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지켜보는 자들
‘봉쇄석‘으로 강준혁의 존재감이 증발되고 전선이 밀리자, 한국의 시청자들에게서 고성이 쏟아져나온 것도 잠시.
점차 변해가는 전장의 상황에, 채팅창에 쓰여지는 글자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무언가 변하고 있었으니까.
갑작스레 LTD의 이지훈이 자랑하는 금빛 휘광 버프를 두르고 뛰쳐나간 이창현에 대한 기대감이었을까?
버프를 두르고 있고, 전선이 어느 정도 있다지만 1대 다수의 상황으로 아무렇지 않게 뛰어든 이창현. 그 모습을 보고 한국 헌터스리그에서의 어느 모습들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예상치 못한 행동에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지훈의 케어 덕분인지, 적당히 맞아가고, 또는 피해가며, 압도적으로 상대의 진형을 휘젓는 이창현.
그 한 명의 존재로 전장이 틀어지고 있었다.
한국 리그와 국제 무대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기에 이창현보다는 이민석이나 강준혁의 분전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라는 일말의 논평과 칼럼들을 모조리 반박하는 결과였다.
물론 상대 측도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캐스터 : 아아……! 사라흐 선수! [마나전개]를 사용하여, 온갖 투사체를 이창현 선수에게 쏘아냅니다!]
상대의 강력한 반격도 이어졌지만. 이창현이 상대의 진영에서 휘젓고 있는다고 해서, 순간적으로 1대 다수가 되었다고 해서.
이 경기는 이창현 혼자서 상대팀 전부를 상대하는 경기가 결코 아니었기에.
[해설자 : 사라흐 선수! [마나전개]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네요. 하지만…… 저희 한국 팀도 나름 ‘올스타’거든요! 진수혁 선수! 상대 에이스 저격에 나섭니다!]
한국 헌터스리그에서와 비슷하게 압도적이고, 누구보다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창현의 모습을 필두로. 한국 선수단의 기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연. 승리였다.
사라흐가 진수혁에 의해 봉쇄된 사이. 이민석과 이연주의 발을 묶는 서포팅. 그리고, 윤한결의 이기어검을 통한 보조.
그것이 벌어주는 찰나의 순간만으로, 이창현은 착실하게 상대를 하나 둘. 제거해나갔으므로.
[정혜연 : 이창현 선수!! 아니 한국 선수단! 한국 헌터스리그의 새 역사를 쓰고 있어요……!]
정혜연은 그 모습에 벅차오르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듯. 감동을 토해내며 말했다.
[캐스터 : 7대 0. 한국 선수들. 한 명의 손실도 없이, 전 년도에 패배했던 태국 팀에게서 퍼펙트 승리를 따옵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광경을 PER이 반이나 되는 저 한국 선수단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 PER의 동료이자, 한국 헌터스리그의 팬으로서 가슴이 벅차오를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기에.
한국의 이 첫 국제전은 대단히 인상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
‘결국 별 것도 안했는데 경기가 끝나버렸나.’
막 경기가 시작하고 [마나전개]를 개방하고 전선을 휩쓸다가, ‘봉쇄석’으로 마나가 봉인되고 뒤에서 뒷짐 지고 있다보니 경기가 끝나버렸다.
뭐, 사실 경기 시작도 전부터 미리 계획된 일이긴 했다.
“그대로 작년처럼 내가 마나를 봉인당하는게 좋겠다고? 그게 뭔…….”
“그걸 막는 게 쉽지않다는 건 선배님도 아시잖아요.”
대기실에서 전략을 회의하던 당시. 이창현의 제안이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긴 했다. 작년. 태국에게 제대로 한 방 먹고 난 이후에도 사실 별다른 대책을 세우기는 어려웠다.
마나전개를 아껴서, 중요한 순간에만 쓴다던가…… 봉쇄석을 지닌 녀석을 먼저 노린다던가…… 하는 그런 전략들이었는데.
사실 그런 것즈음은 상대의 예상 범주 안에 있을 뿐더러, 상당히 쉽지 않았다.
마나전개를 아끼는 순간, 봉쇄석은 쓰지 않아도 쓴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효과를 내는 것이고. 봉쇄석 쓰게 해주고, 쓴 녀석을 노리는 것도 녹록치 않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그것들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하나.
아니, 원래부터 답이 정해져있는지도 몰랐다.
‘팀의 다른 선수가 에이스 역할을 맡아, 팀의 체급으로 이겨낸다…….’
중국이나 일본 등. 이미 다른 나라들이 태국을 상대로 보여주었던. 가장 정직하면서도 별다른 궁리가 필요 없는 전략.
하지만 지금껏, 한국 선수단은 강준혁이 유일하면서도 절대적인 에이스였기에 할 수 없었던 전략.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건가.’
마나가 봉인당해, 조용히 뒷짐을 지고서 다른 에이스의 활약에 기댈 수 있다는 것. 어깨에 올려진 짐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 이제 홀로 싸우지 않는다는 느낌.
강준혁은 이 경기에서,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받았다.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하고. 동시에 무겁기보다는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듯한 감각.
그래, 마치 헌터스리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은 감각이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호우……! 우리도 싸워야 하는 상대를 너무 키워준 것 아니야 타쿠미?”
“키워줬다니.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로 보이나?”
한국의 경기를 지켜보던 타쿠미가 웃으며 동료에게 대답했다.
지금 한국과 태국의 경기를 보며, 긴장한 것은 비단 일본뿐이 아닌 듯했다.
자신의 동료 뿐 아니라, 주위에서 같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다른 해외의 팀들도 표정이 굳어있었다.
“나는 원래부터 저 녀석이 한국을 바꿀 거라고 생각했다고?”
“기껏해야 한국에서도 3부이던 시절에 만났다더니, 그건 무슨. 허풍도 적당해야지 믿어주는 법이야 타쿠미.”
“위대한 선수가 될 사람은 시작부터 다르다는 말 모르나? 하하.”
……그건 그렇고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타쿠미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본과의 연습경기에서도 꽤나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력을 숨겼던 것일까? 이창현은 생각보다도 더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줬으며, 상대방의 ‘봉쇄석’ 사용 전략을 미리 읽고 역이용하는 전략 또한 훌륭했다.
‘올해는 중국만 경계하면 국제 교류전 우승은 쉬우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때보다도 국제리그의 시드권을 따는 것이 어려운 한 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경기가 끝난 후. 특히 완벽하게 승리한 이후에 대기실에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퍼펙트 스코어인 것은 둘째치고, 보통 그런 스코어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과정이 아주 훌륭했을 테니.
영상을 돌려보지 않아도, 명장면이 넘쳐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뭘 꼽아주려나. 하면서, 대기실의 화면을 의식하며 들어가던 도중.
“뭘 그렇게 실실 웃는 게냐.”
갑작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뒤통수를 둔탁하게 때려오는 이근택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 영감탱이는 이겨도 난리인가……?
지금껏 꽤나 많은 일을 함께 해오기는 했으나, 이렇게 대기실에서 직접 같이 있는 건 처음인데.
혹여나 그의 눈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래도 퍼펙트 스코어인데 그런 훈계를?’
어이가 없어하며 뒤를 돌아서 이근택을 바라보는 순간.
그런 것은 전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활짝 웃고 있었다.
지금껏 이근택이 내게 웃음을 보였던 적은 있었지만, 이런 느낌은 또 처음이었다.
물론, 씰룩이는 입술. 흡족스러움을 참을 수 없는 눈짓과는 달리. 말과 행동은 전혀 달랐지만.
“이번만 하더라도, 네 활약은 강준혁을 깔고 이뤄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다음에 태국 팀과 또 붙는다면, ‘봉쇄석’의 타겟이 네가 될 테니까. 그럼 그에 따라 대처도 새로 수립해야겠지. 알겠느냐?”
훌륭히 성공한 이번 경기에 대한 칭찬보다는, 다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마 이것이 이근택의 방식이겠지.
새삼, 안도하는 순간.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그 다음의 전투에서 어처구니없이 죽어나갔을 1세대 헌터들의 시대가 얼핏 보이는 것 같아, 조금은 기분이 묘했다.
“……알겠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건 시작에 불과하긴 했다. 이제 겨우 첫 국제전. 그것도 각 나라별 시드권 분배 점수를 할당하는 국제교류전이었으니까.
한편 그렇게 좋아죽는 표정이지만, 결국은 훈계를 하고 만 이근택과 달리, 대기실의 분위기는 축제. 그 자체였다.
분명, 회귀 전에도 항상 보아왔던 풍경이었을 텐데.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이 기분 탓인 걸까?
‘뭐, 아무래도 좋겠지.’
적어도 이 풍경이 싫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전의 경지보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
한편, 이날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한국팀 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또한 대만과 경기를 치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실상 더 화제인 쪽은 중국이기도 했다.
[마나전개] 사용자가 한 명인 것도 아님에도, 대만을 상대로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로 퍼펙트 게임으로 경기를 끝냈다는 것.
중국의 유명 선수가 모인 중국 선수단의 저력이 쉽게 나타나는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다들 수고했군.”
물론 애초에 압도적 승리를 예상한 만큼, 중국 선수들은 이 경기에 대해 별 생각은 없어 보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다다음 경기.
한국 경기를 더욱 의식하고 있기도 했다.
“그나저나, 하이옌. 저번에 잠깐 떨어졌을 때 어줍잖게 시비를 걸었다가 털렸다며?”
해외 유명리그에 뛰고 있어, 뒤늦게 합류한 위메이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뭣이? 나는 헌터의 예의와 격조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었을 뿐이다.”
“헤에. 별 힘도 없이 네가 털려버린 것은 중국 선수단의 품위에 맞고?”
“크읏…….”
하이옌의 얼굴이 불처럼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곳은 국제 교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경기장내.
헌터들끼리 싸움이라도 크게 일어났다가는 조국에 그만한 먹칠도 따로 없으리라.
그렇기에 하이옌이 참고 있는데……
위메이는 참지 않고 계속해서 빈정거렸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이 자리에 소문을 쫙 퍼지게 만든 모양이던데…… 중국 선수단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네가 자진 사퇴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너같이 수준 떨어지는 녀석은 필요 없으니 꺼지라는 말.
이 말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하이옌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위메이에게 주먹을 내지르던 찰나.
갑작스레 웨이가 그 둘의 사이에 끼어, 싸움을 막아냈다.
“그만.”
압도적인 패자. 웨이의 한 마디가 주는 무거움에, 둘은 그제서야 투기를 가라앉혔다.
작년이나, 제작년에는 이런 트러블이 없었기에. 그저 평탄하게 경기를 치루고 데면데면하게 넘어갔을 텐데……
웨이는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재미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고 있었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중국 선수단에, 이런 파문을 일으킨 것이.
하이옌에게서 열등감과 수치심을 줘 달아오르게 만들고.
위메이에게는 하이옌을 어떻게 꺾었을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자신. 웨이에게는 ‘한 번 시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샘솟게 한 것이.
지금껏 한 번도 의식해 본 적 없는 리그인, 한국의 선수라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마침, 두 사람을 막아선 후. 웨이의 건너편에는 태국과 한국의 경기 중 하이라이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중국과 같은 퍼펙트 게임이었다.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