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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70화 (270/270)

270화 도전의 의미

류재준의 [파동]이 한 차례 전장을 훑고 지나가자, 중국과 한국의 본대가 서로 마주하는 데에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들 짬이 있는 헌터인 만큼, 에어비트 같은 마나장비의 사용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만나자마자 곧바로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지는 않았다.

먼저 도착한 중국 선수들도. 한국 선수들도, 말 그대로 ‘적당히’ 합을 겨룰 뿐. 본신의 힘이라고 할 법한 비장의 한 수를 서로 꺼내들지 않았으니까.

이런 교착 상황이 어색했던 탓일까?

강준혁이 이어폰에 작게 속삭였다.

“탐색전이 길어지고 있는데……그냥 먼저 [마나전개]를 해서 선공에 나설까?”

지금껏 봐왔던 중국 경기의 양상과 너무나도 달랐기에, 이질감을 느낀 나머지. 강준혁이 이민석에게 제안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민석은 저들이 왜 그러는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국제리그라는 높은 무대에서 여러차례 뛰었던 경험. 연륜. 전술적 지식이, 저들이 무엇을 경계하고 있는지 속삭였다.

“아마 창현이가 숨어서 사격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경계하는 거야.”

중국과의 경기 전, 한국이 일본과 했던 경기. 그 경기를 봤노라면, 확실히 이창현의 사격을 경계하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이민석의 말에도 허점이 있었던 걸까.

“……그런 것 치고는 아무리 창현이라고 해도 섬광의 웨이를 저격하는 데 성공할 리는 없을 텐데. 너무 소극적인데요.”

“……!”

류재준의 대꾸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이민석은 충격을 받았다.

그 말로 인해 지금 이 전장의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전장에 나쁜 상황은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 이창현이었다.

“창현아. 아마 그쪽으로 웨이가!”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이창현의 대답이 이어폰 너머로 들려왔으니까.

“네. 왔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창현과의 통신이 고의적으로 끊어졌다.

이쪽의 상황을 신경 쓰며 상호작용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고. 반대로 이쪽의 싸움은 이민석에게 온전히 맡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본디 이번 경기의 계획은, 시작된 순간 이창현을 별동대로 파견하여 유물이나 맵의 변수를 크게 이끌어내는 것이었는데.

‘어그러진 건가…….’

중국팀이 어떻게 이 전략을 미리 읽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있었다.

확실히 체급에서 열세라고 평가받는 한국팀이, 6대6으로 건너편에 서 있는 저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 이기거나, 최소한 비겨야 한다는 사실을.

결심을 하고, 다시금 중국 선수단을 바라본 순간.

그들도 웨이에게서 이창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이쪽을 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

“허어…….”

한국 선수단의 대기실에서 이근택이 침음에 잠겨있었다.

전부터 이창현이 이근택에게서 보여주었던 뛰어난 모습. 그가 남들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맵과 유물의 비중이 큰 맵에선 그걸 찾아 변수를 만드는 전략을 짠 것이거늘……

상대도 이창현의 과거 경기를 분석해 똑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었을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럴 순 없었다.

‘만약 이창현이가 유물을 찾아 움직일 거라고 예상을 하더라도, 유물의 위치를 알아야 저리 먼저 도착해 있을 수 있을 터인데. 대체 어떻게.’

전략에 있어 더 신중했어야 했나, 이근택이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게 경기 전에 짤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캐스터 : 아……! 이창현 선수가 웨이 선수랑 마주합니다! 서로 경기 전 무언가 약속이라도 한 걸까요? 서로 본대에서 빠져나와 1대1 상황이 되는군요!]

[해설자 : 지금 그 상황에 이어, 중국 선수단과 한국 선수단. 본대가 모여있는 쪽은 6대 6으로 대치구도가 깨지고 전투가 일어납니다! 서로의 에이스의 위치가 확인되기 전까지 기다렸던 모양인데……

아무튼, 지금 상황은 최악이었다.

화면에서는 대화를 나누는지, 그리 움직이지 않는 웨이와 이창현 쪽보다 이민석 쪽을 비추고 있었다.

이창현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확인한 중국의 젠화의 선공.

그의 [마나전개]인 [바람의 영역]이 퍼져나가며 중국선수들이 한국선수들을 향해 밀물처럼 쏟아져들어왔다.

“칫. 잔챙이들만 잔뜩 있구만. 웨이 녀석 또 자기만 재미보려고.”

“이기는게 중요하지, 누굴 상대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하이옌.”

“꽉 만힌 소리하긴. 이 경기, 애초에 질리가 없는데 뭔 헛소리를.”

중국선수들은 시덥잖은 대화를 하며, 젠화가 일으킨 [바람의 영역]의 강풍을 타고 접근하기 시작했고. 전투가 개시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쯧…… 중국 애송이 녀석들이.”

입모양으로도 쉽게 한 말을 읽어내는 이근택으로서는 이 상황이 영 못마땅했지만, 별달리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기에.

그저 다른 관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국의 선수들을. 자신이 데리고 온 녀석들을 믿는 것뿐.

[캐스터 : 아!! 나왔습니다! 젠화의 [바람의 영역]!! 중국 선수단에서 웨이를 제외하고도 마나전개의 사용자가 둘이나 있는 만큼, 쉽지 않은 싸움이 예상되는데요. 하이옌 선수! 빠르게 파고듭니다!]

전장은 그것을 시작으로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

중국에 있는 두 명의 마나전개 사용자의, 전장을 휩쓰는 강력한 힘. 그리고 전선에서 그나마 힘의 균형을 맞춰주고 있는 [검의영역]사용자 강준혁.

다른 선수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만, [마나전개]라는 것은 주변의 마나를 장악해 전장을 휩쓰는 힘.

그렇기에 그 사용자의 인원 수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 그건 바로 정면 힘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해설자 :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한국팀! 계속 이렇게 밀리는 순간 끝이에요! 비장의 무기라도 무언가 준비해 온 것 없나요!]

강준혁이 한 발. 두 발. 뒷걸음질 치는 동안, 해설자의 말이 강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 이근택의 눈은 이민석을 향하고 있었다.

‘……녀석아. 이번엔 어떻게 할 테냐.’

***

‘미래유적의 무덤.’

탑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 맵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무덤이라기엔 너무나 화려했다.

다 무너져가서 아포칼립스 느낌을 제대로 내는 주변의 건물들과 달리. 가장 중심에 높게 뻗은 포대처럼 되어있는 랜드마크 건물.

그리고 그 중앙에 떠 있는 거대한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십자 형태의 거대한 광원.

거기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분위기는 되레 미래도시라기보다는 마치 어떤 신화에 나올 법한 제사장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그리 빛이 쏟아져내려오는 곳에 뒷짐을 진 채로, 뒤돌아 서있던 웨이는.

마치 천하를 오시하듯, 고고한 자태로 막 도착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작 이딴 수법이 내게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

마치 별세계에서 걷는 듯한 신선놀음처럼. 그는 제단 위에서 걷고 있었다.

‘다 읽힌 건가.’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틀림없이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회귀하기 전.

아무도 모르던 것을, 한 헌터가 국제전에서 사용하여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이었고.

다른 어느 나라도. 중국도. 이 맵에서 경기를 할 때, ‘페일노트’의 존재를 모르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으니까.

하지만 미래라는 것은 내가 아는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내 움직임과 행동이 변한 것처럼, 상대도 그에 맞춰 변하므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네에게 실망한 것은 아니네. 이 경기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이것을 사용해야만 승리할 수 있을 터이기에.”

심지어는 놀랍게도, 웨이는 이 유물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자세히 아는 듯 보였다.

그가 옆으로 걸으며, 후광이 약해지고. 건물의 다른 조형물들이 배경으로 보여졌다.

“이 맵에 붙여진 이름은, ‘미래유적의 무덤’이라고 하더군. 비석도, 죽은 사람의 유품도 없는. 평범하게 망해버린 도시인데, 왜 무덤인지…… 자네는 알고있나?”

대답을 바랐던 질문은 아니었던 것일까.

웨이는 옆으로 걸으며, 본디 깔끔했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얼룩진. 차디찬 SF풍의 금속벽을 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다 죽었기 때문이야. 이곳을 실제로 조사하던 헌터가 그리 남겼더군. 탑 생태계의 변화로 밀려온. 주변 중립몬스터의 떼를 이기지 못하고, 다 죽었다고.”

웨이가 갑자기 그 말을 끝마추더니, 무엇이 어이가 없었던 것일까. 혼자 비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위대한 병기라고 칭하던 것들을 평생 써보지도 못하고 모조리 죽어버린 게지.”

순간 위를 바라보는 웨이의 시선에 무언가가 홀린듯. 나도 바라보게 된 그 시선의 끝에는.

거대한 포대처럼 되어있는, 중간에 빛나는 핵이 띄워져있는 이 건물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그런 건가…….’

다만,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워도. 이제 더 이상 듣고만 있을 필요가 없긴 했다.

‘이제 대충 지형파악과 전투 설계에 대한 고민은 끝났으니까.’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뭡니까. 이 도시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무기 하나 사용하지 못하고 다 죽었는데. 저희 팀도 패배할 거다. 뭐 그런 말이라도 하시려는건지.”

개인적으로 웨이가 어떤 인간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런 장황설을 늘어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끌끌……아직도 모르겠나.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는 게지.”

“…….”

“작은 교훈이지. 위험이 될 것은 미리 완전하게 싹을 뽑아놓아야 한다는. 뭐 그런. 이 도시의 주민들이 먼저 주변의 중립몬스터를 치워뒀더라면,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 안 그러나?”

그 순간, 웨이의 눈빛이 이전과는 달리 섬뜩하게 느껴졌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처럼.

“그런 의미에서 자네는 운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네. 멍청한 이 도시의 주민들과 달리, 나는 먼저 장애물의 뿌리를 뽑을 줄 아는 사람이니.”

‘그리 장황설을 늘어놓았던 것이, 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던 건가…….’

“아마 자네는 별 생각없이 이 경기를 시작한 것이겠지만…… 나는 자네에게 이 경기에서 ‘공포’를 심어주려고 하네.”

마치 불교의 구도자처럼 보였던 웨이의 넉넉하고 편안해 보였던 얼굴이, 마치 악귀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새삼 회귀 전의 소문이 떠오르는 것은 덤이었다.

‘신인 시절 웨이와 떴던 선수들, 특히 1대1로 싸웠던 선수들이 계속 인간상성으로 남아 웨이에게 승리를 헌납한다는 이야기가 이것이었나…….’

“어떤가. 이래도 내게 도전하는 겐가. 만약 도망가겠다고 하면 10초의 여유를 주겠네.”

‘10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회귀 전 소문으로만 들려 진짜인 줄 몰랐던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섬광의 웨이’가 이명인 만큼, 기동력으로 도망갈 수 없다는 걸 계산해두고 한 수 접어주는 양 가식을 떠는 모습이 느껴졌다.

동시에 아예 대놓고 ‘공포’를 심어주겠다고 말한다니.

그를 몰랐기 때문이지만, 한때나마 호탕하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우스워졌다.

자신이 나아갈 수 없다면, 남을 나아가지 못하게 붙잡겠다는 것.

선수가 된 자로서, 그의 이런 진면모를 보았을 때 추악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답할 수 밖에 없었다.

“도전이라…….”

그건 그에게 쓸만한 말이 아니었다.

아마 내게는 좀 더 멋지고 숭고한 의미이지 않을까.

“그보다는 이게 맞을 것 같은데. 그냥, 이기러 왔어요.”

그 말과 동시에 웨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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