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61화 (261/270)

261화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

일본경기를 코 앞에 둔 한국 선수단 대기실.

지금껏 싸워왔던 국제교류전의 어느 상대들보다도 랭킹이 높았기에, 그리고 상대가 일본이라는 점. 이것 하나에 선수들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으며, 긴장감이 엿보였다.

평소에는 자신의 전술이나 전략, 의견을 쏟아놓고는 눈치도 안 보던 이창현이 이근택 회장이나 내 눈치를 보는 모습 또한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직은 신인이니까.’

이민석 입장에서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이창현의 계획에 무언가 첨언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뛰어나게, 한국 헌터스리그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최근엔 강준혁이 한국 헌터스리그의 에이스격이었지만, 과거 이민석 자신이 에이스였던 시절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자신이 아직 해외 리그로 나가지 않아, 국가대표직을 몇 번이고 맡아오며. 한국 국가대표로 나설 때면 전술을 수립하고 팀원을 지휘하던 그때.

‘……나는 그때도 뛰어난 선수였지만, 뛰어난 팀을 만들진 못했지.’

상황을 빠르게 읽을 줄 알았기에. 실망도, 한계를 인식하고 포기해. 한국을 떠나는 것도 빨랐다.

그후, 한국 국가대표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도, 어떤 식으로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든 무너져내리는 한국 리그를 보고 참담한 심정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해외리그를 전전하며 떠돌던 어느 순간.

자국리그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녀석이 있었다.

유럽 리그에서, 같은 팀으로. 같이 선수로 활약했었던 미나미노 타쿠미.

그는 개인의 기량이 출중한 것을 토대로, 자국인 일본에 돌아가 또 똑같이 멋진 활약을 보여주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그게…… 그게 부러웠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루어졌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헌터스리그 환경이. 부러웠다.

제일 분한 점은, 그런 타쿠미를 계속 옆에서 지켜보아야 한다는 점. 해외리그에서는 웃으며 함께 경기하고. 내가 자주 이기더라도, 국가 대표로 나가서 이기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는 점.

그 한계. 바꿀 수 없는 틀. 한낱 선수의 몸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그것.

나는 그것에 절망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떤가?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단 한 명의 선수가 있음으로, 한국의 헌터스리그를 뒤집는 팀이 생겨났으며, 한국 선수단의 랭킹이 격동하고 있었다.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한국이 만들어나가는 헌터스리그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심지어 나름 한국 헌터스리그 최고의 아웃풋. 이민석의 이름 때 하나 묻지 않은. 이창현 혼자의 힘으로 오롯이 이뤄낸 것이었다.

“저희 팀, 저희 선수들이 숨겨둔 힘이자, 일본 선수단과 연습할 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전략입니다.”

심지어는 이번에,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일본을 상대로.

다른 한국 팀들 상대론 숨기고 싶었을 PER의 전력을 일부 노출시키면서까지.

이기려 하고 있었다.

이민석은 그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뒷짐을 지고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약간의 힘이 달릴 때 함께 페이스메이커만 해 주더라도.’

함께 이끌어가줄. 이 리그의 다음을. 한국 헌터스리그의 더 높은 경지를 보여줄 선수가. 지금은 있었다.

‘……기다리라고 타쿠미. 널 이전에 자빠뜨렸던 우리의 괴물 신인이 갈 테니까 말이야.’

***

한국의 경기력이 고공행진하며, 이창현과 강준혁이 돌아가며 압도적인 원톱전략을 구사하여 눈을 호강시키는 동안.

한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아니었다.

“스폰 문의는 받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일단 조건을 들어보시라니깐요?”

“이미 드릴 말씀은 드렸으니, 먼저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하아아…….’

PER에서 홈을 지키고 있는 김성준은, 한국 헌터스리그에서 LTD를 PER이 이겼을 때보다도 훨씬 많은 스폰 문의와 팀에 대한 문의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헌터스리그는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고, 즐기지만. 한 번도 국제무대에서는 활약한 적 없는, 아이러니한 종목.

그런데 갑작스레 PER의 주장 이창현이 한국 선수단에 나가.

그것도 누구보다 눈에 띄도록 압도적인 성과를 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레만님께서는 흡족하신 모양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레만은 모르겠지만, 김성준은 한국에게 있어 한일전이 무척이나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일본이 해 볼만한 쉬운 상대이면 모르겠는데, 내부 소식에 의하면 도박장에서 일본의 승률을 더 높게 점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으니……

기껏 지금까지 쌓아놓은 에이스의 이미지가, 역적까지 추락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일본 대 한국 경기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어느 때보다도 가슴이 떨렸다.

지금까지 국제 무대에서 이겨본 적 없지만, 절대 지면 안 되는 경기라니.

이런 막무가내스러운 히스토리가 있는 경기였으니……

[캐스터 : 사실 작년이나, 재작년만 하더라도. 아니, 사실 근 7년 동안 한국 리그가 일본 팀을 상대로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해설자님께서는 이번 승부에 어느 정도 희망이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해설자 : 지금 과거 전적으로 보면 절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사실 올해의 팀은 과거의 한국 선수단이랑 다르다. 이게 정설이거든요. 당연히 지금까지와의 국제교류전 기록들도 다르고, 선수들의 면면도 다릅니다. 약점으로 주로 지적된 부분이라고 하면…… 다양한 팀에서 데리고 왔기에 호흡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부분이었는데…….]

‘호흡이 맞지 않을 수 있다라…….’

김성준의 경우 과거의 그 분석에 대해서 듣고 그저 웃을 뿐이었는데. 역시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캐스터 : 호흡은 일 년전부터 같은 팀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해설자 :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이 가진 압도적인 원톱 전략.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텔레파시 하듯 착착 맞아들어가는 손발. 사실 강조가 많이 안 되지만 이거 정말 중요하거든요. 서로 위험한 순간에 에어비트를 설치해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거. 그거 한 명 살리는 거거든요.]

해설자의 말과 함께, 뒤에 한국 선수단의 장면들이 보여지고 있었다.

[캐스터 : 그러면 해설자님은…… 몇대 몇으로 보십니까?]

[해설자 : 5대 5에서…… 지금은 기세를 탔으니, 한국이 6대 4. 이 정도까지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6대4는 무슨 ㅋㅋ 부두술 오지네.]

ㄴ 아니 근데 지금까지 국제교류전 전승이라 해볼만한것같은데 ㅋㅋ

ㄴ 응 아니야. 일본도 지금까지 전승이죠?

ㄴ 일본 선수들 라인업은 알고 말하는 건지…… 해설자는 한국 리그만 보나?

ㄴ 응 아니야. 저 해설자 중국리그도 해설해.

ㄴ 알못은 너였구요~

ㄴ 한 가지 확실한 건, 한국이 이길 확률이 어느때보다도 높다는 거인듯?

반응이 조금 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두가 이번 한국 선수단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

원톱 전략으로 이창현이든 강준혁이든.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화끈한 강함을 보여주며 확 뚫어버릴 것이라는 기대감.

경기 전,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있다면, 좋은 징조라고 할 순 있겠지만……

‘왜 자꾸 불안해지는 거지…….’

오히려 점점 무언가 말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김성준의 착각이었을까?

만약, 일본이 그 원톱 전략의 약점을 찾아와 공략하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되어 원톱인 선수가. 이창현이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눈 앞이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 경기…… 이창현 선수는 나가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김성준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PER의 홈에서 고용인들과 함께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

가장 긴장되고 두근거리는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의외로 경기가 막 시작한 순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 시작 직전을 꼽는 편이었다.

특히, 이렇게 경기장 입구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때까지의 시간.

관객의 환호성이 울려퍼지고, 현장중계의 뜨거운 열기가. 그 진동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

물론 아쉽게도 관객 대부분의 응원은 상대 팀. 일본 선수단을 향해 있었다. 일본에서 하는 경기이니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응원해주는 사람이 적다는 것. 그건 좀 아쉽게 다가왔다.

‘물론 이런 곳을 도서관으로 조용하게 만들었을 때야말로 더 미친듯이 재밌긴 하지만.’

건너편으로 일본 선수들의 입장이 시작되고,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게 관중들의 호응이 달아오른 순간.

나도 모르게 악동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전반적으로 일본 팀의 분위기는 비장했다.

홈그라운드인 만큼, 절대로 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비장함.

과거의 전적도 전적인 만큼, 결코 질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경기장에 왔으므로.

그리고 곧이어 마주친 한국 선수들과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연습경기 때와 달리, 그저 굳은 눈빛만이 오고간 후.

경기가 바로 시작되었다.

“맵은…… 나쁘지 않아. 계획대로 간다. 변수는 없어.”

이번에 등장한 맵은…… 재미있게도, ‘고궁’이었다.

헌터스리그는 기본적으로 탑에 나타났던 전장을 재현하여 그곳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재미있는 점은 실제 세계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곳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등장한 맵 또한 그랬다.

마치 한국 여행을 갔을 때, 보았던 고궁이 생각나는 맵이었다.

단풍으로 정원이 물들고, 고즈넉한 후원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풍성해질 것만 같은. 그런 맵이었다.

허나, 헌터스리그 선수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중립몬스터의 유무. 맵의 특수성으로 인한 전략 수정의 필요성. 유물의 접근성. 맵에서 지켜보아야 할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별로 유명하진 않은 맵이지만, 한 번 딱 훑어보고 맵을 파악한 카오루는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합류 후. 상대의 강화된 원톱을 도발하고, 끌어들여 돌아가면서 드리블하는 형식으로. 기존의 전략을 그대로 수행한다.”

“오케이.”

긴장된 상황. 허나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맵을 특별히 잘 사용하고, 전략 수립이 유연하다고 알려진 한국 팀의 장점이 드러나지 않는 맵이 선택되었다는 것이었다.

오직 전투. 전투만을 신경 쓰면 되는 맵.

압도적으로 강한 원톱 없이도 다른 위대한. 국제적이고 뛰어난 팀들을 상대해왔던 일본 팀의 저력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강준혁이든, 이창현이든. 한 번 와 보라고 해.”

방심은 없다. 서로의 전력과 전략은 거의 드러났다.

남은 건 온 힘으로 맞부딪히는 것뿐.

카오루 자신의 실수만 없다면.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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