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심장의 고동
경기가 시작된 후 카오루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혹시 일본을 상대로 준비해왔을지도 모를. 시작 단계에서의 각개격파를 통한 변수창출 전략.
강준혁이나 이창현 같은 개인의 무력이 특출난 선수를 필두로, 제대로 붙어보기도 전에 한 명에서 두 명을 잘라내는 것.
그것만으로 전황이 크게 바뀔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본에서 충분히 조심했었던 탓일까?
합류 전 단계에서 사고가 나는 일은 없었다.
“합류지점까지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알겠어. 타쿠미. 그쪽도 별 문제 없어?”
“그런 것 같다만.”
‘후우…….’
곳곳에서 별 문제 없이 합류가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카오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만 된다면. 일단 일본에게 있어 가장 익숙한 전장이자, 가장 승리 가능성이 높은 전장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이제부터는 우리의 무대다.’
카오루는 상황이 나쁘지 않게 흘러감에 씨익 웃었다.
가장 취약한 부분을 넘겼다.
이제 이후의 전략은, 그럭저럭 예상할 수 있는 일들만이 남은 상태였다.
‘연습경기 상대라는 건…… 기본적으로 그 팀이 어떤 성향인지. 그 팀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 뭔지. 전력은 어떤지. 정보를 줄 수밖에 없지.’
그렇기에 한국 팀과 직접 연습경기를 몇 번이고 맞붙어왔던 일본 팀의 카오루는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팀이 가장 잘 쓰고, 잘 쓸수 있고. 가장 승리 가능성이 높아, 사용할 전술은 이창현이나 강준혁. 둘 중 누구냐의 차이가 있지, 결국은 원 톱을 필두로 한 전술일 것이라고.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그 예상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일본 팀의 합류가 끝난 후. 조심스레, 마나의 흔적과 기척을 죽인 채로 조심히 상대와 가까워 지고 있던 도중.
상대방 에이스 중 한 명. 강준혁을 필두로 한 원 톱 전술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나이스.”
일본의 팀 보이스에는 누가 말했을지 모를, 한 마디가 나지막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그래, 나이스다.”
카오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사실 일본 선수진만큼이나, 경기 시작 직후 조마조마하게 보고 있었던 것은 일본 코치진 측이었다.
일본이 헌터스리그 국제전에서 가장 강세를 보이는 쪽은, 선수들 간의 끈끈한 유대와 협력. 한 몸처럼 움직이는 호흡과 팀워크.
당연히 첫 시작 직후 합류단계가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하지만 숨죽이고 지켜보는 것도 잠시. 그 과정이 끝나고, 한국 선수단이 일본의 예상대로 강준혁을 필두로 한 원 톱 전략이 나오자, 고요한 환호성이 퍼져나왔다.
중계 화면 속에서는, 캐스터와 해설자가 열심히 한국 팀의 깨지지 않은 원톱 전략의 강력함을 설파했지만……
일본 팀은 그것만을 노리고 있었으므로.
‘자…… 갈고 닦은 너희의 무기냐, 아니면 우리의 완벽한 준비냐.’
일본 팀의 대기실이 정적에 휩싸이고, 다들 고요히 화면만을 응시했다.
[캐스터 : 한국 팀은 역시나 원 톱을 필두로 휘젓는 전략을 들고 나왔는데요. 일본! 아직 국제 교류전에서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 이 전략에 대한 대답을 들고 왔나요?]
지금까지 한국과의 연습경기에선 드러낸 적 없는.
하지만 시뮬레이션으로는 수도 없이 연습해보았던 것이었다.
이지훈의 ‘금빛 휘광’ 버프나, 한국 선수단 후방의 이기어검, 속박, 냉기를 이용한 발묶기 등.
그것들을 뿌리치고, 버프시간 동안 완강히 ‘버티기’에 들어가는 전략.
쉽지는 않았다.
연습경기와 한국 선수단 경기 기록에서 보여지는 이창현과 강준혁의 퍼포먼스가 전혀 평범하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결국 그들도 인간. 움직임엔 패턴이 있고, 선호하는 싸움 방식이 있었다.
그것들을 분석하고, 또 대비하는 움직임을 미리 팀 단위로 연습한다? 그러면 버티기쯤이야 안 될 것도 없다는 것이 일본 팀의 의견이었다.
보라!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일본 팀 수 명이 가시권에 들어와 교전이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되자, 강준혁이 [검의 영역]을 활성화시키고 금빛 휘광을 두르며 일본 선수들을 향해 싸움을 걸어오지만.
[해설자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일본 팀! 말도 안 되는 움직임입니다. 팀 전체가 마치 강준혁 선수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공유하는 듯. [검의 영역]의 참격을 모조리 피해내고 있어요!]
우리의 연습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감독님. 역시 ‘구보’의 [마나비전]과 [사상공유]가 빛을 발하는군요. 감독님의 예측이 모두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래. 본디 ‘나’보다는 ‘우리’가 강한 법 아니겠나. 구보의 그 눈과 그 눈이 본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일본 선수들의 호흡이 있다면, 피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껄껄.”
첫째. 시뮬레이션으로 이미 몸에 익힌 상대의 공격 패턴을 본능적으로 예상해 피하고.
둘째. 구보의 능력 ‘마나비전’으로 마나의 파동을 읽어 공격의 낌새를 파악, ‘사상공유’로 다른 팀원들도 그 정보를 공유하여 사전에 피한다.
그리고 셋째. 팀원들이 서로의 호흡과 움직임을 느끼고 서로 에어비트를 던져주고 끌어주며 더 완벽한 움직임으로 이끈다.
동시에 예기치 못하게, 이창현의 장거리 저격이 쏘아지는 곳이라면.
다이치의 동그란 [마나비트]가 떠다니며, 저격을 예측해 강력한 마나실드를 발생시켜 막아냈다.
‘완벽하다…….’
집중력도, 전술도, 짜임새도. 모두 이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연이은 공격 회피로 시간이 계속 끌리자, 원톱인 강준혁을 감싸고 있는 금빛 휘광이 점점 잦아들고 있었으니까.
일본 선수들이 [검의 영역]을 발동하며 금빛 휘광을 두르고, 날아드는 강준혁의 공격을 피할 때마다. 대기실 바깥에서 관객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거의 축제의 현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거기에 쐐기를 꽂는 것은 중계진의 해설이었다.
[캐스터 : 아아…… 버프가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버프의 약점인 것일까요?]
마치 그 말이 경기장 내부에 들리기라도 하는 듯.
금빛 휘광이 약해진 것과 동시에, 일본 선수들이 역공을 시작했다.
일본 대기실에는 기분 좋은 정적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한 명과, 그를 보조하는 인력들의 적절함. 뛰어난 버프능력으로 원 톱 전략은 완성된다.
그런데, 그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일본은 입 안으로 들어온 먹이를 놓칠 정도로 그리 무르지 않았다.
***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한국에서의 반응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처음, 중계진이 희망적인 예측을 내놓은 후.
한일전에 대해 기대감을 만발시켰던 시청자들의 반응은 강준혁의 원톱 전략이 시작되며 폭발했고, 다들 호쾌하게 끝내버리는 것을 기대했지만……
[캐스터 : 큰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강준혁 선수, 퇴로가 없거든요!]
오히려 되레 몰리는 것은 반대쪽이었다.
강준혁의 [마나전개]. 그리고 검격은 굉장한 위력으로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모조리 파괴했지만, 실상 일본 선수단에 실속있는 피해를 주지 못하고 애꿎은 고궁만 부쉈을 뿐.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버프가 흩어져가는 지금.
강준혁은 [검의 영역]을 펼쳤음에도 노련하게 사냥감을 잡듯 체계적으로 접근해오는 일본 선수들에 의해, 점차 몰리고 있었다.
‘제발…….’
심지어 그 장면을 화면 너머로 도저히 못보겠던 정혜연은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한국 물로켓 푸슈~]
ㄴ 지금까지 원톱 원툴전략으로 나가다 개같이 망했쥬?
ㄴ 아 ㅋㅋ 하필이면 일본에 지네.
ㄴ 그래도 이 정도면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거 아님? 왜캐왜캐 엄격함.
ㄴ 다른 곳은 몰라도 일본엔 이겨야 하는 거 모르냐?
ㄴ 아……근데 전술이 다양하지 못한게 넘 아쉽네.
ㄴ 원래 전술 한 두개로 돌려쓰다보면 막히는건 당연한거임 ㅋㅋ 그게 지금 온 거고.
ㄴ 근데 즉석에서 모인 팀인데 다양한 전술 쓰라는 것 자체가 좀 어렵지 않나.
ㄴ 일본팀 : ??? 중국팀 : ???
점점 악화되는 상황 속.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들.
기대했기 때문에 실망도 더 큰 것일까. 원래 한국 팀이었기에, 질 거라고 생각했다는 둥.
경기 시작 전과 달리 압도적으로 한국 팀을 조롱하는 채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록 나중엔 나왔지만, 과거에 같은 팀이었기에. 차마 두 눈으로 계속 볼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한국 선수단을 욕하는 것이, 마치 자신을 욕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채팅창을 더는 읽지 못하고, 꺼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만, 마지막 남은 한 줄기의 희망을 품고.
반격을 해 달라는 가득한 염원만을 가지고 경기를 지켜보지만.
……이젠 아예 깊숙하게 들어간 강준혁을 엄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이창현의 저격지원도. 윤한결의 이기어검도. 이연주의 ‘속박’도 어느샌가 모습을 감춘 채였다.
‘후퇴……하는건가.’
지금은 채팅창에 무슨 글이 올라오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강준혁이 끝끝내 일본의 숨통을 조여오는 팀워크에 봉쇄되는 화면이 보여졌다.
원 톱 전략의 추진체인 이지훈의 한 번 뿐인 폭발적인 버프를 잃고.
양 날개 중 하나인 강준혁을 잃고.
사실상 이젠 7대 5가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을 터인데.
후퇴한다고 미래가 있을까?
정혜연이 뛰어난 헌터가 되지 못해, PER에서 나왔지만 지금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만큼은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진심으로 응원했기에. 승리해줄 것을 바랐기에, 가슴이 더욱 아팠다.
화면에는 [검의 영역]의 참격으로 인해 무너진 고궁의 풍경을 바탕으로. 강준혁의 목에 검이 겨눠진 모습이 보여졌다.
‘이 경기는…….’
끝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 일본 선수의 검이 강준혁 선수를 향해 휘둘러졌다.
중계 화면이 줌 인 되며, 강준혁 선수를 선명하게 비춘다.
그런데……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웃었어…….’
절체절명에 몰린 강준혁이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팀 보이스로 무엇을 들었던 것일까.
이제 졌다고 생각한 순간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무언가 이상했다.
그리고 이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강준혁 선수가 [검의 영역]속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것도 더 이상 힘들어, 일본 선수들에 의해 쓰러질 듯 하던 찰나.
마치 지금까지와 다른 장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듯.
동양풍 고궁과 단풍섞인 후원. 그리고 쓰러진 강준혁과 달려드는 일본 선수단을 배경으로,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력한 물결이 날아들었다.
여느 무협 드라마에서나 보았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이기어검의 물결이었다.
‘저건…….’
그리고 그 순간.
비록 경기에는 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PER을. 이창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았던 정혜연은 직감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제대로 된 경기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막 시작될 거라는 것을.
식은 땀으로 가득했던 등은 더이상 의식되지 않았다.
그저, 세차게 뛰는 가슴 소리가 온 몸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