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그 경기의 끝엔
헌터스리그라는 종목 자체가, 선수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크고 정신적인 압박을 받기 쉬운 만큼.
제 실력을 모두 낼 수 있게 배려할 수 있도록, 한 팀이 경기를 치르는 간격은 그렇게 짧지 않았다.
‘다른 스포츠처럼 연달아 경기를 치렀다면 남아나질 않았겠지. 지금처럼 중국과의 경기에 대비할 시간도 없었을 테고.’
그리고 지금. 오래도록 머리를 싸맨 후, 고민을 끝마친 나는 중국과의 경기를 대비하고 있었다.
“이젠 아예 연습실에 들어가지도 않는 게냐.”
물론 직접 연습실에서 치고박으면서가 아닌, 바깥에서 선수들을 지휘하고 연습시키면서.
“연습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경기를 대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너보다 까마득한 선배인데, 잘도 구워삶았구나. 네가 이렇게 농땡이 피우면서 연습실 바깥에서 이것저것 지시만 하는데 잘도 들어주고 말이야.”
이근택이 본래 코치와 감독이나 있을 곳에서 연습을 지휘하는 나를 보곤 말했다.
다만, 말의 내용은 분명 완전히 비꼬는 그것이었음에도. 표정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흡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리고는 이근택 회장이 되레 나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알았느냐? 이민석이가 오디션 프로그램 때 등장해서, 그 녀석 영상을 찾아서 분석해볼 생각이라도 들었었나? 흠…… 그런 것 치고는 알 수 없을 만한 것까지 자세히 알던데. 스토커 짓이라도 한 게냐?”
하여간 눈치는 백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무맹랑한 진실을. 직접 국제리그에서 이민석과 많이 붙어봤기에 안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법.
“명색이 국제리그에서 뛰시는데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평범한 헌터일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뭔가 비장의 한수 정도는 숨기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죠.”
“그런 것치고는 디테일한 이야기가 많던데…….”
“흠흠! 그런 건 척 보면 척이죠. 헌터 능력이 다르다고 해서, 다 다르나. 결국 보면 결은 다 같지. 안 그렇습니까?”
이근택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흘겨보지만, 그렇다고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
아시아의 3강 중 베트남도. 일본도 이겼다.
이제 남은 건 중국뿐이다.
***
연습이 끝난 후. 이근택은 이민석과 둘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야,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중국과의 경기 전까지, 눈치를 못 채고 있으면 너에게 조언이라도 구해보라 조언을 건네려고 했거늘. 중국과 일본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냉큼 너를 찾아야겠다더구나. 평소 경기에서도 능력이 외부에 잘 안 드러나도록 하는 네가, 뭔가 보여준 적이라도 있는 게냐?”
이근택으로서는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꽤 위험한 경기가 있었음에도, 이민석의 힘을 빌리는 것은 아주 적은 부분과 역할에서만 활약했으니.
이민석의 진짜 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야말로 이근택 회장님이 귀띔이라도 해주신 줄 알았는데…….”
이민석에게서 들려온 것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이민석 또한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 이민석은 국제리그에서의 성적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능력을 쉬이 드러내는 법이 없었기에.
외부에 드러나는 공방이나, 경기 영상만으로 이민석의 진정한 힘을 알아챌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하고, 갈 길 잃은 시선이 허공에 마주친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듯.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이 도사는 도사군요.”
“그러게나 말이다. 껄껄.”
아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긴 했다. 이창현을 처음 만난 헌터 오디션 프로그램 때부터, 무언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으므로.
하지만 이런 부분까지 알아볼 줄은 몰랐다.
“제 능력에 대해 저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능력은 무엇이고, 어떻게 쓰며. 다른 사람의 어떤 능력이랑 조합해서 쓰는 것을 좋아하는지…… 메커니즘은 뭔지.”
“고놈이 귀신 같은 건 옛날 옛적에 알았지.”
“녀석과 경기는커녕 대련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이번 중국 경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진두지휘하며 배치하는 것이…… 마치 오래 전부터 저와 함께 경기할 때 어떻게 하면 최선일까 생각했던 사람 같았습니다. 이건 너무 나간 생각일까요?”
“거. 녀석. 아예 미래까지 다 알아서 꿰고 있다고 하지 그러냐.”
이근택의 그 말에 이민석도 자신이 어이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
경기 전날 밤.
이민석은 잠을 이루지 못해 뜬 눈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두근거림? 호기심? 열정? 두려움?
아직 이민석은 자신이 무슨 감정에 휩싸인 것인지, 형용할 수 없었다.
원래 이번 국제교류전의 경우. 자신은 뒤에 빠져, 이창현이 주목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웬만해선 이창현이 지시한 이상으로 능력을 뽐내며 전면에 나서지도 않았으며. 전술 또한 이창현이 원하는 바를 따랐다.
왜냐하면 이민석은 자신이 한국을 국제무대에서 이미 한 번 실패시켰기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이 팀은 오롯이 이창현의 공이고. 그를 뒤에서 빛내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중국과의 경기에 선배님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일본과의 경기가 끝난 후. 중국과의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이창현이 이민석에게 찾아와 말했다.
몇 번 실패해버린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리그로 나가버린 이민석이지만. 우습게도 그 말에 가슴이 뛰었다.
‘하…….’
실패했음을 깨닫고, 국제전에서의 이민석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다 잊어서, 개인으로서 더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한국 선수단으로 활동해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국제리그에 홀로 진출해 꿋꿋하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미련 없이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아니었나 보다.
이민석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그것에 얽매여 있었던 걸까.
이창현의 그 말을 들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이 한국 국대를 이끌던 아주 과거의 시절.
항상 염원했지만, 결코 쟁취할 수 없었던. 동료들과의 국제전 승리.
온갖 비난과 욕설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도전했지만 계속해서 꺾였던. 결국은 무릎 꿇고 돌아섰던 무대.
그래서 결국 혼자 도피해버렸던 무대에.
다시 자신이 서도 되는가? 설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복잡한 머릿속.
쉽게 잠들지 못하는 잠자리 속.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껏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 억제해뒀던 능력들의 분출에 대한 설렘.
더욱 성장하여 이전과 달리 국제 무대에서 훨씬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기쁨.
그리고 공존하는 당시 함께했던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
한 번 도피하여 떠난 사람이 돌아와 힘을 뽐낼 자리가 아니라는 자격지심.
이창현의 한마디가 이민석을 뒤흔들며 생겨난 그 모든 감정들.
하지만 그 감정들이 이민석을 흔들어 놓아도. 계속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은 하나였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하자.’
그도 천성이 선수였던 것일까?
자국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을. 불명예스러운 퇴장 아닌 퇴장을 해버린 역사를 그대로 두고 싶은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
“선배님이 조금만 더 힘써주시면, 이번 국제교류전. 전승으로 끝낼 테니까요.”
이창현이 자신을 설득하며 해주었던 말이 심장에 박혔다.
수많은 잡념 속에서, 또렷하게. 아직도 귓가를 울리듯 메아리치는 그 말.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었는데, 또 국제전에서 패배할까 봐 두렵다.
오롯이 이창현과 그들의 성취로 이룬 것을 빼앗아가기 싫다.
……그런 감정은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마음이 이창현의 설득으로 인해 결국 남은 것은, 국제전의 오롯한 승리를.
한국 선수단의 승리로 이창현이 데려다 줄 수 있을까. 하는 것뿐.
동경했으나, 쟁취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와 닮은 것이라도 갖고 싶어 도피했던. 국제리그 경기 속에서도 쥐지 못했던 것을.
이창현이 쥐어줄 수 있을까? 하는 것뿐.
‘그러려면 나부터 정신을 차려야겠지.’
이창현이 이번 열쇠를 쥐고있다면서, 친히 직접 두 손을 꽉 쥐어준 것은 이민석. 자신이니까.
물론 이번 경기는 이민석이 온 힘을 다하더라도 쉽지 않겠지만.
중국 팀은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원하던 그것에 가까운 시점이라는 것. 그것은 확실할 테니까.
‘하핫…….’
본디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에서, 언제 여기까지 와 버린 것일까.
한국 리그를 등져버렸다는 죄책감에 시작했던 작은 재능 기부.
거기에서 껍질을 깨고 나온 이창현이 이젠, 자신의 앞에 서서 이끌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다만 싫지는 않았다.
그가 걷는 곳에, 이민석이 원하는 곳 또한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그저 지켜보고. 응원하고.
‘성공적으로 거들 수 있기를 원할 뿐이겠지…….’
***
국제 교류전은 토너먼트를 통해 1등을 뽑는 과정 같은 것이 없다.
그저 모든 팀이 리그전을 겪는 것을 통해, 통산 승리 수가 많은 팀에게 더 많은 시드권을 가질 수 있도록 포인트를 지급하는 것뿐.
그렇기에, 이번 경기. 중국과 한국의 경기가 국제교류전의 마지막 경기이자, 가장 주목되는 경기였다.
특히나 중국의 경우, 이번 경기 시설이 일본에 있었음에도 인구수가 어마어마한 탓인지 응원하려는 팬들이 인산인해로 넘쳐났다.
그것에 응원을 받았던 것일까?
일반적으로 중국 팀은 경기 이전에 별다른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경기의 경우 조금 달랐다.
“박살을 내버릴 생각입니다.”
“결코 방심하지 않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 선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재밌는 팀입니다. 중국이 긴 헌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한 수 가르침을 주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중국 선수들의 인터뷰가 경기장 곳곳에서 들려왔다.
박살내버리겠다며, 적의를 굳이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하이옌부터.
애초에 대놓고 몇 수 아래 전력으로 평하는 것이 드러나 있는 웨이까지.
한국 선수단이 대기실로 향하던 도중 들려왔던 말이기에.
그 말을 듣고는 김도준이 깐족거리며 물어왔다.
“한 수 가르침 주겠다는데?”
“그럼 가르침을 받아야지.”
내 대답에 놀란 듯 이근택 회장과 이민석. 강준혁이 쳐다봤다.
아마도 가르침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들이박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듯했다.
물론 진짜로 가르침을 받는다는 게 진짜로 받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회귀 전 정상에 서 본 사람으로서.
웨이를 이겨본 경험자로서 배우긴 뭘 배워.
내 인생에 저런 오만방자한 녀석들을 상대로는 참교육이 모토였다.
“나를 상대하면서 가르칠 여유가 있다면 말이야.”
그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른 한국 선수듯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