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잘하시는 분들 많이 오셨었어요
‘패스, 패스.’
공을 잡은 유건은 머릿속으로 해내야만 하는 플레이를 각인시킨다.
당장 앞에 펼쳐진 빈 공간으로 드리블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방출을 당하고 나서도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변한 게 없다면 자신은 분명 뽑히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개인 플레이만 추구하는 선수는 축구에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투-욱!
‘먼저 왼쪽.’
결국 유건이 선택한 것은 패스.
지금으로서는 우리 팀에 대한 데이터도, 상대 팀에 대한 데이터도 없다.
그래서 몇 번의 패스를 통해 어느 쪽의 공격이 더 위협적일 수 있는지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같은 팀의 왼쪽 윙으로 배정된 지원자가 받기 편하게 땅으로 깔아서 패스를 보낸다.
그리고는 그쪽으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패스를 받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이쪽으로!”
결국 드리블로 상대 팀의 윙백을 뚫어내지 못한 우리 팀의 지원자가 다시 유건에게 볼을 주었고,
경기장의 왼쪽 부근에서 지체된 시간과 공간을 탈피하기 위해 바로 중앙 지역으로 볼을 건넨다.
결국 오른쪽으로 전환된 공은 위협적이지 않은 공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유건은 낙심하지 않았다.
플레이 하나하나를 답답해하기보다는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기 위해.
“여기!”
그 후로 소강상태로 지속되던 경기에서,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자리에 위치한 지원자가 멋진 탈압박을 통해, 공을 달고 전진하면서 패스를 주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수 사이의 공간에서 소리를 외친 유건.
좁은 틈이었지만 팀원을 믿고 패스를 건네준다.
‘일단 터치를 한 다음에….’
유건은 자신 스스로가 뒤에 수비수를 두고 뛰쳐나온 공간이었기에 안심한 채 상대 팀 골대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공을 터치해뒀고,
바로 압박을 들어오면서 뻗어낸 수비수의 발을 피하기 위해 하나의 방법을 선택한다.
오른발로 공을 뒤로 끌어오는 척하면서 상대 수비수의 커팅을 피했고, 그대로 몸을 돌려 앞서나가며 왼발로 공을 다시 앞으로 끌어온다.
“마르세…!!”
중원의 사령관 지단의 전매특허인 Marseille Turn(마르세유턴)으로 손쉽게 제쳐내면서 공을 뺏기지 않았다.
수비수의 몸을 지나치면서 힐끗 보인 그의 놀란 표정을 뒤로한 채,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생각하는 유건.
패스 줄기를 찾고 있던 도중 오른쪽 윙으로 배정된 지원자가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패스를 보낸다.
그가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었기에 길게 주는 공보다는 그의 진행 방향에 맞춰서 패스를 보냈고…,
출렁-!
확실한 찬스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자신의 발 앞으로 굴러오는 패스를 곧바로 골대의 좌측 하단을 향해 슈팅을 날렸다.
정확한 타이밍에 때린 슈팅에 상대 팀 골키퍼의 손이 스칠 듯하게 다가왔지만 결국 그물망을 흔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축따님 나이스 패스요!”
우연히도 그는 C팀으로 배정받은 뒤 가장 먼저 축따 방송을 보고 있다며 인사를 건넸던 지원자였다.
경기를 속행하기 위해 우리 팀 진영으로 돌아가면서 웃음을 띤 얼굴로 유건을 지나치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이스 움직임이요!”
그의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유건도 환하게 웃어주면서 말했다.
사실 좋아할 만도 한 게 지루하던 경기에 활력소를 불어넣을 만한 좋은 콤비네이션이었다.
상황의 시작을 만든 건 유건의 적절한 마르세유 턴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골을 넣은 건 다른 지원자였다.
삐익-!
재차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정오의 시간에 맞춰 높게 뜬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지원자들의 눈에는 그것보다 유건의 머리가 더 빛이 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반짝반짝.
***
“감독님?”
“……아, 뭐라고 했나?”
“유건 선수 생각보다 더 괜찮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자네의 말대로 나도 느끼고 있네. 1부리그에서 보여주었던 경기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됐구만.”
“확실히 개인 플레이가 줄었는데, 방출당하고 심각성을 느낀 게 아닐까요?”
“그건 면담을 한 번 해봐야 알 것 같구만. 테스트에 합격하기 위해서 팀에 도움이 되는 움직임만을 가져가려는 속셈인지.”
“어휴, 설마 그렇겠습니까! 별튜브에서도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나가겠다고 했잖습니까.”
“자네도 감독의 자리에 앉아보게. 선수 한 명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해야 되는 줄 아는가? 이래서 젊은 사람들은 안 된다니까.”
“감독님 방금 엄청 꼰…, 하하! 그렇죠 고려할 게 많으시겠죠!”
용인 FC를 이끌고 있는 이 감독도 스카우트팀의 박 팀장과 같이 입단 테스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도 느껴지듯이 오늘 유건의 활약은 눈부셨는데, 2어시스트까지 기록하고 있었다.
“저기 보십쇼! 진짜 우리 팀으로 데려와야 한다니까요 감독님!”
“그만 좀 말하게. 나도 이미 그를 어떤 위치에 넣어야 되는지 상상을….”
말하는 와중 마지막 경기에서 끝끝내 세 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유건을 보면서, 박 팀장은 감탄했다.
“와! 진짜 저게 그 유건 선수 맞아요?”
“그러니까요. K리그1은 진짜 수준이 다르긴 다른가 봐요.”
“저렇게 잘하는데도 우리 감독님은 아직 고민하고 있다니까요?”
이 감독마저 감탄하는 표현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을, 다른 직원들이 유건을 보고 놀라고 있는 대화를 비집고 들어간 박팀장은 들을 수 없었다.
지원자들을 보며 평가하고 있는 용인 FC의 직원들이 유건에게 감탄하는 그 사이, 오늘의 입단 테스트는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이스 플레이!”
“나이스 커팅!”
‘붙을 수 있으려나?’
물론, 경기장 안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지원자들은 여전히 열심이었고 말이다.
모두들 팀원과 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서로 칭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유건은 자신이 합격을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는 생각했지만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또 다르게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경쟁자라고 한다면 저 둘인데 말이지.’
유건은 오늘 입단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합격에 대한 경쟁자를 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 경쟁자는 A팀에서 원톱, 그다음 이어진 2경기에서도 모두 같은 위치에 섰는데 상당히 움직임이 좋고 큰 키에 비해 스피드가 빨랐다.
그리고 다음으로 생각되는 경쟁자는 계속 같은 팀에서 플레이하면서 자신에게 어시스트를 두 개나 쌓아준 오른쪽 윙 포지션에서 활약한 그 지원자였다.
‘둘도 잘됐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다.’
그들의 탈락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유건 자신이 합격하고 싶다는 마음은 버릴 수가 없었다.
각자 사정은 다들 있겠지만 자기가 제일 절박하다고 생각했기에….
삐-익!
“지원해주신 모든 여러분 오늘 하루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 모두를 용인 FC와 계약시키고 싶다고도 감독님이 말씀하셨으나, 한정된 인원을 모집하다 보니 감독님의 마음 같지는 않네요.”
“마지막 테스트까지 올라오신 22명의 지원자분들 중 3~4분 정도에게 이번 주 내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할 예정입니다.”
“단순 진행을 맡은 저이지만, 여러분의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고 좋은 결과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고생하셨습니다! 집으로 조심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휘슬이 울리고 오늘 하루 동안 진행을 맡았던 용인 FC 소속 직원의 인사를 끝으로 테스트가 종료되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축따님 너무 잘하시네요 합격하실 것 같아요!”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말로 모든 지원자의 열정을 치켜세웠으나, 22명 중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합격자는 3~4명.
자신들 중에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오늘 하루 고생한 팀 동료와 상대 팀에게 각자 고생했다는 인사를 건넨다.
사실 오랜만에 실전 같은 축구를 해서 기분이 좋았던 유건이 약간 흥분한 채로 가장 먼저 인사를 한 건 비밀이다.
모두들 웃으며 겉으로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합격을 빌어주었지만, 다들 속으로는 자신의 합격을 바라고 있었다.
부상을 크게 당했던 실력파 선수, 어린 시절 이름을 날렸으나 노력 부족으로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
최악의 선수라는 평가와 함께 팀에서 방출당한 선수.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축구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선수.
그런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 혹은 희망 같았던 용인 FC의 공개 입단 테스트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
축따의 방송이 켜진 것은 테스트를 한 지 일주일만이었다.
제목은 [입단 테스트 후기 방송]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방송 켜는 게 좀 늦었습니다!”
시청자가 어느 정도 모이자, 머리를 숙이며 사과부터 시작한 유건.
- 축따야 어떻게 됐음?
- 진짜 떨어져서 방송 늦게 켠 거임?
- 실망하지 마라 축따야 기회는 또 있지 않겠냐?
- 붙었는데 별튜브 해도 되는지 허락 맡는다고 늦게 켠 거 아닐까?
하지만 유건의 사과보다는 입단 테스트 결과에 더 호기심을 가지는 시청자들이었다.
과연 그의 재도전이 성공했을지, 실패했을지.
그게 궁금했기에.
“여러분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우선 후기부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너무 오랜만에 11명의 선수가 함께하는 실제 축구를 경험해서 너무 좋았었구요.”
“개인적으로 테스트 과정 중에 만족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지원자분들이요? 되게 잘하시는 분들 많이 오셨었어요.”
“전체 인원은…, 시작할 때 얼추 100명은 넘었던 것 같아요!”
- 아니…, 부족함을 느꼈다니 진짜 떨어진 거 아님?
- 아이고 축따야!
- 좀 진심으로 응원했는데 안타깝네
-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나라 구단 입단 테스트에 도전해보자
유건이 테스트에 대한 후기를 말했지만, 자신의 부족함이나 다른 선수의 대단함 등을 위주로 말했기에 시청자들은 안타까워했다.
프로에 도전하는 축구선수가 별튜브를 직접 하면서 소통하는 것이 흔치 않은 경우였기에….
그래서 아마 더 잘되기를 바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합격 여부요? 으음….”
탁탁-! 탁탁-!
마침내 그날의 후기를 거의 다 말한 유건은 약간 슬픈 표정으로 시청자의 질문을 읽으면서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러분, 저 축따 성공했습니다! 합격이라구요. 모두 응원해주신 구독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계속해서 꾸벅이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그가 보고 있는 별튜브 채팅창 옆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초록색 창 사이트의 기사 하나가 떠 있었다.
[ (오피셜) K리그2 용인 FC, 1부리그에서 방출된 유건 전격 영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