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다시 등장한 것은
마나전개를 운용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
한 명에게 버프를 몰아주고, 보조를 몰빵한 후 압도적인 능력으로 상대를 휘젓는다.
원 톱 전략은 헌터스리그에서 역사가 유구한 전술이니 확실히 그건 효과적이긴 했지만……
‘역사가 유구한 만큼 다양한 사례가 있고, 데이터가 있지.’
그렇기에, 대처는 어렵지 않다.
그저 천천히. 그 원 톱이 지칠 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예상대로였다. 버프가 꺼진 것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나전개]를 사용한 후 오는 피로감에 강준혁의 몸이 둔해졌다.
상대의 저격과 엄호를, 우리 팀 또한 같이 투입되어 막아내며.
강준혁을 직접 노린다.
한 번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내어, 이젠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강준혁.
“끝이다!”
그를 향해. 이번 경기의 승자는 우리가 될 것임을 선포하……
“……!”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그 수를 셀 수 없는 이기어검이 마치 물결처럼 밀려든 것은.
‘이건 대체……!’
“피해!”
쿠쿠쿠쿠쿵!
하지만 그 파괴력은 당연하게도 물결과 비할 바가 없었다.
직격한 것도 아니고, 땅을 스쳐지나가기만 했는데도, 굉장한 소음과 함께 먼지가 솟아났다.
“이기어검을 사용할 수 있는 갯수는 7개로 추정하지 않았었나?”
“데이터는 확실해. 모 팀의 국내경기 기록까지 확인했으니까.”
카오루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럼. 기껏해야 7개를 다루던 녀석이 갑자기 저렇게 수를 셀 수도 없는 검을 날린다고?
저건 힘을 숨긴다의 차원이 아니었다.
‘아예 다른 능력 수준이잖아……!’
어이가 없어지는 것도 잠시.
본디 경기라는 것은 서로 작은 한 수라도 숨겨놓기에.
혹은 새로운 무언가라도 하나쯤 가져오기에.
변수가 생기는 것은 일상이었다.
다음이 중요했다. 어떻게 대처할지. 약점은 무엇인지. 현재로서의 우리 팀이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카오루는 침착함을 유지한 채로, 방금 강준혁을 베려던 것을 저지한 검의 물결을 관찰한 찰나의 기억을 토대로 분석을 시작했다.
‘속도는…… 그럭저럭. 느리지도 않지만 전에 7개를 다루던 때만큼 빠르지도 않다. 피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다루는 갯수가 늘어서 그런지, 전처럼 하나하나 검술을 구사하지도 못하는 것 같군. 그러면 무서운 건 무시무시한 질량…… 이것 하나뿐인가?’
그 순간에도 몇 일본 선수가 그 검의 물결의 추격을 뿌리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속도의 차이 때문일까?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빙고.’
뭐야, 생각보다 간단하잖아? 위기 상황에 급조한 것이로구나.
카오루는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헌터스리그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강력한 공격을 하는 것보다도. 그걸 ‘적중‘시키는 것이니까.
저런 둔중하기 짝이 없는 공격은 의미가……
“이……이런!”
그런데 이변은 그 때에 일어났다.
아니. 이미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능력을 상황에 맞춰 드러내며, 임기응변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짜여진 각본 위에 있는 것임을 눈치챌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으니.
이기어검의 물결로부터 도망가던 다케히로를 쫓아. 갑작스레 검은 무언가들이 허공에서부터 생성되더니 그를 속박해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이럴 수가…….’
경악했다. 원거리 속박 능력이 있는 적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지금까진 결코 저런 형태가 아니었으니까.
***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평이하게 이어진 상황 속에 연달아 벌어진 이변의 상황. 중계진은 그 상황을 해설하기 위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캐스터 : 아아……! 한국 이연주 선수의 [속박] 능력이 작렬해, 윤한결 선수의 이기어검을 피하지 못하고 다케히로 선수가 아웃됩니다!]
[캐스터 : 아…… 그런데 조금 아쉬운 움직임이군요. 이연주 선수의 [속박]능력과 그걸 대처하는 방법은 이미 다 분석이 되었을 텐데요. 이기어검의 물결에 정신이 팔려 대처하지 못한 것일까요?]
홈 관중석은 갑작스레 일본팀이 맞은 역습으로, 조용해진 상황.
그런 상황 속, 해설자는 꽤나 놀라운 분석을 내놓았다.
다케히로 선수가, 아웃당하는 그 순간의 리플레이와 함께였다.
[해설자 : 그것보다는…… 저 [속박] 이전과 다르군요.]
[캐스터 : 네? 국제교류전에서도 이미 몇 차례 나왔고, 한국의 헌터스리그에서도 많이 사용되어 꽤나 분석되었다고 합니다만, 다른 점이 있을까요?]
[해설자 : 네. 자세히 보시면. 여기.]
리플레이가 다시금 느리게 돌아간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알아차렸던 것일까.
이전. 이연주의 능력이 보여줬던 능력과 달리, 마치 [속박]능력 자체가 상대를 인지하고 쫓듯. 궤적을 바꾸어 주변에 있는 상대를 쫓아서 묶어버렸다.
감탄과 함께 탄식이 관중석 곳곳에서 쏟아져나왔다.
[해설자 : 저 이연주 선수의 [속박]말입니다. 원래는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의 발목을 잡기는 어려웠습니다. 피할 만도 했구요. 그래서 미리 정확하게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한다면 거의 빗나갔죠. 특정 타겟을 노린다기보다는 특정 좌표의 물체를 속박하는 느낌이었던지라…… 그런데 지금은.]
[캐스터 : 저 검은 것들이 나와 직접 상대를 쫓아서 발을 묶는 거군요! 논타겟팅 스킬이, 타겟팅 스킬이 된 것처럼……
해설자의 분석을, 캐스터의 간결한 요약으로 이해를 돕는다.
한편으로는 이게 뭐 대단한 것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해설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헌터스리그는 결국 자신의 공격은 맞추고, 자신은 공격을 피하면 이기는 것.
그중, 사거리 제한도 없는 능력이. 상대 주변에 나타나 피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아버린다?
그건 서포팅 능력중에서도 단연 최강으로 꼽을만한 것일 테니.
해설자는 이 능력의 위대한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고민하던 찰나.
그제야 생각이 난 것인지, 혼자 떠들고 있는 캐스터의 말을 비집고 들어가 나지막이 말을 내뱉었다.
[해설자 : 그렇습니다. 예시로 들면, 최근 태국 선수가 보여주고 있는 [마나전개] 중 [필중의 영역]이, 그녀의 속박 능력에 더해졌다고 보면 되겠네요.]
***
사람이 제일 방심하는 때가. 가장 위험한 때가 언제인 줄 아는가?
그건 재미있게도, ‘완전히 파악했다’고 오해했을 때였다.
책을 하나도 안 읽은 사람보다, 한 권 읽은 사람이 무섭다고 하듯.
잘못되고 편향된 정보를 얻은 상황. 그것이야말로 헌터에게 있어 제일 큰 독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이 상황이야말로 딱 그런 것이 아닐까?
고정된 물체마냥, 정해진 좌표로 파고들기에
빠르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이연주의 [속박]이 전혀 맞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분석능력이 좋고, 자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이기어검의 물결을 피하면서도, [속박]을 의식했기에, 불규칙적이고 빠른 속도로 피했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다.
이연주가 새롭게 개화하며 강화된 능력으로, 그 검은 것들은 그들의 주변에서 솟아나 그들을 직접 쫓을 테니까.
그러니. 잘못 알고 있어, 적당히 피하려고 했던 녀석이 제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다케히로!!!”
우리 팀 에이스를 쓰러뜨리겠다 싶었던 찰나. 역공을 하다 못해 일본 측 선수가 쓰러지니 충격이 컸던 것일까.
일본 선수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벌써부터 놀라면 곤란한데…….’
아직은 시작도 되지 않았으니까.
물론, 준비가 끝나긴 했지만 곧바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우리에게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봐주는 사람들을 위해.
‘그동안 일본한테 지면서 속 터져서 어떻게 살았겠어.’
이번만큼은 더 화끈하고 멋지게 이겨줘야 하지 않겠는가?
“창현아, 언제 시작할 거야? 이대로 계속 가는 거야? 이러다 끝나면 어쩔라고?”
윤한결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흘러들어왔지만, 지금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그대로 해 봐. 그리고 어째 말만 들으면 벌써 이긴 줄 알겠다?”
그 말에 찔렸는지, 윤한결이 묵묵부답이었다.
“일본 선수들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걸로 보여? 비장의 수단이 있을 테니. 일단은 두고 보자고.”
녀석들이 가장 강력한 무기를 든 순간. 그 순간에 그걸 압도적인 광경으로 꺾어줄 테니까.
***
“크윽…….”
일본 팀에서는 곳곳에서 정보를 교류하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 [속박] 직접 쫓아서 묶는 듯하니, 피하는 걸로 끝내면 안 돼.”
“……그럼 쳐내는 것이 좋겠나?”
“확실하게 쳐내던가, 혹은 묶이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잘라내면 문제 없을 거야.”
‘다케히로…… 이 멍청한 녀석.’
아니. 실은 다케히로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지금껏 상대가 국제교류전에서, 연습경기에서, 자국리그에서 보여준 것이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안일했던 것이리라.
수많은 이기어검이 물결처럼 파고들어오고, 일본 선수들은 그걸 피하며 속박을 뿌리치기까지 해야 했다.
‘이 상황을 계속 지속하도록 둘 순 없다…….’
전장이 갑자기 이상해져버린 시점.
결단이 필요했다.
원래는 중국과의 전투에서 꺼내려고 했던 것을. 지금 전력 유출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꺼내겠다는 결단이.
그리고 그 결단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이치.”
나지막하게 이어폰에 다이치의 이름을 부르자, 다이치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지, 마주본 후 얼굴을 끄덕일 뿐이었다.
다이치의 능력으로 한 숨을 돌린 후.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고, 역공을 한다.
그 순간 그렇게 정해졌다.
승부를 다시 뒤집을 시간이었다.
“다들 모여!”
다이치가 크게 외침과 동시에, 일본 선수가 모여들었고, 다이치의 마나가 순식간애 퍼져나갔다.
[마나전개]였다.
다이치를 중심으로 강하게 퍼져나가는 마나의 고동. 그것과 함께, 다이치가 품 속에서 수많은 마나비트를 꺼내들었다.
다이치의 [마나전개]는 [증폭의 영역].
고밀도로 뿜어내어 유지시키는 그 영역의 능력들을 강화시키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연주의 [속박]을 무시하고. 속박되더라도 단지 뜯어내며. 한 자리에 상주하여 자리를 잡은 후.
윤한결의 [이기어검]의 물결을 직접 받아냈다.
다이치가 띄운 수많은 마나비트들이 [증폭의 영역] 속에서 제각기 삼각편대를 갖추며 강력한 마나실드를 만들어 방어한 것이었다.
생채기도 채 나지 않고 압도적인 방어력으로 막아내는 견고함.
그뿐인가?
남는 마나비트들은 제각기 따로 움직이며, 직접 마나를 발산하며 자율적인 행동을 하며 검을 격추하거나, [속박]을 걷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상대의 공세를 막아내자, 상대의 기세가 확 꺾였다.
하나하나 세세히 컨트롤 할 수 없는 이기어검이기에 그런 것일까?
한 번 강력하게 펼쳐진 마나실드를 뚫지 못하고, 막혀버린 이기어검들은 움직이지 못한 그저 추진력을 잃어버린 채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여러 갈래로 뻗어져 왔던 다른 이기어검들 또한 팀원들이 합심하니 손쉽게 막아내고 있었다.
“역시 강력한 힘인 만큼, 세세하게 다루기는 어려운 모양이군. 이제 역습의 시간인가?”
떨쳐내던 다이치가, 그 말을 하며 움직이려던 순간……
이제서야 검이 충분히 가까이에 있고, 멈춰 있었기에 보였던 걸까?
“잠깐! 다이치. 저 이기어검…… 마나봄버가 붙…….”
그 순간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은. 철저한 준비성 덕에 보았던, 한국 선수단이 썼던 전략의 모음집을 보던 기억이었다.
그중에서도 이창현의 팀임 PER이 3부에서 썼다고 했었던.
보고 아이디어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폭격기 전술이랬나…… 재미있네.’
하지만, 스케일도 작고 허점도 많아 국제 무대에서 쓸만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저 재미있다고 한 줄 남겼을 뿐인.
그 전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