 데뷔를 한 뒤 지금 K리그2로 온 것은 어찌 보면 유건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선수였다.
“윤성아, 오랜만이다!”
간단한 박수로 환영을 받고 난 후 이윤성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 몇 명 있었는지 반갑게 인사를 했고, 유건도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나눴다.
“축따님, 아니 유건 선수 반갑습니다.”
“방송은 이제 그만두시는 거예요?”
“아, 자주는 못 하겠지만 시간이 날 때 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훈련에는 지장 안 가도록요!”
구단의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퍼진 건지, 유건에 대한 질문과 인사는 별튜브 방송에 관계된 대화였다.
“나는 이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박범호라고 한다. 나이는 서른여섯이고 어차피 말을 놓게 될 테니 말은 편하게 할게.”
“대충 분위기는 봐서 알겠지만 우리 팀은 약간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하는 편이야.”
“그래도 축구 할 때는 진지하게 무조건 승리만을 원하면서 뛰고 있는 팀이라고 할 수 있지.”
“범호형, 형 진지하게 안 뛸 때가 더 많잖아요. 저번 시즌에 내 눈앞에서 상대 팀 공격수랑 얘기하다가 한 골 먹힌 거 기억 안 나유?”
“역시 무게 잡는 건 안 어울린다 우리 주장.”
간단한 통성명 이후에는 용인 FC의 주장이자 2부리그에서 10년이 넘게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박범호가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팀 동료들이 비난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다른 선수들도 하나둘씩 나이를 말하면서 바로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고, 유건은 확실히 막내였다.
‘저런 사람이 그렇게 터프하게 수비를 한다니.’
당연히 유건도 입단 테스트를 보는 팀의 경기 영상은 찾아보았다.
확연히 눈에 띄는 선수가 세 명 정도 있었는데 박범호도 그중 한 명이었고, 끈질기고 터프하게 수비하는 모습이 주로 영상에서 나왔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 웃으면서 비난하는 선수도 그중 한 명.
용인 FC 공격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강바람이라는 오른쪽 윙플레이어였다.
‘나머지 한 명은…, 내 포지션이었지.’
마지막 한 명은 전 시즌에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리그 베스트급 활약을 펼쳤고, 덕분에 K리그1 팀에서 오퍼가 와서 이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유건이 테스트에 합격한 것도 공격형 미드필더 지원자 중 가장 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른 포지션의 경쟁자들도 충분히 합격할 만했었기에 말이다.
“자자, 말 못 하는 범호형 대신! 아무튼 이번 시즌에 새로운 얼굴들도 들어왔는데 화이팅하자구!”
“유건이나 윤성이도 바로 분위기에 적응하기는 힘들겠지만, 어려운 거 있으면 바로 말해라.”
“아쉽게도 이번 주부터 훈련이 시작되긴 하는데…, 감독님 회복훈련 전날 간단하게 마시는 건 괜찮죠!?”
“이놈들아! 지금이 술 먹을….”
“바람아, 적당히 조절해야 되는 건 알지? 감독님 회의할 시간입니다. 얼른 가시죠!”
와아아아-!
그렇게 박 팀장이 이 감독의 말을 끊으며 팔을 잡아끌고 나가면서 슬쩍 선수들을 보며 윙크했다.
그리고 라커룸의 문이 닫히는 순간, 선수들은 바로 밖에 감독님이 있는 건 신경 안 쓰고 환호했다.
“자 그럼 내일은 훈련장에서 공을 차면서 좀 더 서로 익숙해진 다음에, 모레는 잔을 부딪치면서 환영회다!”
“바람이형! 소주 가능합니까?”
“짜식이! 그건 좀 참아 인마. 대신 이번 시즌에 승격하게 되면 형이 샴페인 쏜다! 아니 범호형이 쏜다!”
“승격! 승격! 승격!”
‘바람이형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시는구나. 그나저나 분위기가 좀 많이…, 어색하네.’
딱 봐도 팀의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강바람이라는 게 느껴지는 유건이었다.
하지만 기존 선수들은 예정된 훈련이 있었기에 손을 들면서 승격을 외치던 것도 잠시였고, 이내 라커룸에서의 환영식은 마무리되었다.
유건과 윤성은 둘 다 용인에 연고가 없었기에 구단에서 제공해준 숙소로 향했다.
작지만 풀옵션의 원룸이라고 들었던 터라 최소한의 짐만을 가져온 유건이었다.
훈련이 없거나 일정이 비는 날이면 용인에서 서울에 있는 집을 다녀오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말이다.
“…저 윤성이형, 혹시 K리그1 계실때 팀이 저런 분위기였어요?”
“당연히 아니지. 여기가 좀 특별해 보이는데 나빠 보이진 않는데?”
“아 원래 그런가 하고 여쭤봤어요. 전 맨날 라커룸 돌아가면 욕만 먹었던 터라….”
“그것도 원래 분위기는 아니지. 그냥 네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조금 더 안타까운 상황이었던 거다.”
사실 유건은 서울 유나이티드에 있을 때 전반전이 끝난 하프 타임, 훈련 시간, 경기 전후를 가리지 않고 라커룸에 있을 때는 뒤통수를 맞거나 욕을 먹었었다.
인정하지 못하는 비난과 폭력을 당했던 터라 그 반발심에 더 개인플레이를 했던 것도 있다.
탈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그런 상황에서 3년을 버텨낸 유건이었기에 더욱 용인 FC의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드리드 유스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구한 팀이었기에 국내 팀들은 다 그런 분위기인 줄 알았었다.
팀에서 가장 활약을 하지 못하는 선수를 거의 왕따처럼 취급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유건이 왕따를 당할 만큼 그렇게 큰 잘못을 하지는 않았었지만, 누군가 분위기를 그렇게 주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방출당한 유건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을 것이다.
알 수도 있지만 아마 아직 모를 것이다.
자신들이 따돌렸던 왕따가 축따가 돼서 새롭게 프로리그에 도전한다는 것을.
아니, 아직은 알아도 별튜버가 됐냐며 더 비웃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