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미드필더 맞습니다
그 일의 발단은 이랬다.
출-렁!
[우측 상단을 노리는 프리킥 50번]
하루에 한 번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제시하는 그날의 훈련은 프리킥이었다.
마지막으로 찬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상단의 크로스바를 스쳐 지나가며 골대로 들어갔다.
그와 함께 들려오는 새로운 메세지.
[현재 데이터 동기화율 29.41%]
[지단을 따라 하기 위해 삭발을 진행하세요]
‘…으응?’
무언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유건의 마음을 훔쳐보기라도 한 걸까.
[지단을 따라 하기 위해 삭발을…]
친절하게 한 번 더 머릿속에 울리는 메세지였다.
그리고 돌아와서 지금.
‘진짜 처음으로 시키는 걸 따라 하지 않아볼까 고민도 했지.’
가져온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유건은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정말 황당했지만 머릿속에 울리는 이상한 메세지는 자신이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이었기에 하라는 대로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색하긴 했다.
방송 카메라에 비치는 유건이 자의적 빡빡이가 된 머리를 수차례 쓰다듬으며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부분에서 알 수 있었겠지만.
“제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곧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저에게는 아직 프로 구단에서 계약 제의가 오지 않은 상태이구요.”
“아까 몇 분이 채팅으로 질문해주셨던 것 같은데 계획이 있습니다.”
“아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 기회라고 해야 될까요? 용인 FC 입단 테스트에 도전할 겁니다.”
- 축따야 그래도 K리그1 출신인데 창피당하지 말고 꼭 합격해라
- 선수 되면 별튜브는 그만두는 거냐? 나름 보는 재미 있어서 계속 보고 있는데
- 그래. 축구 포기 안 했다고 믿고 있었다 화이팅하자 축따!
- 응원한다! 힘내라 축따
계획을 공개한 뒤로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일부였지만 응원해주는 구독자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K리그1에 있었던 유건이 K리그2 팀 테스트를 보기에 당연히 붙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걸 다 쏟아부어야 한다.’
하지만, 유건은 알고 있었다.
FA컵에서 K리그2의 팀들과도 붙어보았기에.
1부리그의 팀들이 조금 더 우세한 건 맞지만, 만났던 K리그2팀들은 방심하면서까지 이길 수 있는 팀들이 절대 아니었다.
‘치열하게 경기를 치르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지.’
오히려 K리그2팀의 선수들은 FA컵에서 높게 올라가기 위해 더 노력했다.
리그 경기보다 더 많은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기회.
거기서 활약을 통해 유명세를 타고, 인기를 얻고, 실력이 뛰어나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된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가 모여 선수 개개인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자신들의 연봉을 결정짓는 조건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테스트까지는 추가 방송을 진행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테스트 영상도 찍으면 좋겠지만,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요.”
“방송은 안 할 예정이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습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는 제가 찍어서 간단하게 채널에 올려놓겠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마지막 멘트까지 마치고 나서 오늘의 방송을 종료한 유건.
‘이제 일주일 남았다!’
다시 한번 목표를 되새기는 유건이었다.
뛸 수 있는 새로운 프로축구팀을 찾아내겠다는 목표를.
***
“감독님, 드디어 내일입니다.”
“그러게 말일세. 지원자 명단은 얼추 정리가 끝났다고?”
“…크흠, 사실 저보다는 김 과장이 고생해줬습니다.”
“내일 끝나고 하루 정도 휴식하고 오라고 전해주게.”
입단 테스트를 준비하는 용인 FC의 이상찬 감독과 박 팀장.
둘은 준비를 거의 끝마치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감독님이 눈여겨보신 세 명 중 합격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네, 유건 선수가 되기만을 바라면서 말은 곱게 하는구만.”
“하핫,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웃으면서 다시 도전하는 게 인성이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까! 어제 올라온 영상도….”
“그 정도를 내일 내 눈앞에서 테스트를 하며 보여줄 수 있다면 설마 내가 안 뽑겠는가?”
“아주 혹시나, 혹시나 했습니다. 방출 기사 뜰 때 욕하신 거 제가 다 들었었습니다.”
“…크흠, 자네 다음 주 수요일이 휴가였던가? 나랑 어디 급하게 좀 다녀오….”
“내일 테스트 준비 마무리하러 가보겠습니다!”
이상찬이 언급한 세 명의 지원자 중 유건을 응원하고 있던 박 팀장이었기에 테스트의 시작을 앞두고 장난을 걸어보는 서로였다.
물론 말이 끝맺음을 짓기 전에, 대화를 마무리 짓고 떠나는 박 팀장이었지만.
그리고 용인 FC의 사무실에서 테스트 준비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쯤, 유건이 어제 올린 영상은 조회수가 거의 2만에 육박했다.
단 2분짜리의 영상이었지만 반응은 꽤 뜨거웠다.
그 영상의 정체는 공을 높게 찬 다음에 떨어지는 위치에서 바로 가볍고 깔끔하게 트래핑하는 영상.
약 열 번에 가까운 시도 동안 유건의 동작은 물 흐르듯이 부드러웠다.
- 와 이거는 진짜 장난 아니게 잘하는 거 같은데? 프로는 이런 거 하기 쉽나
- 중학교 축구선출입니다. 일단 공이 높게 떠오르면 집중력을 조금만 잃어도 트래핑하기 힘든데 개빡센 거예요 저거
- 그래봤자 혼자 하는 거임. 실제 축구에서 저런 장면 몇 번이나 나오겠음?
- 이래도 K리그1에서 방출당하는 게 현실인데, 프로 선수들은 대체 얼마나 잘하는 거냐
정말 잘하는 거라는 댓글들과 실제 축구에서 필요 없는 거라는 말들이 댓글창에서 토론을 벌였다.
정작 영상의 주인은 올려만 놓고 사라져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유건의 영상 조회수가 2만 5천을 넘겨갈 때쯤 용인 FC의 입단 테스트가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리 구단에서 지원자들에게 공지된 대로 오늘의 입단 테스트는 총 세 종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 기본적인 체력테스트.
러닝, 사이드스텝 등 용인 FC가 자체적으로 구성한 순서대로 진행되었고,
지원자 중에서는 가장 최근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터라 체력테스트는 당연히 통과한 유건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상위권의 성적으로 말이다.
두 번째, 기본적인 볼터치 테스트.
한 명씩 나와서 발, 무릎, 허리, 가슴, 머리 등 여러 가지 높이로 오는 패스를 터치하고 공이 날아온 방향으로 재차 패스.
‘확실히 나한테는 더 강하게 패스를 준 것 같단 말이지.’
자신의 차례 전과 후에 다른 선수들이 테스트를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유건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가 테스트를 볼 때는 공을 훨씬 강하게 패스를 준 것 같았기에….
“유건 선수님! 포지션은 공격…이 아닌 미드필더로 지원하신 거 맞으실까요?”
“네, 미드필더 맞습니다.”
“유건 선수님은 C팀으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두 번째 테스트가 끝나기 전에 앞서서 진행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팀이 편성되고 있었다.
세 번째이자 오늘의 마지막 테스트는 20분 동안 진행하는 실제 축구 경기였기에.
공격수로 선수 생활을 하던 유건이 지원하는 포지션에 미드필더라고 써서 냈기에 확인차 질문을 받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드디어 차례가 온 유건이 배정된 것은 C팀의 수비형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
“축따님!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C팀인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더 잘 부탁드려야죠!”
유건이 C팀을 배정받은 이후로 같은 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오늘 하루 동안 함께 한 팀으로서 축구를 하기 위해 간단한 통성명 등 시답잖은 얘기를 하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A팀과 B팀의 전반전은 다른 6개의 팀 선수들을 관중으로 둔 채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체력과 볼터치 테스트를 통과하고 올라온 지원자들은 총 88명.
첫 번째 경기 이후에 테스트를 감독하는 사람들의 눈에 든 사람만이 두 번째 경기에 뛸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눈에 들지 못하면 바로 탈락.
삐이익-!
어쩌면 잔인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 테스트는 깨끗한 호각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휴, 저 아저씨 저기서는 저렇게 주면 안 되는데….”
“저 9번 친구는 볼 되게 잘 찬다 올라가겠는데?”
“와! 저 미들 피지컬이 장난 아닌데!”
프로에 도전하는 지원자들에게도 관중의 입장으로서 보는 것은 그것만의 재미가 있었다.
경기를 보면서 한 선수 한 선수에게 감탄하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못 해낸 선수에게 아쉬워하거나,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부러워하는 솔직한 반응을 내비칠 수가 있기에.
‘와!’
“와! 저 사람은 눈도장 제대로 찍었겠는데?”
A팀 원톱의 위치에 있던 선수였는데, 다른 사람의 말대로 평가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만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패스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뒤쪽에 B팀의 수비수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바로 리턴으로 살짝 뒤로 내주고, 곧바로 수비수가 없는 빈 공간으로 찾아들어 가는 움직임.
그것을 보고 바로 패스를 넣어준 A팀의 선수도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았겠지만, 방금은 공격수였던 선수가 9할 정도 만들어낸 골이었다.
삑! 삑! 삐이익-!
한 차례 멋진 장면이 나온 이후로는 심심한 경기가 계속되다가 종료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호흡을 맞추기에는 쉽지 않았고, 타이밍이 어긋나는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패스를 먼저 생각했다면 더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유건이 첫 번째 경기를 보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본 것은 사람들이 패스를 하는 타이밍.
그들을 보며 ‘자신이었다면 조금 더 빨리 혹은 조금 더 늦게 패스를 선택할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감상도 잠시, 다음 차례를 진행하겠다는 마이크 소리가 들려옴과 함께 C팀과 D팀의 경기 차례가 되었다.
그래서 유건도 주변에 있던 지원자들과 함께 경기장으로 내려갔고, 첫 번째 경기에서 그의 위치는 공격형 미드필더.
유건이 현재 따라잡을 목표로 하고 있는 지네딘 지단의 포지션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해보자.’
삐-익!
동전 뒤집기에서 이긴 D팀의 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여기 줘요!”
“여기 비었다!”
경기장에 내려오니까 확실히 느껴졌다.
입단을 원하는 지원자들의 경쟁심이.
조금이라도 눈에 들기 위해 공을 한 번이라도 더 만지겠다며 달라고 소리친다.
‘당연한 거지.’
그 부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공격을 주구장창 당하던 2분여 만에 흘러나오는 공을 잡기 위해 뛰어가고 있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발 안쪽으로 공을 안전하게 잡아두는 순간,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를 동기화합니다]
[지네딘 지단 데이터 동기화율 30.35%]
[입단 테스트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세요]
유건은 이제 중원의 마에스트로라 불리었던 전설적인 선수 지네딘 지단이 된다.
…아직 비록 30%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