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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65화 (265/270)

265화 도발

국제교류전 선수들은 제각기 자신의 경기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대기하는 동안 다른 팀의 경기도 거의 필연적으로 보게 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중국 대기실에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보여지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때, 하이옌이 졌던 것도 우연은 아니겠군.”

“우연은 무슨. 저 모습을 보고도 그런 모습이 나오나?”

길고 수많은 사전작업. 동료들의 능력 위에 얹혀진 사격이긴 했으나.

그 모습은 에단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총에서 뻗어져나온 것이 순식간에,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섬멸시키는 그 모습.

중국 팀은 지금 보여지는 화면을 보고서 경각심에 경종을 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웨이가 있는 팀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저 딴 녀석은, 그냥 근접해서 패버리면 그만이오. 그 에단이라는 총잽이 녀석도 마찬가지고.”

하이옌이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혼자 분개했지만. 되려 돌아오는 건 핀잔뿐이었다.

“네가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하이옌.”

“뭐?”

웨이의 말에 하이옌이 답지 않게 반발했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웨이의 눈동자에 주춤했다.

“중국 대표로 나온 녀석이 자신이랑 상대의 차이도 알아보지 못해서는 원.”

웨이가 비아냥거렸지만, 하이옌은 더 이상 반발하지 못했다.

더 반발하는 것을 웨이가 참아줄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주먹을 부르르 떨 뿐.

하지만 웨이에겐 그런 하이옌은 안중에도 없었다.

‘흥미롭다…… 정도가 아니었군.’

하이옌에게 상대의 능력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고 핀잔을 주었으나, 놀랍게도 실상은 웨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화면 위로 보이는 저 녀석은 특별했다.

자신이 국제 무대에서 마주쳐온 유럽의 여제, 아나. 혹은 계속 언급되는 에단. 그런 선수들만큼이나 특별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지금 보여준 저 능력만으로는 그들과 비교되기에 분명 모자를 텐데……어째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국제교류전에 오며, 잠시간 내려놓았던 투지가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에단에게서 한 번도 제대로 이긴 적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끓어오르는 마음에, 몸이 근질거렸지만. 괜찮았다.

중국도 일본과의 경기를 가진 후. 그 다음이 바로 한국 경기이기에,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

경기가 끝난 후, 팀 홈으로 돌아가면서 느낀 점은 하나였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네.’

경기장에 사람은 많이 앉아있는데, 마치 도서관에 온 듯 조용했다.

일본의 홈에서 이루어진 국제교류전인데, 지금껏 진 적이 기억이 안 나는 팀한테 졌다?

하기야 내가 관중이더라도 충격적이긴 했을 것 같았다.

‘일본 선수들은 힘들겠네…….’

사실 이번에 일본 선수단의 멤버가 부족해서 진 것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있는 법.

승자는 달콤한 승리의 과실을 맛볼 자격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조용해진 경기장을 당당하게 지나면서, 인터뷰룸으로 향할 뿐이었다.

“야. 조용한 거 봐라. 근데 나 같아도 억울할 것 같긴 해.”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네. 경기장 이렇게 조용하게 만든 건 처음 본다.”

이민석까지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하긴. 사실 국제전에서 항상 죽을 쑤던 한국 팀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인터뷰룸에 도착해 인터뷰를 시작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국제전이었기에, 다른 나라 기자 측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쪽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는 먼저 한국 측의 인터뷰를 받았다.

인터뷰 내용은 뭐…… 사실 잡다한 이야기였다.

언제부터 준비한 전략이었는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들을 많이 보여줬는데, 전력을 숨긴 것이었는지…… 뭐 그런 것들.

그런데 문득, 인터뷰를 받다 보니 생각난 것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계속 경기를 지켜봐주고 있는 팀원들과 이근택 회장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조금 대신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이창현 : 사실 일본 팀에 이렇게 많은 전략을 준비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그냥 우리 평소 하던 대로 싸우자. 그렇게 저는 이야기했었거든요.]

[기자 : 그런데 반발 의견이 나왔던 건가요?]

[이창현 : 지금껏 국제전에 데였던 적이 있는지, 이근택 회장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뒷목을 잡고 죽으려고 하시더라구요. 네가 날 한국이 일본에 지게 만들어서 역적으로 만드려고 하는구나~ 하시면서요.]

물론 이근택이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일본 팀과의 작전은 애초에 내가 다 짰으며, 뒤에서 별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양념을 약간 친 것뿐이지,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드러나는 말을 넌지시 던진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곳엔 지더라도, 중국이랑 일본엔 지지 말거라.’

‘일본이랑 중국이 이번 저희 지역 국제 교류전 최강팀들인데요?’

‘아무튼 안 된다면 그런 줄 알거라. 약속하지 못하면 확 국제교류전 자리를 빼버릴 테니.’

출국하기 전,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물론 농담식이긴 했지만.

[이창현 : 그리고 이제. 경기 시작 전에, 일본은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제가 그러니까, 같은 팀에 동료 중에 김도준이라고 있거든요? 막 한국에서 보여줬던 이상한 마나장비들 가지고 오면서 막 이거 쓰면 일본에 와사비 초밥급 매운맛 보여줄 수 있다고……

사실 김도준은 저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다만, 이유 없이 슬그머니 연습을 할 때 한 번 써먹어달라는 의도가 다분히 보일 정도로 노골적인 마나장비 사용을 보였을 뿐.

그리고 인터뷰라는 것이, 그냥 대답만 하면 재미가 없는데 이런 조미료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안하다 김도준…….’

그런 생각은 했지만…… 음. 솔직히 김도준이 저번에 요상한 마나장비를 쓰게 만들었던 적도 있고. 쌤쌤 아닐까?

왠지 이 기사가 나가면 어떤 댓글이 달릴지 예상이 가는 듯, 눈에 선했다.

***

경기 대진 상 한국은 당분간 경기가 없었다.

마지막 경기로 중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긴 했지만, 중국은 한국과 대결하기도 전,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으니까.

우리의 경기가 끝나고, 두어 시간의 휴식 시간 후. 그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들 인터뷰는 잘 했어?”

“뭐, 평소 같지.”

윤한결이 선수단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평소처럼 답했다.

나오면 한동안 그 이야기로 팀 홈이 떠들썩하겠지만, 지금은 저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건 그렇고…… 어디가 이길 것 같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이민석이 입을 열었다.

사실 이 국제교류전에서 가장 이목을 모으는 경기는 단연 중국 대 일본의 경기였으므로.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팀원들의 뛰어난 팀워크를 바탕으로, 압도적인 유연성. 그리고 팀워크로 상대를 조여들어나가는 플레이의 극한을 보여주는 일본.

그리고 제 각기의 강함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며, 빈틈이 없으면서도 상대를 거침없이 물어뜯는 중국.

웨이가 있는 중국이 기본적으로 우세이긴 하지만, 국제 헌터 위원회에서 매긴 랭킹에 의하면 충분히 어느 쪽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이긴 했다.

“일본 생각보다 못하던데. 중국이 쉽게 이기는 거 아니야?”

잠자코 지켜보던 김도준이 입을 열었다.

뭐,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방금 일본과 한국의 경기를 보면, 사실 일본은 아무것도 못하고 졌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일본은 그렇게 못하지 않아. 우리 경기에서도 그렇게 못하지 않았고.”

꽤나 쉽게 이긴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경기는 생각보다 팽팽한 경기였다.

승부처였던 몇몇 장면에서, 만약 일본이 해냈더라면 그대로 완전히 게임이 넘어갔을 테니까.

“그럼 창현이는 비등비등하게 싸운다는 쪽?”

이제 막 시작되는 경기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 어려운 문제긴 했다. 우리 팀 경기도 아닌데, 어느 쪽이 더 강한지 나눈다는 것은.

특히 일본의 경우 우리와 연습경기를 자주 하기라도 했지, 중국의 경우 아직 팀대 팀으로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긴 했지만.

‘일본이 넘겨준 자료를 토대로 보면…….’

“중국이 이길 것 같긴 하네.”

“뭐야~ 그럼 돌고 돌아 중국이 이기는 거 맞네.”

내 말에 담긴 근거와, 김도준의 말에 담긴 근거가 다를 텐데……

그건 그렇고 이 경기. 꽤나 유심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경기보다 중국 경기가 힘드리라고 예상되는 만큼.

***

사실 애초에 일본이 불리한 시작을 하긴 했다.

대진부터가 그랬다.

일본은 한국과의 경기로 인해 예기치 못하게, 중국과의 싸움에서 쓰려고 한 히든카드를 뽑았어야 했지만.

중국은 아직 전력에 대한 정보의 누출이 적었으니까.

[캐스터 : 아아…… 다이치 선수의 [마나전개]를 이용한 전략을 완벽하게 공략합니다!]

[해설자 : 중국 팀이 아주 칼을 갈고 나왔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다이치 선수의 [마나전개]가 드러난 것이 불과 1~2시간 전인데 그걸 분석해서 완벽하게 카운터칩니다!]

일본은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손꼽을 수 있는 뛰어난 팀워크로 버티고. 또 버텨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헌터스리그는 버티는 게임이 아니라, 싸워서 이기는 게임이니까.’

[캐스터 : 아쉽게 여기에서 마무리가 되네요. 하지만 일본! 분명 선전했습니다. 7대 4로, 중국 선수 절반 이상을 길동무로 경기 마무리됩니다.]

“와……중국선수들 진짜 잘하네.”

“근데 팀워크랄 것도 별로 안 보이는데 저렇게 처참하게 깨지냐.”

“그래도 내 빛나는 검이 있다면.”

“또 또 까분다.”

경기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지켜보던 한국 선수단 대기실이 시끌벅적해진다.

다만, 강준혁과 이민석. 이근택의 표정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다.

“창현아. 이 경기 어떻게 봤냐?”

라이트하게 시시껄렁한 농담따먹기인 저쪽과 달리, 진중한 표정으로 이민석이 내게 물었다.

“중국 경기…… 꽤 힘들지도 모르겠는데요?”

얼핏 보면, 우린 7대0으로 일본에게 이겼고. 중국은 7대 4로 이겼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기를 봐서 그런지, 칼을 갈고 있다는 것이 아주 잘 느껴지더구나.”

이근택의 그 한 마디가 지금 중국의 상황을 완전히 대변했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해서 7대 4로 이긴 것이 아니었다.

단지, 피터지는 싸움을 하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욕망을 해소하고 싶어서.

그저 그런 욕망을 위해서 감정에 몸을 맡기고 전투를 하느라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마치 이 경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적당한 몸 풀기 상대라는 듯.

그리고 경기에서 승리 후. 다 쓰러뜨린 상대가 있는 전장에서.

마치 우리를 보라는 듯. 카메라가 있을 법한 곳을 향해, 웨이가 어디 한 번 덤벼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씨익 웃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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