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다시, 똑같은 무대에서
경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시작되었다.
이번 국제교류전의 마지막 경기였기에. 자신들의 경기를 끝낸 타국의 다른 선수들 또한 관중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함께 연습하면서 한국 팀을 상대로 꿍꿍이를 꾸몄던 베트남 선수단. 치열한 접전 끝에 패배를 내주었지만, 이번 국제교류전에서 한국이 가장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는 데 함께한 일본 선수단.
그 외에도 태국을 비롯한 다른 선수단이 관중석에 앉아 마지막을 장식할 경기를 보기 위해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로 올라서면서 긴장되지는 않았다.
이제는 아마 지긋지긋하도록 지켜보게 될 장면이기도 했으니까.
다른 선수들 위에 선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으니까.
“다들 준비는 됐어?”
대답은 필요 없었다. 아무리 강적이라고 한들, 지금까지 한국 선수단은 연이어 타국 최고의 팀들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연승을 이어오고 있었으며.
이번 또한 가능하리라고, 굳게 믿고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좋아. 가자.”
별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구구절절한 오더는 경기 안에서 하는 것으로 충분할 테니까.
***
한편 막 국제교류전의 시작이 중계되고 있는 한국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아니었다.
지금껏 국제교류전 전승은 무슨.
국제교류전에서 시드권을 한 개 더 따오는 것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던 한국이 이렇게나 선방을 하고 있으니 나라가 온통 헌터스리그 이야기뿐이었다.
사실상 전례 없는 흥행이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
연승 행진을 하다가 일본과 마주쳤을 때도 한바탕 뜨겁게 달아오르긴 했었지만, 지금의 그것은 차원이 달랐다.
기대가 없어 보지 않다가, 일본을 7대 0 퍼펙트 게임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는 소식에, 기대감에 부풀어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으므로.
중계진도 덩달아 어깨가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역대급 시청자 수. 그리고 한국을 응원하는 미친 듯 뜨거운 열기.
그것을 중계하는 중계진 역시,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
[캐스터 : 이제 드디어 마지막 경기입니다! 대망의 중국전인데요. 이게 국제교류전 마지막 경기이죠?]
[해설자 : 네 그렇습니다. 이제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결정 나기도 하고. 동시에 아시아부문 국제교류전이 끝이 나게 됩니다.]
[캐스터 :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지만. 이번에는 물어봐야겠군요. 이번 승리로 중국과 한국이 1등과 2등으로 가려집니다. 만약 한국이 승리한다면 중국을 제치고 1등에 올라서 국제리그의 시드권을 3장 가져가게 되나요?]
지금까지 한국이 국제리그에 나갈 수 있었던 팀은 단 하나. 반면에, 헌터스리그 강국인 중국은 3개였기에.
이번 경기로 그 랭킹이 뒤바뀌냐는 말이었다.
[해설자 : 아쉽게도 3장을 가져가지는 못합니다. 이번에 이긴다면 분명 한국 리그의 평가가 아주 높아지겠지만, 각 국가의 선수단 수준뿐 아니라, 각 국가에 소속된 헌터스리그 자체의 수준. 세계 랭커급 선수가 얼마나 있는지. 높은 폼을 얼마나 유지하는지 ……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 말에 곳곳에서 탄식이 울려퍼졌다.
그럼 결국 이 경기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해설자의 말에 이내 사람들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해설자 : 대신. 이번에 승리하게 된다면, 확실하게 국제리그에 2장의 시드권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헌터협회에서도 중국 선수단을 이긴 한국에 지금처럼 꼴랑 1장만 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보다도, 더 큰 효과는 아무래도 한국 헌터스리그의 위상이 높아지는 부분이 있겠죠.]
[캐스터 : 위상이라…… 너무 추상적인 거 아닌가요? 다른 실질적인 이득은 없을까요?]
[해설자 : 아뇨. 한국 헌터스리그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건 실질적인 이득도 상당히 많습니다. 한국리그가 유명해짐에 따라 수많은 스폰서들이 추가로 들어오게 될 것이며. 한국 유망주들 또한, 더 높은 페이를. 그리고 더 양질의 헌터를 국가가 관리하게 됨으로써 국가 경쟁력의 향상도 된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한국 헌터협회에 따르면, 이번 국제교류전 전승 시 경제적 홍보 효과를 3조로 보고있다고 하더군요.]
그리 실감이 가지 않는 액수였던 것일까?
채팅창의 반응은 그저 유쾌할 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제 한국이 주변 국가들에 어깨가 쳐질 일이 없이, 기를 쫙 펴고 다닐 수 있을 거란 사실이었다.
이젠 한국 헌터이야기를 할 때, 시대에 뒤떨어져 옛날에나 잘 싸웠던 헌터들이라고 비하받을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중계진 측에서 이번 경기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하던 찰나.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바빠야 할 중계진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와…… 저런 맵은 또 처음 보네. 헌터스리그는 대체 맵이 몇 개냐?]
ㄴ 약간 아포칼립스 같은 느낌의 폐허이면서도… 현대적인 건물은 아니고. 근데 저게 실제로 탑에 있는 장소인 거임?
ㄴ 약간 SF느낌도 나네 ㅋㅋ 뭔가 유물이랑 맵 변수 많을 것 같은 느낌.
ㄴ 변수 많은거면 이쪽에 좋은거냐 중국에 좋은거냐?
ㄴ 경험 많은 쪽이 무조건 좋지.
ㄴ 그럼 웨이 있는 중국이 좋은건가?
압도적으로 펼쳐진 이번 필드는 굉장히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중계하기 제일 어려운 순간이 이런 순간이기도 했다.
모르는 맵. 모르는 변수로 가득한 것이 나오는 때.
선수들이 모르는 것만이 아니라, 중계진도 모르기에.
하지만 그들도 프로이기에, 그 침묵은 길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더라도, 시청자들을 위해 해설하는 것 또한 그들이었으니까.
[캐스터 : 사실 이번 경기. 해외 중계진과 분석가의 경우. 중국의 우세를 점치는 전문가가 많았습니다. 일본을 이겼다고는 하나, 한국 선수단의 체급이 그리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런 맵이 나왔는데. 이번 경기의 흐름은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요?]
캐스터가 겨우 입을 열어 중계를 시작하던 찰나.
화면에서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로 시작했지만,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체계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한국 선수단의 모습이 보여졌다.
한국에서도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맵이었기에, 당황할 법도 한데.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것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진짜로 그리 생각했던 것일까.
[해설자 : 일단은 지금 이 상황 자체는 한국 선수단에 유리해 보입니다. 변수가 적다는 건 체급 그 자체로 결정 나기 쉽다는 뜻. 변수가 많으면 오히려 중국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에는. 그리고 다른 전문가들 의견으로는 오히려 미지에 대응하는 헌터의 능숙함.
연륜. 경험등이 더 많이 갖춰진 중국 팀이기에, 대처능력이 뛰어나 중국이 이 맵에서 더 유리하다고 진단을 내리긴 했지만……
한국 해설자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맵을 통한 변수는 확실히 더 경험 있고 연륜 있는 선수가 긍정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건 맞다. 맞지만.
동시에 알고있기도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실낱같은 가능성마저 없어 보이는 상황에도 항상 이겨줬다는 사실을.
항상 이창현이 불가사의한 힘을 보여주며 증명했다는 사실을.
***
경기가 시작된 후.
가장 처음으로 느낀 감상은 이거였다.
‘내가 진짜로 돌아왔구나.’
원래라면 되게 생소했어야 했을 이 맵이. 분명 회귀 전 과거. 이 시점에 경기를 치렀었던 곳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강준혁도, 이민석도 없었지만. [만개]를 개방한 내가 열심히 분전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거기에 분전했지만, 혼자로는 중국 팀을 이기는 것이 어림도 없어, 쓰라린 패배 이후 누구보다 서럽게 울었던 것도 기억에 남았다.
왜냐면, 그때 얼마나 억울했던지.
한국 헌터스 리그 1부 선수로 LTD에서 우승을 한 후. 자신감이 올라온 상태에서 패배해서 더 타격이 컸었다.
경기가 끝나고 울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한국에선 꽤나 화제가 되었던 걸로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분위기가…… 그래도 절반의 승리라고는 하나, 한국 팀 헌터스리그 국제전 역사상 이렇게 많이 이긴 적이 없었다. 지고 나서 분해하는 것 보니 미래가 밝다.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그때 그런 말을 듣는다고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국제무대를 실질적으로 제대로 처음 접한 때에. 생각보다 국제전에서 타국의 선수들이 잘했어서.
‘물론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고, 아무렇지도 않지만.’
분명, 그때 이후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플레이. 일종의 줄타기 플레이의 빈도가 느는 계기가 되었기에. 확실히 뇌리에 박힌 경기였다.
그뿐만일까.
회귀 전, 여기에서 했던 경기를 매일같이 회고하면서, 이랬으면 이겼을까. 저랬으면 이겼을까. 하면서 쉐도우 복싱을 잔뜩 했던 기억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맵 보고 놀란 건 아니지? 슬슬 시작하자. 당황한 건 아마 상대도 마찬가지일 테니, 선수를 치는 쪽이 좋을 거야.”
경기가 시작되고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긴장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민석의 조언이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사실 더 떨리는 쪽은 이민석 쪽일 텐데도.
“괜찮아요. 긴장 안 했으니까. 다들 연습대로만 해 보자구요. 모르는 맵이라고 하더라도 변수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 말에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경기를 승리로 마치면, 바닥을 빌빌 기던 한국이 국제교류전 전승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이 생기겠지.
만약 팀원 중 누군가가 실수한다면, 그것이 한국 국제전의 대기록을 방해한 것이 되어 역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
큰 무대는 별로 겪어본 적 없을, 류재준이나 윤한결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할 수 있는 무게의 경기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말을 더 이상 더하진 않았다.
‘결국 선수는 이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니까.’
견딜 수 없다면, 차라리 빨리 그만둬 버리는 것이 좋을 테니.
나도, 이민석도, 강준혁도…… 그 외의 다른 선수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대기 멤버였던 류재준이 경기에 들어왔기에, 교체되어 대기실에서 지켜보고 있을 이연주조차도 예외는 없었다.
그나마 국내전의 경우 괜찮겠지만, 지금 하는 것은 국내 헌터스리그 경기가 아니었으니까.
“이기자.”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을 시작으로, 류재준이 미약하게 파동을 뿜어냈고. 그 파동의 진원지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연주 대신 류재준이 합류한 만큼, 다른 식으로 위치를 알려준 셈이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도발이기도 했다.
중국 선수단이 그 파동신호의 의도를 파악하진 못하겠지만. 그 파동을 읽고, 진원지를 읽어 류재준의 위치를 역산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을 테니.
개판이 되더라도 한 바탕 뜨겁게 붙어보겠다는 이번 한국 선수단의 의지가 담긴 [파동]이기도 했다.
물론 그 파동을 느끼고, 진원지를 찾아가느냐 아니냐는 중국 선수 몫의 판단이긴 했지만.
‘어떻게 행동하려나.’
아마 하이옌이라면 저 파동에 이를 갈면서 바로 잡아 족쳐야 한다고 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