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1화 (1/208)

1화. [축따]

“이것으로 끝났다네. 자네를 방출하고자 하는 경영진의 의견은 한 표의 반대조차 없었네.”

“아, 아직 저는 보여줄 것이 더….”

“삼 년! 자네를 이곳에 데려오고 나서 삼 년이 지났는데 매년 최하 평점에 워스트 일레븐에 빠짐없이 들었지.”

“이제 뭐를 더 볼 수 있는 건가? K리그 최하위 선수라는 이름표를 보여줄 건가? 자네 아버지의 반의반만….”

“아직 구단 선수들과 친밀해지는 데도 적응을 못 하고 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언젠가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한국 선수로서 유일하게 발롱도르를 받았던 유강 선수의 아들, K리그 전격 데뷔!]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 공격수 유건, 서울 유나이티드와 전격 계약!]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온갖 뉴스를 장식하며 K리그에 입성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유건은 그때로부터 삼 년 동안 꾸준하게 워스트 일레븐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팀플레이를 모르는 천재는 부활할 수 있을까?]

[일대일 돌파만 미친 듯이 시도하는 유건]

개인 플레이만 한다는 수많은 축구 관계자들의 평가와 함께.

그들은 유건이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어떻게든 눈에 띄고 싶었었다.

다만 그게 실패했고,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막상 닥치니까 막막하네 진짜.’

예상을 했다 하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평생 축구만 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다른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첫 번째.

과연 축구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가 두 번째.

‘…아버지, 보고 싶네요. 왜 그렇게 젊은 나이에 가신 겁니까?’

두 가지 의문을 가진 채 빈손으로 구단 밖을 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나 마드리드의 별이 되어버린 그 남자이자 아버지를.

단 세 시즌을 치렀지만, 유건의 아버지 유강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세운 기록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팀의 암흑기를 깨고 부상으로 인한 기존 에이스들의 부재를 메우면서 트레블까지 달성한 그 시즌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여 받았다.

하지만 세 번째 시즌이 마지막.

홈구장에서 펼쳐진 우승을 확정 짓는 리그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큰 교통사고와 함께 마드리드의 별이 되었다.

당시 겨우 열네 살이었던 유건을 두고서.

***

[서울 유나이티드, 워스트 공격수 유건과 전속 계약 해지]

[유건, 축구선수 생활 포기 선언?]

구단의 팬들 사이에서도 인기 없는 선수였기에, 뉴스가 도배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K리그 선수였다.

시즌 개막 전이었기에 갑작스런 선수방출 소식이 국내 스포츠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기에 충분했던 타이밍이었던 건 불행이었다.

째앵-!

‘…지랄 같은 하루의 시작이네.’

벙쪄서 기사를 읽어보던 중,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순간 놓쳐버렸고 곧바로 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 생겼던 일이 꿈이었을 거라 믿어볼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뉴스 기사들은 도배되었다.

이제 유건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큰 부상을 당한 경험이 없는 튼튼한 몸, 그리고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재산뿐.

덕분에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아왔지만 그게 다였다.

“돌아가겠습니다, 한국으로.”

유스 생활에 필요했던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풍족한 상황이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정신적인 충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결국 종착지는 귀국.

제대로 축구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마드리드의 최고 기대주 중 한 명으로 꼽혔음에도, 유스에서도 점점 선발 출전의 기회가 사라져갔다.

거기에 마침 계약을 제의한 K리그1의 구단으로 이적을 결정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도피처였다.

물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선택이 옳지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를 포기할 수는 없어.’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풍족한 돈과 어린 나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어제부터 끊임없이 해온 생각은 자신이 축구를 그만두고 다른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결론은 당연지사 불가능.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는 기쁨, 그것은 유건에게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였었기에.

현실이 냉정했을 뿐이다.

아니,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스스로의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일 수도….

유일하게 붙잡아보고 싶은 희망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아버지가 남겼던 한 마디.

“스물한 살이 되어 프로 선수가 된다면, 이걸 물려 줄게 아들!”

축구공을 품에 쥐고 있는 유건을 들어 올리고는 따뜻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네던 아버지 유강.

그 말과 함께 어린 유건의 눈앞에 보였던 건 바로 아버지인 유강의 손목 보호대였었다.

아름다운 흰색 유니폼에 너무 잘 어울렸던 흰색 스포츠 아대.

그것을 착용한다 해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미래만 생각하고 있는 유건의 발은 자연스레 그것을 보관해둔 장소로 향했다.

기적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체취가 힘이 되어줄 것만 같았기에.

끼익-!

한 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서랍이 당겨지는 소리는 귀를 아프게 할 만도 했지만, 지금 유건에겐 관심사가 아니었다.

정성스레 보관해두었지만 꽤 먼지가 쌓여 있는 손목 보호대.

‘아버지의….’

약간은 거무튀튀하게 때가 묻은 그 보호대를 무언가에 홀린 듯이 손에 차는 순간, 머릿속에 낯선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유건은 정신을 잃었다.

[1차 …… 유강의 DNA ……, ……베타 서비스…… 환영합니다]

[………기념으로 3단계 동기화…………]

[1. 슈팅 ………… 4. 패스 ]

***

일주일 뒤, 국내 축구팬들은 유건이 개설한 별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하나의 동영상에 각자 저마다의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는 위로의 말을.

누군가는 비난을.

누군가는 비웃음을.

누군가는 격려를 목적으로 말이다.

- 아니 얘 진짜 제정신인가?

- 이제 축구선수는 포기한 건가요?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네요

- 2부리그에서라도 새로운 시작을 해보세요. 아직 어린 나이입니다.

- 미치겠네 진짜! 우리 팀 망쳐놓고 이제서야 돈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여기 나타난 거 아니냐고

- 진짜 레알 마드리드 유스라고 해서 손흥민, 이강인 같은 선수가 또 나올 줄 알았는데. 어휴, 안타깝다.

- 기대됩니다. 이걸로 다시 축구선수에 도전하신다니요

[축따]라는 닉네임으로 아무런 편집도 하지 않은 채 별튜브에 업로드된 하나의 영상.

바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한 유건의 영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축구선수 유건, 아 일주일 전까지 프로축구선수였던 유건이라고 합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처음 저를 보게 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되어 이제 무소속인 축구선수입니다.”

“별튜브를 시작한 이유는 제가 다시 한번 축구선수에 도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직 현역으로서 직접 프로리그에 도전하는 과정들을 촬영하면서 생기는 여러 일들을 담아볼 생각입니다.”

“닉네임의 의미는 말 그대로 [축구선수 따라 하기]를 줄인 [축따]입니다.”

“저에게 부족한 부분을 유명했던 선수들의 플레이를 따라 하면서 보완해나갈 생각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내용의 일 분 남짓한 영상.

그래도 어린 나이에 프로였던 선수가 직접 별튜브를 시작한다고 해서일까.

영상이 올라온 이후 조금씩 소문이 퍼져나가 구독자 수는 천명을 돌파했다.

더불어 국내 축구 관련 사이트에는 여러 글들이 작성되었다.

[제목 : 축따 봤냐?]

형들, 유건 방출되고 나서 별튜브 시작했음.

닉네임 축따 검색해봐.

얘 지금 정신줄 놓은 것 같음.

[제목 : 유건 선수에게 쓰는 편지]

유건 선수님, 아직 어린 나이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제발 축구나 열심히 하세요.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제목 : 드디어 서울 유나이티드가 정신차렸다]

작년 우승 놓치더니 드디어 정신 차렸다 우리 팀.

유건은 진짜 이 년 전에 방출되었어야 되는데 왜 이제 됐는지 모르겠음.

이제 시작이다.

우리 팀 우승할 일만 남음.

그리 많지 않은 글이었지만 대부분이 비난이었다.

유건이 쉽게 포기하고 별튜브로 전향한 것에 대한 실망을 담아서.

바로 그 시각, 유건은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다들 실망하셨을 걸 알지만…, 으아아아아!!’

아니 키보드가 아니라 유건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크게 마음먹고 올린 영상의 댓글에 종합적인 하나의 댓글을 달기 위해서.

사실 비난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수많은 댓글 중, 반 이상은 비난이었다.

그것을 보며 사람들을 설득하려 생각했던 것도 잠시였고 머리를 두드리며 포기했다.

‘아니 그래도 반 정도의 사람들은 응원해줄 줄 알았다고…, 루이스 이 개자식 나중에 만나면 지금 이 수모의 이자까지 쳐서 갚아준다.’

유건이 별튜브를 시작한 계기는 한 통의 전화.

지금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신성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는 유스 시절 친구 루이스로부터 온 전화였다.

“유건, 방출되었다는 소식은 어떻게 전해 들었다. 너 나랑 한 약속 잊은 거 아니지?”

“Claro que si(물론!) 조금만 기다려 이 개자식아.”

“큭큭, 이 형님이 얼마 전에 골 넣은 건 봤고? 그날은 얼마나 더 멀어져야 만족하겠냐?”

“두고 보자고 루이스! 일단 올림픽에서 만나는 거다. 내가 어떻게든 나갈 테니까!”

“그래 이 형님은 항상 널 응원하고 있다. 그러게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버티라고 그랬지?”

유일하게 아직까지 연락하고 있는 어린 시절 동료이자 친구.

나머지 동료들은 거리가 멀어지면서 마음도 멀어졌지만, 루이스는 꾸준히 유건에게 연락을 먼저 해오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특유의 익살스런 농담으로 유건을 놀리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속마음은 위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두고 경쟁하자.”

유건이 한국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전할 때 루이스와 했던 약속.

혹시나 자신의 친구가 비참한 현실에 축구를 포기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에 그들의 어린 시절 약속을 들먹였던 루이스였다.

집이 가난해서 유스 시절 부유했던 유건의 집에서 거의 숙식하며 훈련장에 같이 다녔던 그날들을 떠올리면서….

하지만 그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친구인 유건이 별튜브를 시작할 거라고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실력도 그렇고 더군다나 방출을 당하면서 아무 팀도 관심을 안 가질 거고….’

단지 포기하지 말라고 위로해준 것뿐인데 예상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방법을 택할 줄은 말이다.

그리고 유건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도전해보고자 하는 이 작고 새로운 마음이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지 말이다.

축따, 별튜브 입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