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거짓이 아니라고요
“저도 제가 많이 부족한 선수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별튜브를 시작한 이유 자체가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여러분들은 제가 보완해야 될 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경기 영상을 모두 돌려보면서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패스를 거의 안 하네요?”
다른 의도가 있었기에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경기 영상에서 나오는 자신의 모습은 절대 패스를 하지 않았다.
별튜브를 봐주는 팬들을 위해서 조금 더 과장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을 뿐.
‘그런 새끼들만 아니었다면 나도 개인플레이를 안 했겠지.’
물론 거기에는 사정이 있었다.
유건은 전 소속팀인 서울 유나이티드의 모든 선수, 직원들을 방출당한 지금까지 증오하고 있었으니까.
- 가장 먼저 정신부터 잡자 유건아
- 아니 근데 유건 선수 솔직히 볼터치나 드리블은 수준급이라고 생각하는데 팀플레이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음
└ 이거 좀 동의함. 분명히 터치는 부드러운데 뭔가 축구를 쉽게 하는 느낌이 안 듦
└ 일단 너무 개인기로 제치려고 하고 주위를 안 봄
└ 진짜 패스만 보통 선수처럼 할 줄 알아도 공격포인트 그냥 쌓을 듯
- 그래도 플레이 영상 보면서 부족한 부분은 조금 깨달은 것 같긴 한데요? 유스 시절부터 응원하는 팬으로서 응원하겠습니다
-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냥 잘하는 것 같은데 진짜 프로의 길은 힘들구나
투웅-! 투웅-!
두 번째 올린 영상에 댓글이 계속해서 달리고 있을 때쯤, 유건은 운동장에서 리프팅을 하면서 오늘의 훈련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사실 그도 아무런 생각 없이 별튜브를 시작하고 [축따]라는 거창한 닉네임을 선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게 아버지의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 순간부터 시작된 일.
[1차 베타 서비스 참가자 유강의 DNA 확인, 1차 베타 서비스에 참가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첫 번째 참가자 기념으로 1단계 동기화가 3단계 동기화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원하는 동기화 서비스를 선택하세요]
[1. 슈팅 2. 볼터치 3. 조율 4. 패스]
보호대를 착용함과 동시에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의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것이 실낱같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기에.
유건이 선택한 것은 [조율].
그리고 그것을 선택했을 때….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를 동기화합니다]
[지네딘 지단 데이터 동기화율 27.15%]
볼터치 같은 기본적인 능력은 유스 시절 부족함을 느끼고 많이 연습했다.
물론 화려한 공격수였던 아버지의 플레이를 따라 하기 위해 개인기를 제일 열심히 연습했지만….
사실 이런 상황과 선택지 중 조율이라는 부분은 반신반의하고 찍은 감이 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운 사실 하나만 빼면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선수였지만 실력으로 추측되는 데이터 동기화율이라는 게 30%도 안 된다는 사실.
자신도 20년 동안 축구에 매진해온 프로선수였는데 말이다.
‘497, 498, 499 …… 500!’
[땅에 떨어트리지 않고 리프팅 500번]
[현재 데이터 동기화율 27.17%]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손목 보호대였지만, 유건을 계속해서 훈련시켜 주고 있었다.
하루 한 번씩 머릿속에 울리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말이다.
아직 게임을 뛰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만 하면 축구를 더 잘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어떻게든 나가보고 싶은데 말이야.’
유건이 현재 꿈꾸고 있는 것은 올해 중순부터 시작하는 올림픽 무대.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이는 그곳에 발을 딛고 싶다는 목표를 다지고 있었다.
아직 시작을 위한 발걸음도 내딛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 시각, 조용한 회의실에서는 두 명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박 팀장, 준비는 거의 마무리 되는 중인가?”
“거의 끝났습니다. 근데 정말 여기서 주전으로 뛸 만한 선수를 찾을지는 의문입니다.”
“나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킨 거지만 혹시 모르지 않겠나?”
“기대는 저도 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계에 몸담고 있어도 흔치 않은 경험이니까요.”
“한 명 정도는 건질 수 있으면 좋겠군.”
“그래도 이미 한 명은 건졌지 않습니까.”
“뭐 그것도 약간은 도박이잖나. 아무튼 잘 준비해보자고.”
새로운 걸 준비하는 듯한 대화 속에서 그들이 응시하는 화면에는 굵은 글씨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용인 FC 공개…]
***
한 달 전, 국내 축구계에 관심이 있는 축구팬들이라면 흥미가 있을 만한 재밌는 소식이 있었다.
지난 시즌 K리그2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FA컵에도 출전한 용인 FC의 공개 입단 테스트.
그들이 그것을 선택한 것은 희망이라는 한 글자를 붙잡고 싶어서였다.
국내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지 않은 보석이라는 희망 말이다.
승격을 노리는 경쟁팀들은 구단의 투자를 통해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강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그들은 빠져나간 전력이 더 많고 추가로 투자할 재정 상황이 안 되었기에.
안타깝게 승격을 놓쳤던 지난 시즌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사실이었다.
‘이제 2주 정도 남았네.’
K리그1에 소속된 팀에서 선발명단에 가끔 이름을 올렸던 유건도 용인 FC의 입단 테스트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심지어 K리그2의 팀들조차 시즌 시작 전 방출당한 유건에게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야. 다른 팀으로 이적하려면 그런 놈들이었더라도 패스를 했어야만 더 눈에 띄었을 텐데….’
별튜브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플레이를 수없이 반복해서 돌려보았다.
부드러운 볼터치와 화려해 보이려고 하는 개인기는 유건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점이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개인 플레이.
그것은 다른 팀들에게 있어서 유건을 매력적이지 않은 선수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단점이었다.
어떤 팀에서도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난 아버지가 아니야.’
세계적인 선수가 포진해있던 프리메라리가,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그라운드를 휘젓던 유강.
바디페인팅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선수 호나우두.
간단한 발재간만으로도 상대 선수를 지나쳐가는 리오넬 메시.
그 둘을 합쳐놨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화려한 개인기와 드리블을 자랑했던 아버지.
유건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미 원하는 타 팀으로의 이적은 성공했을 것이다.
‘패스를 못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사실 유스 시절에는 패스가 좋지 않은 편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유나이티드 생활을 하며 항상 선택지를 드리블로 결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가장 시급한 문제점이었다.
입단 테스트라는 천금 같은 기회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에 가까웠지만 유건은 도전해보기로 했다.
[현재 데이터 동기화율 28.53%]
머릿속에 들려오는 유일한 희망 한 줄기가 있었으니까.
실제적으로 축구 경기를 뛰어볼 기회는 없었기에 얼마나 달라진지에 대해 체감이 쉽지는 않았지만,
공에 닿는 발등의 감각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는 것은 느껴졌다.
투웅-! 투웅-!
이전보다 부드러웠고,
이전보다 공이 아름답게 회전했으며,
이전보다 세밀하게 컨트롤되었다.
‘지단이라, 참 대단한 선수란 말이야.’
항상 화려했던 공격수들만의 영상을 시청하고 따라 하려 했었다.
자신에게 가장 맞는 포지션은 공격수라고 생각했던 유건이었기에.
그래서일까, 처음으로 보게 된 그의 영상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과연 자신이었다면 저기서 저렇게 패스를 보냈을까.
‘아니, 또 막연하게 드리블로 눈앞의 사람을 제쳐내는 데만 집중했겠지.’
그런 자신에게 축구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영상.
반복해서 볼수록 감탄을 하게 되는 유건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오른쪽 선수에게 패스하고, 만약 상대가 바로 앞에 있으면….’
한 번을 더 거쳐 가는 생각.
패스라는 선택지를 적어도 서울 유나이티드에 소속된 삼 년 동안은 머릿속에 두지 않았던 유건은 다시 유스 시절의 마음가짐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마칠 때쯤, 저녁 시간이 되었는지 하늘도 색이 바뀌었다.
‘실제 축구를 하기 위해서라도 입단 테스트에서 눈에 들어야 한다.’
아무리 개인 훈련을 반복해서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기에, 유건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용인 FC에서 새 출발을 꼭 하고 말겠다는 다짐 말이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유건의 뒤를 붉어진 노을이 비춰주었다.
마치 그의 밝은 미래를 응원하는 것처럼….
***
[따라 하고 싶은 첫 번째 선수를 정했습니다]
용인 FC의 입단 테스트 공고가 올라온 이후, 별튜브 영상 업로드를 잠깐 멈추었던 유건.
2주라는 간격을 두고 올라온 그의 영상.
내용은 별튜브의 제목에 맞게 그가 따라 하려는 첫 번째 선수를 공개하는 영상이었다.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 오! 축따 오랜만에 방송 켰네.
- 이제 아예 별튜브 크리에이터 같은데?
- 축따 용인 FC 테스트 볼 거임?
- 아니, 형들 오늘 주제는 따라 하는 선수 드디어 공개하는 것 같은데 조용히 좀 해봐
- 잘생긴 얼굴 좀 보자 축따야
카메라를 어깨까지만 나오게 세팅했기에 시청자들은 유건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먼저 오늘은 방송의 주목적이 있기에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첫 번째로 따라 하고 싶은, 따라 해야만 하는 선수를 공개할 생각입니다.”
“제 선택은 말입니다.”
“이 선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 축따야 그냥 공개하자 방송 늘어진다
- 장황하게 설명 안 해도 다 알아들으니 바로 공개해주라
천천히 설명하려는 유건을 재촉하는 시청자들.
“그럼 바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맞춰주기 위해 설명 없이 바로 공개하는 유건이었다.
“지네딘 지단입니다.”
- 아니 잠깐만 축따 너 공격수 아니냐?
- 공격수 포기한 거임?
- 아니 따라 한다고 될 거였으면 누구나 따라 했지 축따야
“여러분의 말대로 저는 공격수였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켜지 않았던 2주간,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포지션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따라 한다고 그 선수의 실력에 도달하기 쉽지 않겠지만, 축따 나름의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지켜봐주십쇼, 여러분.”
“제 다짐을 보여드리고자 제가 처음으로 어떤 것을 따라 한지 아십니까?”
그 말이 끝나고 수정된 카메라 화면에 나온 것을 보면서 채팅창은 매우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크크크크, 이 미친놈!
- 아니…, 축따야 너 지금 진지한 거 맞냐?
- 대체 이걸 따라 한다고 뭐가 바뀝니까? 새 출발을 응원하는 팬으로서 너무 실망입니다
- 미치겠네 진짜! 솔직히 말해보셈. 술 한잔한 거 아님?
다양한 반응이었지만 대부분은 비웃음.
대체 유건이 카메라에 비춘 것은 뭐길래 시청자들이 이런단 말인가.
“아니 여러분, 이거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서 한 거라니까요?”
“저 축구 정말 좋아합니다.”
“거짓이 아니라고요.”
“잠깐 물 좀 떠와서 다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물을 뜨러 가는 유건의 뒷모습은 빛이 났다.
몸에서 나는 광채는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분명히 빛이 났다.
용인 FC 입단 테스트를 일주일 앞둔 날 저녁 방송에서 발생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