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압도적인 체급 차이
경기가 시작된 직후. 마치 두 팀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합류를 시작했고,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까지 한국 중계진은 다양한 예측을 쏟아 냈다.
[캐스터 : 맵의 변수가 별로 크지 않은데요. 재작년, 작년에 패배했던 태국의 멤버들은 똑같이 나왔습니다. 이번 경기의 진행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해설자 : 음……일단은 작년에 태국에 당했던 전략에 대한 대책을 가지고 왔냐. 그게 기본적인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이네요.]
[캐스터 : 사실 작년에도 태국에서 ‘봉쇄석’ 유물을 꺼내서 강준혁 선수를 봉인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이 거의 이기는 분위기였죠?]
[해설자 : 네 그렇습니다만, 그 직후 강준혁 선수의 [검의 영역]을 ‘봉쇄석’으로 받아친 이후 급격하게 경기가 넘어갔었습니다.]
“아. 맞아. 저 경기 나도 전에 봤었던 것 같은데.”
“한국 사람이라면 리플레이든, 말로 전해 들었든. 다 알듯?”
대기실에 남아 같이 경기를 보고 있던 한지수가 말했다.
[해설자 : 그런데, 더 문제는 이다음이었죠. 이 ‘봉쇄석’이라는 것이 상대의 마나의 흔적을 쫓을 수만 있어도 상대를 봉쇄할 수 있으니……. 강준혁 선수가 내년에 나와도 태국 상대로 고전하겠다. 뭐 이런.
그게 그런데 당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랄 게 없다시피 할 정도로 대처가 어려웠거든요. 어느 정도 연구가 된 지금도.]
[캐스터 : 그러니, 그것에 대한 대처가 지금 이 경기에서 중요해지는 것이군요.
아아…… 말하는 순간, 화면에 등장했습니다. 태국 선수들, 이젠 아예 거리낌 없이 바로 사용합니다!]
화면에서 곧바로 강준혁에게 ‘봉쇄석’을 사용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봉쇄하고자 하는 자의 마나의 흔적’ 따위만으로도 봉쇄가 가능한 특성 덕에, 최전선에서 [검의 영역]을 이용해 종횡무진하던 강준혁의 존재감이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경기를 관람하는 팬들의 채팅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왔다.
[아니 뭐 함? 아무리 대처가 어려워도 1년이면 대응책을 가져와야지 똑같은 거 또 당하고 앉아있네.]
ㄴ 물로켓 푸슈~
ㄴ 물로켓이라기엔 날아간 적이 없다. ㅋ;
ㄴ 근데 저 유물 공개된 능력 보면 대처할 방법이 딱히 없긴 했음. 그나마 차선이 [검의 영역]전개했을 때 몇 명 쓰러뜨리고 봉쇄당하는 건데……에휴. 쩝.
ㄴ 그럼 신중하게 능력을 쓰던가 했어야지.
예상된 태국의 전술에 당해주는 것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개선이 없는 경기에 대한 실망감 등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상황을 지켜보는 대기실의 한국 선수단은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와……반응 떡락한 거 봐. 이거 이대로 지면 난리 나겠는데?”
“괜찮다. 그런 일은 안 일어날 테니.”
류재준이 호들갑 떠는 한지수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선수단과 함께 지켜보고 있는 이근택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껄. 나는 오히려 기대가 되는구나. 오히려 태국 녀석들이 준비해 온 것이 여기에서 끝이라면 아쉬울 텐데……. 뭐, 아무튼 어디 한번 지켜나 보자꾸나. 얼마나 잘하는지.”
***
오랜 시간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좋은 성적과 경험을 겪었을 때.
그래서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흔히 사람들은 그것이 허점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그리 보였을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곤 한다.
‘태국 팀이 딱 그렇지.’
‘봉쇄석’. 확실히 좋은 유물이다.
봉쇄석을 사용하는 한 명의 태국 선수를 이용해, 상대 팀 에이스 선수의 마나를 봉인해 버릴 수 있으니까.
이 경우, 과거 강준혁 원톱 팀이었던 한국 선수단 같은 팀이나, 특정 선수가 팀 전술의 핵심이 되는 경우 특히 치명적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봉쇄석을 사용하는 녀석도 결국 계속 그걸 붙잡고 마나를 흘려야 하기에, 6대 6… 약간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다.'
팀 체급이 더 높다면. 한 명을 빼고 6대 6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체급에 차이가 난다면. 그뿐인 유물인 것이다.
“슬슬 시작하자.“
이민석이 이어폰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강준혁이 [검의 영역]으로 전선을 휩쓸던 도중, 봉쇄석에 의해 봉인된다.
이건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였으므로, 이제 다음 스텝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이민석의 신호를 듣고, 나와 이지훈이 앞으로 나섰다.
이지훈은 본래 LTD에서 강준혁을 서포팅하던 서포터. PER전에서도 그 위용을 보여 줬지만, 특히나 1명을 케어하는 데 있어서 그 강력함은 확실히 뛰어났기에.
상대의 목적을 읽은 만큼, 이번엔 강준혁 대신 이지훈과 함께 내가 원탑으로 나설 심산이었다.
“한국 리그에서 자신의 팀을 패배시켰던 에이스의 보조를 하는 건데. 괜찮겠어?”
“연습 경기 때도 몇 번 해 놓고는 뭘.”
이지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묵묵히 내게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이지훈이 자랑하는 그 압도적인 배리어를 기본으로, 곧바로 ‘마나과충전’을 내게 걸기 시작했다.
PER대 LTD전에서도 이가람에게 사용해 순간이나마 압도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도록 했던 그 능력.
투명한 배리어와 함께 금빛 휘광이 몸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넘쳐나는 충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이 괜히 약을 맞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알고는 있겠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효율적으로 잘 쓰라고.”
이지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태국 선수단과 전투가 빚어지고 있는 전선으로 향했다.
첫 국제 경기.
시간을 넘어 내가 돌아왔음을, 세계에 알릴 시간이다.
***
경기는 완만. 원하는 대로 계획한 바가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위화감은 뭐지…….’
태국의 감독 차나틱 송크라신의 마음속엔 말할 수 없는 위화감이 생겨났다.
상대 팀의 핵심 인력인 [마나전개] 사용자인 강준혁은 사실상 봉인되었고.
태국 측은 [마나전개] 전력을 온존하고 있는 데다가, 한타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전선을 점점 밀어내고 있는데.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하핫. 이제 끝입니다. 감독님. 힘 싸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강준혁 쪽으로 가는 길을 더 이상 못 막아서 길이 뚫렸어요.”
그 순간에서야, 차나틱 송크라신 감독은 화면을 보며 그 위화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치열한 한타. 힘 싸움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곳에, 한국 선수단은 겨우 4명이었고, 태국 선수단은 6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니, 저건…….”
그리고 못 막아서 길이 뚫렸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한국 선수단이 아군에게 길을 열어 줬다는 사실을.
“…….”
그 열린 길로, 금빛 휘광을 두른 인영이 태국 측 진영으로 불나방처럼 날아들었다.
상대 진영으로 파고든다는 것은, 곧 일대 다수의 전투가 이뤄진다는 것.
얼핏,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제는 그다음 순간이었다.
태국선수들의 공격이 그 금빛 휘광을 두르며 날아들어 온 선수에게 집중되지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모조리 피해 버리며.
심지어는 맞아도 괜찮은 것은 전신에 두른 배리어를 믿고 맞아 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도무지 같은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극한의 전투감각.
감독으로서 선수보는 눈이 있는 차나틱 송크라신은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마나전개 사용자는…… 강준혁을 제외한 마나전개 사용자는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데이터는 틀림이 없습니다만…….”
‘그럼 저게…….’
마나전개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의 움직임이란 말인가?
긴장이 탁 풀리며,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금빛 휘광을 두르고 벌집을 들쑤시듯 들어온 그 한 명의 선수가 태국 선수단을 통째로 뒤집어버리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 갔으니까.
심지어는 얼마 대치하지도 않았는데, 그리 혼자 쳐들어와 한 명을 총으로 해치워 버렸다.
“그.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희한테는 에이스가 있지 않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저쪽만 인력을 증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 그렇지……”
그래. 이쯤 되었으면. 상황의 심각함을 눈치챘다면, 태국이 자랑하는 [마나전개]의 사용자. 사라흐 유엔이 눈치껏 나설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아무리 상대가 뛰어나다고 한들, [마나전개]를 사용하는 사라흐 유엔이라면 저자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중의 영역]. 사라흐 유엔의 마나전개이자, 그 안에서 그가 던진 모든 투사체가 완벽하게 표적을 적중시키는 능력이 발동된 것이었다.
“하……하하.”
그제서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래. 우리 태국은 이번 국제교류전을 발판 삼아, 아시아 하위권 팀에서 못해도 중위권 팀으로 올라갈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게 발목이 잡힌다고? 그럴 순 없지.
사라흐 유엔이 펼친 [필중의 영역] 속에 흩뿌린 수리검을 비롯한 마나를 담은 투사체들이, 유연한 궤적을 흩뿌리며 별똥별 같은 긴 꼬리를 자아내며 아름답게 날아갔다.
한 번은 그 금빛의 휘광을. 버프를 두른 총을 쏘는 상대 에이스가 몇 개는 쏘아 떨어뜨리기도 하고. 쓰러진 태국 선수를 방패 삼아 막아내기도 했지만…….
‘결국은 사라흐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날아오는 투사체가 계속 늘어날 뿐. 그런 식의 임기응변은 의미 없어…….’
갈수록 차나틱 송크라신 감독의 마음은 잠잠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흐뭇해하고 있던 와중에. 상대 선수의 침입으로 전선이 잠시 무너졌던 것일까?
전투가 갑작스레 혼전 양상으로 변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차나틱 송크라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감히…….”
어이없다는 마음 반. 분노한 마음 반에 그 선수를 보니, 평온해졌던 마음이 다시 한번 격랑이 일기 시작했다.
‘진수혁…….’
폭발적인 힘을 내는 딜러 강준혁. 만능 서포터이자, 딜링 능력도 있는 한국 출신의 국제리거 이민석.
그 둘을 제외하고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선수 중 하나였다.
이번 경기는 강준혁이 봉쇄되어 사라흐 유엔이 나설 필요도 없을 거라 생각해, 저 녀석을 경계하는 전략까지는 안 짰는데…….
‘안 돼…….’
달려든 진수혁을 주변으로 투명한 원형 경기장이 생겨나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사라흐에게 잔뜩 달라붙었다.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분석 전문가에 의하면, 한 대상을 확실하게 약화시키는 그것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와 동시에 확실하게 사라흐의 힘이 약해지며, 심지어는 진수혁을 노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까지 했다.
팀이……팀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완전히.
한 번 꿰뚫린 전선으로, 상대방이 봇물 터지듯 들어오고 있었다.
땅에 발을 디디고 있던 태국 선수는 어느 순간엔가 땅에서 자라난 서리에 발이 묶여 금빛 휘광을 두른 녀석의 총탄에 스러졌고.
그나마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해 녀석의 뒤를 노리려는 시도도,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 물체가 속박해 내어, 이기어검과의 연합으로 무찔러 냈다.
‘이건 대체…….’
하나하나 다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알고 있는 능력이고 분석이었으며, 선수의 개인기량으로 비교하는 부분이라 딸릴 건 없다고 생각했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러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팀의 체급 차이가 이렇게나 나다니…….’
상대방의 에이스 딜러를 묶어놓고도 압도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에, 차나틱 송크라신 감독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봉쇄석’으로 봉인당한 강준혁이, 화면 너머로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이 잡히고 있었다.